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금정산金井山은 부산의 진산鎭山이다. 동쪽으로 금정구, 서쪽으로 북구, 남쪽으로 동래구, 북쪽으로 경남 양산시와 경계를 이룬다. 주봉인 고당봉(801.5m)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 남으로 상계봉(638m)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파류봉 등 많은 봉우리가 있고 나비바위, 부채바위 같은 천구만별千龜萬鼈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천구만별은 1000마리의 거북과 1만 마리의 자라가 뒤덮고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적 제215호 금정산성(1만 8845m)이 산 능선을 따라 축성돼 있다.
금정산이라는 이름은 ‘산마루에 우물이 있어 한 마리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 놀았다’는 데서 유래한다.(<동국여지승람> 권23 ‘동래현東來縣 산천조山川條’)
금정산에는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범어 3기, 금정 8경 등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신라 시대(67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자리 잡고 있다. 등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176호)도 사랑받는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 민속이 살아 숨 쉬는 명산이 바로 금정산이다.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길이 1만 8845m, 성벽 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성벽을 기점으로 행정 구역상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와 경계하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금정산에 언제부터 성을 쌓았는지 알 수 없다.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 때부터 이미 성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
현존하는 산성은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에 의해 숙종 29년(1703)에 동래부사 박태항이 성을 쌓았고, 숙종33년(1707)에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새로 쌓았으며, 순조 8년(1808) 동래부사 오한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금정산성을 지키는 일은 동래부사가 맡았다. 유사시에는 동래‧양산‧기장 삼읍三邑의 군인과 승려들이 차출돼 성을 방어했다. 평상시에도 산성 안에 있는 국청사와 해월사(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의 승려 100여 명과 범어사 승려 300여 명이 성을 지켰다.
산성의 보수와 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시작됐다. 복원 작업이 시작된 이때부터 금정산성 정비 계획에 따라 연차적이고 지속적으로 보수와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1958년 도로 개설로 단절됐던 산성고개의 성곽도 금정산성 복원 정비계획에 의거한 성곽 잇기 사업으로 다시 연결됐다. 성곽 잇기가 마무리된 것은 2011년 6월 1일이다. 그렇게 높이 5m, 길이 13m, 폭 4m로 이어진 성곽은 금정산성의 얼굴이 됐다. 성곽을 일주하는 등산‧탐방객이 안전하게 통행하고 야생 동물 생태계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산성로의 평거문(문의 윗부분이 평평한 형태)을 지나다 보면 선인들의 축성 지혜도 엿볼 수 있다. 금정산성은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이 깃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시민 모두가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