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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단비
갈라디아서 2:10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아멘
○헌금 용어의 의미 /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헌금의 목적 / 헌금의 종류와 의미. 은혜의 단비(순환의 의미)헌금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
우리 세월호를 보면서 우리가 바르게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셔야 되요 우리한국교회가 이렇게 실용주의적으로 열심히 믿기를 바랬든 것은 얼마 되지 안 했습니다, 열심이기 전에 바르게 믿는 것이너무나 중요했습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이사를 가도 올바로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가 어디인가? 언제나 목사님에게 추천을 받아서 가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산업화가 일어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미국의 강한 영향 속에 이제 발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어쨌든 간에 열심히 해서 어떤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참 큰일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말씀을 대하면서 바르게 믿어야 되겠구나 생각해야 됩니다, 왜냐하면은 바르지 못한 열심은요 지신의 삶에 파괴도 잃어나지만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1. 용어의 개념과 예전에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 기도 말씀 성례 헌금 이모든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우리가운데 표현하는 것이다. 구원파는 가까이 하면 안 된다. 예배는 뭔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항복의 시간. 하나님 은혜에 굴복하도록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세월호를 여러분들이 보시면서 선장이나 선원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런데도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잖아요, 아이들 내버려두고 자기 살려고 나오는 것 또 나왔을지라도 돈 말리고 이런 것들이 왜 그런가? 구원파 라는 것은요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으면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 어떤 일을 해도 죄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 이단으로 벌써 정죄된 그런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그런 이단들은 경계하는 것 이단 이자만 나와도 사이비 사자만 나와도 가까이 가면 안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은 오늘 우리 정통이라고 하는 우리 교회들은 어떤가? 이런 문제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너무 예전적이고 종교적이에요,
여러분들이 한가지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제대로 알려면은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알아야 되고,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예전에 의미가 뭔지를 알아야 되는데, 이런 의미를 모르다 보니까 종교생활이 돼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행하는 기도 말씀 성례 헌금 이모든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을 우리가운데 표현하는 겁니다. 또 그래서 그 구원을 누리는 것이고 재림과 함께 완성될 그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것 상관없잖아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기도는 내가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화된다고요 그러면은 종교가 돼버립니다. 성경에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염려하고 불안하고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는 것이 기도거든요, 그런 기도 하지 않고 내 소원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한다면은 그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여기에 예배의 형식에 참여해서 이 자리에 공간과 시간의 앉아있다고 해서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배 참석 안하고 주일성수 안 하면은 벌받는다 했더니만 복 받는다 이래 버리면은 껍데기 종교가 돼버리는 거에요, 예배는 뭔가? 우리가 창조주 그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릎을 꿇는 항복의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이 뭐냐 하면은 인간이 주인 되고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죄악입니다, 여러분들 삶 속에 일어나는 나쁜 감정들도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 앞에 와서 그 하나님 은혜에 굴복하는 것 그렇게 하도록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거거든요, 또 헌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잘못되게 생각하는 거에요,
예배의 형식가운데 헌금이 얼마나 중요한데 복을 받는 수단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어쨌든 간에 교인들이 헌금을 많이 하면은 교회는 종교적인 목적은 선하게 이루어져 가지만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나타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 이 헌금에 대해서 오늘 제가 설교하려고 하는데 헌금을 잘 알려면은 성경의 용어를 먼저 이해 해야 됩니다. 여러분 고 앞에 몇 장 넘겨서 고린도후서 8장을 한번 펴보세요, 294면입니다 8장 4절입니다 다 찾아서 빨간 줄 걷고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제가 읽을게요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자 이제 저를 보세요 우리나라 번역이 우리나라말이 두리뭉실해서 의미가 전달이 잘 안됩니다. 그러나 영어나 헬라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모든 것들이 동사에도 또 시제나 여러분 주격 이런 것들이 다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는데 여기에 은혜와 성도를 섬기는 일과 참여함은 병렬접속사로 연결이 되가 있습니다.
2. 은혜의 일, 섬기는 일, 교제하는 일, 헬라어: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사전적 의미고, 다 헌금이라는 용어이다. 이사야서 55장 9,10,11절 참조. 필요한 물질을 얻을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그 속에 포함되어 은혜로 주신 것, 10의 1의 헌금은 내 것이 아닌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
그 말은 뭐냐 하면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여러분 직역을 하면 이런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성도를 위한 이 섬김의 일을 그리고 이 은혜의 일을 그리고 이 교제의 일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런 말 이거든요, 여러분 4절을 읽으면서 그런 의미를 전달을 못 받았지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은혜의 일 섬기는 일 교제하는 일 헬라어로는 쉬운 헬라어 입니다.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라는 말인데요 이 말들은 사전을 찾으면은 은혜 값없이 베푸는 호의를 말하고 섬기는 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교제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교통하는 교제를 말하는데 그건 사전적 의미고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그 문장 속에서 그 의미를 이해를 해야 됩니다.
여기에 은혜 섬기는 일 교제는 다 헌금이라는 용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잖아요, 영어를 잘 하는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어를 가지고 영어를 공부 한데요, 그래서 have 동사는 뭐 가지다 뭐다 뭐다 이렇게 또 뭐 여러분 단어 하나 있으면 그 단어의 의미를 쭉 이렇게 외운데요 그러면은 안 된다는 거에요, 왜 안 되는가 여러 단어가 있지만은 그 단어의 의미 중에 문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의미밖에 없는데 그래서 문장을 외워야 된다는 거요, 그래야 독해를 하면은 쭉 읽어나가면서 의미를 그대로 알게 되고 말도 그대로 알게 되는데 우리는 문장 따로 말 따로 단어 따로 외우니까 안 된다는 거요,
잘 이해 안되지요? 이것만 기억에 남을 가봐 겁이 나는데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면은 이런 말입니다. 그 배우는 대장에 암이 있었다, 이럴 때에 우리나라말에 배우는 이러면은 배운다는 의미도 있지요 또 연기자라는 의미도 있지요, 그런데 그러면 배우는 을 보면서 연기자를 선태 할까 배운다는 것을 선택할까 이래가지고 선택을 하니까 안 나가잖아요, 문장 속에서 배우는 이러면은 연기자라는 의미 알잖아요, 대장에 이럴 때에도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고 큰창자라는 의미도 있고 기록 장부라는 의미도 있고 육군 계급으로서의 대장의 의미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네 가지 의미에서 딱 따오는 게 아니고, 그 배우는 대장에 이러면은 큰 장자라는 말이 탁 떠올라야 되는데 의미는 그 대장은 그 의미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암이 있었다 암도 절에 암자가 있는가 하면은 악성 종양이 있잖아요, 그런데 문장으로 알면은 우리는 배우는 하면은 배운다는 머리는 전혀 생각이 안 떠오르잖아요,
대장에 할 때에 우두머리라든지 기록된 장부라든지 계급은 전혀 생각 안 나고 큰 창자라는 생각나잖아요, 암이라는 것을 할 때에 절에 암자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악성종양이 떠오르잖아요, 그러니까 그 배우는 대장에 암이 있었다 이러면은 우리는 의미는 아는데, 배우는 어 이게 를 인지 뭐 연기자 탤런트인지 그 중에 선택하니까 안 나가는 거에요,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영어공부 잘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고, 자 여러분 성경에도 보면은 오늘도 은혜의 일 섬기는 일 참여하는 일이라고 말을 할 때에 그 모든 것이 그 문맥과 문장 속에는 헌금을 말하는데 그 헌금을 왜 은혜라고 하고 왜 디아코니아 섬김이라 하고 왜 교제라고 하는지를 아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걸 모르고 무조건 헌금 많이 하면 복 받았다 누가 안 해가지고 손해 봤다, 이래 버리면은 종교적인 목적만 일어나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그 놀라운 은혜에 구원의 역사가 표현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도 예수님이 또 바울이 그냥 헌금을 은혜라고 했다 이래 생각하면 안 되요, 전부 구약성경에 다 있는 것들의 사고 속에 나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여기 놔두고 이사야서 1036면을 펴보세요, 55장 6절부터 읽어야 되지만은 9절 10절 11절만 제가 읽을게요,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길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리로 되돌아 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시어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 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일어난 사건이 은혜라는 건데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또 헌금을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 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가운데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서 나에게 주어졌다 이게 은혜이다.
자 이제 저를 보세요, 은혜라는 말 카리스라는 말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베푸는 호의를 말하는데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 할 때에 여러분들이 설교에 감동 받은 게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일어난 사건이 은혜라는 건데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또 헌금을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 여러분들의 삶의 필요한 물질을 얻을 때에 그 물질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인데요, 그 은혜를 주셨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냐 하면은 저를 집중하면 됩니다, 은혜로 주셨다 라고 하는 말은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생각하셔야 되요, 시장에서 채소장사 하는 사람은 채소장사를 해서 내가 한 달에 5백 만원을 얻었으면은 내가 5백 만원 노력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 받은 자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가 하면은 내가 채소장사를 하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밭에서 거름 주고 상추 심고 때악볓에서 상추를 길렀고,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가락시장에 가져다 주었고, 중간상인이 그것을 가지고 또 내가 가서 때와서 팔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상추를 사가는 사람도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을 해서 내 상추를 사가서 내가 지금 이런 부가가치의 소득을 얻은 거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데 우리라는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구원받은 사람은 언제나 인간을 생각 할 때에 개인화 시키지 않고 유기체로 생각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기도해서 하늘에서 돈 보따리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그런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하나님이고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면은 내가 상추장사를 해서 내가 한 달에 돈을 5백 만원 벌 때에는 나도 알지 못하는 농부의 수고가 그 속에 포함되어져 있고요, 나도 알지 못하는 트럭운전사의 수고가 그 속에 부어져 있고,
나한테 물건을 사가는 어떤 사람 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가운데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서 나에게 주어졌다 이게 은혜에요, 여러분 자 그러면 이런 은혜로 주어졌을 때에 왜 우리가 헌금이 이라는 제도를 하나님께서 그런데 주었는가 하면은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인간의 잘 못된 죄악 된 제도와 구조가 이세상을 만들어 놓은 거에요. 그러면 이 세상에 죄악 된 구조와 제도가 뭐냐 하면은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에 사람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우리공동체에 의사는 가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분들이 능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에 그 능력을 인간이 만든 구조에 적합하게 사용되는 능력은 좋은 능력이고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하는 능력은 약한 능력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똑같이 했는데 인간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 놔 버린 거에요,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은 많이 가져가는 거에요, 그래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 부 즉응에 능력이 약한 사람들은 가난하게 되는 거에요, 이게 창세기 3장 이후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에요,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설교 문을 가지고 읽어보시고요 이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자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회를 망하라 이런 것이 아니고 이런 사회를 너는 너희들이 만든 사회의 구조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졌는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진 그 속에는 이렇게 숨은 봉사자들의 봉사의 결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9는 네가 누리고 10의 1은 너희들이 만든 잘못된 구조 속에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의 몫으로 내가 넣어놓은 거야,
2) 크리스챠인들은 열심히 일해서10의 3의 삶을 살아라, 10의 1은 하나님을 위해서, 10의 1은 부모와 친척 가족을 10의 1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서, 10의7은 자기의 삶을 누려라. 기부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 얻은 소득은 숨은 희생을 보는 것이 영의 눈이 열렸고 은혜의 세계로 가는 것.
그 몫은 네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도네이션 해야 돼, 이것이 헌금 속에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은혜라고 한 거에요, 제가 몇 주 전에 여러분들에게 설교할 때는 진짜 크리스챠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10의 3의 삶을 살아라 10의1은 하나님을 위해서 10의 1은 부모와 친척과 가족을 위해서 10의1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서 그리고 10의7은 내가 볶아먹든지 삶아먹든지 자기의 삶을 누려라, 여러분 이런 구조가 있을 때에 성공한 사람 악한 구조 속에서 적응의 능력을 가지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박수치는 복된 사회가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런 도네이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자를 욕한다고,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 말입니다.
교회도 우리가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부유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는데 그 가난한 사람도 게을러서 간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잘 못된 사회의 구조 속에 적응능력이 부족해서 어찌할 수 없이 가난하게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의 몫으로 10의 1을 놔둔 거에요, 이런 헌금의 정신을 가지고 사회를 만든 서양이나 2천년 동안 제도와 법을 만든 사회에서는 기부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잖아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기독교가 100년의 역사가 넘어섰다고 이야기를 하고 교회가 지금 이렇게 많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기부를 선택이라 생각한다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기부 하게하고 헌금을 하게하려고 뭐 하는가 하면은 기복신앙을 가져와서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는데 인색한 마음 힘든 마음 그래서 헌금 헌 자만 나와도 부담이 되는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나는 이 구원을 알면은 그렇구나 내가 이 때어놓은 이 10의1은 내 것이 아니구나 악한 인간이 만든 사회적인 구조 속에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남들보다 뒤쳐져있는 사람들을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10의 1일 필수적으로 놔두었구나,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천만 원을 벌면은 기독교의 신앙인들은 천만 원의 소득이라 하지 않고 9백 만원이 내 소득이고 100만 원은 당연히 내 몫이 아니고 내놔야 되는 거에요, 이것이 은혜는 왜 헌금을 은혜라고 했는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내가 했지 만은 내가 얻은 소득은 그 소득을 얻기까지 하나님은 숨은 희생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봉사와 희생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영적인 눈이 열린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에요, 자 그래서 우리가 그런 헌금을 했을 때에 그 헌금을 인간이 만든 잘 못된 제도와 구조 속에서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사회에서 뒤쳐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것을 코이노니아 교제라는 거에요, 교회당 짓는 게 아니에요 프로그렘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그 아셔야 되요, 그래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누는데 왜 디아포니아라고 섬김이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 기부하고 나누어 줄 때에 구제하라고, 제가 구제라는 말을 안 쓰잖아요, 그러면은 돈 몇 푼 받아놔 놓고 그 사람에게 지배당한다고 감정의 지배, 그러면은 그건 나눔이 아니에요, 그래서 헌금의 디아코니아라는 단어를 헌금에 쓴다고,
3. 바울이 화로다 나에게 아난케[Anance]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구원의 빗진 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지 않는다, 비가 와서 열매를 맺어 풍성함을 주고 다시 비가 올라가듯이, 헌금의 은혜는 잘 못된 제도 속에 도네이션의 섬김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올려드리는 것이 헌금의 은혜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그 받은 헌금을 주는데 그 받는 사람이 채권자고 주는 사람이 채무자가 된다고 왜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에게 이런 능력을 주고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이 적응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 여러분 그렇잖아요 대통령은 없어도 되도 우리 사회에 환경미화원 없으면은 여러분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데 그 환경미화원에 봉급은 작잖아요, 인간이 만든 제도 속에서 그 사람에게 줄 때에 너에게 이렇게 주라고 오늘날 내가 이런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까 만약에 네가 존재하지 않으면은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없어 그게 바울이 화로다 나에게 아난케[Anance]라는 단어까지 또 써가면서 구원의 빗진 자라고 하면서 그래서 우리교회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삼겹살 내는 사람이 먹어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세요,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를 나타내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 사회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기죽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굴림 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자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져요, 오늘도 이사야에서 말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가지고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는 법이 없다는 말이 이런 말이에요 헌금의 제도에 있어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가지고 다시 비가 하늘로 올라가잖아요, 다시 올라 갈 때에 그냥 올라갑니까 오늘 이사야에 뭐라고 그래요, 하늘에서 내리는 그 비가 땅을 적셔서 종자가 나게 하고 싹이 나게 해서 열매를 맺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함을 가져다 주고 그 비가 다시 올라가듯이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받은 헌금의 은혜는 하늘에서 내려와가지고 인간이 만든 잘 못된 사회의 제도와 구조 속에서 어찌할 수 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도네이션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교재와 섬김이 있는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나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대립하는 것이 되는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에 감
사로 올려드리는 것이 헌금이라는 거에요,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안에 일어나는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이상하게 해버리잖아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헌금을 이런 것을 알아야 되요, 그래서 이사야 55장에서 그런 말씀하는 거에요. 그것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안에 구원에서 조명으로 헌금을 다시 보면서 깨달아서 이 은혜의 일 섬기는 일 그리고 교제하는 일에 교제의 일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생각을 달리해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의 문화가 제도가 되고 가치관이 되어져 있는 서양에서는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추신수가 1,400억을 받는데 7년 동안 자기 몫은 40%밖에 안되거든요, 40%밖에 안 된다는데 추신수는 서양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떤 생각이냐 하면은 60%는 내게 아니라는 거에요.
선택이 아니고 필수적으로 놔두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 들었지요, 그 여러분 누굽니까 협상하는 사람 5%주는데 조금도 안 아깝다, 이해되시지요 오늘 내가 이 얻은 것은 내가 얻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숨은 사람들의 희생과 봉사의 결과로 얻은 것을 예배 때 마다 알아야 되고 헌금을 드릴 때마다 여러분들이 새롭게 해야 되는 마음이 될 때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될 때 우리사회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더불어서 손잡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 그런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가 예배 안에서 일어나는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헌금에 목적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도 헌금의 목적을 여러분 대충 4가지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 세 하나는 또 사랑의 나눔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에서 말하는 것이나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여러분 알로젠 이라고 하는 헌금의 목적도 있고 또 하나는 순례의 예물도 있어요, 헌금을 왜 드리는가 복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것 없어요, 여러분들이 마태복음에 보면은 그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에게 예물을 가져오지요,
4.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면은 이방에 모든 예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드림으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 됨으로, 예수님 때문에 메시야의 시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었다. 참된 이스라엘 백성 된 표시로 예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드리는 것이 알모젠이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은 알모젠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뭐 성극 하라고 그것 성경에 기록한 줄 알아요? 그 성극 하라고 있는 것 아닙니다. 또 여러분 성탄절날 여러분들에게 성탄헌금 거두어가지고 교회가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그기 동방박사가 예물을 드리는 것도 순례의 예물인데 그 헌금의 목적이 이사야 60장을 펴보세요 4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내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다, 그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의 나라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절 7절 8절 뭐 계속 그런 이야기인데 9절에 보세요,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자 이러니까 이 말씀을요 기업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하나님이 바다의 풍부를 가져다 주시고 이런다고 아 무식해요,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떤 말이냐 하면은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를 하면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면은 이방에서 각종 아름다운 보물이 예루살렘으로 가져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거다, 라고 예언을 해놓고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야 시대가 와서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를 하면은 이방인들이 모든 예물을 예루살렘에 가져오게 되어서 메시야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여러분 동방박사 이야기가 마태복음에만 있잖아요 마태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이사야에 그렇게 되어져 있지, 이사야에 너희들이 이방에 모든 예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그 예물을 이방의 왕들이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했지 지금 너희들 예수님이 왔을 때에 동방박사 이방인들이 와서 예물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메시야의 시대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었느니라, 여러분 그 성경을 보면서 이걸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면은 성경 완전히 신화 읽는 게 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가 어떻게 도래해서 이방의 예물들이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가,
이세상에 이방의 왕들 권세 있는 사람들 인간이 만든 죄악 된 사회에 구조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숨겨놓은 그 10% 을 사람들이 알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도록 인간이 죄악 된 구조 속에 만들어서 그 적응에 능력이 부족해서 자식의 몫까지 남들에게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경쟁에서 뒤 처져있는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말미암아 그게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인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함께 하나님께 영화로운 이름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도래하였고 시작하였느니라.
성경은 이런 말씀이에요 지금 여러분, 그러면 이런 헌금을 하려면은 알모젠 (Almosen) 이라는 의미를 아셔야지요, 여러분 알모젠은 뭐냐 하면은 이것은 구약시대에도 있었든 거에요, 이방인이 이스라엘백성들이 되었을 때에 믿음으로 자기의 믿음의 진실성과 자기가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 백성된 표시로서 예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드리는 것이 알모젠이에요, 바울이 지금 자기가 세운 이방인의 교회에 헌금을 거두어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드리는 것은 알모젠이에요, 왜 그랬는가? 그 헌금을 드리지 아니하면은 이방에 세운 개척교회가 내 교회가 되기 때문이에요, 자 여러분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얼마나 욕을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돈 안 밝힌다 해 놔놓고 헌금 봐라 돈 밝히는 놈이라고, 그런 음해와 오해를 받으면서도 너희들이 모든 것 다 좋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여 하는 헌금 알모젠은 너희들이 안 해서는 안 된다 반듯이 해라,
내가 너희들이 유력한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하고 내가 전하는 복음을 전해보니까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 그 사람들이 나에게 알모젠은 반듯이 실행하라고 하는데 그것 내가 그 동안 힘써 행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행할 것이다, 라고 하는 이유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하면은 내가 이방인 교회에 새운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고 그것이 주님의 교회가 되려면은 알모젠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 이방인의 교회가 다 예수님의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분 그전에 여러분들에게 설교할 때에 바울이 그런다고 그랬잖아요, 자기가 정말 전하는 복음을 태스트 받기 싫지만은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가 전하는 복음이 진짜인가 아닌가 테스트 받은 것은 왜 그 이방인의 교회가 알모젠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은 내 교회가 되면은 내 사역이 헛되게 되기 때문이다,
5. 알모젠의 결과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바벨탑, 유적 문화 배격해야 한다 바울의 사역이 헛되었다. 김일성 사회에 많은 공적 비 많은 기념탑 속에 있는 인민들의 고혈과 눈물이 공산주의이고, 그것이 바벨탑 문화다. 바울은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죄인으로 보인다 자신도, 심판자가 아닌 준행 자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여러분들의 가치의 변화가 있어야 되요, 그래야 우리사회가 되고 여러분들의 삶의 자유와 행복이 주어져요, 이 변화가 있어야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헛됨을 뭐라 생각해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안 알아주면 헛되다고 그러지요, 내가 싸아온 바벨탑 내가 쌓아온 유적 내가 싸아온 업적을 뒤에 사람이 계성을 하지 않고 부정을 해버리면은 내가 헛되다고 이야기 하지요, 그건 유적문화 바벨탑문화에요, 인간의 죄악에 극치에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꼭대기에 쌓아서 우리 이름을 더 높이자 그게 바벨의 문화 그것이 유적의 문화 그것이 인간의 공로와 업적 지향주의적인 사고에요, 바울은 그것이 깨진 거에요 하나님의 은혜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 그 육신의 자아가 깨진 거에요, 그때부터 바울은 내가 세운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되지 않고 내 교회가 되면은 내 사역은 말짱 도루묵이다, 여러분 우리사회가 지금 얼마나 많은 비용이 낭비되고 있어요, 새로 뽑힌 대통령은 전임대통령 지우기부터 시작 하잖아요 유적문화입니다, 영웅의 문화입니다 제국의 문화입니다 바벨탐 문화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교회가 목사니까 목사욕해야 되겠지요, 성역 40주년 내가 이 교회에서 이것 이것 이것 연혁 하나님 앞에 가면은 내 사역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 했지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분들 그러잖아요, 교회에서 조그맣게 해놔 놓고는 남들이 안 알아주면은 목사님이 안 알아주면은 삐치잖아요, 마태복음 6장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면은 네 상은 이미 받았느니라.
내가 한 일을 목사님이 알아주고 세상에 여러분 교인들이 알아주면은 내가 한 것은 이미 상을 받은 그 칭찬으로 상이 끝나버린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 우리 얼마나 여러분 우리나라에 지금 대통령들이 모든 일들을 했는데 그것이 업적 저 북한 김일성 사회에 가보세요 얼마나 많은 공적 비 얼마나 많은 기념탑 그 속에 있는 인민들의 고혈과 눈물 그게 공산주의에요, 그것이 바벨탑 문화에요 창세기 11장부터 시작되었든 헌금은 그런 게 아니에요, 교회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서 바울은 내가 세운교회가 내 교회가 되면 내 사역은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또 너희들이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을 유력하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유력한 거 아니다 하나님 앞에 똑 같은 거다, 우리는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능력과 유력을 평가하잖아요, 다 잘 못된 거에요, 바울의 눈에는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죄인으로 보인 거에요 자기자신마저도, 교회에서 여러분 심판 자 되지 마세요, 저는 목사님들하고 만나면 그런 이야기해요, 정신병에서 깨어나라고 심판 자 아니라고 준행 자라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교회에서 누가 판단하고 심판하면은 내려오라 그러세요 멸망의 가정한 자리에서,
6. 하나님은 숨겨진 희생과 눈물로서 오늘 나 됨을 알지 못할 때,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내가 다른 사도들 보다 더 수고하였지만 nothing 나는 없다. 사람을 위해서 종교적인 신념까지 버리는 것이 예수다. 하늘에서 내린 은혜의 단비가 참된 행복 아름다운 교통과 화합으로 이루어진다.
여러분 그래서 은혜 섬김 교제라고 했는데 알모젠 그 의미 아셔야 되요, 예수님이 그런 말씀하셨잖아요 주여 주여 말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자가 아니라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설교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교를 전세계에 선교사를 갈지라도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뭡니까? 내가 행한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은 숨겨진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서 오늘 나 됨을 알지 못할 때 그래서 바울은 뭐라고 했는가 하면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내가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 만은 nothing 나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다 오늘도 여러분 왜 우리가 헌금을 이것을 알아야 되고 그런 헌금을 드리기 위해서 알모젠과 순례의 예물에 헌금의 목적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그렇게 하려면은 여러분들 속에 끊임없이 쌓으려고 하는 업적과 공로와 바벨탑을 지향하는 가치관이 없어져야 되요,
저는요 우리나라에 지금 복지 노인들 뭐 못 주고 왜 전임자 지우기 한다고 얼마나 많은 예산을 낭비 시키면서 국민들이 자신의 정권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되었잖아요, 국민이 목적이라면은 전임자가 나보다 더 크게 보일지라도 계승 발전하는 자기를 죽이는 대통령 여러분 목사님 교인들 생각해 보자고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목사는 아닐지는 몰라도 한가지 분명히 말하는 것은 목사의 아들로서 수많은 교인들의 고통도 보면서 내가 느꼈든 것은 내가 목회하는 길에 교인을 수단화 도구로 만들지 말자, 내가 하는 목적을 위해서 교인을 수단화 시키지 말자 교인이 목적이 되자, 예배든 뭐든 뭐든 지난주일 여러분 시선이라는 영화 보라고 그랬지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까지 버리는 것이 예수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성령 받아서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다 다 하나님이 지은 한 가족의 공동체임을 받아드릴 때 그때 헌금이 코이노니아가 되고 디아코니아가 되고 카리스가 되는 거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주면서 행세하는 부모 봤습니까?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형님이 동생 도와주면서 행세하면 가족 아닙니다, 아까우면 가족 아닙니다,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가족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그 거룩한 교회의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교회가 동창회보가 돼 버리고 교회가 계모임이 돼버리고 교회가 이익집단이 돼버리고 성령의 교통하심 성령의 역사하심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에요,
받아드리나 안 받아드리나 여러분 그 가족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난 구원과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그 구원이 우리 속에 이루어져서 죄인이 만들어놓은 사회에 구조 그 사회의 적응의 능력을 따라서 그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있는 것까지 빼앗겨서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참 감사하게도 10의 1만 네 것이 아니야, 네가 수고한 노력에 숨은 봉사자들의 희생이 있어 그 몫을 떼어놔, 그래서 하늘에서 내린 그 은혜의 단비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이런 아름다운 교통과 화합을 통해서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비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소유가 참된 행복이 되어져서 함께 손잡고 하나님 앞에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성령의 교통하심을 믿는 것은 가족으로 받아드려야 되요, 가족은 줘도 더 주고 싶고 가족은 주고도 행세하지 안 해요, 그게 부모의 네리의 사랑이고 그 네리 사랑이 형제의 우애를 통해서 부모에게 효도를 그렇게 올려드리잖아요 받아 드리세요, 옆에 있는 사람을 정영주 장로님을 정씨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하씨로 봐야 되요. 안 그러면 주 예수라 했으니까 주씨로 보든지, ㅎ ㅎ 우리 찬송가 475장 아멘
은혜의 단비
갈라디아서 2:10
2014년 4월 27일 주일 낮 예배
No. 155
하나님 말씀은 갈라디아서 2장 10절입니다 한절만 읽겠습니다.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아멘
○헌금 용어의 의미 /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헌금의 목적 / 헌금의 종류와 의미. 은혜의 단비(순환의 의미)헌금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
우리 세월호를 보면서 우리가 바르게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셔야 되요 우리한국교회가 이렇게 실용주의적으로 열심히 믿기를 바랬든 것은 얼마 되지 안 했습니다, 열심이기 전에 바르게 믿는 것이너무나 중요했습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이사를 가도 올바로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가 어디인가? 언제나 목사님에게 추천을 받아서 가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산업화가 일어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미국의 강한 영향 속에 이제 발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어쨌든 간에 열심히 해서 어떤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참 큰일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말씀을 대하면서 바르게 믿어야 되겠구나 생각해야 됩니다, 왜냐하면은 바르지 못한 열심은요 지신의 삶에 파괴도 잃어나지만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1. 용어의 개념과 예전에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 기도 말씀 성례 헌금 이모든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우리가운데 표현하는 것이다. 구원파는 가까이 하면 안 된다. 예배는 뭔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항복의 시간. 하나님 은혜에 굴복하도록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세월호를 여러분들이 보시면서 선장이나 선원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런데도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잖아요, 아이들 내버려두고 자기 살려고 나오는 것 또 나왔을지라도 돈 말리고 이런 것들이 왜 그런가? 구원파 라는 것은요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으면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 어떤 일을 해도 죄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 이단으로 벌써 정죄된 그런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그런 이단들은 경계하는 것 이단 이자만 나와도 사이비 사자만 나와도 가까이 가면 안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은 오늘 우리 정통이라고 하는 우리 교회들은 어떤가? 이런 문제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너무 예전적이고 종교적이에요,
여러분들이 한가지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제대로 알려면은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알아야 되고,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예전에 의미가 뭔지를 알아야 되는데, 이런 의미를 모르다 보니까 종교생활이 돼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행하는 기도 말씀 성례 헌금 이모든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을 우리가운데 표현하는 겁니다. 또 그래서 그 구원을 누리는 것이고 재림과 함께 완성될 그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것 상관없잖아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기도는 내가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화된다고요 그러면은 종교가 돼버립니다. 성경에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염려하고 불안하고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는 것이 기도거든요, 그런 기도 하지 않고 내 소원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한다면은 그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여기에 예배의 형식에 참여해서 이 자리에 공간과 시간의 앉아있다고 해서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배 참석 안하고 주일성수 안 하면은 벌받는다 했더니만 복 받는다 이래 버리면은 껍데기 종교가 돼버리는 거에요, 예배는 뭔가? 우리가 창조주 그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릎을 꿇는 항복의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이 뭐냐 하면은 인간이 주인 되고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죄악입니다, 여러분들 삶 속에 일어나는 나쁜 감정들도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 앞에 와서 그 하나님 은혜에 굴복하는 것 그렇게 하도록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거거든요, 또 헌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잘못되게 생각하는 거에요,
예배의 형식가운데 헌금이 얼마나 중요한데 복을 받는 수단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어쨌든 간에 교인들이 헌금을 많이 하면은 교회는 종교적인 목적은 선하게 이루어져 가지만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나타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 이 헌금에 대해서 오늘 제가 설교하려고 하는데 헌금을 잘 알려면은 성경의 용어를 먼저 이해 해야 됩니다. 여러분 고 앞에 몇 장 넘겨서 고린도후서 8장을 한번 펴보세요, 294면입니다 8장 4절입니다 다 찾아서 빨간 줄 걷고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제가 읽을게요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자 이제 저를 보세요 우리나라 번역이 우리나라말이 두리뭉실해서 의미가 전달이 잘 안됩니다. 그러나 영어나 헬라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모든 것들이 동사에도 또 시제나 여러분 주격 이런 것들이 다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는데 여기에 은혜와 성도를 섬기는 일과 참여함은 병렬접속사로 연결이 되가 있습니다.
2. 은혜의 일, 섬기는 일, 교제하는 일, 헬라어: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사전적 의미고, 다 헌금이라는 용어이다. 이사야서 55장 9,10,11절 참조. 필요한 물질을 얻을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그 속에 포함되어 은혜로 주신 것, 10의 1의 헌금은 내 것이 아닌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
그 말은 뭐냐 하면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여러분 직역을 하면 이런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성도를 위한 이 섬김의 일을 그리고 이 은혜의 일을 그리고 이 교제의 일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런 말 이거든요, 여러분 4절을 읽으면서 그런 의미를 전달을 못 받았지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은혜의 일 섬기는 일 교제하는 일 헬라어로는 쉬운 헬라어 입니다.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 라는 말인데요 이 말들은 사전을 찾으면은 은혜 값없이 베푸는 호의를 말하고 섬기는 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교제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교통하는 교제를 말하는데 그건 사전적 의미고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그 문장 속에서 그 의미를 이해를 해야 됩니다.
여기에 은혜 섬기는 일 교제는 다 헌금이라는 용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잖아요, 영어를 잘 하는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어를 가지고 영어를 공부 한데요, 그래서 have 동사는 뭐 가지다 뭐다 뭐다 이렇게 또 뭐 여러분 단어 하나 있으면 그 단어의 의미를 쭉 이렇게 외운데요 그러면은 안 된다는 거에요, 왜 안 되는가 여러 단어가 있지만은 그 단어의 의미 중에 문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의미밖에 없는데 그래서 문장을 외워야 된다는 거요, 그래야 독해를 하면은 쭉 읽어나가면서 의미를 그대로 알게 되고 말도 그대로 알게 되는데 우리는 문장 따로 말 따로 단어 따로 외우니까 안 된다는 거요,
잘 이해 안되지요? 이것만 기억에 남을 가봐 겁이 나는데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면은 이런 말입니다. 그 배우는 대장에 암이 있었다, 이럴 때에 우리나라말에 배우는 이러면은 배운다는 의미도 있지요 또 연기자라는 의미도 있지요, 그런데 그러면 배우는 을 보면서 연기자를 선태 할까 배운다는 것을 선택할까 이래가지고 선택을 하니까 안 나가잖아요, 문장 속에서 배우는 이러면은 연기자라는 의미 알잖아요, 대장에 이럴 때에도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고 큰창자라는 의미도 있고 기록 장부라는 의미도 있고 육군 계급으로서의 대장의 의미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네 가지 의미에서 딱 따오는 게 아니고, 그 배우는 대장에 이러면은 큰 장자라는 말이 탁 떠올라야 되는데 의미는 그 대장은 그 의미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암이 있었다 암도 절에 암자가 있는가 하면은 악성 종양이 있잖아요, 그런데 문장으로 알면은 우리는 배우는 하면은 배운다는 머리는 전혀 생각이 안 떠오르잖아요,
대장에 할 때에 우두머리라든지 기록된 장부라든지 계급은 전혀 생각 안 나고 큰 창자라는 생각나잖아요, 암이라는 것을 할 때에 절에 암자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악성종양이 떠오르잖아요, 그러니까 그 배우는 대장에 암이 있었다 이러면은 우리는 의미는 아는데, 배우는 어 이게 를 인지 뭐 연기자 탤런트인지 그 중에 선택하니까 안 나가는 거에요,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영어공부 잘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고, 자 여러분 성경에도 보면은 오늘도 은혜의 일 섬기는 일 참여하는 일이라고 말을 할 때에 그 모든 것이 그 문맥과 문장 속에는 헌금을 말하는데 그 헌금을 왜 은혜라고 하고 왜 디아코니아 섬김이라 하고 왜 교제라고 하는지를 아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걸 모르고 무조건 헌금 많이 하면 복 받았다 누가 안 해가지고 손해 봤다, 이래 버리면은 종교적인 목적만 일어나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그 놀라운 은혜에 구원의 역사가 표현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도 예수님이 또 바울이 그냥 헌금을 은혜라고 했다 이래 생각하면 안 되요, 전부 구약성경에 다 있는 것들의 사고 속에 나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여기 놔두고 이사야서 1036면을 펴보세요, 55장 6절부터 읽어야 되지만은 9절 10절 11절만 제가 읽을게요,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길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리로 되돌아 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시어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 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일어난 사건이 은혜라는 건데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또 헌금을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 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가운데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서 나에게 주어졌다 이게 은혜이다.
자 이제 저를 보세요, 은혜라는 말 카리스라는 말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베푸는 호의를 말하는데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 할 때에 여러분들이 설교에 감동 받은 게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일어난 사건이 은혜라는 건데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또 헌금을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 여러분들의 삶의 필요한 물질을 얻을 때에 그 물질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인데요, 그 은혜를 주셨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냐 하면은 저를 집중하면 됩니다, 은혜로 주셨다 라고 하는 말은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생각하셔야 되요, 시장에서 채소장사 하는 사람은 채소장사를 해서 내가 한 달에 5백 만원을 얻었으면은 내가 5백 만원 노력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 받은 자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가 하면은 내가 채소장사를 하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밭에서 거름 주고 상추 심고 때악볓에서 상추를 길렀고,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가락시장에 가져다 주었고, 중간상인이 그것을 가지고 또 내가 가서 때와서 팔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상추를 사가는 사람도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을 해서 내 상추를 사가서 내가 지금 이런 부가가치의 소득을 얻은 거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데 우리라는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구원받은 사람은 언제나 인간을 생각 할 때에 개인화 시키지 않고 유기체로 생각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기도해서 하늘에서 돈 보따리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그런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하나님이고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면은 내가 상추장사를 해서 내가 한 달에 돈을 5백 만원 벌 때에는 나도 알지 못하는 농부의 수고가 그 속에 포함되어져 있고요, 나도 알지 못하는 트럭운전사의 수고가 그 속에 부어져 있고,
나한테 물건을 사가는 어떤 사람 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가운데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서 나에게 주어졌다 이게 은혜에요, 여러분 자 그러면 이런 은혜로 주어졌을 때에 왜 우리가 헌금이 이라는 제도를 하나님께서 그런데 주었는가 하면은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인간의 잘 못된 죄악 된 제도와 구조가 이세상을 만들어 놓은 거에요. 그러면 이 세상에 죄악 된 구조와 제도가 뭐냐 하면은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에 사람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우리공동체에 의사는 가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분들이 능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에 그 능력을 인간이 만든 구조에 적합하게 사용되는 능력은 좋은 능력이고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하는 능력은 약한 능력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똑같이 했는데 인간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 놔 버린 거에요,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은 많이 가져가는 거에요, 그래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 부 즉응에 능력이 약한 사람들은 가난하게 되는 거에요, 이게 창세기 3장 이후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에요,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설교 문을 가지고 읽어보시고요 이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자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회를 망하라 이런 것이 아니고 이런 사회를 너는 너희들이 만든 사회의 구조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졌는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진 그 속에는 이렇게 숨은 봉사자들의 봉사의 결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9는 네가 누리고 10의 1은 너희들이 만든 잘못된 구조 속에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의 몫으로 내가 넣어놓은 거야,
2) 크리스챠인들은 열심히 일해서10의 3의 삶을 살아라, 10의 1은 하나님을 위해서, 10의 1은 부모와 친척 가족을 10의 1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서, 10의7은 자기의 삶을 누려라. 기부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 얻은 소득은 숨은 희생을 보는 것이 영의 눈이 열렸고 은혜의 세계로 가는 것.
그 몫은 네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도네이션 해야 돼, 이것이 헌금 속에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은혜라고 한 거에요, 제가 몇 주 전에 여러분들에게 설교할 때는 진짜 크리스챠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10의 3의 삶을 살아라 10의1은 하나님을 위해서 10의 1은 부모와 친척과 가족을 위해서 10의1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서 그리고 10의7은 내가 볶아먹든지 삶아먹든지 자기의 삶을 누려라, 여러분 이런 구조가 있을 때에 성공한 사람 악한 구조 속에서 적응의 능력을 가지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박수치는 복된 사회가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런 도네이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자를 욕한다고,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 말입니다.
교회도 우리가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부유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는데 그 가난한 사람도 게을러서 간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잘 못된 사회의 구조 속에 적응능력이 부족해서 어찌할 수 없이 가난하게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의 몫으로 10의 1을 놔둔 거에요, 이런 헌금의 정신을 가지고 사회를 만든 서양이나 2천년 동안 제도와 법을 만든 사회에서는 기부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잖아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기독교가 100년의 역사가 넘어섰다고 이야기를 하고 교회가 지금 이렇게 많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기부를 선택이라 생각한다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기부 하게하고 헌금을 하게하려고 뭐 하는가 하면은 기복신앙을 가져와서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는데 인색한 마음 힘든 마음 그래서 헌금 헌 자만 나와도 부담이 되는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나는 이 구원을 알면은 그렇구나 내가 이 때어놓은 이 10의1은 내 것이 아니구나 악한 인간이 만든 사회적인 구조 속에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남들보다 뒤쳐져있는 사람들을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10의 1일 필수적으로 놔두었구나,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천만 원을 벌면은 기독교의 신앙인들은 천만 원의 소득이라 하지 않고 9백 만원이 내 소득이고 100만 원은 당연히 내 몫이 아니고 내놔야 되는 거에요, 이것이 은혜는 왜 헌금을 은혜라고 했는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내가 했지 만은 내가 얻은 소득은 그 소득을 얻기까지 하나님은 숨은 희생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봉사와 희생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영적인 눈이 열린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에요, 자 그래서 우리가 그런 헌금을 했을 때에 그 헌금을 인간이 만든 잘 못된 제도와 구조 속에서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사회에서 뒤쳐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것을 코이노니아 교제라는 거에요, 교회당 짓는 게 아니에요 프로그렘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그 아셔야 되요, 그래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누는데 왜 디아포니아라고 섬김이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 기부하고 나누어 줄 때에 구제하라고, 제가 구제라는 말을 안 쓰잖아요, 그러면은 돈 몇 푼 받아놔 놓고 그 사람에게 지배당한다고 감정의 지배, 그러면은 그건 나눔이 아니에요, 그래서 헌금의 디아코니아라는 단어를 헌금에 쓴다고,
3. 바울이 화로다 나에게 아난케[Anance]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구원의 빗진 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지 않는다, 비가 와서 열매를 맺어 풍성함을 주고 다시 비가 올라가듯이, 헌금의 은혜는 잘 못된 제도 속에 도네이션의 섬김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올려드리는 것이 헌금의 은혜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그 받은 헌금을 주는데 그 받는 사람이 채권자고 주는 사람이 채무자가 된다고 왜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에게 이런 능력을 주고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이 적응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 여러분 그렇잖아요 대통령은 없어도 되도 우리 사회에 환경미화원 없으면은 여러분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데 그 환경미화원에 봉급은 작잖아요, 인간이 만든 제도 속에서 그 사람에게 줄 때에 너에게 이렇게 주라고 오늘날 내가 이런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까 만약에 네가 존재하지 않으면은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없어 그게 바울이 화로다 나에게 아난케[Anance]라는 단어까지 또 써가면서 구원의 빗진 자라고 하면서 그래서 우리교회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삼겹살 내는 사람이 먹어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세요, 카리스 디아코니아 코이노니아를 나타내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 사회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기죽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굴림 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자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져요, 오늘도 이사야에서 말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가지고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는 법이 없다는 말이 이런 말이에요 헌금의 제도에 있어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가지고 다시 비가 하늘로 올라가잖아요, 다시 올라 갈 때에 그냥 올라갑니까 오늘 이사야에 뭐라고 그래요, 하늘에서 내리는 그 비가 땅을 적셔서 종자가 나게 하고 싹이 나게 해서 열매를 맺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함을 가져다 주고 그 비가 다시 올라가듯이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받은 헌금의 은혜는 하늘에서 내려와가지고 인간이 만든 잘 못된 사회의 제도와 구조 속에서 어찌할 수 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도네이션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교재와 섬김이 있는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나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대립하는 것이 되는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에 감
사로 올려드리는 것이 헌금이라는 거에요,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안에 일어나는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이상하게 해버리잖아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헌금을 이런 것을 알아야 되요, 그래서 이사야 55장에서 그런 말씀하는 거에요. 그것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안에 구원에서 조명으로 헌금을 다시 보면서 깨달아서 이 은혜의 일 섬기는 일 그리고 교제하는 일에 교제의 일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생각을 달리해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의 문화가 제도가 되고 가치관이 되어져 있는 서양에서는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추신수가 1,400억을 받는데 7년 동안 자기 몫은 40%밖에 안되거든요, 40%밖에 안 된다는데 추신수는 서양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떤 생각이냐 하면은 60%는 내게 아니라는 거에요.
선택이 아니고 필수적으로 놔두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 들었지요, 그 여러분 누굽니까 협상하는 사람 5%주는데 조금도 안 아깝다, 이해되시지요 오늘 내가 이 얻은 것은 내가 얻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숨은 사람들의 희생과 봉사의 결과로 얻은 것을 예배 때 마다 알아야 되고 헌금을 드릴 때마다 여러분들이 새롭게 해야 되는 마음이 될 때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될 때 우리사회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더불어서 손잡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 그런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가 예배 안에서 일어나는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헌금에 목적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도 헌금의 목적을 여러분 대충 4가지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 세 하나는 또 사랑의 나눔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에서 말하는 것이나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여러분 알로젠 이라고 하는 헌금의 목적도 있고 또 하나는 순례의 예물도 있어요, 헌금을 왜 드리는가 복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것 없어요, 여러분들이 마태복음에 보면은 그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에게 예물을 가져오지요,
4.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면은 이방에 모든 예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드림으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 됨으로, 예수님 때문에 메시야의 시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었다. 참된 이스라엘 백성 된 표시로 예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드리는 것이 알모젠이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은 알모젠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뭐 성극 하라고 그것 성경에 기록한 줄 알아요? 그 성극 하라고 있는 것 아닙니다. 또 여러분 성탄절날 여러분들에게 성탄헌금 거두어가지고 교회가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그기 동방박사가 예물을 드리는 것도 순례의 예물인데 그 헌금의 목적이 이사야 60장을 펴보세요 4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내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다, 그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의 나라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절 7절 8절 뭐 계속 그런 이야기인데 9절에 보세요,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자 이러니까 이 말씀을요 기업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하나님이 바다의 풍부를 가져다 주시고 이런다고 아 무식해요,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떤 말이냐 하면은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를 하면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면은 이방에서 각종 아름다운 보물이 예루살렘으로 가져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거다, 라고 예언을 해놓고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야 시대가 와서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를 하면은 이방인들이 모든 예물을 예루살렘에 가져오게 되어서 메시야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여러분 동방박사 이야기가 마태복음에만 있잖아요 마태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이사야에 그렇게 되어져 있지, 이사야에 너희들이 이방에 모든 예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그 예물을 이방의 왕들이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했지 지금 너희들 예수님이 왔을 때에 동방박사 이방인들이 와서 예물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메시야의 시대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었느니라, 여러분 그 성경을 보면서 이걸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면은 성경 완전히 신화 읽는 게 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가 어떻게 도래해서 이방의 예물들이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가,
이세상에 이방의 왕들 권세 있는 사람들 인간이 만든 죄악 된 사회에 구조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숨겨놓은 그 10% 을 사람들이 알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도록 인간이 죄악 된 구조 속에 만들어서 그 적응에 능력이 부족해서 자식의 몫까지 남들에게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경쟁에서 뒤 처져있는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말미암아 그게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인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함께 하나님께 영화로운 이름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도래하였고 시작하였느니라.
성경은 이런 말씀이에요 지금 여러분, 그러면 이런 헌금을 하려면은 알모젠 (Almosen) 이라는 의미를 아셔야지요, 여러분 알모젠은 뭐냐 하면은 이것은 구약시대에도 있었든 거에요, 이방인이 이스라엘백성들이 되었을 때에 믿음으로 자기의 믿음의 진실성과 자기가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 백성된 표시로서 예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드리는 것이 알모젠이에요, 바울이 지금 자기가 세운 이방인의 교회에 헌금을 거두어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드리는 것은 알모젠이에요, 왜 그랬는가? 그 헌금을 드리지 아니하면은 이방에 세운 개척교회가 내 교회가 되기 때문이에요, 자 여러분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얼마나 욕을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돈 안 밝힌다 해 놔놓고 헌금 봐라 돈 밝히는 놈이라고, 그런 음해와 오해를 받으면서도 너희들이 모든 것 다 좋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여 하는 헌금 알모젠은 너희들이 안 해서는 안 된다 반듯이 해라,
내가 너희들이 유력한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하고 내가 전하는 복음을 전해보니까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 그 사람들이 나에게 알모젠은 반듯이 실행하라고 하는데 그것 내가 그 동안 힘써 행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행할 것이다, 라고 하는 이유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하면은 내가 이방인 교회에 새운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고 그것이 주님의 교회가 되려면은 알모젠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 이방인의 교회가 다 예수님의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분 그전에 여러분들에게 설교할 때에 바울이 그런다고 그랬잖아요, 자기가 정말 전하는 복음을 태스트 받기 싫지만은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가 전하는 복음이 진짜인가 아닌가 테스트 받은 것은 왜 그 이방인의 교회가 알모젠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은 내 교회가 되면은 내 사역이 헛되게 되기 때문이다,
5. 알모젠의 결과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바벨탑, 유적 문화 배격해야 한다 바울의 사역이 헛되었다. 김일성 사회에 많은 공적 비 많은 기념탑 속에 있는 인민들의 고혈과 눈물이 공산주의이고, 그것이 바벨탑 문화다. 바울은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죄인으로 보인다 자신도, 심판자가 아닌 준행 자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여러분들의 가치의 변화가 있어야 되요, 그래야 우리사회가 되고 여러분들의 삶의 자유와 행복이 주어져요, 이 변화가 있어야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헛됨을 뭐라 생각해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안 알아주면 헛되다고 그러지요, 내가 싸아온 바벨탑 내가 쌓아온 유적 내가 싸아온 업적을 뒤에 사람이 계성을 하지 않고 부정을 해버리면은 내가 헛되다고 이야기 하지요, 그건 유적문화 바벨탑문화에요, 인간의 죄악에 극치에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꼭대기에 쌓아서 우리 이름을 더 높이자 그게 바벨의 문화 그것이 유적의 문화 그것이 인간의 공로와 업적 지향주의적인 사고에요, 바울은 그것이 깨진 거에요 하나님의 은혜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 그 육신의 자아가 깨진 거에요, 그때부터 바울은 내가 세운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되지 않고 내 교회가 되면은 내 사역은 말짱 도루묵이다, 여러분 우리사회가 지금 얼마나 많은 비용이 낭비되고 있어요, 새로 뽑힌 대통령은 전임대통령 지우기부터 시작 하잖아요 유적문화입니다, 영웅의 문화입니다 제국의 문화입니다 바벨탐 문화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교회가 목사니까 목사욕해야 되겠지요, 성역 40주년 내가 이 교회에서 이것 이것 이것 연혁 하나님 앞에 가면은 내 사역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 했지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분들 그러잖아요, 교회에서 조그맣게 해놔 놓고는 남들이 안 알아주면은 목사님이 안 알아주면은 삐치잖아요, 마태복음 6장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면은 네 상은 이미 받았느니라.
내가 한 일을 목사님이 알아주고 세상에 여러분 교인들이 알아주면은 내가 한 것은 이미 상을 받은 그 칭찬으로 상이 끝나버린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 우리 얼마나 여러분 우리나라에 지금 대통령들이 모든 일들을 했는데 그것이 업적 저 북한 김일성 사회에 가보세요 얼마나 많은 공적 비 얼마나 많은 기념탑 그 속에 있는 인민들의 고혈과 눈물 그게 공산주의에요, 그것이 바벨탑 문화에요 창세기 11장부터 시작되었든 헌금은 그런 게 아니에요, 교회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서 바울은 내가 세운교회가 내 교회가 되면 내 사역은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또 너희들이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을 유력하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유력한 거 아니다 하나님 앞에 똑 같은 거다, 우리는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능력과 유력을 평가하잖아요, 다 잘 못된 거에요, 바울의 눈에는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죄인으로 보인 거에요 자기자신마저도, 교회에서 여러분 심판 자 되지 마세요, 저는 목사님들하고 만나면 그런 이야기해요, 정신병에서 깨어나라고 심판 자 아니라고 준행 자라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교회에서 누가 판단하고 심판하면은 내려오라 그러세요 멸망의 가정한 자리에서,
6. 하나님은 숨겨진 희생과 눈물로서 오늘 나 됨을 알지 못할 때,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내가 다른 사도들 보다 더 수고하였지만 nothing 나는 없다. 사람을 위해서 종교적인 신념까지 버리는 것이 예수다. 하늘에서 내린 은혜의 단비가 참된 행복 아름다운 교통과 화합으로 이루어진다.
여러분 그래서 은혜 섬김 교제라고 했는데 알모젠 그 의미 아셔야 되요, 예수님이 그런 말씀하셨잖아요 주여 주여 말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자가 아니라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설교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교를 전세계에 선교사를 갈지라도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뭡니까? 내가 행한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은 숨겨진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서 오늘 나 됨을 알지 못할 때 그래서 바울은 뭐라고 했는가 하면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내가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 만은 nothing 나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다 오늘도 여러분 왜 우리가 헌금을 이것을 알아야 되고 그런 헌금을 드리기 위해서 알모젠과 순례의 예물에 헌금의 목적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그렇게 하려면은 여러분들 속에 끊임없이 쌓으려고 하는 업적과 공로와 바벨탑을 지향하는 가치관이 없어져야 되요,
저는요 우리나라에 지금 복지 노인들 뭐 못 주고 왜 전임자 지우기 한다고 얼마나 많은 예산을 낭비 시키면서 국민들이 자신의 정권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되었잖아요, 국민이 목적이라면은 전임자가 나보다 더 크게 보일지라도 계승 발전하는 자기를 죽이는 대통령 여러분 목사님 교인들 생각해 보자고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목사는 아닐지는 몰라도 한가지 분명히 말하는 것은 목사의 아들로서 수많은 교인들의 고통도 보면서 내가 느꼈든 것은 내가 목회하는 길에 교인을 수단화 도구로 만들지 말자, 내가 하는 목적을 위해서 교인을 수단화 시키지 말자 교인이 목적이 되자, 예배든 뭐든 뭐든 지난주일 여러분 시선이라는 영화 보라고 그랬지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까지 버리는 것이 예수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성령 받아서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다 다 하나님이 지은 한 가족의 공동체임을 받아드릴 때 그때 헌금이 코이노니아가 되고 디아코니아가 되고 카리스가 되는 거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주면서 행세하는 부모 봤습니까?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형님이 동생 도와주면서 행세하면 가족 아닙니다, 아까우면 가족 아닙니다,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가족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그 거룩한 교회의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교회가 동창회보가 돼 버리고 교회가 계모임이 돼버리고 교회가 이익집단이 돼버리고 성령의 교통하심 성령의 역사하심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에요,
받아드리나 안 받아드리나 여러분 그 가족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난 구원과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그 구원이 우리 속에 이루어져서 죄인이 만들어놓은 사회에 구조 그 사회의 적응의 능력을 따라서 그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적응의 능력이 부족해서 있는 것까지 빼앗겨서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참 감사하게도 10의 1만 네 것이 아니야, 네가 수고한 노력에 숨은 봉사자들의 희생이 있어 그 몫을 떼어놔, 그래서 하늘에서 내린 그 은혜의 단비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이런 아름다운 교통과 화합을 통해서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비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소유가 참된 행복이 되어져서 함께 손잡고 하나님 앞에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성령의 교통하심을 믿는 것은 가족으로 받아드려야 되요, 가족은 줘도 더 주고 싶고 가족은 주고도 행세하지 안 해요, 그게 부모의 네리의 사랑이고 그 네리 사랑이 형제의 우애를 통해서 부모에게 효도를 그렇게 올려드리잖아요 받아 드리세요, 옆에 있는 사람을 정영주 장로님을 정씨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하씨로 봐야 되요. 안 그러면 주 예수라 했으니까 주씨로 보든지, ㅎ ㅎ 우리 찬송가 475장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