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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운동(눅19:20-27)
1. 지난주일 말씀을 나누었던 므나 비유, 오늘 되새기며 한 번 더 나눕니다.
삭개오 이야기도 두 번 되새기며 나누며 유익함을 나누었는데, 오늘도 기대가
됩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에요. 주님이 비장한 각오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해주
셨어요. 이 비유에는 주님의 고난-부활-승천-재림에 이르기까지 함축되었습니
다. 주님은 비유의 달인이세요. 이 비유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할 주님의 제
자들은 당시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오늘 비유의 배경이 되는 아켈라오 이야기는 덕스럽지 않지만, 주님은 그들이
잘 아는 아켈라오 이야기를 통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비유의 이야기 소재는 도구일 뿐이에요. 비유의 내용 가운데, 귀인
이 왕위를 받으러 갈 때에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위를 받아가지고 와서 열 명의 종들을 불러서 결산을 했습니다. 15절,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
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각 사람마다 동일
하게 한 므나씩 주고 승천하셨고, 재림하실 때에 와서 각 사람을 불러서 결산하
실 것입니다. 이 므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므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음입니다.
2. 복음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많이 뿌려야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
니다. 고기도 그물을 많이 내려야 잡을 수 있어요. 오늘 본문의 비유에 주인과
결산한 첫 번째 종은 열 배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두 번째 종은 다섯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씨를 뿌린-수고한 결과
입니다. 문제는 세 번째 종이었어요. 20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이 사람이 싸
둔 수건, sudor는 일을 하며 땀을 닦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수건에 땀을 닦아보지도 않았고 므나를 꺼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
람의 인생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이 사람이 자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성경을 자기 멋대
로 풀면 큰일이지요. 이 사람은 자기 일은 보통 사람보다 더 성실하고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이나,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보다 더 여유
있고 풍성한 삶을 누렸다고도 볼 수 있어요. 자기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세상에서 자기 행복을 추구하고 누렸어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답합니다. 과거 어느 대중가수의 노래처럼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뭘 탓할게 있느냐고요 반문합니다. 세상 가치관으로는 그렇
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파고 들어왔어요. 이
것을 일컬어 세속주의-성공주의-기복신앙, 또는 번영신학이라고 부릅니다. 미국
의 풀러 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때 일어났던 운동입니다. 교회 내에서 직분자들
가운데도, 심지어 목회자들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3.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자기 인생만 살면 안 된다고 하세요. 세속주의-
성공주의-기복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히 극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차원 낮
은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세
번째 종은 주님이 맡겨주신 일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복음 전하는
일이나 신령한 일에는 한 번도 시도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이 사람도 그리스도인이에요. 신앙고백도 합니
다. 적당하게 교회봉사도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하는 것으로만 너희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 사람이 다른 양의 돈을 받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
란트, 한 달랄트. 므나 비유는 열 사람이 똑같이 한 므나를 받았어요. 오늘 본문
비유의 특징이 여기에 있습니다. 똑같이 하나씩 받은 것입니다. 똑같이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똑같이 출발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자리, 어떤 상
황에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믿음의 시작은 그리
스도인이면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이렇게 적용하면 됩니다. 믿음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믿음입니다. 여기에는 차별이 없지요.
똑같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4. 구원받는 믿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등하지만, 생활의 믿음은 다릅니
다. 생활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구원이후 우리 각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
는 것이에요. 똑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이지만, 삶의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 것은
각각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
음이에요. 골리앗을 쓰러뜨린 믿음은 감히 아무도 시도해보지도 못했어요. 오늘
본문에 므나를 수건에 싸놓은 사람처럼. 있었습니다. 다윗만이 용기를 내어 골
리앗과 싸우고자 하는 시도를 했어요. 오늘 비유로 말하자면, 다윗이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이었어요. 다윗은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방식
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식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다윗만이 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는 모든 시대,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에요. 다윗 때
에는 다윗만이 이 믿음을 누렸어요. 다윗이 하나님과 누린 교제는 시편23편에
잘 나타나 있지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다윗은 어려서
목동-목자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가 인생을 살아보니, 자기가 목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삶의 목자가 되시
니, 어떤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시편 23편의
노래만이 아니라 다윗의 삶의 실제였어요. 목동생활에서 사자를 만나고, 곰을
만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자기는
양이고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기에, 하나님께서 막대기로 들짐승들을 물리쳐주셨
기 때문입니다. 이후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고,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군에
간 형들을 면회하러 전쟁터에 방문했습니다. 골리앗의 도전 현장을 보았어요.
5. 다윗은 골리앗을 보는 순간, 자신이 양떼를 지키다가 만난 곰과 사자 생각이
났습니다. 다윗이 몇 차례 겪은 실제 경험이었어요.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협하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다윗이 직접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이었어요. 다윗은 지체하지
않고 골리앗과 싸우러 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갈 때 한
말에 주목하십시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단
창으로 내게 나와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
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는 그 확신을 골리앗 앞에서 선포했어요. “오늘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벨 것이다. 내가 너를 죽임으로 온 땅이 이스라엘에 하나님
이 계신 줄 알게 할 것이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음을
사람들로 알게 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다윗의 이 믿음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은 언제나 승리를 확신하고 싸움을 시작합니다. 골리앗의 죽음을 보고 블레
셋 군대는 모두 도망쳤어요. 다윗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이
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복만 위해서 살지 않았어요.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왕의 사위가 되었고, 훗날 장인을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굴곡진
인생과정, 긴 시간 인내 가운데 이겨내고 성공적인 인생을 누렸어요. 하지만 다
윗은 세속주의-성공주의-기복신앙을 따르지 않았어요. 자기 혼자만 행복이 아니
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자기 백성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렸어요. 이스라엘
어느 왕도 흉내 낼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성군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 왕이 되었어요.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광
화문에 유일하게 앉아 계신 분. 서 계신 분은 이순신 장군. 세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 동족을 위해 산 것입니다.
6. 오늘 한국교회 안에는 므나를 수건에 싼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성
도들보다 이런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참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다는데, 나도 그렇게 살지!”하면 곤란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배경이 있
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보다 자기 교회에
만 충성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공개적으로 충분히 제기된 문
제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교회성장 운동에 매진했습니다. 다른 것에는 조금
도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개 교회 성장에만 몰두했어요. 그것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만 성장하면 만족하고 자랑했어요. 교인수와 헌금으로 모든 것
을 평가하고 말았어요.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을 하면서. 결과는 빛과 소금의 역
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성장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하는 곳입
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에요. 한국교회는 이 본질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본질을 벗어나며 병들기 시작했어요. 병든 교회는 자랄 수 없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 퇴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성장 운동과 하나님의 나라
운동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우리교회는 개척을 하면서 이 부분을 분명히 합
니다. 우리교회는 교회성장 운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합니다.
우리교회는 교회, 교단, 교파, 신앙유무를 따지지 않고 누구든지 와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교회입니다. 주중 사역 가운데 누구든지 초청합니다.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교회는 주중에 나오는 교
인들과 주일에 나오는 교인들이 다릅니다.
7.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후에 우리교회에 출석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렇
게 우리교회에 와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하
나님의 임재를 통한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와 회복이 이뤄집니다.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분들이 우리교회에 일시적으로 헌금은 합니다. 아직 개척교회니까. 이것
이 우리교회의 지역 섬김입니다. 지역과 함께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오후 우리교회는 인도네시아 3개 신학대학을 섬기러 갑니다. 열방과 함께 누리
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입니다. 개척교회가 무슨 선교입니까? 지원을 받는 교회
가 어떻게 선교지를 지원할 수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자립한 다음에 할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개척 두 달 만에 선교헌금을 시작하게 했어요. 우리가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외부 교우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채워주시고요. 우리
는 순종만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세요.
우리교회의 선교 방식은 물질후원이 아닙니다. 저를 통해서 8년 전부터 선교지
신학대학에 가서 강의와 집회, 기도사역을 섬기고 있어요. 이 섬김은 물질선교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돈으
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신학도 강의와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독특한
시간을 나눕니다. 신학생들에게 치유와 회복, 하나님의 임재와 은사를 경하게 하
는 일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무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신학생들에게 영적 무기를
수여해주십니다. 제가 20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선교지 신학대
학에서도 이 가치를 알기에, 선교비를 후원하지 못해도 와서 이 섬김을 해마다
해달라고 요청해요. 이 섬김을 요청하는 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작년부
터는 1년에 두 번씩 다섯 개 지역을 순회합니다.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8. 우리교회에 사역을 요청하는 신학교들은 대부분 치열한 영적 전투를 경험한
지역입니다. 그들이 우리 교회에 건너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참 감격스러
운 일입니다. 마게도냐 사람들이(유럽) 바울에게 요청했던 것처럼요. 한국 교회
는 이제부터라도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개척
하게 하시며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곳이라
고. 한국회는 교회성장운동에서 벗어나 우리교회처럼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해
야 합니다.
교회에 충성하는 것을 강요하기보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바라보게 하고 대
비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UCLA 옥성득 교수께서 봄비가 온 후 꽃이 만발한 캘리포니아 사진을 페이스북
에 올려주었습니다. 그 꽃들을 보면서, 제가 댓글을 달았어요. “봄 비! 사막에
꽃을 피우는 봄비가 주일 예배를 맞는 한구교회에도 내려(찬양가사처럼), 교회
본질이 회보되고 병든 교회들마다 건강하게 꽃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가 이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가운데 병든교회에서 건강한 교회
로 회복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