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서다
이 숙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쓰면서 언어필신(言語必愼)을 같이 써서 붙인다. 봄을 지레 느끼려는 속셈이고 올해 한해를 말조심하면서 보내리라는 다짐에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정해년(丁亥年) 올해는 옥상토()이기 때문에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수난의 해가 될 거라고, 예컨대 정치인이나 변호사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특히 말조심을 해야 하는 해라는 것이 그것이다. 말조심이 어디 해를 가릴 것인가. 어느 해든 어디서든 말조심을 필수이거늘, 특히 언어를 다루어야 하는 문인들의 경우는 글 조심이 말조심과 다르지 않아 더욱 몸을 가다듬게 되는 정해 년이다.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 봄, 이 봄이 뜬금없이 새삼스러워지는 이유는 내 나이 탓 때문일까? 언제나 봄은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에서 느껴지곤 했다. 황사가 따사한 봄 햇살을 가려도 나의 봄은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었다. 그리고는 봄은 언제나 나를 밖으로 떠밀곤 했다. 햇살 속으로 들판으로 바다로 나가라 했다.
인도의 시성 R. 타고르는 <오너라 나의 봄아>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남쪽 문이 열렸다/ 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너는 내 가슴에 떨리는 대로 떨리누나/나의 봄아 오너라/나무 잎새들의 속삭임 속으로/들어오너라/젊디젊은 꽃의 신도(信徒)속으로/피리 속으로 들어오너라/봄의 낮은 탄식 속으로 네가 털어 놓은 두루마기로/취한 듯 비틀거리는 봄바람으로/사납게, 사납게 쳐다오!/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라고 봄을 속삭임으로, 떨림으로, 비틀거림으로 사납게 인식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봄을 떠남으로 인식한다.
봄 못인 춘택(春澤), 봄 호수인 춘호(春湖), 그리고 봄 여자인 춘희(春姬) 등,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촌스럽기만 이름을 주면서 그렇게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버린 봄을 아쉬워하는 마음 때문에 그랬던 듯싶다. 내 마음이 요즘 그러하다. 그래서 요즘 가요인 ‘봄날은 간다’가 새삼 좋아지는 모르겠다. 또 조병화 시인께서도 시집을 증정할 때 ‘꿈’이라는 글자를 크게 쓰고 사인했던 것을 기억한다. 꿈을 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함의적인 의미로 ‘꿈;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주셨는지 모른다.
봄과 꿈. 봄 속으로 들어가면 꿈이 그곳에 있다. 어수선한 꿈이라도 봄은 끔을 꾸게 한다. 속된 말로 개꿈을 꾼다 해도 나는 봄이 좋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수선한 꿈은 적어진다. 젊었을 때보다 꿈은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봄날, 꿈이라도 꾸게 되는 날이면 그 하루가 행복해진다. 꿈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내가 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 봄날 속으로 나는 자꾸 들어간다.
봄이 내 등을 떠민다. 이 봄이 나를 부산하게 만든다. 봄이 들판으로, 바다로 떠나라 한다. 봄이 꿈을 가지라 한다. 하나하나 정리해야 할 나이인데도 새로운 일을 만들라고 한다. 그래서 봄 속에서 나는 반듯하게 서게 한다. 봄이 스스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운다. 서 있기에 힘들더라도 봄을 만끽하며 그 속으로 들어오라 한다. 그리고 이 봄은 나에게 ‘무거운 입’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이숙
1926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사범대학.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초중.고 교감 역임(교직 27년)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문교부 편수국 편수원.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및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역임. 인천 한국수필가협회 회장.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수필집 『우정』(1968) 『내 영혼의 무지개』(1980) 『아름다운 조건』(1990) 『노을처럼』(2009) 외 다수 . 통일문학상. 국제예술상. 제11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