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촌년이었다. 고향을 벗어나는 일은 손에 꼽았다. 그곳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도 모두가 지인이 되었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닷바람은 도시 곳곳을 더 빨리 낡게 만들고 있었다. 다들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우물이 왜 우물인 지도 모르는 작은 항구 도시가 나의 고향이었다.
2006년 1월 17일. 나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해도 뜨지 않은 어둑한 새벽, 택시는 아무도 없는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잠이 덜 깬 하품만 가득한 기차역에서 무궁화호 첫차에 올랐다. 덜컹덜컹. 등 뒤로 작은 도시가 재빨리 멀어져 갔다. 그날은 나의 실기시험 날이었다.
기차는 밀양, 대구, 구미를 지나 대전, 천안, 평택, 수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도시들을 재빠르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흔해빠진 논밭, 공장조차도 다 새로웠다. 차마 다 녹지 못한 길 한 편의 눈덩이마저 다 기억 속에 주워 담으려 애썼다. 더 이상 풀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곳은 이미 서울이었다.
거대한 빌딩들 사이로, 지하철역 플랫폼 위에서, 무미건조한 표정의 사람들이 넘쳐났다. 내가 탄 열차 옆에서 나란히 오던 열차 차량 안에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검은콩을 넣어 둔 통이 떠올랐다. 엄마가 밥을 짓고 있을 시간이었다. 쏟아진 검은콩들은 밥솥 안에 각자 제자리를 찾아 안착하겠지.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은 열리고 닫히고, 열차는 달리고, 다시 열리고 닫히고 달리고. 열차 선로 밖으로 집들이 건물들이 끝없이 뒤엉켜 있었다. 나무도 산도 잘 보이지 않았다. 덜컹, 덜컹, 덜컹. 계속 흔들려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5시간 가까이 타고 있었더니 멀미가 났다. 곧 도착하겠지. 긴 숨을 내쉬며 견디고 있었다. 덜컹. 그리고 한강이 보였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대로 강은 넓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끝없이 빌딩들이 뻗어 있었다. 도로 위에는 자동차가 빼곡했다. 해는 따뜻하게 솟아 있었지만, 빌딩은 빛을 반사할 뿐, 도시의 바닥까지는 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로지 강물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반짝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 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 유지해야 하는 속도. 수없이 엉켜있는 지하철 노선도. 알록달록한 버스 색깔. 줄지어 있는 택시들. 쏟아내고 짊어지기를 반복하는 열차들. 저마다 들고 있는 가방, 저마다 매고 있는 목도리, 그리고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고 있을 사연들. 그 모든 것들이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서 하찮아지고 있었다. 서울역은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살아보고 싶었다. 귀신이 튀어나올 걸 알면서도 사건 지점으로 다가가는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의 삶을 선택하는 이유를 느끼고 싶었다. 쓸쓸해질지도 모른다. 죽고 싶을 정도로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냉랭해진 마음을 위로하는 건 두둑한 지갑이 될 거라고, 이 도시에 살면 그런 물질적인 여유는 따라올 것만 같다며, 스무 살의 나는 드라마틱한 상상을 하며 역을 빠져나갔다. 그것이 나의 첫 서울이다.
십 년이 지났다. 짠 바다내 대신 비릿한 강 냄새를 맡고, 한적한 녹지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강변북로의 교통체증을 각오해야 하고, 죽어라 노력하는데 월급은 안 오르고 월세는 오른다.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지만, 외로운 사람끼리의 만남은 독을 남기고, 말은 오가지만 마음은 오가지 않는 인간관계는 자주 내 목을 조른다. 금수저, 은 수저가 판을 쳐서, 그저 그런 쇠붙이 숟가락들은 한없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을 아등바등했지만 난 아직도 촌년이다.
잠시 후 합정역에 도착합니다. 6호선 응암·봉화산 방면으로 가실 분은 이번 역에서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집에 갈 준비를 한다.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오른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통의 걸음걸이로 잽싸게 역을 빠져나간다. 눈앞에 17억짜리 아파트가 번쩍번쩍 빛난다. 난 지은 지 28년 된 빌라에 몸을 밀어 넣는다. 앞뒤로 다닥다닥 붙은 빌라들에 가로막혀 노을 한자락조차 우리 집 장판에는 닿지 못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목도리를 풀어 던진다.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눈을 감는다. 창밖에서 새소리를 듣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바다를 보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습습하고 끈적끈적한 바람이 비로소 그리워지는 지금. 나는 다시 처음을 꿈꾼다.
" 어제는 봄눈이 잔뜩 내렸습니다.
내일이면 3월인데 오늘 서울은 영하 7도의 매서운 칼바람이 부네요.
저는 상수동 이리 카페에서 일하면서 개인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부당하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네요.
힘없는 사람은 서울에 살 수 없는 걸까요?
모두에게 따뜻한 봄날이 오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