생일 꽃
한 여자가
"엄마...
엄마
라고 소리치며 부르고 있다
가을이 울고 간 들녁을 걸어가다
빗물을 먹은 달만 올려다보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엄마는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 여자는
내게도 사랑했던 엄마가
있었다는 기억을 잊어버릴까 봐...
나이를 어둠에 감추고
먹빛 어둠이 불러놓은
바람을 따라 사라져간 엄마가
자기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라며
지린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다
엄마가 지나간 그길위에 서서
사라진 여운을 안고 또 운다
남은 햇자락에 담긴 눈물을 헤면서
마당에 홀로 서 바라보던 엄마는
그 옛날 허물어진 저 의자에 앉아
"엄마랑. 나랑.
하늘에
우리라는 별을 찾던
그날 밤을 떠올려보던
그 시절에 빠져들다
방으로 걸어 들어와
미역국 하나 올려놓지 않은
생일상에
너부러져 있는 깡마른 찬밥을
목구멍에 쑤셔 넣는다
(엄마... 생일인데 왜 그렇게 먹어)
엄마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지난날을 말해주고 있는
문각위 작은 액자만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쥐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액자를 가슴에 품더니
통곡의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뱉어놓고 있다
("엄마... 그러지 마... 제발")
낙엽이
낙엽이 된 슬픔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던 엄마는
잠이 들어 있었고
여자는 익숙한 듯 잠이든 엄마의
야윈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쥐더니
주름이 골진 가슴팍에다
예쁜
생일 꽃
한 송이를 놓아두고는
못다 흘린 눈물로
정들었던 방 이곳저곳을 바라보더니 달빛을 따라 걸어나가고 있었다
"엄마..
엄마:. 라는
작은 흐느낌 들과 함께...
몇 시간이 더 흐른 뒤
엄마는
지나는 새벽바람이 깨워서인지
눈을떠
흔적이 지워진 흔적만을 바라보며
바람 지우개로 달빛을 지워버린
새벽을 따라
어디론가 걸어가더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다
딸이 누웠던 침대에 놓여 있는
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선
"영지야.
이 꽃을 전해 주려고
간밤에 온 거였어?
고마워 이렇게 잊지 않고
엄마 생일 챙겨줘서..
결코
딸을 죽음에게
내어주지 않으리라
맹세했건만
물거품이 되어버린
시간을 마주하고 서 있는 엄마는
마지막 선물을
주고 간 딸을 생각하며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슬픔은 떠난 자의 몫이 아니라
남은 자의 몫이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산다는 의미 하나 건진 것밖에 없는 세상살이를 원망하다
생일 꽃 안에
고이 접어져 있는
손 편지를 펼쳐보던 엄마는
"엄마.. 먼저 가서 미안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엄마 딸이였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 돼?"
편지를 읽어가던 엄마는
두 볼을 떠난 눈물로
행복한 삶의 기억들을 가지고 떠난
딸에 대한 미안함을 건네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바뀌어
3일이 더 지나간 오늘
딸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고 온 엄마는
딸의 마지막을 안아주지 못한
시간이 멈춘 방에서
몇 채씩 포개놓은
이불들을 바라보고 있다
자식과 손자들이
오는 날을 대비해 놓은
이불 가지들을 바라보며
그날에만 볼 수 있었던
환한 미소를 떠올려보다
돌덩어리가 되어있는
찬밥 한 덩어리를
목구멍에 쑤셔 넣는다
'내 새끼..
먼저 보낸 엄마가.
살겠다고
지 목구멍에 밥을 쑤셔놓고 있네..
혼자 밥 먹기가 미안했는지
휴대전화기에 있는
버튼을 눌러
"내 딸" 이란 글자가
물방울 번지듯
번져가는 걸 바라보더니
내 딸...
배고프지? 이 엄마랑 같이 먹자"
맞은편 자리에
딸의 수저 한 벌을
놓아두고는
몸살이나 링거나 맞으러
찾았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딸을 생각하며
그동안 주고받았던
딸과의 문자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내려가고 있다
"내가 가서 엄마 좋아하는
부침개 해줄게'
됐어..
그냥 김 서방이랑 울 왕자님이나
잘 챙겨
뭐 하러 여기까지 오려고"
"엄마가 학교 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랑
처마 밑에 비를 헤면서
앉아 부침개 먹던 생각이 자꾸만 나"
몸도 안 좋다며?
빨리 병원에 가서
링거 한 대 맞아"
지상에서 한 마지막 말들을
핸드폰 액정에
떨어지는 눈물로
지워가던 손가락으로
아래로 아래로 읽어 내려가다
멈춰진 자리에서
손가락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
좋아하는 거 가서
아주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해 엄마"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직도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다며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는
엄마를 보며 딸은 말하고 있었다
(엄마.... 이제 갈게.)
지금껏 엄마 곁을 떠나지 못했던 건
보고 싶어서..
같이 있고 싶어서.
그 말이 들리는 듯
엄마는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게 남은 날들을
너에게
줄 수만 있었다면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