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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강 2장 1절에서 10절 새 생명 창조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26.05.17(일)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7절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지난 시간에는 애베소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감사와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그 전반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성도들 각 삶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라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예수 믿기 전에 나의 상태는 어떠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로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어떤 혜택을 가져왔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애베소서 2장을 먼저 크게 한번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에베소서는 2장 1절부터 10절까지 한 단락이 되고요.
그 다음에 11절부터 22절까지가 또 하나의 단락인데
1절부터 10절까지는 개인에게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1절부터는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 대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면
11절부터 22절은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2장은 크게 보면 대조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때는 지금은 전에는 이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2장 2절 보면 그때라고 이야기하고
11절에 보면 그때라는 말을 사용하고
12절도 그때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2장 14절에 보면 이제는 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방 기독교인들이 과거 예수 믿기 전 그리고 예수 믿은 후의 상태를 대조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은 1절부터 10절까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이렇게 제목을 붙여볼 수 있는데, 주로 하나님의 구분의 능력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 개인적 측면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1절부터 10절까지 내용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면 1절부터 3절까지가 회심 이전의 상태
그리고 4절 이하가 회심 이후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먼저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1절은 저희가 오늘 다룰 전체 단락의 주제입니다.
이 회심 이전의 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 1절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란 말을 사용합니다.
여기 죽었다라는 말을 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죽었단 말은 시제가 과거입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죠. 앞으로 벌어질 사건이 아니라 최후 심판대 앞에가서 이미 벌어진 사건을 설명하면서 이미 밖에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뭘로 죽었는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얘기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다 이걸 조금 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라고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허물이란 말은 발을 헛딛다. 뜻입니다. 발을 헛딛다 쭉 걸어가다가 다리가 미끄러지는 상태를 가리킨 겁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같은 데 보면은 범죄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같은 단어입니다. 그 다음에 죄들이란 단어는 죄라는 단어는 화살을 쐈을 때 그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상태를 말한 겁니다.
이 두 단어는 두 개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 이야기를 두 개로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말해서 죄와 허물이라는 것은 하나의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상태였다.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 2절부터 3절에 회심하기 이전에 이방 기독교인 상태를 설명합니다.
여기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환경 두 번째가 마음의 성향 세 번째가 배후 세력으로 설명을 하는데
첫 번째로 예수 믿기 전에 이방 기독교인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었는가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2절에
그다음에 두 번째로, 마음의 성향을
3절에서 설명합니다. 우리 육체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다 라고 얘기합니다.
마지막 이런 회심 이전의 상태의 배후 세력이 뭐였는가 그게 바로 2절에 나오죠.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따랐다 라고 얘기합니다.
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바로 뒤에 나오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는 영 다른 말로 에베소서 4장 27절에 나오는 마귀입니다.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아들이었더니,
이 3절은 죄된 행동의 원인이 다름 아닌 우리 마음의 성향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허망한 행동은 허망한 생각과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죄는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손발이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고 사실은 생각이 움직였고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는 거죠.
2절 3절 여기 보면 주목할 게 뭐냐하면 회심 이전의 삶의 삶은 우리가 세상의 운명과 죄된 문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라고 설명합니다.
대신에 우리가 죄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죄를 따라갔다라고 설명하죠.
2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2절 3절을 그때 너희는 그 가운데 행하여 너희는 행하여 그러죠 그 다음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3절에 전에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여기 보면 다 주어가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환경의 희생자가 아닙니다.
환경이 불우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죄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죄를 선택하고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우리들의 책임이었습니다.
여기 3절에 주목해 볼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도 다 그 가운데 행했단 말인데요.
그 가운데라는 말을 설명하겠습니다.
그 가운데란 말은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그 가운데라면 그들 가운데라고 번역하면 조금은 더 와닿겠죠.
더 중요한 것은 3절 앞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란 말을 합니다. 이 우리도란 말에는 바울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바울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울도 그 거룩했던 바울도 사실은 과거에 세상 풍조를 따라 사탄의 영향을 받아가며 살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3절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 이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이게 히브리식 표현인데요. 진노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진노로 특징 지어지는 사람이라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여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본질상이라는 말이 태어날 때부터라는 뜻입니다.
프롬 더 버스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었다라고 바울이 선언을 한 겁니다.
그리고 이 대상에 바울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얘기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 행했다 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방금 읽었던 2장 1절부터 3절에 있는 내용은 로마서에서도 똑같이 설명이 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이나 다 죄 아래 있다 라고 설명을 합니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상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가끔 치과에 가보면 이런 이야기를,합니다.
나는 멀쩡해 보이는데 그 치아를 보면서 충치가 생겼기 때문에 이 치아를 뽑아낸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눈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심각한 상태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진단하는 겁니다. 우리들은 멀쩡한 사람들이 아니라 심각할 정도로 죽음 가운데 있는 상태의 상황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이게 지금 바울이 1절부터 3절에서 말하는 내용이죠.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장례식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전에 제가 어떤 그 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노화는 세포가 노화돼서 온다라는 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는 사람들이 쓸 평생 쓸 에너지가 있는데, 그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죽는다라는 에너지 소모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성경은 사망은 죄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죽는다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이야기죠 또한 세상에 법이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그런 근거입니다.
만약에 세상에 사람이 선하다면 법이 필요 없죠
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런데 양육강식의 상태에 빠집니다. 따라서 법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악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자 4절부터 7절 이제 회심의 상태를 바울이 설명합니다. 3절까지는 그림으로 설명하면 굉장히 어두운 색깔로 바울이 인간의 상태를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4절부터 7절까지는 밝은 색으로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 세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첫 번째가 구원의 기초 혹은 구원의 근거
두 번째가 구원의 특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구원의 결과 이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구원의 근거 혹은 기초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게 4절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근거가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신 것이죠. 사절 주어가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3절과 4절을 보면은 굉장히 재미로 흥미로운 좋아했습니다. 3절은 하나님의 진노를 이야기하죠.
반면에 4절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진노의 하나님 그러나 또한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이유나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신에 1장 5절에 애베소설 1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서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미셨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하나님은 이 구원의 은혜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4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4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끝에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구원의 은혜성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사랑할 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에 합니다.
따라서 사랑할 만한 매력이 있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정상이죠.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매력이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귀여운 대상도 아니었죠. 도리어 하나님께 등을 돌리던 원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불상히 여김이라고 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집에 강도가 들어왔다고 한번 가정을 해 보십시오. 이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만 강도가 들어와서 여러분 집에 가족 한 사람을 살해했습니다.
신고를 받았던 경찰이 이 사람을 잡기 위해서 싸우다가 강도가 피를 엄청 흘렸습니다. 헌혈하지 않으면 죽는 상태인데 이 사람의 피가 아래치만성입니다.
여러분도 아르치만성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강도를 살리기 위해서 피를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내 가족을 죽인 원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였던 우리를 향하여서 그 큰 사랑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큰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구원의 특권을 5절부터 6절에서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함께라는 단어를 사용해가지고 구원의 특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해서 행하셨던 그 모든 일은 성도들에게도 일어났다고 말을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했던 것처럼 성도들도 죽음에서 부활했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성도들도 어떤 면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 위에 앉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입니다.
6절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으시니
이야기는 애베소서 1장 20절에 나온 이야기를 발전시킨 겁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우편에 앉히사
1장 20절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부활과 승천 혜택을 성도들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부활하고 승천하는 게 아니고 성도들도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의 앉힘을 받은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도는 분명히 다르죠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하늘에 앉았다고 이야기할 때 예수님께서 어떤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는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6절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았다라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과 우리가 하나님 하늘에 앉은 것들을 구별합니다.
성도들은 이미 예수님의 부활에만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시고 하늘 우편에 앉으셨던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던 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악한 영적 세력들을 패배시킨 사건이라고 아까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이제 성도들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1장 20절에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악한 영들에 대한 승리를 1장 20절에서 언급했습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과 이 모든 것들을 예수님 발 앞에 복종시켰다라고 말씀하는데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함께 하늘에 앉히시므로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성도에게 다시 한번 일으켜주신것이죠.
이 말은 성도들이 더 이상 악한 영적 세력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던 도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악한 영들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뭐라고 하냐면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을 패배시키셨고 성도들을 그 승리에 동참시키셨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 이상 사탄과 악한 영들에게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을 통치하고 다스신다 라고 말씀하는 거죠.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들은 과거에 2장 2절에 의하면 그때는 공중권세 잡은 자들을 따라갔었습니다. 다른 말로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통치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 밑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공급되고 있습니다.
1장 19절 보면요 그의 힘의 능력으로 역사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힘이 크시나 그 힘이 어떠한 것을 너희도 알게 하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기도인데 바로 뭐라고 이야기하냐하면 예수님을 일으켰던 그 힘이 성도의 삶 속에 역사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부활시켰던 그 힘이 성도들에게 공급되므로 악한 영적 세력들을 두려 할 필요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6장 10절도 끝으로 너희가 주안에서 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라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도가 강건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성도들의 삶에 공급되므로 악한 영적 세력들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내용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리에 참여하게 하신 그 목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7절
이는 그리스도 예선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또 승천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셨던 그 상태에 우리가 참여하게 하신 목적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근데 주목할 것은 단순히 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입니다.
이 은혜라는 표현은 당시 에베소 성도들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라는 이야기는 로마 황제들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들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하냐하면 로마 황제가 아니고 바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진정한 혜택을 영원한 혜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8절부터 10절에 바울복음의 핵심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명한 구절이죠.
너희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라고 시작해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한다 라고 하는 바울 복음의 심장이라고 표현되는 단락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을 구출됨 자유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장1절부터 3절이 그 내용인데요.
예를 들면 1절에서 구원은 뭐냐 영적 죽음으로부터 해방이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영적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 2절에 보면 영적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따랐다고 하면서 따랐다고 하면서 그가 후에 통치하였지만 이제 바뀌었다고 얘기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유롭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8절부터 10절에 보면 이 구원을 새 창조라는 개념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창조의 개념으로 우리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성도들의 구원을 설명하는 다양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새롭다는 단어를 사용하죠.
새언약 새성전 새 이스라엘 새 예루살렘 새 출애굽 또 새 장조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새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고린도 후서 5장 17절도 같은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아니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안에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자녀가 혈액암이 걸렸는데 이 혈액암을 고치는 방법이 골수 이식을 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골수를 이식하면 변하는 게 있습니다. 혈액형이 바뀝니다. 골수를 준 사람의 혈액형으로 바뀐다고 그러더라고요.
또 하나가 뭐냐하면 골수를 이식하면 사람이 갓난아이 상태가 된답니다. 그래서 처음 태어날 때 맞았던 예방접종을 다시 1차 때부터 맞아야 된다고 합니다. 골수 이식을 하면 사람이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골수이식 받은 사람 그 이상의 새로운 피조물이 됐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8절부터 9절에 보면 이제 구원을 얻기 위한 잘못된 수단과 또 올바른 수단을 이야기합니다.
9절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과 행위 혹은 선행과 공헌이 우리 구원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주목할 것은 우리가 율법 행위로 본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에베소서는 율법의 행위라고 부르지 않고 행위라고만 설명합니다.
왜 그러냐면 애베소서를 받는 수신자들이 이방인들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에 바로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차원에서 행위라고 설명을 한 겁니다.
8절에 보면 구원의 올바른 수단으로 설명합니다.
여기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고 소개합니다.
이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은혜를 주신 것이죠. 반면에 믿음이라는 이야기는 인간의 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 구원을 받아들인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선행이나 업적이 아니고 믿음이고 은혜입니다. 저에게 그 치매에 걸리신 큰 고모님이 계십니다. 제가 찾아갔더니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에 나오면서 기도해주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그분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으십니까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 듣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분이 치매는 걸리셨지만 본인이 예수 믿고 계시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자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예수 믿었던 분들이 치매에 걸려서 예수 믿는 것도 잊어버리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오늘 본문이 답을 줍니다. 우리의 구원은 기억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행위가 아니고 믿음입니다.
자 이제 세 번째로 구원의 결과 또는 목적을 설명하는 구절이 10절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니 새 창조로 우리의 구원을 설명 한 다음에 이 새 창조의 목적을 바울이 10절에 설명합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가 지음받았다고 얘기합니다.
이 선한 일은 우리가 구원받는 근거가 아니고 구원의 열매죠 바울은 자기의 서신 여러 군데에서 선한 일을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면 갈라디아서 5장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레나 무할레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는 믿음뿐입니다. 사랑으로서 역사는 믿음 다른 말로 하면 진짜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에베소서에서는 지금 선한 일이라고 그래 가지고 굉장히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합니다만 이 선한 일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 에베소서 4장 17절 이하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선한 일은 성도들이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보통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성화가 없으면 칭위도 없다.
다시 말하면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 거듭남도 일어나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태어났는데 자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은 반드시 성장과 변화를 그 열매로 맺는 것이죠. 감기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몸은 반응을 일으킵니다.
기침이 나오고 열이 나고 몸이 아픕니다.
심지어 무당들도 그러죠 무당들도 귀신 들리면 무당들은 작두 위에 선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감기 바이러스나 귀신보다 몇 배 강한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내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 바뀐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오늘 배웠던 말씀을 한번 적용을 해 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지금 내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를 알려면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랬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다. 우리는 매력이 있던 상태가 아니고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겁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들 진정한 신앙 고백인 사람들은 악한 영적 세력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악한 세력들을 발밑에 두셨던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연합한 사람들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악한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새롭게 지휘받은 사람은 거룩한 행실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구원은 반드시 선행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에베소서 2장 말씀을 통해서 죽음 가운데 있던 우리들에게 새 생명주였던 하나님의 능력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은 이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교회 공동체에 드러났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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