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30.
1990년대부터 시작된 PC(Political Correct ness)라는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의 목적은 정치사회적 언어에서 지배권력 담론이 배어 있는 편견적 요소를 배제하자는 데 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정치사회적 언어 중에는 사실상 지배권력의 편견이 반영된 용어가 적지 않다. 언어란 정치·사회의 권력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에, 지배집단에 호의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반면 종속집단에는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용어가 많다. 예를 들어 ‘저개발국가’라는 단어와 ‘유색인종’이라는 용어를 보자. 개발과 저개발은 어떤 기준에 의한 구분이다. 그 기준은 유럽 혹은 미국이다. 유럽 혹은 미국 중심적 사고를 반영하는 단어다. 유색인종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힘의 논리’가 영향을 미치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거나 다른 용어로 대체하자는 것이 PC운동이다. 한마디로 언어의 자의적 사용을 막음과 동시에 그 속에 포함돼 있는 차별적 가치관을 배격하자는 운동이다.
PC운동을 거론하는 이유는, 요새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지배적 권력이 자의적으로 특정 용어를 오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민’이라는 단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는 진영 논리에 따라 차별적인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용어가 정치권이라는 지배적 집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오용되고 남용된 대표적 사례라는 차원에서 PC운동과 관련 있어 보인다.
“한시적이어도 좋다. 선거 중립 내각을 구성해 공정 선거가 이뤄지도록 해달라…. 선거 관련 모든 부서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을 방으로 돌려보내라. 이것이 국민의 명령.” (2019년 12월 19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자유한국당이 끝내 원포인트 본회의 제안을 거절하면 흔들림 없이 국민 명령을 집행하겠다.” (2019년 12월 20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바야흐로 ‘국민의 명령’ 전성시대다. 서로 반대 주장을 하면서도 양측 모두 ‘국민 명령’을 내세우거나 ‘국민’을 들먹인다. 이러니 다수 국민은 ‘자신의 이름’을 도둑맞은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정당이 ‘국민’을 입에 달고 사니 나는 국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 정당이 말하는 국민은 자기네 지지층을 의미한다. 거대 양당 지지자라고 할 수 있는, 각각 3분의 1 정도 유권자를 국민 전체로 포장하고 있다. 이는 특정 용어의 ‘의도적 오남용’이다.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선거법 개정안이 전격 상정될 때, 이른바 범여권 의원 156명이 제출한 의사 일정 변경 동의 안건을 보면 “선거법 개정안은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법안인데도 특정 정당이 국민적 여망을 무시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당 간 대화와 협상을 일절 거부한 채 맹목적 반대와 철회 주장만을 일삼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도무지 이들 정치인이 생각하는 국민은 어떤 존재일까. 실제 대다수 국민은 개정 선거법이 뭔지 모른다. 알지 못하기에 그 법이 악법인지, 자신들 여망이 담긴 법인지조차도 판단할 수 없다. 대다수 국민이 개정 선거법을 모르는 이유는 선거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A라는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20%의 득표를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총 의석 300석 중 20%인 60석의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이때 지역구에서 20명의 자당 후보가 당선됐다고 가정하면, 이론적으로 A정당은 40석의 의석을 비례의석에서 추가로 확보해야 맞다. 그런데 47석 비례의석 중 30석은 연동형 캡을 적용하고 17석은 정당 투표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기로 했으므로, 일단 A정당은 연동형 적용을 받지 않는 비례의석 17석의 20%, 그러니까 3.4석을 가져갈 수 있다. 그 이후 확보해야 할 나머지 37석을 개정 선거법에 따라 준연동형 50%를 적용해 2로 나눈다. A정당은 대략 18석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37석을 비례의석에서 추가로 확보해야 맞는 A정당 입장에서는 확보한 의석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A정당이 비례에서 확보한 의석은 총 21석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A라는 정당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B, C, D, E 등 정당이 존재한다고 할 때, 연동형 캡을 쓴 비례 30석 안에서 각 당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연동형으로 비례의석을 분배해야 한다. 따라서 각 정당은 강제로 축소 적용된 의석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정당 득표를 많이 한 당이라 해도 지역구에서 후보를 많이 당선시키면 비례의석을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일명 ‘비례한국당’ 출현이 거론되는 것이다. 설명을 좀 더 하자면, 위성 정당 출현은 막지 못할 것 같다. 우리와 똑같지는 않지만 상당히 유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했던 알바니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알바니아는 총 의석수가 155석이고 이 중 40석이 비례의석이다. 이 나라도 2005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렀다. 알바니아는 민주당과 사회당이 거대 양당이다. 이 두 정당은 경쟁적으로 위성 정당을 4개 혹은 5개씩 만들고 선거를 치러 나름 ‘성과’를 거뒀다. 이런 실제 사례를 놓고 볼 때 제1야당이 비례한국당(참고로 이 당명은 사용할 수 없다. 이미 다른 정파가 비례한국당이라는 이름으로 선관위에 창당 준비위원회를 등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가칭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같은 위성 정당을 준비하면 여당도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범여권에 속하는 군소 정당은 선거제도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꼼수라고 비판할 것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시 목적 중 하나는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해 다양한 의견을 반영토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4+1에 속하는 정당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안신당은 민주평화당에서 나온 정당이다. 지역 기반마저 민주평화당과 같다. 지난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정의당도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입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바른미래당 당권파도 호남 의원이 많다. 때문에 다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는 있어도, 다양한 의견이 국회에 반영될 것이라는 주장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수’와 ‘다양’은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알바니아는 2008년 해당 선거제도를 폐지했다.
새로운 선거법 개정안을 설명했지만 이것도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의석을 계산하는 방식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새 같은 경제 불황 속에서 생업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판에 시간을 내 이런 복잡한 선거법을 공부하고 의석수를 계산하는 방법까지 숙지하는 국민이 많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을 파는데 정작 그곳에 국민은 없다. 국민은 그냥 이름만 빌려주고 자신들을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국민은 자신들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장식품이 돼버린 것 같다.
정치권은 저마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정치판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국민이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마음 놓고 국민을 팔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정치판을 등진 국민이 다시 정치를 신뢰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정치를 더욱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이 등진 정치는 더 이상 정치로서의 존재가치가 없다. 지금 바로 그런 상황임에도, 정치 집단들은 아직도 저마다 절대선을 외치면서 상대를 ‘국민의 이름’으로 악마(惡魔)화하고 있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더 이상 ‘국민의 명령’ 운운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명령이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관심도 있고, 또 그 존재가 자기 뜻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국민도 자신의 희망대로 여야 정치권이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정치인, 당신들한테 명령하고 싶은 국민은 극소수라는 말이다. 정치권은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40호·신년호 (2020.1.1~2020.1.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