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도림동본당 신자가 아닌,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서원동본당 신자입니다. 전직 사목회 임원이었고, 서원동본당 견진이나 세례식, 대축일 예식 등 행사사진 촬영 봉사담당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가한 딸 요셉피나는 도림동본당 뒤 아트자이에 살면서 아파트 후문 건너 편에서 수수양과점을 운영하고 있고, 9살인 큰 손녀는 돈보스꼬 유치원을 거쳐 영원초등학교 2학년이며 도림동본당 유초등부에 출석하고 있는 이서현(비아)입니다. 6살인 작은 손녀는 돈보스꼬 유치원에 다니는 이다현(마리아)구요.
얼마 전 새로 부임하신 박정우(후고) 주임 신부님께서는 서원동(구.신림동) 본당 출신 신부님이시죠. 후고 신부님께서는 신학교 시절부터 학교 성적이 매우 뛰어나신 분이라 사제수품 후에는 로마와 미국 유학을 통해 학위도 받으시고 귀국 후 가톨릭신학대학 교수로 장기간 신학생 교육에 헌신하신 매우 서민적이시고 존경할만한 인격과 품격의 소유자이십니다.
이런 인재시라면 미래의 주교로 손색이 없으시겠다 싶었던 저는 후고 신부님께서 귀국하신 이후로는 그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눌 때마다 “주교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하고 말씀을 드리면 많이 멋쩍으신 표정으로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하고 반갑게 악수를 청하시곤 했습니다.
사람의 성격이 당사자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 후고 신부님은 성격이 강하고 권위적인 일부 신부님들과는 달리 매우 온순하시고 또 전형적인 학자 루틴을 지닌 분이시라, 도림동본당에 부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복된 성당에 좋은 분이 가시는구나.’ 하는 특별한 반가움이었습니다.
신림동에 사는 제 아내 (손녀들의 외할머니)는 그런 손녀들을 돌보며 큰 손녀 (이서현 비아)와 함께 도림동본당 주일학교 주일미사에도 자주 참여하는 등 2024년 첫 영성체가 예정되어 있는 손녀의 신앙 양육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늘 이야기 합니다. 도림동성당에 오시는 신부님들마다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좋은 분들만 오신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도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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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금요일은 영원초등학교와 돈보스꼬 유치원이 방학 중이라 큰 손녀를 피아노학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교습을 마치는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낼 겸 작은 손녀를 데리고 도림동성당 마당을 한가로운 마음으로 산책했습니다. 성당 마당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대 여섯 분의 기술자 분들이 계단이나 경사로에 미끄럼 방지를 위한 논슬립 공사를 하고 계시더군요.
자상하신 신부님께서는 신자들의 안전을 위해 세세하게 마음을 쓰신다는 사실이 제 눈에도 보였습니다. 그 시간이 오후 2시 45분쯤 되었을 겁니다.
사무실과 교실이 있는 건물 복도를 지나 평일이라 인적 없는 카페에 들어가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책꽂이에 있던 동화책도 읽어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마침 후문 코너에 자리한 커피 자판기가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라는 믹스커피 자판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지갑을 꺼내니 몇 장의 지폐 사이로 하필이면 천 원짜리 지폐가 한 장도 없는 겁니다.
앞주머니 뒷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난감해 하는 저를 보고 어린 손녀가 저를 올려보면서 “할아버지. 왜?”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손녀에게 대답했죠.
“으응. 할아버지가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동전도 없고 천 원짜리도 없어서 못 마시게 됐어요. 어떡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보니 제 옆으로 두 사람의 남녀 젊은이가 보였습니다. 한 분은 안경을 쓴 미남 청년이었고, 한 분은 곱고 어여쁜 모습의 아가씨였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자판기 커피를 뽑기 위해 기다리는 줄 알고 자리를 비켜 옆으로 이동했죠. 그런데 젊은 아가씨가 자판기에 천 원짜리 지폐를 집어넣더니 제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커피로 드시겠습니까?”
저는 무슨 뜻인지 몰라 물었습니다.
“네?”
그랬더니 친절한 표정으로
“선생님 좋아하시는 커피를 직접 눌러 주세요.”
저는 약간 당황해서 “무... 무슨 말씀이신지...” 그랬더니
“동전이 없어 커피를 못 드신다고 해서 저희가 뽑아 드리려고요.”
저는 초면인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양했죠.
“네? 아닙니다. 안 그러셔도 되세요.”
그랬더니 밝은 얼굴로 “괜찮습니다. 저희가 뽑아 드리는 거니까 편하게 드세요.”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라 얼떨결에 커피 버튼을 눌렀습니다.
커피가 나오고 바로 한 모금을 마시자 가슴으로 커피의 온도보다 더 따뜻한 젊은이들의 마음이 가득 밀려왔습니다. 그 분들은 커피가 필요해서 오신 게 아닌, 지나가다가 손녀에게 하는 제 말을 듣고 선의를 베풀기 위해 멈춰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이렇게 커피를 뽑아 주시니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맛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감사함을 기도로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감사인사를 건넸습니다.
제 말을 들은 두 젊은이는 감사하다며 환한 표정으로 돌아갔지만 저는 손녀와 함께 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혹시 주일학교 교사였을까. 아니면 청년 레지오 단원일까 궁금했지만 그런 걸 캐묻는 것도 실례일 수 있다는 생각과, 선의는 감출수록 빛난다는 성경말씀이 떠올라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손녀와 함께 다시 마당으로 나가 그 분들의 배려가 듬뿍 담긴 커피를 마시며 예수성심상 앞에 어제 아침 눈이 많이 내릴 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울어진 눈사람도 바로 세워 손을 보고, 그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도 바치며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당시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에는 이런 말이 나오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몇 배가 되는 거야.”
베푸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대단하지도 않은 겨우 커피 한 잔인데.”
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손녀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는 걸음을 멈춰 자판기에 돈을 넣어 필요한 커피를 선택하시라고 권하던 그 어여쁜 아가씨의 친절하고도 조용한 음성이 저는 지금도 잊어지지 않을뿐더러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천사의 모습을 닮은 그 분들이 있어 더욱 따뜻했던 어느 겨울날의 하루, 그 분들로 인해 더욱 아름다웠던 도림동성당의 정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용히 감사와 청원의 성모송을 바쳤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 오늘 저를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들어 준 아름다운 두 젊은이들에게 당신의 빛나는 미소를 가득 비추어 주시기를 겸손하게 청하옵니다...." 라고.
손녀의 손을 잡고 돈보스꼬 유치원을 지나 오는데 유치원 난간에 붙어있는 글귀가 그날따라 마음에 진하게 남았습니다.
매일 잠들기 전 감사한 일 세 가지만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의 인생이 바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첫댓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날 부터 훈훈한 미담과 좋은 글을 읽고
새해 첫날을 보네게 되어
감사합니다. ^^
3년 가뭄 중에 보는 콩보다 더 희귀하다는 댓글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합니다.ㅎㅎ
저는 좋지 않은 일에는 입술의 무게가 납덩이인데, 이런 일에는 입술이 새털보다 가벼워서
어디에 대고 나불거리지 않고는 도저히 편하게 잠을 못 자는 인간형입니다.ㅋㅋ
대부분의 본당 인터넷 게시판에는 댓글은 고사하고 방문이나 클릭 수도 몇 안 되는데
도림동본당 인터넷 카페는 활성도나 방문 빈도가 상당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 만큼 신자 분들의 본당에 대한 관심도나 애정 온도가 높다는 사실이겠지요.
이는 신자분들의 영적 수준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관심의 댓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성모송 10번으로 보답할게요.^^
도림동 본당에 좋은 기억을 갖고 계신 안드레아 형제님 감사 합니다
남겨 주신 글을 읽고 안드레아 형제님은 참 따뜻한 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세례 견진 첫 영성체 등 도림동 성당에 중요한 행사에 사진 촬영이 필요하면 기쁜 마음으로 봉사 하시겠다는
마음에 본당 신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형제님을 위하여 주모경 바치겠습니다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접속했다가 소피아 선생님의 따뜻한 글에 마음도 행복해지는군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 기운이 한창인 요즘은 돈보스꼬 유치원이 끝나는 오후 5시면
손녀를 데리고 널찍한 본당 마당으로 올라가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 놀도록 합니다.
사탕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엄마,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에 초컬릿을 쥐어주며
흐뭇해 하시는 할아버지도 계시니, 성당에서의 그 시간은 모두가 천사 마음인 분들이죠.
깔깔거리며 노는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주님의 축복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다음 주 정도 성당 지붕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으면
마당을 산책하며 아름다운 도림동성당의 정경을 찍어보려 합니다.
저도 소피아 선생님의 한겨울 장작난로 처럼 따뜻한 글에 주모경으로 부끄러운 보답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