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를 맞아 서울문화사학회 회원 여러분의 가정에 즐거운 일 만있으시기를 기원하여 쌍희 희(囍)자의 유래에 대하여 옛날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중국 사람들은 결혼식이나 아주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문 위 혹은 창문 위에 커다란 붉은 색의 ‘쌍희 희(囍)’자를 써 붙이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것은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아주 특별나게 드러내기 위함인데, 붉은 색 바탕에 금색으로 그려진 용(龍) 또는 현무(玄武)와 같은 상상의 동물들로 도안(圖案)해서 붙여 놓은 장식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식이나 여인의 용품 거처에 희(囍)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신년 용의 해를 맞아 그 유래를 찾아본다. 장달수
중국 宋(송)나라 때의 정치가이며 文人으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왕안석(王安石)의 전설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는 新法을 실행하여 부국강병의 정책을 써서 우리의 귀에 익숙한 사람이다.
왕안석이 젊었을 때에 송나라의 수도인 임안(臨安)으로 과거를 보러가다가 도중에 마가진(馬家鎭)이라는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집의 대문에 높이 걸린 주마등(走馬燈)이 아주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주마등의 위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써 있었기 때문이다.
“주마등, 등마주, 등식마정보(走馬燈, 燈馬走, 燈熄馬停步)”
“달리는 말의 등불, 등불의 말이 달려간다, 등불이 꺼지면 말도 걸음을 멈춘다.”는 뜻인데,
바로 ‘마씨 성을 가진 마을의 부자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대단히 총명하여 자기가 지은 시의 대구(對句)를 잘 지은 사람에게 시집한다고 하였다. 주마등에 비유한 일종의 대련(對聯)의 위 구절을 써 놓은 것이다. 또한 주변의 사람들에게 馬地主의 집안에 대해서 알아보니, 아주 아름다운 딸이 있는데 아직 출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이 대련에 대한 아래 구절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마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왕안석은 이 위 구절이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에 이 구절을 새겨 놓고는 과거를 보러 길을 재촉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왕안석은 경성(京城)에 도착하여 과거시험을 치렀다. 그는 과거 시험의 문제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서 답안지를 제출하였다. 시험 감독관이 그의 신속한 답안 제출을 보고 그의 이모조모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문 앞에 걸려 있는 비룡(飛龍)의 깃발에 쓰여 있는 구절의 대귀를 지으라 하였다
“비룡기, 기비룡, 기권룡장신(飛龍旗 旗飛龍 旗捲龍藏身)”
비룡(飛龍)의 깃발, 깃발의 흔드니 용이 하늘로 나네. 깃발을 접으니 용이 몸을 숨기네.”라는 대련의 위 구절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왕안석이 마가진(馬家鎭)에 쓰여 있었던 위 구절을 생각해 내고는,
“주마등, 등마주, 등식마정보(走馬燈, 燈馬走, 燈熄馬停步)”
“달리는 말의 등불, 등불의 말이 달려간다, 등불이 꺼지면 말도 걸음을 멈춘다.” 라는 구를 대답하였다. 시험 감독관이 듣고는, 왕안석이 지은 아래 구절이 아주 세밀하고 잘 정제되었다고 생각하여 크게 칭찬하였다.
과거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도중에 왕안석은 다시 마가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또 한번 그 주마등의 위 구절을 마주치게 되었다. 이것은 아직도 아래 구절의 대련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험 감독관이 제출했던 위 구절을 아래 구절로 하여 대련을 써서 馬地主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馬地主의 딸은 그 대련의 아래 구절이 너무 정치(精緻)하여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하여 왕안석은 아름다운 부자집 딸과 혼인하게 되었다.
왕안석과 마소저(馬小姐)의 결혼 첫날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의 극치(極致)였다. 바로 신랑 신부가 하늘에 맹세하는 절을 올리는 그때, 조정에서 나온 관원이 기쁜 소식을 알려왔으니, “왕안석 과거 급제” 이었다. 왕안석은 너무 기쁨에 넘쳐 자신의 현재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니, 결혼한 것이 하나의 기쁨이요 과거에 합격한 것이 또 하나의 기쁨이니, 이것은 기쁨에 기쁨을 보탠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닌가! 이리하여 왕안석은 붉은 색 종이 위에 커다랗게 두 개의 ‘기쁠 희(喜) 자를 써서는 대문 위에 붙여두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붉고 붉은 ‘쌍희 희(囍)’ 자를 써서 붙이게 된 것이다.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