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1.연중12주일 묵상글>
<마태10,28-29>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청년 때는 성공을 두려워하고,
중년 때는 병고를 두려워하고,
노년 때는 가난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퇴후(60대 중반) 11억이 없으면 70대 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군요.
모두가 다 보이는 것에 대한 소비주의의 원리이지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원리는 무엇이며 소비적인 논리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요?
에릭 호퍼의 삶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가 봅니다.
에릭 호퍼는 1902년도에 뉴욕 브롱크스의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다섯 살 때에 어머니와 함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로 시력을 잃습니다. 아들의 실명에 상심한 어머니는 끝내 회복을 못하고 그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뜨고 맙니다. 호퍼는 시력을 잃은지 8년 만인 15세 때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합니다. 5살이 되기전에 읽는 법을 배웠던 그는 언제 다시 시력을 잃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미친듯이 책을 읽습니다. 18세 때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생업을 위해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해 오렌지 행상, 야적장 인부 등의 직업을 전전합니다.
안락함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삶은 현재를 부단히 희생시키는 삶이 아니던가, 한 개라도 더 가지려는 소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삶, 거기에 평안함은 없다. 물질에 대한 애착은 고통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에릭 호퍼는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깨닫습니다.
그는 떠돌이 생활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수학, 물리학, 지리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28살의 어느 일요일에 음독 자살을 결심한 그는 “초록빛으로 뒤덮인 들판과 과수원을 굽이굽이 돌며 푸른 바다로 달려가는 길을 생각하고, 배낭을 가볍게 흔들면서 팔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는 자살대신 끝없이 걷는 삶을 택합니다. 그 이후로는 평생 걸어다니는 삶을 삽니다.
오렌지를 팔러 나갔다가 순식간에 한 트럭 분량의 오렌지를 팔아치우는 자신의 놀라운 재능에 놀라며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바로 장사를 그만둡니다.
그는 편안하고 돈에 얽메이는 삶이 아닌, 불안하고 낯선 삶을 택합니다.
무엇이 그를 이런 선택으로 내모는 것일까요?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이 생동감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매일 보면 더 이상 아름다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친숙성이 생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다 바쳐 사랑할 것만 같았던 연인도 결혼을 하고 나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역시 친숙성이 생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릭 호퍼는 친숙성에 의해 무뎌지지 않는 삶을 원합니다.
결국 그는 삶의 생동감을 얻기 위해 친숙성과 안락함을 가져다 주는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감귤의 백화병에 간단히 치유책을 내놓는 에릭 호퍼의 식물학과 확학 실력에 놀라 같이 일하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감귤 연구소장의 제안도 거절합니다.
그리고 방랑으로 배고픔을 견디며 “이건 치통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립니다.
복잡한 연구과정에서 쉽게 사전에서 답을 찾으려는 자신의 손놀림을 보고는, “힘든 생각을 회피하는 수작이다”라고 책망하며, 바람 속으로 책을 집어 던집니다. 자신만의 노력으로 답을 찾아야 살아있는 지식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가 생각하는 의미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의미있는 생활은 배우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해야 해요.”
그가 생각하는 의미있는 일이란 배우는 열정과 자세 그리고 그에 따른 기술 습득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 안에는 친숙성과 안락함이 없지요. 매순간 새로운 시도와 성취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초년생으로 도전만이 있을 뿐입니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1-39)/
육신은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영혼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동물에 생명력을 가져다 주는 삶의 원리, 죽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각 존재 그 자체, 생명의 하느님과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요소를 가리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안락함과 친숙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할까요?
맛없고 무미건조함을 찾는 삶이지요. 이러한 삶을 통해 무념무상으로 하느님 앞에 무아로 서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와 정화의 수련을 해야하는데요,
첫번째 단계는 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분심없이 할 수 있지요.
두번째 단계는 걸으면서 기도하면 됩니다. 분심없이 할 수 있을 때가지 하시고 난 다음에,
세번째 단계는 멈추어서 기도하면 됩니다.
끝없이 삶에 감사와 기쁨이 올라오지요.
묵주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성심과 함께 예수성심께 봉헌의 삶을 끝없이 하십시오. 현재가 순간만 존재합니다.
에릭 호퍼가 친숙함과 안락함을 버렸듯이, 끝없는 영적인 봉헌 속에는 친숙함과 안락함이 존재할 수 없지요.
에릭 호퍼는 생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는 친숙함과 안락함을 떨쳐내고자 방랑을 선택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친숙하게 되면 아름답게 보지 못하고, 안락함으로 떨어지면 나태하여 창조적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겠지요.
창조적 에너지는 자전거 핸들과 안장에서 황소머리를 창작해 내듯이, 영적인 에너지 역시 끊임 없는 새로움과 감동 그리고 감사의 생활로 존재 자체의 충만함과 창조력으로 우리를 이끌게 됩니다.
<Matthew10,28-29>
28 And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rather, be afraid of the one who can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Gehenna.
29 Are not two sparrows sold for a small coin? Yet not one of them falls to the ground without your Father's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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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편안한 삶을 거부한 떠돌이 철학자 에릭 호퍼
“친숙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창조적인 예술가의 힘이다.”
미국의 사회 철학자 에릭 호퍼는 ’길 위의 철학자’로 통한다. 길 위의 철학자라는 말은 곧 그가 떠돌이요, 부랑자였음을 의미한다. 도를 찾아 떠나는 수도승처럼 그는 천성적으로 안주安住를 거부한 사람이었다.
호퍼는 1902년 뉴욕 브롱크스의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호퍼의 어머니는 끝내 회복을 못하고 그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뜬다. 호퍼는 시력을 잃은 지 8년 만인 열다섯 살 때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다. 이후로 그는 미친듯이 독서에 몰입한다. 자서전인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truth imagined’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읽는 법을 배웠다.
시력이 돌아오자 거침없이 읽을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시력을 잃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눈을 혹사시키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 싶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0)/
다시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는 독서에 몰두한다. 그는 떠돌이 생활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수학, 물리학, 지리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배움에 목마른 자였다.
열여덟 살 때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생업을 위해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해 오렌지 행성, 야적장 인부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스물여덟 살의 어느 일요일에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음독자살을 결심한 그는 수산염을 삼킬 요량으로 길을 걷는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1)/
“나는 초록빛으로 뒤덮인 들판과 과수원을,
굽이굽이 돌며 푸른 바다로 달려가는 길을 생각했다.
배낭을 가볍게 흔들면서
팔다리를 움직여 길을 걷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2)/
그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했다. 그에게 삶은 곧 길 위의 방랑을 의미했다. 그는 자살 미수를 기회로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켈리포니아를 떠돈다. 온화한 날씨,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황금색 오렌지....
켈리포니아는 방랑자에게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어느 날 오렌지를 팔러 나섰다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다.
놀라운 장사 수완으로 오후가 채 지나기도 전에
한 트럭 분량의 오렌지를 혼자 다 팔아 치운 것이다.
두둑하게 받은 돈을 세던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바로 장사를 그만둔다.
편안한 삶, 돈에 얽매이는 삶을 그는 원치 않았다.
그가 원한 삶은 편안 삶이 아니라 불안하고 낯선 삶이었다.
그는 또
“친숙성은 생의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한다.”고 생각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4)/
아무리 좋은 경치도 매일 보면 더 이상 아름다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친숙성이 생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다 바쳐 사랑할 것만 같았던 연인도 결혼을 하고 나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역시 친숙성이 생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릭 호퍼는 친숙성에 의해 무뎌지지 않는 삶을 원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생동감이 있기를 원했다. 그가 편안한 자리를 거부하고 세상을 떠돈 것도 안락함과 친숙함을 거부하고 생동감 있는 현실을 맞아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친숙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가의 힘이다”라고 하면서
“예술가의 본모습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방인이거나 다른 별에서 온 방문객일 것이다.” ...라고 예술가를 정의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6)/
*피카소가 자전거 핸들과 안장으로 만든 <황소 머리>
습관화된 시선은 꽃을 꽃으로만 보고, 풍경을 풍경으로만 본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우리가 매일 보는 사물에서 신비함을 보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일찍이 피카소는 자전거 안장에서 황소의 머리를 보았고, 자전거 핸들에서 황소의 뿔을 보았다. 에릭 호퍼 또한 세상을 새롭게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파블로 피카소Picasso, Pablo
에스파냐 출신의 입체파 화가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를 창시하여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비뇽의 처녀들>과 벽화 <게르니카>가 있으며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 <전쟁과 평화>를 남겼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7)/
그는(에릭 호퍼)
“행복을 찾는 일은 불행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라고도 말했다.
안락함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삶은 현재를 부단히 희생시키는 삶이 아니던가, 한 개라도 더 가지려는 소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삶, 거기에 평안함은 없다. 물질에 대한 애착은 고통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에릭 호퍼는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깨닫는다.
<에릭 호퍼>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8)/
그는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하여 도서관 근처에서 싸구려 방을 하나 얻는다. 한눈팔지 않고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고, 굶주린 지 사흘, 그는 길을 걷다 불현듯 어떤 깨달음을 얻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사람이 그토록 겁내는 배고픔이란 게 기껏 치통정도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잊을 수 있다는 것.”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그는 말한다, “난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일이란 꼭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의미있는 생활은 배우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해야 해요. 나는 기술 요법이 신앙 치료나 정신 의학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기술 자체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39)/
그는 관념적으로만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다. 혼자 독학하여 얻은 식물학과 화학 실력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감귤 연구소 소장이 절쩔매던 감귤의 백화병 치유책을 간단하게 발견한다. 호퍼의 능력에 감탄한 소장이 같이 일해 보자고 제의하지만 그는 안락함을 보장해 주는 제안을 뿌리치고 길 위로 나선다. 편안함,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미덕이 아니었다.
어느 날, 그는 엄청난 사고 과정을 요구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때 자신의 손이 사전을 찾는 모습을 본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 같은 나의 행동이
힘든 생각을 회피하려는 수작임을 알아차렸다.
그런 경우 나는 진정한 사상가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싫은 불쾌한 발견이었다.
나는 그 책을 바람 속으로 던져 버렸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40)/
그는 쉬운 답과 결론을 구하지 않았다. 사전을 통해 손쉽게 답을 구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전을 창밖으로 내던져 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호퍼의 사랑 이야기도 그가 얼마나 안락을 거부하고 자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호퍼의 연인은 헬렌이라는 여자였다. 헬렌은 호퍼를 비범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호퍼는 달갑지가 않았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41)/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나를 원더맨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작심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미친 짓이었다.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함께 살면 나는 한순간의 평화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나는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녀와의 이별로부터 회복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다. 실제로 완전히 회복된 적은 없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만 하는 삶은 내 삶이 아니라는 것이 에릭 호퍼의 생각이었다. 연인이 기대하는 삶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돈을 벌고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호퍼가 말한 대목을 음미해 보라.
“믿지 않으실 테지만,
제 미래는 당신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절대적 안전을 원한다면 부랑자 무리에 섞여
떠돌이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세요.”
삶의 밑바닥에 근접해 있는 삶은 바닥으로 추락해도 큰 충격이 없다. 삶의 밑바닥에서 높이 올라가는 삶, 우리는 그것을 안락한 삶이라고 말하지만 에릭 호퍼는 그것이야말로 불안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42)/
*에릭 호퍼
1902년 7월 25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가구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남.
1909년 갑자기 시력을 잃어 15세 때까지 실명 상태에 놓임.
1920년 생업을 위해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해 10년간 오렌지 행상, 웨이터 보조, 야적장 인부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함.
1930년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침. 이를 기회로 캘리포니아 각지를 떠도는 생활을 함.
1941년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여 부두 노동자가 됨.
1951년 <<The True Believer>>를 출간.
1964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정치학을 강의함(1972년 까지)
1967년 부두 노동자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함.
1983년 81세를 일기로 사망.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수상.
*독학을 한 사람들
*제본업자 밑에서 틈틈이 책을 읽으며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된 패러데이는 독학으로 연구를 거듭해 전기 분해에 관한 ‘패러데이 법칙’을 발견했다.
*켄터키의 변방에서 가난한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링컨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이어 쟁쟁한 정객들을 물리치고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됐다.
*열두 살부터 신문팔이를 하던 에디슨은 청가 장애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차 짐칸의 작은 실험실에서 실험을 계속했다. 백열전구와 축음기, 영사기 등 1,000건이 넘는 특허는 고독한 공부의 결과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슬라르는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다 독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창의력을 가지게 된 근본 이유를 아버지가 대학에 보내 주지 않는 바람에 집에서 독학을 했던 때문이라고 말한다. 폭넓게 문학 작품을 읽고 박물관과 전시실을 다니며 공부한 것이 작가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43)/
첫댓글 끝없는 영적인 봉헌속에는 친숙함과 안락함이 존재할수 없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