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
오늘같이 진종일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흘러간 가수 ‘문주란’이 부른 [타인들]이다.
프로그램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오래전 TV를 시청한 적이 있다.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형식으로 제작이 된 프로그램이다.
젊은 시절에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서 고생고생하며 자식들을 키워오면서 살아온 인생역정을 다룬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에 진행자가
“생각나는 노래가 있으면 한 곡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마이크를 넘겨받은 할머니가 부른 노래가 문주란의 [타인들]이다.
당신과 나는 남남으로 만났다가
상처만 남겨 놓고 남남으로 돌아섰다
호수의 백조처럼 내가 가는데
사랑을 막아 놓고 발길을 묶어 놓고
진종일 진종일 비가 나린다
♩♪♬ ~ ♩♪♬ ~
당신과 나는 남남으로 만났다가
마음만 주고 받고 남남으로 돌아섰다
흐르는 구름처럼 내가 가는데
발길을 묶이고 사랑은 막혔어도
백조는 목이 메어 울지 못한다
젊은 시절에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과 회한을 담아 잔잔하게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이 노래가 내 인생을 말하는 것 같아요!”
하며 흐느끼면서도 끝까지 노래를 이어갔다.
나는 그 장면이 참으로 공감이 갔다.
노래의 가사와 할머니의 인생역정이 참으로 비슷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주란’이 부른 [타인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타인들』은 ‘신봉승’이 작사하고 ‘박춘석’이 작곡을 한 노래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문주란’이다.
이 노래는 1967년에 방영된 mbc연속극의 주제곡이었다.
라디오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되면서 당시 전례에 따라 라디오 드라마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 ‘신봉승’이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 하였다.
주제가는 ‘신봉승’이 작사하고 ‘박춘석’이 작곡하여 ‘문주란’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히트로 인해 작곡가 ‘박춘석’은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김기덕>감독은 당대의 유명한 배우 <신성일>과 <문희>를 주인공으로 발탁한다.
화려한 시절을 보내던 <김진규>와 <전양자>, <전계현>등의 배우들이 당시에 서서히 조연급으로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이 영화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였다.
이 작품은 “청춘남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통속적인 내용을 다루었지만, <김기덕> 감독은 그런 통속적인 내용 속에서도 당시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뇌”를 영상으로 잘 대변하여 비교적 잘 만든 멜로드라마로 평가 받았다.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였고, <문주란>이 불렀던 주제가도 크게 히트하여 60년대 그녀의 대표곡 중 한 곡이 되었다.
☞ 영화내용
의협심이 강한 운전수 ‘신성일’은 빠아-걸인 ‘문희’가 손님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과실 치상 혐의로 체포된다.
문희는 단골손님인 강 사장에게 거액을 빌려 그를 보석금으로 빼내고 택시까지 한대 사주며 보답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신성일에게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다.
결국 문희는 신성일을 약혼녀에게 돌려보내고 애틋한 눈물을 흘린다.
☞ 문주란은?
가수 문주란은 1949년 9월 30일생이며 고향은 부산 서면이다.
문주란의 본명은 ‘문필연’이다.
아버지는 운수업에 종사했으며 5녀 1남중에 다섯째 이다.
그녀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세 번 결혼해 계모의 손아래에서 자랐다고 한다.
문주란의 학력은 성지초등학교, 동래여자중학교, 성만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이다.
중학교 때는 장기자랑 할 때마다 진행을 맡았다고 한다.
13살에는 ‘부산 MBC 가요경연대회’에 친구들이 신청해서 '라노비아'를 불렀다.
1965년 중학교 3학년인 어린 나이로 ‘부산 MBC 방송 톱 싱어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였다.
그 후 작사가 ‘전우’가 문주란에게 찾아와 다짜고짜 무대에 올렸다.
문주란은 '보슬비 오는 거리'를 불렀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자 객석의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
작사가 ‘전우’는 ‘문필연’을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난의 일종인 천연기념물인 '문주란'에서 착안하여 그녀에게 예명을 지어주었다.
그 후 1966년 18살의 나이로 '보슬비 오는 거리', '동숙의 노래' 등이 수록된 음반을 내면서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데뷔와 동시에 '국내 최저음' 가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화제를 모았다.
이 음반으로 그녀는 그해 국제 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67년과 1968년에는 MBC에서 10대 가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동숙의 노래’를 시작으로 ‘돌지 않는 풍차’, ‘타인들’, ‘내 몫까지 살아 주’, ‘꽃피는 십리 포구(이상 1967)’, ‘낙조’, ‘구슬공주’, ‘파란 이별의 글씨(이상 1968)’ 등 영화주제가와 연속극 주제가 등으로 주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인기절정의 문주란은 1969년 세상을 떠나려고 했었다.
유부남과 스캔들이 났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녀는 가요계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이 후 1970년에 다시 컴백하여 《문주란 독집》을 취입 한 후 많은 음반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어서 ‘공항의 이별(1972)’을 비롯한 공항시리즈 곡으로 또다시 인기절정을 누린다.
1972년에는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세종 문화 회관] 공연 중 화재(火災)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이후 1973년에 10대 가수에 또다시 선정되었다.
1973년에는 스캔들이 났었던 유부남의 부인에 의해 문주란과 7살이었던 어린 조카가 납치를 당해서 수모를 겪기도 했다.
1974년에는 그녀의 대표적인 히트곡 '공항의 이별',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 대합실' 등 '공항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당시 군 입대를 목전에 두었던 나는 집 밖에만 나서면 라디오에서 수시로 들려오던 노래로 기억이 된다.
이 후 동명의 영화에도 출연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75년에도 같은 남성과 사생활 문제가 이어져서 방송 출연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연애에 실패한 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문주란의 목소리는 아주 낮은 저음으로 유명한데 국내 여자 가수 중에서 가장 많이 내려가고 0옥타브대의 저음을 소화한다고 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그녀는 1990년에는 다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가 각종차트에 오르면서 재기를 하게 된다.
문주란은 서초동 280평 주택에 살다가 경기도 청평에 430평 카페를 겸한 주택에서 전원생활을 한다고 한다.
☞ 비오는 날의 여담
한동안 ‘인생이야기’에 글을 올리는 것이 싫어졌다.
오늘은 진종일 비가 내리니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하여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동안 ‘하모애’를 홍보한답시고 초, 중, 고, 대학 동기들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카페 사이트를 퍼다 날랐다.
덕분에 조회 수는 많이 올라갔다.
그런데,
‘내 글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뜻인데 하모니카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홍보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괜히 바쁜 사람들에게 시간을 빼앗는 부질없는 짖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가 되고 나니 더 이상 귀찮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1)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글을 읽는 것은 자유지만 ‘홍보’를 핑계로 사이트 유도를 하지 않는다.
2) 눈이 아프도록 무리를 해서 글을 쓰지 않고 오늘같이 비가 와서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날 여유롭게 글을 쓴다.
3) 지인들은 내 글에 올라오는 ‘하모니카 연주’는 본인이 직접 연주한 것이냐고 궁금하게 생각한다.
일정부분 빌려온 연주도 있지만 90%이상 본인이 연주한 것이 맞다.
4) 방음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녹음실’이 없는 관계로 녹음 상태가 완벽하지 못하다.
관심이 있는 손님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할 뿐이다.
-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첫댓글 공부 잘 했습니다.
문주란이 아주 인간적인 사람임을 익히 알고 있었답니다.
유부남과의 첫사랑이 인생을 꼬이게한 안타까움을 떨칠수 없지요.
문주란의 노래가 익숙한 것은 아마도 청년시절에 많이 들어서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이골님 추억의 노래 잘들었어요? 오랫만에 카페에 들렸더니 재밋는 사연이 올라 왔네요? 학창시절 첫차를 타기위해 새벽5시에 일어나 머리가 쭈빗쭈빗서는 공동묘지를 지나 시냇물이 졸졸흐르는 캄캄한 논,밭둑길을 졸리는 눈으로 뛰면서 통학할때 시골버스에서 자주 듣고 흥얼거렸던 문주란의 공항시리즈가 이젠 아련한 흑백의 추억이 되었네요.오늘도 옛추억을 떠올리며 눈을 지긋이 감고 공항시리즈에 젖이 봅니다.송이골님 독자가 많고 적음을 떠나 바쁘거나 올린줄 몰라서 읽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늦게나마 재밋게 읽어주는 사람들도 있다는점을 기억해주시고 늘좋은글 올려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
문주란의 '공항시리즈' 는 그 시절 인기가 대단했지요!
오랫만에 방문해서 장문의 댓글로 격려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까페가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 ' 인생이야기'에 흔적을 남겨보지만 이젠 눈이 침침하여...
항상 건강하시고 바쁘시지만 가끔씩 놀러오세요^^^
오랜만에 들어왔네요
좋은글 올려주심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눈팅만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물망초님!
항상 바쁘게 사시는 모습이 에너지가 넘쳐보여서 보기에 좋습니다!
그 와중에 이렇게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댓글 덕분에 '물망초'님의 방문 사실을 알았답니다.
이전에는 '까페 홍보'차원에서 사이트 안내를 했지만 이제는 안내를 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발적인
방문손님만 '인생이야기'를 볼 수 있으므로 댓글이 없으면 저도 누가 방문을 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