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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인재양성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원 늘리기와 부정입학 의혹 잇따라
계약학과는 대학이나 대학원 등 산업교육기관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의 요청에 따라 산학협력계약을 맺고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해 개설하는 특정 분야의 학과를 말한다.
계약학과가 개설된 계기는 2003년 산업교육진흥법이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면서 제8조에 근거가 마련된 뒤 2004년부터 계약학과 설치가 가능해졌으며, 2007학년도부터 성균관대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대학원에 휴대폰학과 석박사 과정을 설치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와 협약을 통해 소프트웨어 분야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된 휴대폰학과의 경우 삼성전자는 입학생 전원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며, 졸업 후 삼성전자 DMC 부문 입사를 보장하는 조건의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월9일 건국대는 2010학년도 1학기부터 대학원에 차세대 녹색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미래에너지학과를 계약학과로 신설한다고 밝히고,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태양전지과학 전공 석·박사 과정 신입생을 2월 12일까지 모집했다.
건국대 측은 대학에서 경험을 쌓고 현장에 진출하면 연구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어 바람직한 산학협력 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대학에서 교육과정을 마쳐도 입사하면 재교육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산업현장의 수요에 맞는 인력 양성을 위해 계약학과가 만들어졌다”는 성균관대 휴대폰학과 정민영 교수의 말처럼 산업현장과 괴리된 대학의 커리큘럼이 계약학과의 필요성일 것이다.
아무튼 이후 계약학과 신설 붐이 일었다. 건국대뿐 아니라 서울대 임상의과학과 등 계약학과 설립이 잇따르자 언론에서는 계약학과를 ‘산학협력의 결실’로 치켜세웠지만, 성균관대 휴대폰학과처럼 모든 계약학과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100% 보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성균관 대학원의 휴대폰학과처럼 대기업이 중심이 돼 채용을 조건으로 학자금 지원계약을 체결하고 특별한 교육과정 운영을 요구하는 ‘채용조건형’은 5개 학교 12개 학과 401명에 불과하다.
현재 개설돼있는 계약학과의 절대 다수는 ‘재교육형’으로, 부산대 냉동공조에너지전공을 비롯해 51개 대학 188개 학과 6,168명에 이른다. 이처럼 고용보장형보다 재교육형이 압도적인 이유는 기업과 학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비의 일부를 부담하면서 소속 직원의 재교육이나 직무능력 향상 또는 전직 교육을 의뢰하는 ‘재교육형’ 계약학과는 비용을 기업과 직원이 절반씩 부담하는 조건(산업체가 교육비용 50%이상 부담하는 조건으로, 학생이 부담하는 납부금의 총액은 계약학과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100분의 50을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음)이어서 교육비 전액을 지원하며 고용까지 책임져야 하는 채용조건형에 비해 기업에 유리한 방식이다. 더욱이 기업이 부담하는 절반의 비용조차 반드시 현금일 필요는 없고, 기업체 현장을 강의 장소로 제공하는 방식의 현물출자도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등 기업부담을 그만큼 덜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로서는 재교육형을 선호한다.
기업입장에서는 재교육형이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재교육형 위주로 개설된다. 물론 학생 입장에서는 채용조건형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지만, 신입생이 아니라 재직 중인 경우라면 재교육형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학생확보에 있어서 문제가 없고 어느 경우든 등록금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학교로서는 채용조건형이나 재교육형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기업이 주도하는 형태의 학과를 개설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 측에서 보면 실제 운영 면에 있어서 채용조건형보다는 재교육형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된다.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는 채용조건형과 달리 재교육형은 정원 외로 운영되기 때문에 계약학과와 성격이 유사한 정규학과가 있으면 얼마든지 설치할 수 있다. 정규학과 중에 경영학과가 있으면, 이와 유사한 스포츠경영학과, 심리경영학과, 에너지경영학과, 보험경영학과, 유통경영학과 등의 유사 계통의 계약학과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정규학과 학생 수보다 계약학과 학생이 많은 경우도 생긴다.
더욱이 계약학과를 만들더라도 추가로 전임교원, 교사, 교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학교의 부담은 적다. 경기도 모 대학 계약학과 교수는 “강의실 등은 산업체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산업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겸임교수로 데려온다. 현장의 풍부한 경험을 살린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만큼 싼 비용으로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학교와 산업체 간 계약학과 설치 운영에 관한 계약을 맺으면, 손쉽게 설립이 가능한 까닭에 대학들이 앞 다퉈 계약학과를 설립하고 있다. 계약학과 교수들은 기업을 돌아다니며 ‘계약학과 설치·운영 계약’을 맺기 위해 세일즈를 벌인다. 서울 K대학 계약학과 교수는 “계약관계가 끝나는 순간 계약학과는 존립 근거를 잃기 때문에 계약학과 교수 대부분이 전임교수가 아닌 신분이 불안정한 겸임교수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산업체 유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계약학과가 남발되기 시작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1월27일 서울기독대는 신학과 등 계약학부 소속 학생 313명 전원에게 통지문을 보내 “계약학부 설치 관련 법령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교육과학기술부 감사 지적에 따라 입학을 취소하고 이에 따른 등록금을 반환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계약학부 소속 교수 9명과 강사 98명 등 107명의 해임을 통고했다. 하루아침에 학교에서 쫓겨나가게 된 계약학부 학생들과 교수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집단농성을 벌인 바 있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전액 장학금에 취업보장까지 내세우면서 학생들을 유치하는 계약학과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계약학과가 폐지되고, 학생들이 앞장서 계약학과를 반대하는 일까지 벌어지지만 이런 소동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계약학과는 여전히 생소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계약학과 중에 재교육형이 문제가 되는데, 계약학과를 설치할 수 있는 산업체의 범위에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을 비롯해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와 의료기관, 군부대 등이 포함되는데, 문제는 학교당 수십 개에 이르는 산업체가 계약학과 입학 대상으로 지정돼 있고 서류상으로 이를 검증하다 보니 설사 계약학과 학생들이 소속된 산업체가 실제 재직 중인 곳이 맞는지 의심이 가도 사실 확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학이 앞장서 증원 수단으로 계약학과를 악용하다보면 정체성이 모호한 사업체를 만들어 등록을 알선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예를 들어 A회사 직원이 B학교 계약학과에 들어가고 싶지만 A회사와 B학교 간에는 계약학과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지 않았다면, A회사 직원은 B학교와 계약이 체결된 C라는 사업체에 등록하도록 편법을 쓰는 것을 알선하거나 묵인하는 것이다.
학교 측도 정원 늘리기에 혈안이 돼 이를 묵인하고 입학을 허가한다. 묵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장 내지는 방조하기도 하여 부정입학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계약을 맺은 기업 간부들이 자신의 자녀를 직원으로 등록해 입학시킨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약학대 계약학과 설립을 반대하는 전국약학대학학생회협의회 정수연 회장은 “약학대 계약학과는 편법적으로 정원을 늘릴 뿐 아니라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응시를 통해 들어오는 학생들에 비해 불공정 입학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제약업체 직원이 입학하는 과정에 간부급 인사의 혈연 및 지연이 개입돼 청탁 등으로 인한 부정입학이 발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교과부는 매년 9월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대학 측에 산업체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그렇지만 대학당국도 이 정도인데 한두 명의 교과부 인력으로 수십 개 대학에서 이뤄지는 계약학과 입학심사에 대해 ‘산업체 구성 요건은 갖췄는지’, ‘유령 사업체는 아닌지’ 등 MOU 진위를 일일이 확인하기가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교과부 감사 결과, 직원이 재직증명서를 제출한 곳(학교와 MOU를 맺은 산업체)과 고용보험 지급업체(실제 근무업체)가 다른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계약학과에 대한 면밀한 감사가 없는 실정이어서 사후관리도 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교과부 관계자는 “계약학과는 기본적으로 학교가 자율적으로 설치, 운영하는 만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학교 측에서 제출한 산업체 명단을 보다가 크게 의심되는 산업체에 대해서는 조사를 벌여 적격 여부를 판단하지만 모든 산업체를 면밀히 조사하기에는 어려운 여건”이라며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제도 정비를 하고 있다”는 식의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렇다면 실제 어떤 비리와 부조리가 벌어지고 있는지, 혹시 과거 청강생제도로 인한 대학입학 비리 이상의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 지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만에 하나라도 상당수 대학의 계약학과가 ‘소속 직원의 재교육 및 직무능력 향상’이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하게, 자신이 일하는 분야와 무관한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거나 가짜서류를 제출한 부정입학생으로 채워져 있다면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다.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의 경우 등록금 전액면제와 취업보장이라는 매력적인 조건 때문에 유능한 인력확보와 맞춤교육 수단이 될 수 있는 반면, 재교육형 계약학과는 기업이 자체 인력의 재교육하는 일종의 회사내훈련이라는 점에서 유능한 추가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교육형 계약학과도 정규학과에 비해 등록금이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수요가 많지만, 일단 취업을 해야 입학이 가능하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채용조건형처럼 일반학생을 유치하는데 쓸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대학들이 입학시 최저재직기간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재교육형 계약학과를 이용해서 유능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진 반면,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재직자 외의 일반 학생들을 맞춤훈련시켜 전원 채용하도록 되어 있는 채용보장형보다 유리한 재교육형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인 등을 위장 취업시켜 대학입학을 손쉽게 하는 편법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며, 재교육형이든 채용보장형이든 특별한 차이를 못 느끼는 학교로서는 굳이 이를 방지하는데 힘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계약학과를 통한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계약학과 설치에 가속 페달을 밟기에 앞서 제도적 보완 및 속도 조절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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