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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19.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20. 그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21.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마가복음10:17-22)
17. As Jesus was starting on his way again, a man ran up, knelt before him, and asked him,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receive eternal life?”
18. “Why do you call me good?” Jesus asked him. “No one is good except God alone. 19. You know the commandments: ‘Do not commit murder; do not commit adultery; do not steal; do not accuse anyone falsely; do not cheat; respec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20. “Teacher,” the man said, “ever since I was young, I have obeyed all these commandments.”
21. Jesus looked straight at him with love and said, “You need only one thing. Go and sell all you have and give the money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riches in heaven; then come and follow me.” 22. When the man heard this, gloom spread over his face, and he went away sad, because he was very rich.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7. As Jesus was starting on his way again, a man ran up, knelt before him, and asked him,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receive eternal life?”
예수님은 사람들의 많은 반대를 받으셨습니다.
적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조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3. 간곡히 청하였다. "저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막5:23)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는데 그 자리에 급한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녀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혈루증 환자가 무리와 뒤섞여서는 안 됩니다.
모세의 법을 따르면 불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녀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군중에 들어갔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이것은 정말 모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법을 어겨야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이 일을 두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장 현실 문제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눈먼 사람......
하지만 이 부자는 특수했습니다.
그는 당장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 달려가서 무릎을 꿇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묻고 싶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도 나병환자 혈루증 환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한 십 년 더 사는 것이 다를 뿐.......
그도 죽음으로 절대 평등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두고 고민했고 이제 영생을 소망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는 일로 바쁜데 현실에 여유가 있으니 그런 고민을 하나보다 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풍족한 사람을 보시면 알 것입니다.
그들은 그 풍요 덕으로 여행하고 골프 치고.......
예를 들자면 성경에 다른 부자가 있지 않습니까?
이 부자집 앞에는 날마다 거지가 앉아있었습니다.
그가 나사로에게 못되게 군 적은 없습니다.
나 같으면 냄새난다고 옆집으로도 좀 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의 대문을 나사로에게 허락했던 것입니다.
이 부자가 고민했던 것은 날마다 베풀 잔치자리였습니다.
우리는 본래 애급에서 종살이했습니다.
바로는 사람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하나님께 하소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셨고 우리는 지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해 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사막길은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의 지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관광하듯이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가올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17.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눅3:17)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두고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로 세상 기준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그 잣대로 우리를 재실 것입니다.
둘째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인들에게는 현재의 가난과 굶주림이 복이 됩니다.
고통스러운 가난의 현실이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제자들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누명을 씌울 때에 너희는 복이 있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눅6:20-23)
현재의 부요와 배부름이 오히려 화가 됩니다.
그들은 이미 현재 위안을 받았기 때문에 미래 하나님 나라의 보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4.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25.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눅6:24-25)
이 부자 청년은 여행가고 골프 치고 잔치하고 그럴 여유가 있었지만 그것에 정신 팔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치명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이루는 주체의 문제입니다.
이 청년은 그 소망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체적인 행동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17.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7. what must I do to receive eternal life?”
주님은 이 청년에게 바로 이 말씀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려 할 때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네가 해야 할 것이 없구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가던 40년 사막의 길에서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에게 제 갈 길의 인도를 맡겼습니다.
제 갈 길을 제가 스스로 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명을 보장하는 일도 그랬습니다.
내일 양식을 자신의 손으로 챙기는 일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현명하고 부지런한 행위는 오히려 죄악시되어 있었습니다.
식량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잠들어야 했습니다.
그 일이 40년 동안 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1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18. “Why do you call me good?” Jesus asked him. “No one is good except God alone.
청문회인지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장관들이 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일본놈들이 핵 폐기수를 바다에 내다 버려도 우리나라 장관들이 일본 편을 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문제 제기하면 역정을 내면서 일본을 옹호했습니다.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수증 제출하라고 하니 잉크가 금세 바래서 다 버렸다나?
한 사람의 식사비가 노상 499,999원이고.......
사진 한 장이 영수증을 대신하고.......
제가 보기에는 저것들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저것들이 귀신 들렸나?
내 귀로는 아무리 들어도 바이든인데 자신들의 귀에는 분명히 날리면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저것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히 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사회만 그런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놈들 덕 봤다는 뉴라이트인가 *진홍 이 사람도
하나님 까불지 말라는 빤쓰도.......
이런 사람을 목사에서 제명하지 않는 교단도.......
귀신에 잡힌 것들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단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들리는 존재와 아무리 들어도 바이든이 바이든으로 들리는 존재 사이의 단절입니다.
빤쓰하고 외치면 할렐루야 아멘 하고!
그 단절입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을 통해 이런 단절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세상과 전혀 다른 존재 근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요8:23)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할 일이 무엇이냐고 땅바닥에서 죄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예수님께서는 하늘 위에서 들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혀 다른 차원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가는 일을 서울에 사는 삼촌 집에 차 타고 가는 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버스 타고 가요?
거창 터미널에서 타면 되요?
버스비가 얼마예요?
기차 타고 가요?
청년의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 답하신 것입니다.
18.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18. “Why do you call me good?”
청년은 왜 예수님을 선하다고 했을까요?
공정이란 얼마나 좋은 단어입니까?
그런데 이 사회에서 그 말을 하면 역겹습니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불법에 대해서는 다 눈감아주면서 남에게는 마구잡이로 그 칼을 휘둘러대기 때문입니다.
공정이 불공정의 수단입니다.
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법으로 보복하면서 공정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골목길에서 강도의 손에 왜 식칼이 들려있는가?
그 칼은 오직 부엌에서 어머니의 손에 들려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선하다고 부른 것입니다.
옳은 말이지만 옳지 않은 말입니다.
식칼을 들고 음침한 골목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이르는 길은 전혀 다른 통로로써 가능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르는 길에 사람의 역할이란 없습니다.
18.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18. No one is good except God alone.
성경에는 이 청년과 같은 착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의회원이었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1-3)
우리 주변에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간증을 듣고 은혜받았다며 눈물 흘립니다.
우리 교회도 태반이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지적은 그 방식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자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한 봉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헛것을 본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표적이라는 헛것!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다른 존재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렇게 제 존재가 바뀌어야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 성령이여 우리 찬송부를 때 진심으로 찬양하게 하소서
2. 성령이여 우리 기도드릴 때 우리 곁에 계셔 일러주소서
3. 성령이여 우리 성경 읽을 때 그 속에서 빛을 보게 하소서
4. 성령이여 우리 전도 할 때에 지혜로운 말씀 주시옵소서
5. 성령이여 우리 겸손해져서 우리 주와 같이 되게 하소서 아멘
성령님 귀 열어주세요.
성령님 눈을 열어주세요.
성령님 입을 열어주세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봉사며 벙어리 귀머거리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나는 봉사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내 눈앞에 두고도 못 본다는 고백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하나님의 나라 가는 일에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은 내 안에는 그 나라에 가는 길이 없습니다.
내 안에 길이 없었고 내 길이 타자이신 예수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14:6)
예수께서 길이시라는 사실은 내 발로 영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가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 청년은 제 발로 영생을 향해 걸어가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등에 엎혀 있기만 하고 예수님이 그 발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51.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요6:51)
그 영생은 예수님의 희생 위에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히 우리의 빵이 되지 않으시면 우리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19.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19. You know the commandments: ‘Do not commit murder; do not commit adultery; do not steal; do not accuse anyone falsely; do not cheat; respec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청년은 예수님께 해야 할 일을 물었는데 주님은 청년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살인도 말고
간음도 말고
도둑질도 말고.......
사람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나라 가는데 대부분 방해 요소임에 분명합니다.
주님은 십계명 중에 뒷부분의 계명을 이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대한 앞 계명을 빼셨습니다.
부자들의 행태를 고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는 죽어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부자가 그런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25.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 보아라. 살아 있을 때에 너는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불행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눅16:25)
이 부자도 이 청년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대해 했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교회에서는 지적할 것이 없이 훌륭했던 모양입니다.
대표 기도도 잘 하고 헌금도 잘 하고.......
혹은 최고급 그랜드 피아노도 헌물하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필 십계명의 뒷부분만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어떻게 하고 있나?
주님은 나사로가 날마다 누워있던 그 대문 앞을 유심히 살피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회 안은 안 보시고.......
갖은 자들은 잘 모릅니다.
그들은 주로 1-4 계명만 잘 외웁니다.
형제에 대한 의무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막7:10,11)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내세우며 눈에 보이는 부모 형제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남의 쓸 물건들까지 모조리 제 창고에 챙기고는 흡족해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부족해서 창고를 짓으면서.......
더 나아가서는 이런 일을 위해서 신앙을 모조리 영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성구는 이것입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3)
남이 쓸 것도 남이 살 집도 모조리 챙겨 놓고는 마음만 가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질에 상관없이 마음이 가난하면 된다고 영해를 하고는 막상 장로님이 반값에 땅을 챙겼다고 그 물질 소유에 대해 축복이라고 일관성 없는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소유를 싹쓸이한 것이 겸연쩍어서 마음을 기준으로 복을 판단하고 막상 실속을 챙길 때는 장로님의 소유를 두고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눈감고 아웅하고 있습니다.
언제는 물질 자체가 축복이고 언제는 마음만이 축복이고.......
마태복음은 그 다음 장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재물의 현실은 분리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6:21)
재물을 제 집에 쌓아놓고 마음이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상투적 태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자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십계명 중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쏵 빼 버리신 것입니다.
20.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4:20)
보이는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오직 사람에 대한 계명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에 대한 혹은 사람에 대한 계명이 서로 대립될 수 없음을 보이실 것입니다.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실은 하나님도 그런 식으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곧 울상이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 그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20. “Teacher,” the man said, “ever since I was young, I have obeyed all these commandments.”
그는 자신 있었습니다.
자신은 그 계명을 잘 지켰음을 주님께 밝혔습니다.
실은 이 부자는 예수님과 일종의 영적인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실천을 두고 서로 동문서답을 하게 된 것은 계명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청년과는 반대되는 입장에서 모세 율법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3:20)
청년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율법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1, 12번째 계명을 예수님께 더 받고 싶었습니니다.
하지만 바울에 의하면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1:20)
모세의 율법은 그것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뜻은 제 죄를 깨달으라는 데에 있습니다.
21.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1. Jesus looked straight at him with love and said, “You need only one thing. Go and sell all you have and give the money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riches in heaven; then come and follow me.”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잘 지켰다는 청년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또 사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쉽게 바리새인들을 비난합니다.
이것은 주제 파악을 못 한 일입니다.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은 징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식민지 백성에 대한 상상할 수 없는 특혜입니다.
무슨 뒷거래를 하였길래!
그것이 전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적군이 쳐들어와서 칼을 목에 들이대도 그 날이 안식일이면 저항하지 않고 죽음을 택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범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시늉도 못 낼 일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600만 명을 죽인 아우쉬비치의 죽음의 벽면에 그들은 이 찬양시를 쓴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 하네.......”
주님도 그들의 의를 인정하셨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5:20)
다만 그 유대인의 의를 능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켰으니 청년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모세의 법을 지켰으니 됐다.” 하실 줄 알았습니다.
청년은 제 11계명으로 10 계명에 하나를 덧붙이더라도 그것을 잘 지킬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살인 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말라, 말라....... 거기에 또 하나의 법을 추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여섯 개의 법을 하나로 뭉뚱그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딱 한가지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 한 가지!
21.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1. “You need only one thing. Go and sell all you have and give the money to the poor----then come and follow me.”
이 청년은 예수님을 통해 엄청난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모세의 법은 완전한 법이 아니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모세의 법에 한 가지를 더해서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는 그 소리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완전하신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소리였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를 가르는 차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느냐는 여부에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기독인들에게 모세의 계명은 예수님께 비교하자면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1.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 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히10:1)
모세는 온전하지 못한 법입니다.
모세의 법은 이것 하지 말아라 저것 하지말라 하지만 다른 것은 해도 된다는 소극적인 법들입니다.
예수님의 법은 이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법은 최소한 1/5는 구제하고 나머지 4/5는 네가 써도 된다는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법은 다 팔아서 다 줘라는 법입니다.
주님의 요구는 네가 구제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네 신분을 거지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설교자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것입니다.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을 교인에게 전해야 할 경우입니다.
21.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다'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마5:21,22)
유대인들에게 바보란 욕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새 계명은 바보라는 소리가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27. "'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5:27,28)
간음이 간음이 아닙니다.
TV 켜 두고 광고를 보는 것도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수없이 살인하고 수없이 간음하고.......
29. 네 오른 눈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마5:29)
설교자에게 가장 황당한 경우들입니다.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 것인가!
나도 노상 TV를 늘어놓고 사는데.......
주님은 그 다음에 주님께 오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가서 내 소유를 다 팔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웃에게 남김없이 내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웃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청년이 그렇게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에 자신의 소유를 저금하는 일입니다.
그 일이 끝나거든 예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두고 한 가지 결정적으로 부족하다고 하셨을 때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폐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5:17)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로 한 가지 부족한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22. When the man heard this, gloom spread over his face, and he went away sad, because he was very rich.
첫째로 예수님 때문에 자신에게도 감추어진 자신을 본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달려가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 말씀을 순종하여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실 그 11번째 계명도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울상을 지으며 근심하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만 언급하신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자신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이 서로 상치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의 사람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잘 믿고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과의 대화 중에 자신을 지배하는 또 다른 신을 만난 것입니다.
그것은 맘몬이었습니다.
그의 많은 재산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6:24)
그는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한 것입니다.
선택이란 최종의 주인은 정하는 일입니다.
부자는 스스로 제 주인을 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등지기로 정한 것입니다.
그 결정을 내리고 그는 침울해졌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는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옳은 소리를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씀이 그가 그렇게 찾던 영생의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기쁨이 넘치게 할 선택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영생을 부인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을 등진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에게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부자 자신이 자신의 주인인 줄로 알았는데 부자의 주인은 재물이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왜 어려운가?
부의 환경이 그 사람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5.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하시니,(막10:25)
공생애의 전 사탄이 주님께 나타났을 때 그가 한 일입니다.
8. 또다시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마4:8,9)
예수님을 유혹하기 위해 마귀한 한 일도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끌어온 것입니다.
일시에 그 환경을 보인 것입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 하였다."(마4:10)
환경의 영향력을 부인하는 사람은 노름판에 자신을 앉혀두고 노름하지 않겠다는 사람입니다.
술판에 자신을 앉혀두고 술 안 먹겠다는 사람입니다.
이브가 뱀과의 환경이 없었다면 그는 금단의 열매를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동산을 홀로 걷다가 뱀과 대화를 했던 이야기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할 때 가장 먼저 부인할 것은 자신의 환경입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도 그의 환경을 부인할 것을 가장 먼저 요구하신 것입니다.
1.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창12:1)
성경은 그때 살았던 부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사는 부자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듣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악한 환경을 부인하며 말씀의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시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