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수상한 이야기
2024년 4월 12일 제40회 춘천의 의암제(毅菴祭), 제13회 의암류인석전국휘호대회가 류인석기념관에서 열렸다. 의암 류인석(柳麟錫)은 1842년 1월 25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성리학자인 그는 철학자이며 의병장으로 유명하다.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중암 김평묵(重菴 金平默), 성재 류중교(省齋 柳重敎)의 문인이었다. 1864년 의병활동에 몸을 바쳐 전국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했으며 1897년 이후 해외를 오가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했던 애국지사다. 의암제는 류인석 선생을 비롯하여 춘천 의병의 넋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1985년 제1회 행사로 시작된 지역 잔치다. 춘천문화원 주최, 춘천향교의 주관으로 매년 4월 12일 의암 선생의 사당인 의열사(義烈祠)에서 봉행되고 있다. 또한 전국휘호대회는 의암 선생의 애국, 애도, 애신, 애민정신과 그 유훈을 되새겨 현대인들에게는 삶의 지표가 되게 하고 역량 있는 신인작가를 발굴하고자 2012년 제1회를 개최한 이후 오늘에 이른다.
아내는 이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휘호대회는 현장에 가서 직접 그려야 하고 심사위원들도 출전자의 낙관을 가린 채 그림만 보고 평가하는 공정방식으로 운영된다. 전적으로 순수 자기 실력으로 치르는 대회다 보니 아내처럼 처녀 출전자들의 마음은 콩닥콩닥 괜히 지은 죄도 없이 떨리는 심정으로 대회를 맞이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여 그렸다고 자평하면서 최소한 입선 이상의 성적이라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드디어 4월 15일 춘천문화원 홈페이지에 당선자 명단이 게시되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눈을 씻고 찾아도 아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런 대회 경험을 쌓은 것에 만족하며 섭섭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려고 자위하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하는데도 섭섭함이 내내 사라지지 않고는 자꾸 원망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함께 출전했던 봉평 사람들은 모두가 입선 이상 수상했기 때문에 오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심적 변화였다. 이것은 모든 일에 의욕을 빼앗았다. 잊으려고 해도 떠나지 않는 이 자괴감을 빨리 내쫓지 않으면 심한 우울증도 생길 것 같아서 하나님께 마음의 평안을 기도하면서 제 혼자만의 몸부림치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마음의 번민이 어느 정도 잠잠해질 즈음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이번 대회 특선 당선자라는 통보였다. 담당자의 실수로 홈페이지에 이름이 누락되어 즉시로 수정했는데 확인하지 안했느냐고 했다. 한 번 확인하면 그만이지 무슨 미련이 있다고 누가 두 번이나 확인할까? 사실 당선자 명단이 이상하기는 했어도 그것이 아내의 이야기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명단에는 봉평 출신 한 사람이 두 개의 상을 수상했다고 게시되었다. 그는 차하상(2등)과 특선상(3등)에 이름이 동시에 올라있었다. 어떻게 그림 한 점만 제출했는데 상은 두 개를 받을 수 있을까? 잠깐 의아했지만 남의 이야기이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후사정을 알고 보니 심사위원들은 차하상 수상자와 아내의 그림을 심사하면서 고심 끝에 아내의 그림을 특선으로 결정해서 게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내부적인 혼란이 당선자 명단에까지 실수로 이어졌고 결국엔 차하상과 특선상을 동일 인물로 게시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당선자 명단만 보고 자신의 수상 유무를 확인하는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내막을 알 턱이 없었으니 낙방자의 깊은 한숨 속에 갇혀 여러 날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뒤늦은 특선 수상자로 신분이 바뀌어서 싫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한 뒤 끝이라서 처음 수상소식을 듣는 감격은 일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이런 마음의 깨달음이 있었다. 이 땅에서도 받을 상이 없으면 이렇게 서운하고 힘든데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여기에서의 상은 받으면 좋고 못 받아도 그만이지만 하늘에서 받을 상은 자신이 누릴 영원한 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반드시 수상자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상은 그것에 걸맞는 실력이 병행되어야 받을 수 있지만 하늘 상은 실력이 없어도 게으르지만 않으면 누구나 주어지는 공평한 상이다. 평생 목회의 뒷자리에서 목사의 아내로 대접만 받으며 살다가 행여 하늘 상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상을 바라보고 더욱 전도와 봉사에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며 달려왔다. 그런데 상 없는 자리에 잠시 앉아보니 얼마나 하늘 상의 가치가 큰 것인지를 깨달으며 더 열심히 충성할 것을 다짐했다.
대회 담당자가 뒤늦게 시상식에 참석할 것인지 의사를 묻길래 일부러 참석을 통보했다. 그런데 4월 29일 춘천문화원에서 열린 시상식은 대표만 수상하는 것으로 정해져서 아내는 또 특선상 대표의 수상 장면을 지켜보며 손뼉 칠 뿐이었다. 담당자는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참석여부를 물어야 하는데 멀리서 찾아간 사람을 헛발질하게 했다. 계속 반복되는 담당자의 실수에 아내는 또 멍이 들었고 그냥 상장만 수령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난 후 특선상장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시상식 현장에서 담당자가 직접 상장을 전달했느데 안 된 것으로 착각하고 또 보내왔으니 아내는 한 대회에서 동일 상장을 두 번 받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하나는 땅에서 사람이 주는 실력상이고, 또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상으로 여기며 웃음 지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2:6).
제40회 의암제 및 제13회 의암류인석전국휘호대회 행사장인 의암류인석기념관 정문
특선상을 수상한 심경 최숙희의 문인화 '청포도' , 그 아래 병아리는 선물로 주신 3자녀들을 생각하며 그렸다.
춘천문화원 의암전시실에 걸린 작품들
왼쪽은 4월 29일에 현장에서 수령해온 상장, 오른쪽은 5월 10일에 또 다시 택배로 보내온 상장
첫댓글 사모님축하드려요 실력이나날이일취월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