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出産 順産 誕生 誕辰 축 순산 * 祝 順産 축 탄생 * 祝 誕生 축 공주탄생 * 祝 公主誕生 축 왕자탄생 * 祝 王子誕生 축 탄신 * 祝誕辰 ********************************* 약혼. 혼인기념일 婚姻記念日 축 약혼 * 祝 約婚 축 혼인 * 祝 婚姻(男女共通 o) 축 화혼 * 祝 華婚(男子.女子×) 경하혼인(慶賀婚姻)(男女共通 o) 1주년 - 지혼식(祗婚式) 2주년 - 고혼식(藁婚式) 3주년 - 과혼식(菓婚式) 4주년 - 혁혼식(革婚式) 5주년 - 목혼식(木婚式) 7주년 - 화혼식(花婚式) 10주년- 석혼식(錫婚式) 12주년- 마혼식(麻婚式) 15주년- 동혼식(銅婚式, 또는 水晶婚式) 20주년- 도혼식(陶婚式, 陶磁器婚式) 25주년- 은혼식(銀婚式) 30주년- 진주혼식(眞珠婚式) 35주년- 산호혼식(珊湖婚式) 40주년- (綠玉婚式, 에머랄드혼식) 결혼 60주기를 맞은 ***************** 경조문.. 수례서식혼인 * 婚姻 * 賀賀儀 * 祝聖婚 * 祝華婚 * 祝盛典* 祝婚姻 * 慶賀婚姻 *賀儀 *********** 회갑 * 回甲 * 祝回甲* 祝環甲 * 祝周甲 * 祝華甲 * 祝花甲 ************나이 칭호 70세→ * 祝古稀 77세→ * 祝稀壽 77세→ * 祝喜壽 ************년령 * 칭호 15세→ 志學, 成童 20세→ 弱冠.30세→ 立年 32세→ 二毛年.40세→ 不惑 50세→ 知天命 50세 이상 60세 이하→ 望六 61세→ 華甲, 回甲, 週甲, 周甲,甲年 70세→ 古稀, 稀壽, 七秩, 77세→ 喜壽 80세→ 八秩 88세→ 米壽 *********************
|
喪家, 追悼日, 忌祭祀, 慰靈祭 謹盡頌. 慰忠 *********** 군인 * 軍人 |
入住 入宅, 開業, 建物 工場 竣工 祝 起工 / 祝 上樑 祝 完工 / 祝 竣工 祝 開通 / 祝 入宅 祝 入住 / 慶賀轉移 家和萬事成 福流成海 **************** 개업 등 ******************* 종교.교회.宗敎 敎會
祝 長老將立 * 祝 獻堂 祝 勸士就任 *祝 牧師按手 祝 靈名祝日
|
出産 順産 誕生 誕辰 축 순산 * 祝 順産 축 탄생 * 祝 誕生 축공주탄생 祝公主誕生 축 왕자탄생 祝王子誕生축 탄신 * 祝誕辰
약혼.혼인기념일 婚姻記念日 축 약혼 * 祝 約婚 축 혼인 祝 婚姻(男女共通 o) 축 화혼* 祝 華婚(男子.女子×) 경하혼인 慶賀婚姻 (男女共通 o) *婚姻*賀賀儀*祝聖婚*祝華婚 *祝盛典*祝婚姻 *慶賀婚姻*賀儀 축 회혼례(祝回婚禮)
회갑 * 回甲 * 壽賀儀* 祝壽宴 * 祝禧筵 * 祝回甲 * 祝環甲 *祝周甲 * 祝華甲* 祝花甲
* 년령 * 칭호 7세→ 悼 10세→ 幼學 15세→ 志學, 成童 20세→ 弱冠. 30세→ 立年.壯有室 32세→ 二毛年. 40세→ 不惑.强而仕 48세→ 桑壽 50세→ 知天命.艾服官政 50세 이상 60세 이하→ 望六 60세→ 六旬.耆指使 61세→華甲,回甲,週甲, 周甲,甲年 66세→ 美壽, 70세→祝古稀.稀壽, 老移傳.七秩, 77세→ * 祝 稀壽 80세→ * 祝 傘壽. 八秩 88세→ * 祝 米壽 90세→ * 卒壽 99세→ * 祝 白壽 100세→ 百壽, 期年.?이 108세→ 茶壽 125세→ 天壽 八十.九十曰? 悼與? 雖有罪 不加刑焉 |
환자 병 문안기축쾌유 祈祝快癒기완쾌 * 祈完快快癒를 * 祈願합니다빠른*快癒*祈祝回春
喪家, 追悼日,忌祭祀,慰靈祭
조의弔儀/조의弔意 부의 賻儀/근조 謹弔 전의 奠儀/애도 哀悼 추모 追慕/추도 追悼 근도 謹悼/명복 冥福 향촉대 香燭代
초상표시 初喪表示
기중 忌中/상중 喪中 죽은 사람 亡人 죽은 사람 亡者 죽은 사람 故人 죽은 아들 亡子
대소상 大小喪
향전 香奠/전의 奠儀 비의 菲儀/비품 菲品
追悼日,忌祭祀,慰靈祭 추도 追悼/賻儀 追慕 경모 敬慕/奠儀 哀慕 香燭代/謹悼/謹弔 弔儀
昇進 就任 榮轉 祝賀
축 승진 * 祝 昇進 축 영전 * 祝 榮轉 축 영진 * 祝 榮進 축 선임 * 祝 選任 축 중임 * 祝 重任 축 취임 * 祝 就任 축 연임 * 祝 連任
開業 移轉 創立紀念
축 발전 * 祝 發展 축 개업 * 祝 開業 축 번영 * 祝 繁榮 축 성업 * 祝 盛業 축 개장 * 祝 開場 축 개점 * 祝 開店 축 이전 * 祝 移轉 祝 創立○○周年
|
개업 등
祝 開院 / 祝 開園 祝 開館 / 祝 除幕式 祝 萬事亨通
競選 當選 競演 競技
축 필승 祝 必勝 축 건승 祝 健勝 축 당선 祝 當選 축 입선 祝 入選 축 합격 祝 合格 축 피선 祝 被選 축 우승 祝 優勝 축 완승 祝 完勝 축 개선 祝 凱旋
入學 卒業 合格 學位取得 退任
축 입학 * 祝 入學 축 졸업 * 祝 卒業 축 합격 * 祝 合格 축 개교 * 祝 開校 祝○○學位取得
祝 停年退任 頌功. 勞還. 功鄕功. 謹盡頌. 慰忠
군인*軍人 祝 進級 / 祝 健勝 祝 當選 / 祝 被選 武運長久/ 祝 凱旋 軍入隊 / 盡忠報國
展示會, 演奏會, 發表會, 演劇 祝 展示會/祝 展覽會 祝 博覽會/祝 個人展 祝 演奏會/祝 獨奏會 祝 獨唱會/祝 合唱會 祝 發表會/祝 公演
入住.入宅,開業,建物 工場 竣工
祝 起工 / 祝 上樑 祝 完工 / 祝 竣工 祝 開通 / 祝 入宅 祝 入住 / 慶賀轉移 家和萬事成 福流成海 |
사례 謝禮 박사 * 薄謝 약례 * 略禮 박례 * 薄禮
송별 送別 전 별 餞 別 전별금 餞別金 송 별 送 別 장도 長途→ 오랜 여로, 먼길 장도 壯途→중요한 사명을 띠고, 씩씩하게 떠나는 길 윗분에게 圖書冊선물할 때 도서기증圖書畵寄贈 혜존惠存/소람笑覽 청람淸覽 / 윗분에게 書畵선물할 때 배증拜贈/봉헌奉獻 배정拜呈/근정謹呈 새해신년(新年)인사 신희 新禧 근하신년謹賀新年 공하신년恭賀新年
추석 秋夕 仲秋節. 仲秋佳節
종교.교회.宗敎敎會 祝長老將立 祝獻堂 祝 勸士就任 祝 牧師按手 祝 靈名祝日
出版 出刊 出刊紀念
祝 創刊 /祝 出刊 祝 出版 /祝 出版紀念 祝 創刊 00周年 |
경조 단자 및 봉투쓰기
1) 단자(單子)
혼인(婚姻)잔치에 갈 때는 축의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 때 봉투에 돈만 넣고 단자를 쓰지 않는 예가 많다.
그러나 단자에 축하의 말과 물목(物目)이나 금액·날짜·이름을 정성스럽게 쓰고
축의금을 싸서 넣는 것이 예의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축의금을 받는 쪽에서
누가 얼마를 보낸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축의금 외 부조를 표기할 때에
물품이면 물품명을 쓰고
수량과 관계되는 물품이면 수량도 쓴다.
돈으로 부조할 경우는 ‘일금 삼만원 정(一金 三萬원 整)’이라고 쓰면 안 된다.
이것은 영수증 등에서 쓰는 문자이고
부조나 축의금에서는 ‘일금’ 대신 ‘금’ 또는 ‘돈’이라 쓰고
금액 뒤에 ‘정’하는 말은 쓰지 않고
‘금 삼만원’, ‘文 삼만원’ 등으로 쓴다.
(2) 수례(修禮) 서식
‘결혼(結婚)’은 일본 용어이고,
우리의 법률용어는 ‘혼인(婚姻)’이므로 ‘혼인(婚姻)’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
‘혼(婚)’은 ‘장가들다’, ‘인(姻)’은 ‘시집간다’는 뜻이므로
‘혼인(婚姻)’이라고 써야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뜻이 된다.
특히 시집가는 여자측에 주는 부조 봉투에
‘화혼(華婚)’이나 ‘결혼(結婚)’이라고 쓰면
시집가는 사람에게 ‘장가드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 되어 망발이다.
그리고 ‘축(祝)’은 빈다는 뜻이므로
‘경축(慶祝)’이나 ‘경하(慶賀)’로 쓰면 ‘경하하고 빈다’는 뜻이라 좋지만
그냥 ‘축혼인(祝婚姻)’이라 쓰면 ‘혼인을 빈다’는 뜻이 되니,
이보다는 ‘혼인을 경하한다’는 뜻인
‘경하혼인(慶賀婚姻)’이 신랑·신부 모두에게 더욱 좋은 표현이다.
신랑쪽 부조나 신부쪽 부조를 가리지 말고
공통으로 쓸 수 있는 혼례의 수례 용어는
경하혼인(慶賀婚姻)·축혼인(祝婚姻)·
축의(祝儀)·하의(賀儀)·축성전(祝盛典)·축화촉지전(祝華燭之典) 등의 용어가 좋다.
그러나
부조하는 대다수가 신랑측에 내는 부조 봉투는 축결혼(祝結婚)이라 쓰고,
신부측에 내는 부조는 축화혼(祝華婚)이라 써야 한다고 잘못 알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잘못된 일이니
신랑·신부측을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수례 용어를 써야 한다.
학회 연구실에 문의해 오는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부조금 봉투 적기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여러 분야의 생활 방식이 서양화 함에 따라
우리의 전통적인 인사말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음에도,
이 부조금 봉투 적기만은 아직까지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적은 액수의 돈일지언정 부조를 하는 이의 정성을
상대방에게 간곡하게 전하려는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부조금 봉투에 적는 인사말 하나에도
대단히 조심을 하게 되는데,
특히 팔순이나 구순을 축하하는 잔치 모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손위 어른의 생일을 높여 부르는 말이 생신입니다.
생신이 곧 `태어난 날`의 뜻이므로 "생신일"은 잘못된 말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육순이 지난 뒤에는
특별히 의미 있는 때를 정하여 주변 사람들을 초청, 성대한 생신 잔치를 열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환갑(또는 회갑, 화갑) 잔치와 칠순 잔치입니다.
칠순을 달리 "고희(古稀)"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이름난 문장가였던 두보의 시 가운데
"人生七十 古來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한학이 융성했던 시기에
글줄이나 배운 이들이 칠순을 좀더 문학적으로 표현하느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팔순이나 구순 따위에도
이 같은 별칭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팔구십 살까지 사는 일이 흔치 않았으므로
굳이 별칭까지 만들어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말을 막연히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니,
정작 우리말인 "팔순, 구순"은 한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80살은 그대로 팔순(八旬)이며 90살은 구순(九旬)입니다.
일부에서는 팔순을 "산수(傘壽)", 구순을 "졸수(卒壽)"라고도 하는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억지로 별칭을 만들어 쓰려는 심리에서 나온 말이니 권장할 것은 못 됩니다.
(칠순이나 팔순, 구순 잔치는 모두 우리의 세는 나이로 각각 70, 80, 90살에 치릅니다.)
또한,
66살을 "미수(美壽)",
77살을 "희수(喜壽)",
88살을 "미수(米壽)",
99살을 "백수(白壽)"라고 하여 성대한 생신 잔치를 치릅니다.
이들 말은 모두 일본말에서 들여 온 것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본디 66살이나 77살, 88살 등을 기리는 전통이 없었습니다.
유별나게 장수에 관심이 많은 일본 사람들의 풍속을 우리가 배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따른 용어도 일본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환갑(회갑, 화갑)을 앞뒤로 하여 크게 생신 잔치를 치르었습니다.
환갑 잔치는 우리 나이(세는 나이)로 61살(만 나이로 60살)에 열었고,
60살에는 육순(六旬) 잔치를, 62살에는 진갑(進甲) 잔치를 열었습니다.
70살까지 사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71살만 되어도 "망팔(望八)"이라 하여
장수를 축하하는 큰 잔치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잔치에 참석하고자 할 때 마련하는 부조금 봉투에는 무엇이라고 써야 할까요?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세는 나이) (봉투에 적는 인사말)
60살 ……… 축 육순연(祝六旬宴)
61살 ……… 축 수연(祝壽宴), 축 환갑(祝還甲), 축 회갑(祝回甲), 축 화갑(祝華甲)
62살 ……… 축 수연(祝壽宴), 축 진갑(祝進甲)
70살 ……… 축 수연(祝壽宴), 축 고희연(祝古稀宴), 축 희연(祝稀宴)
77살 ……… 축 수연(祝壽宴), 축 희수연(祝喜壽宴)
80살 ……… 축 수연(祝壽宴), 축 팔순연(祝八旬宴)
88살의 생신 잔치에는 "축 미수연(祝米壽宴)",
99살의 생신에는 "축 백수연(祝白壽宴)" 따위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한편,
환갑 이상의 생신 잔치에는
장수를 축하하는 뜻으로 보통 "축 수연(祝壽宴)"을 널리 씁니다.
그러나
이 "축(祝)"을 `축하`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본디의 낱말이 가진 뜻과 어긋납니다.
"祝"은 `빌다`는 뜻의 동사로서,
예부터 제사를 지낼 때에나 써 오던 말입니다.
"축문(祝文)"은 `제사 때 읽어 신명에게 고하는 글`이고,
"축가(祝歌)" 역시 본디는 노래의 형식을 빌어 신에게 비는 제례의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모두 제사와는 관계없이 `축하하다`는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더라도 "祝"이라고만 할 때에는 `빌다`의 뜻이지
`축하`의 뜻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축 환갑"이라고 하면
`환갑을 (맞이하기를) 빌다`는 뜻이 되니,
이미 환갑을 맞은 사람에게는 커다란 실언입니다.
같은 경우로, "축 결혼"이라고 하면 `결혼을 (하기를) 빌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당사자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OO를 축하하다`라고 말하지,
`축하하다 OO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어나 중국어의 어법(말법)입니다.
"나는 학교에 간다."를 영어권 나라에서는 "I(나는) go(간다) to school(학교에)."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我(나는)去(간다)學校(학교에)."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 한아비(선조)들이 오랫동안 한자로 글자살이를 해 온 까닭에
많은 부분에 이러한 중국식 표현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서 "차 한 잔을 마시며"를 "한 잔의 차를 마시며"로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는 영어의 영향을 받은 미국말입니다.
지난날에는 중국 문화를 신봉하여 우리것이 많이 손상되었다면,
오늘날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잃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말투를 바로잡는 것은
곧
우리의 겨레얼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생신 잔치에 내는 부조금 봉투 쓰기에 대하여,
글쓴이는 종래의 틀에 박힌 `축 OO` 대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합니다.
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의 깊이를 담아야 하는 부조금 봉투에는
꼭 제한된 글자 수를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한글만 쓰기가 보편화 된 요즘 같은 시대에
어려운 한자말을 적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생신 잔치 자체를 축하하는 것보다는
장수를 빌어 드리는 뜻으로 "만수무강하소서"가 어떨까요?
하얀 봉투에 큼직한 한글로 "만수무강하소서"라고 적어 전해 드린다면,
모든 허식을 떠나 마치 부모의 강녕을 비는 자식의 정성을 대한 듯
받는 이의 마음도 한결 따뜻해 질 것이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 편지를 시작하고 끝낼 때
‘To 영이’니 ‘From 철수’ 따위와 같이 쓴다면 편지글의 참맛이 나겠는가?
‘철수로부터’와 같은 from의 번역투 표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이지만 편지글은 그 형식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본래의 뜻과는 달리 상대방의 기분만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편지를 시작할 때는 위에서처럼 영어식 표현을 삼가고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써야 한다.
웃어른께는 ‘아버님 보시옵소서’라거나 ‘선생님께 올립니다’와 같이 쓰면 무난하며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자녀에게라면 좀더 정겨운 표현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운 벗에게 보낸다’나 ‘사랑하는 딸에게’ 등도 좋은 표현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흔히 틀리는 것이 편지를 다 쓴 다음 서명할 때이다.
일반적으로 ‘홍길동 씀’이나 ‘홍길동 드림’처럼 자신의 이름만 쓸 경우야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공적인 편지에서는 직함을 쓰는 일이 잦은데 이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사장이라면
‘홍길동 사장 올림’이라고 해야 하는지 ‘사장 홍길동 올림’이라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이름 뒤에 직함을 쓰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 다음에 직함을 쓸 수는 없다.
‘사장 홍길동 올림’이라고 해야 예의바른 것이다.
방송이나 강연회 등에서 ‘홍길동 교수입니다’니 ‘홍길동 의원입니다’ 따위와 같이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듣는 사람에게 대단한 실례인 셈이다.
* ‘○○○ 선생님 귀하’는 지나친 표현
대체로 편지 쓰기에서 저지르는 이러한 잘못은 무례해서가 아니라
그 형식을 제대로 모르는 데 기인한다.
형식에 맞추어 예의바르게 쓰려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간혹 예의가 지나쳐서 저지르는 잘못도 있다.
편지 봉투를 쓸 때
받을 사람의 직함 뒤에 다시 ‘귀하(貴下)’나 ‘좌하(座下)’ 등을 쓰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홍길동 선생님 귀하’나 ‘홍길동 사장님 좌하’ 따위와 같은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편지 봉투를 쓸 때는
‘홍길동 선생님(께)’처럼 받을 사람의 이름과 직함을 쓰면 그것으로 충분히 높인 것이다.
직함이 없으면 ‘홍길동 귀하’와 같이 쓰면 된다.
‘귀하’라는 말로써 상대방을 충분히 높였기 때문에
이름만 쓴다고 해서 예의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즉
직함이든 ‘귀하(좌하)’이든 어느 하나만 쓰는 것이 예의에 맞으며
둘 다 쓰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 환갑 이상의 생일이면 ‘축 수연’ 쓸 수 있어
문안 편지 못지 않게 격식이 중요한 것이 축하나 위로할 자리에 부조를 할 경우이다.
이 때 봉투에 인사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요즘에
아예 인사말이 인쇄된 봉투가 쓰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보내는 이의 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환갑 생일 축하 자리라면 보통 봉투 앞면에 ‘祝 壽宴’이라고 쓴다.
‘壽宴’은 ‘壽筵’이라고 써도 마찬가지이며 ‘축 수연’과 같이 한글로 써도 된다.
물론 ‘수연’이라는 말 대신 생일 이름을 넣어
‘축 환갑(祝 還甲)’, ‘축 회갑(祝 回甲)’, ‘축 화갑(祝 華甲)’과 같이 써도 좋다.
보내는 이의 이름은 봉투 뒷면에 쓴다.
그리고 부조하는 물목(物目)을 적은 단자(單子)를 반드시 넣도록 해야 한다.
단자에는 ‘축 수연’ 또는 ‘수연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와 같이 인사말을 적고
‘금 몇 원’과 같이 보내는 물목을 적는 것이 예의바르다.
봉투나 단자는 흔히 세로로 쓰는 것이 보통이나 가로로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환갑 이상의 잔치에는 봉투나 단자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다.
특별한 나이라면 따로 마련된 인사말이 있다.
70세 생일에는 ‘축 고희연(祝 古稀宴)’이나 ‘축 희연(祝 稀宴)’,
77세이면 ‘축 희수연(祝 喜壽宴)’,
88세이면 ‘축 미수연(祝 米壽宴)’,
99세이면 ‘축 백수연(祝 白壽宴)’과 같이 쓸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생일 명칭이 없는 나이가 더 많다.
이 경우에는 회갑연에 쓰는 인사말인 ‘수연’을 그대로 쓸 수 있다.
‘수연’은 환갑 이상의 생일 자리이면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말이다.
* 편지는 보내는 이의 마음을 담아야
결혼식도 봉투나 단자를 쓰는 예절은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축 화혼(祝 華婚)’, ‘축 결혼(祝 結婚)’이 많이 쓰이며
‘축 혼인(祝 婚姻)’, ‘축의(祝儀)’, ‘하의(賀儀)’, ‘경축(慶祝)’도 쓸 수 있다.
간혹 ‘婚’은 장가든다는 의미로서
‘축 결혼’이니 ‘축 화혼’ 등을 신랑측에만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크게 귀기울일 만하지는 않다.
오랜 기간 열심히 일하고 정년 퇴임하는 분의 모습은 아름답다.
퇴임 자리에서는 ‘근축(謹祝)’, ‘송공(頌功)’이 좋은 인사말이다.
‘송공’은 그동안의 공적을 기린다는 뜻이니 더이상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고 하겠다.
이 말에 익숙지 않으면
아예 ‘(그동안의) 공적을 기립니다’와 같이 문장투로 봉투 인사말을 쓸 수도 있다.
문상의 경우
조위금 봉투와 단자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부의(賻儀)’이며 ‘근조(謹弔)’라고 써도 좋다.
봉투 뒷면에는 부조하는 사람의 이름을 쓴다.
역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와 같은 인사말과 함께 물목을 적은 단자를 넣는 것이 격식에 맞다.
그런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문상을 갈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때는 다른 이를 통해 부조만 할 것이 아니라
조장(弔狀)을 보내는 것이 좋다.
조장을 보낸다면 ‘부친께서 별세하셨다니 얼마나 슬프십니까?
부득이한 사정으로 곧 가서 조문치 못하고
서면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와 같이 쓰고
날짜와 ‘홍길동 재배(再拜)’와 같이 보내는 이의 이름을 쓴다.
이러한 정성어린 편지글은 받는 이의 슬픔을 한결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전자우편이 발달한 시대라서 편지 쓰는 일이 더 잦아졌는지 모른다.
단지 정보만 주고받는 편지가 아니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는 편지가 좋다.
그리고
형식을 잘 알고 따르는 것은 그 편지에 담긴 마음을 한결 아름답게 만들지 않을까?
경조사 봉투 쓰는 법
1) 결혼 축의금 봉투
※ 일반적인 예/ 화혼을 혼인이라 쓰야한다(잘못된사례)
※ 권장 예/ 화혼을 혼인이라 쓰야한다(잘못된사례)
* 점선은 접히는 선을 나타냅니다.
* 금액숫자의 한자 표기 :
일(壹), 이(貳), 삼(參), 사(捨), 오(五), 육(六), 칠(七), 팔(八), 구(九), 십(什),천(千), 만(萬), 억(億)
현대에는 아라비아 숫자 0, 1, 2, 3, 4, 5, 6, 7, 8, 9, 10. 을 사용한다.
옛날에는 한문의 숫자 零,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 十을 배웠다.
古代(조선초기 1700년대)는 壹, 貳, 參, 肆, 伍, 陸, 七, 捌, 玖, 拾을 사용 하였다.
왜 이런 복잡한자를 썻을까 ?
고치지 못하도록 중요 문서에는 쓴것으로 생각된다.
※ 다음과 같이 한글로 표기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겨혼을 혼이라 고처 쓰야합다 (아래 표기 잘못된 사례 입니다)
* 문안은 본인의 성심을 담아 얼마든지 바꿔쓸 수 있습니다.
* 봉투 만을 사용하고, 단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결혼(結婚)’은 일본 용어이고,
우리의 법률용어는 ‘혼인(婚姻)’이므로 ‘혼인(婚姻)’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
‘혼(婚)’은 ‘장가들다’, ‘인(姻)’은 ‘시집간다’는 뜻이므로
‘혼인(婚姻)’이라고 써야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뜻이 된다.
특히 시집가는 여자측에 주는 부조 봉투에
‘화혼(華婚)’이나 ‘결혼(結婚)’이라고 쓰면
시집가는 사람에게 ‘장가드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 되어 망발이다.
그리고 ‘축(祝)’은 빈다는 뜻이므로
‘경축(慶祝)’이나 ‘경하(慶賀)’로 쓰면 ‘경하하고 빈다’는 뜻이라 좋지만
그냥 ‘축혼인(祝婚姻)’이라 쓰면 ‘혼인을 빈다’는 뜻이 되니,
이보다는 ‘혼인을 경하한다’는 뜻인
‘경하혼인(慶賀婚姻)’이 신랑·신부 모두에게 더욱 좋은 표현이다.
신랑쪽 부조나 신부쪽 부조를 가리지 말고
공통으로 쓸 수 있는 혼례의 수례 용어는
경하혼인(慶賀婚姻)·축혼인(祝婚姻)·
축의(祝儀)·하의(賀儀)·축성전(祝盛典)·축화촉지전(祝華燭之典) 등의 용어가 좋다.
그러나
부조하는 대다수가 신랑측에 내는 부조 봉투는 축결혼(祝結婚)이라 쓰고,
신부측에 내는 부조는 축화혼(祝華婚)이라 써야 한다고 잘못 알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잘못된 일이니
신랑·신부측을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수례 용어를 써야 한다.
학회 연구실에 문의해 오는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부조금 봉투 적기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여러 분야의 생활 방식이 서양화 함에 따라
우리의 전통적인 인사말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음에도,
이 부조금 봉투 적기만은 아직까지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적은 액수의 돈일지언정 부조를 하는 이의 정성을
상대방에게 간곡하게 전하려는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단자(單子)
단자는 봉투 속에 넣는 내지(內紙)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결혼축의를 대개 물건으로 대신했고,
이러한 물건의 내역을 적은 물목단자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지는 별도로 넣지 않고 지폐를 감싼 후 함께 봉투에 넣습니다.
근래에는 내지를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격식을 차려야할 경우에는 반드시 넣는 것이 좋습니다.
※ 봉투
봉투는 원래 한지로 만든 봉투를 쓰게 됩니다만,
근래에는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편지봉투를 사용하게 됩니다.
다만,
편지봉투는 우편번호 쓰는 란이나,
회사의 명칭이 찍혀져 있는 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결례입니다.
아무런 인쇄도 되어있지 않은 깨끗한 순백색 봉투를 사용합니다.
문안은 붓이나 붓펜으로 쓰는 것이 좋지만, 싸인펜으로 써도 결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볼펜 등으로 쓰는 것은 과히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또한
격식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붓이나 붓펜을 사용하실 것을 권장드립니다.
근래에는 문구점에서 상업용으로 인쇄된 경조금 봉투을 사서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간편하고 실용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也 나타내는 어조사[한문구의 토씨]에 해당하는 글자입니다. 약소하지만 <단지 ~이것뿐>이라는 뜻으로 관용하여 왔습니다. 혼례 문화에 담긴 오해와 진실
혼인의 상징인 기러기와 부조 문화에 대하여 알아보자.
‘한 쌍의 원앙처럼 살아라’ ‘축 결혼’이란 말은 일자무식한 표현이며, 부조금으로 과한 돈을 주고받는 것도 우리 전통에 반하는 일이라는 것. 이 글을 읽는 이라면 확실히 알 것이다
친구들에게 나무로 깎은 기러기 한 쌍을 선물 은. 기러기처럼 금실 좋고 다정하게 백년해로하라는 뜻이다. 이 기러기는 안방 문갑 위에 사이좋게 놓는다.
예전에 남자는 열 살만 되어도 사랑방에서 자고 생활했다. 혼인을 해도 남자는 사랑방에서 기거하는 것이 관습처럼 여겨져 여자는 안방, 남자는 사랑방이라는 등식이 매겨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가들어 신부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도 어른들 눈치가 보여 부부간에 운우의 정을 나누기가 요즘처럼 쉽지 않았다.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합방을 하려면 길일을 보아 잠자리를 하게 했으니 더 말할 나위 없다. 남녀의 육체적 사랑만큼 은밀한 것도 없다. 설사 잠자리를 하고 싶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남녀가 사랑방과 안방에서 따로 기거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만일 부인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면 십중팔구 정숙지 못한 여자라고 핀잔 들을 것이 뻔하다. 남자라고 다를 바가 없다. 이때 은근하게 매개 역할을 한 것이 혼인 때 받은 기러기다. 부인과 잠자리를 하고 싶으면 수컷 머리를 암컷 쪽으로 살짝 돌려놓는다. 부인도 암컷 머리를 수컷 쪽으로 돌려놓으면 만사 오케이다.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 얼마나 은근하고 멋진 표현인가. 부부 금술의 증표, 기러기 옛날에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기를 다짐하는 혼례에서 기러기를 으뜸으로 삼았다. 중국에서도 혼례 때엔 존비(신분의 존귀함과 비천함)를 막론하고 모두 기러기를 예물로 썼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처음 행하는 의식이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 奠雁禮였다. 말 탄 신랑 앞에 기럭아비(雁夫)가 색실로 머리를 감은 나무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간다. 신부 집에 도착한 신랑은 차려진 전안상에 기러기를 놓고 큰절을 한다. 이어 장모가 기러기를 치마에 싸서 새색시가 있는 방에 밀어 넣는다. 이때 기러기가 서면 아들을 낳고 넘어지면 딸을 낳는다고 했다. 기러기가 때에 맞춰 남북으로 절기를 놓치지 않고 다니는 면을 취해, 여자도 혼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을 명백히 한 것이다. 또 기러기는 날 때나 멈출 때나 행렬을 이루는 면을 취해, 시집 장가가는 것에도 장유유서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동생이 형이나 언니를 추월해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질서 같은 속성을 중히 여긴 까닭이다. 기러기는 믿음을 지켜 제 짝을 저버리는 일이 없고, 암수가 한번 교접하면 평생 동안 다른 놈하고 교접하지 않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도 따라 죽는다. 또 날아다닐 때도 항상 선두를 중심으로 가지런히 질서를 지키고, 앉아 있을 때도 손위의 뜻을 어기는 법이 없다. 이처럼 기러기는 부부간의 신의를 지키는 덕목을 갖추었기 때문에 혼례의 으뜸 예물로 사용해 생활의 본보기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혼례에 쓴 나무 기러기는 골동 가게에서도 비싸게 거래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혼례 때 한 쌍의 원앙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것은 원앙이 기러기의 성정과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람의 처지를 흔히 짝 잃은 원앙이라 말한다. 원앙은 예부터 부부 금실의 표본이요, 상징이었다. 그래서 부부의 이부자리도 원앙금침이라 한다. 물 위를 사이좋게 떠다니는 원앙의 모습을 보면 싸운다거나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쌍의 원앙 가운데 한 마리가 죽으면 나머지도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원앙 고기를 먹으면 애정이 싹튼다는 속설까지 전한다. 원앙의 산란기는 4월 하순부터 7월까지다. 이를 앞둔 월동기부터 산란기까지 원앙들은 짝짓기에 열을 올린다. 보통 한 마리의 암컷에 열 마리 안팎의 수컷이 몰려와 구애 작업을 벌인다. 암컷은 이 중 수컷 한 놈을 점찍는다. 문제는 이런 짝짓기를 매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이좋아 보이는 원앙이 수시로 파트너를 바꾸는 것이다. 암컷이 알을 낳고 나면 수컷은 미련 없이 암컷을 떠난다. 기러기는 이와는 정반대다. 한번 짝을 잃으면 평생 죽을 때까지 다른 짝을 구하지 않는다. 한번 교접하면 평생 동안 다른 놈하고 교접도 하지 않는다. 원앙이란 놈은 매년 파트너를 바꾸니 천하의 바람둥이다.
결코 우리가 아는 금실의 상징이 아니다. 그러니 예식장에서 ‘한 쌍의 원앙처럼 살라’는 말도 살펴서 해야겠다. 오늘날에는 혼인이란 말보다 결혼 (結婚)이란 말을 많이 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혼은 잘못된 표현이다. 혼인(婚姻)이라 해야지 결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혼(婚)이란 여자의 집이란 뜻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든다는 말이다. 인(姻)은 여자가 의지하는 곳으로 남자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고로 혼인은 장가들고(婚), 시집간다(姻)는 말이 된다. ‘장가 丈家든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살러 들어감을 뜻하기 때문에 여자의 부모를 장인 丈人, 장모 丈母라 한 것이다.
여자는 단지 곁붙어서 따라가는 꼴이다. ‘혼인’이라고 해야만 남자는 여자에게 장가들고, 여자는 남자 집으로 시집가는 것이 되어 말뜻에도, 남녀의 공평함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이나 민법 등 모든 법률에서도 결혼이란 말 대신 ‘혼인’이라 쓴다. 흔히 ‘축 결혼 (祝 結婚’ )혹은 ‘축 화혼 (祝 華婚)’이라고 쓰는 경우다. 이것은 시집가는 신부에게 장가드는 것을 축하한다는 꼴이 된다. 망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이는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간다는 것을 축하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신부 측 축의금 봉투에 써서는 더더욱 안 된다.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뜻이 담긴 ‘혼인(婚姻’)이나 혼인을 밝게 비추어 축하한다는 뜻이 담긴 ‘화촉 (華燭’)이란 어휘를 쓰는 것이 예의에 맞는다고 하겠다. 과거에는 혼인이건 상사건 큰일을 치르면 기둥뿌리가 뽑히다 못해 빚을 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큰일을 치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부조는 일종의 품앗이로 이루어졌다. 요즈음은 장례식이건 결혼식이건 부조는 으레 현금으로 한다. 심지어는 전화 송금도 한다.
평소 별로 친분이 없는 사람까지 연판장 돌리듯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보내는 일은 그리 특이할 것도 없다. 더욱이 인터넷의 발달로 클릭 한 번만 하면 동시다발로 다중한테 연락이 가니 부조금 문화는 더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권력이 있거나 힘깨나 쓰는 사람에겐 부조금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온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당초 집안 경조사 같은 큰일이 닥쳤을 때 십시일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부조의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요즈음은 치부장에 적고 돈 세어보기가 민망해서인지 부처님 모시는 대웅전에나 놓는 시주함 같은 것을 버젓이 갖다 놓고 거기에 봉투를 넣으란다. 부조금을 받는 데는 체면도 인정도 없는 것이 요즘 세태다. 더 가관인 것은 부조금을 받고 아예 입을 싹 씻고 마는 것이다. 원래 우리 풍속은 부조를 하면 반드시 노잣돈을 하라며 그중 일부를 떼어 도로 내주었다. 요즈음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부조를 하면 반드시 여비 조로 일부를 돌려준다.
마음에서 하는 수 없이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조금은 타먹지 못하는 보험금을 내는 것과 같다. 우리의 아름다운 품앗이 전통의 부조 문화는 어느새 무서운 준準세금이 됐다.
가까운 친지와 지인만이 참석해 신사에서 전통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피로연을 따로 열어 신랑 신부를 축하해준다. 우리처럼 눈도장만 찍거나 밥만 먹고 가는 도떼기시장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초청할 때 반드시 참석 여부를 묻고 모든 것을 그에 맞춰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이 남아도는 일도 없다. 당시 나에겐 큰돈이었다. 한데 식장의 1인당 식대가 5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집사람과 함께 갔더라면 큰 실례를 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가까운 친척이 아니면 축의금만 보내고, 상가에는 불원천리 찾아간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게 됐다. 부조금도 친분 정도에 따라 적게는 3만 원, 많게는 10만 원 정도 한다. 요즘 세태가 이만큼도 안 하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니, 부조할 때마다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품앗이라는 좋은 의미까지 살리는 부조 문화는 없단 말인가. 지나가는 말로 나는 집사람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한다. “내가 죽으면 지금 소장한 수천 권의 책은 모교 대학에 줘 학생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하고, 부의금은 절대로 받지 마라” 하니, 집사람이 “그동안 갖다 준 부조금이 얼마인데 어떻게 그것을 안 받느냐”고 한다. 그러면 난 “내가 죽으면 많아야 200명도 오지 않을 거야. 그럼 한 사람당 3만 원씩 부의금을 낸다 해도 6백만 원 남짓이지. 내가 그 정도 돈은 마련해놓고 죽을 테니 부의금은 받지 마라”고 당부한다. 이런 생각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한세상 견딘 사람이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이 글을 읽는 <행복> 독자들도 이 기회에 축의금과 부의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심이 어떨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