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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15권
●고율시(古律詩) 계양(桂陽)에서 지은 것이다.
목차
退公無一事
示通判鄭君
太守示父老
父老答太守
籠中鳥詞。望江南令。
無酒
玄上人饋桃。以詩謝之。
與玄上人遊萬日寺。次壁上韻。
玄上人見和復用前韻
贈書記。兼簡貳車。
謝衿州退老姜大丈惠酒
次韻金承宣良鏡和陳按廉湜
與玄上人遊壽量寺。記所見。
管記李君以公事免官將歸。予不能無悲。以詩送之。
次韻廉按使金郞中。戱贈文學。
次韻皇甫書記雨中獨詠
次韻謝皇甫管記贈扇墨
復和
皇甫書記見和。壽量寺留題。復用前韻。
題南山茅亭
上崔相國
童城客舍。次壁上諸賢韻。
書衿州倉壁上
雨中觀耕者。贈書記。
衿州客舍。次孫舍人留題詞韻。
孔巖江上吟
病中。示文學宋君。
偶吟示官寮
予以事到守安縣西華寺。小酌上方南榮。江山遠眺。莫有過兹者。然以境幽路僻。來遊者盖寡。
故無有留題。 住老請詩。爲留一篇。
與忠原崔書記仁恭。遊紫鷰島濟物院亭。用板上諸公韻賦之。
崔書記見和。復題。
與寮友諸君。遊明月寺。
次韻宋文學
祖江別
萬日寺。謝寮友諸君爲老夫展齋聖殿。仍置酒見慰。
分行驛。次板上韻。憶舊。
楊梓驛。次板上韻。
復遊茅亭。次韻皇甫書記。
次韻皇甫書記用東坡哭任遵聖詩韻。哭李大諫眉叟。
臨上闕。復與寮友遊茅亭走筆。
七月二十五日。善法寺堂頭設餞見邀。乞詩。
發州有作。示餞客。
入京有作
○ 공청(公廳)에서 퇴근하여 아무 일도 없다. 7수 (退公無一事 七首 )
퇴근하여 아무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적막하기 고촌 같구나 / 寂寞似孤村
머리엔 녹태책을 비스듬히 쓰고 / 頭岸鹿貽幘
몸에는 독비곤을 입었네 / 身遮犢鼻褌
호랑이는 오히려 대낮에 나타나고 / 虎來猶白日
모기는 해 지기 전에 무누나 / 蚊噆未黃昏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부질없이 궁궐만 꿈꾸네 / 徒勞夢掖垣
퇴근하여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북헌에 높이 누워 바람 쐬네 / 高臥北軒風
무너진 벽엔 뱀 껍질 남아 있고 / 壞壁蛇遺蛻
거친 섬돌엔 벌레 끄는 개미라 / 荒階蟻曳蟲
졸고 나도 힘없는 눈만 감기고 / 睡餘浮眼纈
병환 뒤에 흩어진 머리털만 떨어지네 / 病後落頭蓬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얼굴이 틀림없는 야옹일세 / 形容劇野翁
퇴근하여 아무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더운 기운 부질없이 사람을 찌네 / 暑氣謾蒸人
오래 읊조리니 건이 비스듬하고 / 吟久巾欹領
잠이 많으니 몸에 대자리 못 박히네 / 眠多簟印身
바둑판이 한가로우니 독수가 놀고 / 棋閑遊毒手
술이 다 되니 입도 다물었네 / 酒盡錮饞脣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생애에 늙은 몸 다시 가난일세 / 生涯老更貧
퇴근하여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묵묵히 앉아 공왕만 생각하네 / 黙坐念空王
주린 쥐는 서가에 오르고 / 飢鼠登書架
산골의 새는 인상에 드누나 / 幽禽入印床
긴 해를 보내기 무료하여 / 不堪消永日
사양을 바라보며 기뻐하노라 / 聊喜向斜陽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옛날의 광기도 부릴 수 없네 / 無由放舊狂
퇴근하여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백수로 외로이 갇힘과 같네 / 白首若孤囚
벼슬의 즐거움 알지 못하고 / 未識邦侯樂
부질없이 임금 뒤따른 것만 생각하네 / 空思法從遊
조정은 하늘과 함께 먼데 / 朝廷天共遠
일월은 물따라 흐르네 / 日月水同流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벼슬을 탐내어 물러갈 줄 모르네 / 貪官莫退休
퇴근하여 아무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문밖에 아전(衙前)들도 드물구나 / 門外吏人稀
듣는 귀 고요하니 매미소리 시끄럽고 / 耳靜嫌蟬噪
몸을 구속 받으니 나는 새가 부럽다 / 身拘羨鳥飛
집이 낮으니 머리 부딪치고 / 屋矮頭可觸
땅이 좁으니 손 휘두르기 어렵네 / 地窄手難揮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어느 때 만기 되어 집으로 돌아갈까 / 何時告滿歸
퇴근하여 아무 일 없으니 / 退公無一事
산발하고 자유로이 산책하도다 / 散髮自逍遙
손에겐 나물 삶아 드리고 / 對客蒸蔬菜
아이 불러 약묘에 물 주라 하네 / 呼兒灌藥苗
얼굴엔 세상 변한 것 싫어하는 빛이고 / 顔因猒世燮
머리 돌려 서울을 바라보네 / 首爲望京翹
우스워라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笑矣殘城守
늙으니 강한 마음도 약해지네 / 剛腸老亦銷
[주D-001]녹태책(鹿胎幘) : 은자(隱者)가 쓰는 녹비(鹿皮)로 만든 건(巾). 양 무제(梁武帝)가
즉위하여 옛친구인 하점(何點)에게 녹비건을 하사하며 불렀다 한다. 《梁書 何點傳》
[주D-002]독비곤(犢鼻褌) : 쇠코잠방이. 베로 허리 전면을 덮고 뒤로 돌려 매었다.
《漢書 司馬相如傳 犢鼻褌注》
[주D-003]공왕(空王) : 부처의 이칭이다.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통판(通判) 정군(鄭君)에게 보이다. 2수
강남 벽지에 외로운 죄인 되어 / 江南地僻作孤囚
갇힌 새 자유롭지 못함과 같네 / 猶似籠禽不自由
남장이 훈증(熏蒸)하여 얼굴 점점 검어지니 / 嵐瘴熏人顔漸黑
옛 친구 만나면 부끄러워지리 / 相逢應愧舊交遊
사람 순박하고 일 적어 기쁘기는 하나 / 人淳事簡雖堪喜
땅 박하고 백성 쇠잔하여 차마 볼 수 없네 / 地瘠民殘不忍看
공무를 마치고 관아에 앉아 아무 일 없으니 / 公退坐衙無一事
관인은 무사하나 더욱 편안하기 어렵네 / 官人無事益難安
[주D-001]남장(嵐瘴) : 열병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산천에서 생기는 나쁜 기운.
○태수(太守)가 부로(父老)에게 보이다
내 이 늙은 서생으로 / 我是本書生
스스로 태수라 일컫지 않네 / 不自稱太守
이 말 고을 사람에게 부치노니 / 寄語州中人
나를 늙은 농부로 여기고 / 視我如野耈
억울하면 곧 와서 호소하여 / 有蘊卽來訴
어린아이 어미 젖 찾듯이 하라 / 如兒索母乳
비 내리지 않고 오래 가무는 것 / 久早天不雨
이 또한 나의 죄로다 / 是亦予之咎
은근히 부로에게 사과하노니 / 慇懃謝父老
속히 사직함만 같지 못하리로다 / 不如速解綬
내가 떠나면 너희들 편하리니 / 我去爾卽安
어찌하여 이 늙은이를 기대하는가 / 何須此老醜
○부로가 태수에게 답하다
태수는 우리를 싫어하여 / 太守厭吾儕
마음속으로 사직하고자 하네 / 意欲解腰章
우리 고을 비록 땅은 박하나 / 吾州雖瘠薄
지세는 용같이 힘차다오 / 地勢龍軒昻
이 고을에 부임해온 사람은 / 於玆剖符者
얼마 안 되어 황지(黃紙)의 부름을 받으리 / 不月被徵黃
원컨대 공은 잠깐만 참아서 / 願公忍須臾
감당에 조금 쉬소서 / 乍復舍甘棠
마땅히 구천의 사신이 있어 / 當有九天使
궁궐 안으로 맞아들이리다 / 邀入紫微堂
[주D-001]황지(黃紙) : 임금의 조서(詔書)를 뜻함. 옛날 임금의 조서에는 황지를 사용하였다.
[주D-002]감당(甘棠)에……쉬소서 : 백성이 시정자(施政者)의 덕을 앙모(仰慕)하는 것을 말한다.
주(周) 나라 소공(召公)의 선정에 감격한 백성들이, 소공이 일찍이 쉬어 갔던 감당]
(甘棠 팥배나무)을 소중히 여긴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소남(召南) 감당(甘棠)
에 “저 팥배나무를 베지 말라. 소백(召伯)이 쉬어간 곳이다.” 하였다.
○농중조(籠中鳥)의 노래로 강남령(江南令)에게 기대하다
새장 안의 새 몇천 번이나 돌았나 / 籠中鳥竟日幾千廻
비록 울 수 있는 부리는 있으나 / 縱有一鳴脣舌在
사방에 충돌하여 깃 꺾이니 어찌하랴 / 那堪四觸羽毛摧
굶주려 더욱 슬픈데 / 餒食益哀哀
하늘을 돌아보니 꿈같이 아득한데 / 天上路回首夢悠哉
다시 봉지에 들고자 하네 / 再浴鳳池猶有意
새 어사 어찌 준마(駿馬)가 없을까 / 新栖烏府豈無媒
다시 때가 되어 오길 기다리네 / 且復待時來
[주D-001]봉지(鳳池) : 당(唐) 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에 있던 못 이름. 전하여 후세에 중서성의
별칭으로 쓰인다.
○무주(無酒)
내 본래 술 즐기는 사람이라 / 我本嗜酒人
입에 잔 뗀 적 없었네 / 口不離杯卮
비록 함께 마실 손 없으나 / 雖無與飮客
독작도 사양치 않는다오 / 獨酌亦不辭
항아리에 익은 술 없으니 / 顧無樽中綠
마른 입을 무엇으로 적시리 / 燥吻何由滋
지난 서울 시절 생각하니 / 憶昨在京輦
월급은 쓰고도 남았네 / 月俸有餘貲
이만한 독에 술 빚어 놓고 / 釀得如許甕
잔 들기 그칠 때 없었지 / 挹酌無停時
집 술이 더러 이어대지 못하면 / 家醞或未繼
사온 술로 기쁨을 만족시켰네 / 沽飮良足怡
슬프다 계양을 지키는 사람 / 嗟嗟桂陽守
월급이 적어 술 빚기 어렵네 / 祿薄釀難支
몇 집 안 되는 쓸쓸한 시골에 / 蕭條數家村
어느 곳에 청기가 있을는지 / 何處有靑旗
또한 일 좋아하는 사람 없어 / 亦無好事者
술 싣고 좇아오지 않네 / 載酒相追隨
단정히 당 위에 앉아 / 端坐一堂上
온종일 홀로 턱만 괴고 있네 / 竟日獨支頤
이미 쫓겨난 신하 되었으니 / 業已爲逐臣
기갈됨이 진실로 마땅하구나 / 飢渴固其宜
어찌하여 부질없이 한하면서 / 胡爲浪自恨
이 짧은 눈썹을 찡그리는가 / 攢我數寸眉
입 벌려 억지로 큰 웃음치니 / 開口强大笑
웃음이 식어서 도리어 슬프네 / 笑冷反噢咿
이 말을 경솔히 누설치 말라 / 此語勿輕洩
들은 사람 마땅히 비웃으리라 / 聞者當哂之
[주D-001]청기(靑旗) : 술 파는 집. 술을 파는 집에 푸른 기를 달기 때문이다. 청패(靑旆) 또는
청렴(靑帘)이라고도 한다.
○현 상인(玄上人)이 복숭아를 보내왔으므로 시(詩)로 사례하다
그대는 못 보았나 복숭아 훔쳐 먹은 동방삭의 야비한 짓을 / 君不見方朔食桃何太卑
공연히 서왕모에게 도둑놈이 되었네 / 空被西母稱偸兒
내 이제 훔치지도 않고 빌지 않았는데 / 我今不偸亦不乞
쟁반 위에 쌓아 놓으니 빛이 아름다워 / 坐致堆盤光陸離
먹고 나서 기장밥으로 씻으니 입맛이 맑아 / 雪之以黍嚼更淸
식상(食傷)을 풀 뿐 아니라 술도 깸직하네 / 不唯解䬼堪解酲
들고서 구경하니 더욱 사랑스러워 / 手携目翫尤愛處
술 마신 아씨 반쯤 붉은 뺨 같구나 / 被酒佳人頰半頳
귀한 선사 못 갚으니 스스로 부끄러워 / 報乏瓊瑤深自愧
다만 그대 삼천 년 살기를 비네 / 但祝爾壽三千載
다시 이 과실이 한 번 익거든 / 更看此菓還一熟
잘 먹는 늙은이에게 다시 선사하소 / 饋及饞翁聊復再
[주D-001]복숭아……되었네 : 《한무고사(漢武故事)》에 “동도(東都)에서 온 단인(短人)이
동방삭(東方朔)을 가리켜 말하기를 ‘서왕모(西王母 선녀의 이름)가 심어 놓은 복숭아
는 3천 년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여는데, 이 아이 불량하여 벌써 세 차례나 훔쳐 먹었다.’
했다.” 하였다.
[주D-002]먹고 나서……맑아 : 복숭아를 먹고 나서 기장밥으로 입을 맑게 씻는다는 뜻이다.
공자가 일찍이 노 애공(魯哀公)을 모시고 앉았을 때, 공이 복숭아와 기장밥을 하사하자
공자가 기장밥을 먼저 먹고 복숭아를 뒤에 먹으니 애공이 말하기를 “기장은 복숭아를
먹은 뒤에 입을 씻는 것이다.” 하였다. 《韓非子 外儲說》
○현 상인과 만일사(萬日寺)에 놀면서 벽상운(壁上韻)에 차하다
먼 산봉우리는 털끝같이 가늘고 / 遙峯毫較細
먼 배는 겨자씨처럼 작구려 / 遠舶芥分微
저녁 장기(瘴氣)는 더위를 더하고 / 夕瘴尤添熱
가을 구름은 해 가리니 좋네 / 秋雲好翳暉
바위 높아 원숭이 오르기 괴롭고 / 巖高猿易苦
숲이 고요하니 새도 드무네 / 林靜鳥猶稀
오래 읊조리다가 말 돌릴 줄 모르니 / 吟久難回馬
이슬이 옷만 적시네 / 從敎露濕衣
그대는 강호가 멀리 보이지 않음을 한해 / 君恨江湖遠未明
머리 들어 저문 하늘 바라보지 않는구나 / 不曾翹首暮天平
내 아득하게 길이 흐르는 물 어여쁘게 여겨 / 我憐杳杳長流色
생각하며 시끄러운 물결소리 듣네 / 想聽喧喧打浪聲
고깃배 불 까물거리니 사람은 자고 / 漁火微時人正宿
장삿배 돌아오는 곳에 노 소리만 나네 / 賈船歸處櫓應鳴
찾아올 때 만일 술병을 잊는다면 / 訪來若也忘携榼
결코 오두의 잔치에 크게 정 부족하리 / 決笑遨頭大寡情
[주D-001]오두(遨頭) : 1월부터 4월 사이에 태수(太守)가 들놀이 하는 것을 말한다.
《노학암필기(老學菴筆記)》에 “4월 19일을 성도(成都)에서 완화일(浣花日 완화계
(浣花溪)에서 노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름)이라 하여 오두연(遨頭宴)을 두보(杜甫)의
초당(艸堂) 창랑정(滄浪亭)에서 여는데, 성중 사람이 다 나와서 금수(錦繡)가 길을 메웠다.”
하였다.
○현 상인의 화답을 받고 다시 전운(前韻)으로 짓다
꿈속에 선경이 좋아 / 夢酣仙境勝
몸에 그림 병풍 둘렀네 / 身着畫屛微
이슬이 내리니 비온 듯하고 / 露重猶疑雨
강이 어두우니 햇빛도 믿기 어려워 / 江昏未信暉
다른 산은 밟고 지났는데 / 他山脚底歷
이 땅은 안중에 생소하구나 / 此地眼中稀
승방에서 잠시 이야기하노라니 / 僧榻移時話
돌아갈 즈음 옷 구겨진 줄 알았네 / 方歸覺皺衣
기운 해 어둠침침 물 홀로 밝았는데 / 斜日溟濛水獨明
난산은 꾸불꾸불 길이 평탄치 않네 / 亂山蟠屈路難平
구름 나는 극포엔 돛이 아른아른 / 雲迷極浦千帆色
바람 그친 장강엔 젓대 소리 나네 / 風落長江一笛聲
몇이나 건네 놓고 배 홀로 뜨는가 / 度了幾人舟自泛
외론 호랑이 울고 나자 새도 따라 우누나 / 噪殘孤虎鳥猶鳴
가고 오며 강호의 흥취를 얻어 / 朅來深得江湖興
홀연히 만리 밖 순로가 생각나네 / 忽起蓴鱸萬理情
백사는 땅에 멀리 깔렸고 / 白沙鋪地遠
푸른 물은 하늘 끝에 흐르네 / 碧水際天微
비는 밉게도 가을 물결 붇게 하고 / 雨惡增秋浪
놀은 밝아 저녁 햇빛 돕네 / 霞明助夕暉
길이 깊숙하니 자주 호랑이를 만나고 / 路幽逢虎熟
바다가 척박하니 고기가 물지 않네 / 海瘠得魚稀
태수(太守)를 그 누가 알리 / 五馬人誰識
쓸쓸하기 야인(野人)과 같네 / 蕭然似布衣
해산 천리에 달은 밝은데 / 海山千里月分明
어느 곳 어부가 태평을 노래하나 / 何處漁歌唱太平
시탑에 읊조리니 배 떠나는 것 같고 / 詩榻愛吟帆去樣
화가도 새 우는 소리 그리기 어려워 / 畵家難寫鳥啼聲
숲에 안개 끼니 갠 날도 어둡고 / 林巒有霧晴猶暗
송회에 바람 없어도 늦게는 소리 나네 / 松檜無風晩自鳴
눈 부릅뜨고 방황함을 그대는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 瞠目彷徨君莫怪
시인은 자고로 고심이 많은 걸세 / 詞人自古苦鍾情
[주D-001]순로(蓴鱸) : 순채국과 농어회. 즉 고향을 생각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장한(張翰)은 가을바람이 일자 고향의 산물인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갔다 한다. 《晉書 張翰傳》
○서기(書記)에게 증정하고 겸하여 이거(貳車)에게 편지하다. 2수
소년에 급제한 양선생이요 / 少年登第兩先生
내 또한 일찍 출세하였다네 / 我亦曾爲出谷鸎
급제한 두 사람 같은 부에 있으니 / 二桂一時同一府
이 고을 참으로 계양의 이름 얻었네 / 此州眞得桂陽名
급제한 세 사람 교분이 두터우니 / 登第三人交分厚
동료 천리에 숙연이 깊었도다 / 同寮千里宿緣深
각각 노력하여 청예를 남겨서 / 各須努力流淸譽
작게나마 고을 사람 축하에 보답하소 / 小答州人拜賀心
서생(書生) 3인이 같은 직장에 있으니, 주인(州人)이 다 기뻐하였다.(書生三人同寮。州人皆喜。)
○늙어 퇴직하여 금주(衿州)에 살고 있는 강 대장(姜大丈)이 술을 보내왔으므로 사례하다 .
중군 녹사(中軍錄事)로 있다가 퇴거하였다.(以中軍錄事。解官來居。)
아름답다 그대가 정치 잘했다 만인이 일컬어 / 嘉君政最稱萬口
군(君)이 봉성(峰城)에서 정치를 잘했다고 칭찬이 있었다.(君有峯城政譽。)
그대 거뜬히 삼사에 오르리라 여겼건만 / 謂君縱步登三事
어찌하여 늙도록 한 관직에 머물다가 / 云何白首滯一官
늙어서 관직 떠나 벽지에 사는가 / 投老歸來栖僻地
전답이 척박하여 쌀 수확 적어 / 有田瘠鹵得米少
집안 식구 모두가 굶주린다고 들었네 / 聞道渾家飢欲死
어떻게 천일주를 빚어서 / 何從釀得千日酒
꼭꼭 봉하여 멀리 잔성에 부쳤는가 / 題封遠寄殘城裏
잔성의 노리는 늙고 또 가난하여 / 殘城老吏老更窮
독 안에 먼지만 있고 익은 술 없다오 / 甕裏生塵無綠蟻
그대의 맛 좋은 술 얻고 기뻐 또 춤추며 / 得君美醁喜且舞
동료를 맞이하여 같이 취하고자 하네 / 邀致同寮圖共醉
은근한 후의를 무엇으로 갚을까 / 慇懃厚意何以酬
다만 그대가 선문자보다 장수하길 비네 / 但祝君壽倒却羨門子
[주D-001]삼사(三事) : 삼공(三公)의 지위로, 즉 재상(宰相)을 가리킨다.
[주D-002]선문자(羨門子) : 옛날 선인(仙人)인 선문자고(羨門子高)를 말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일찍이 동해(東海)에 노닐면서 선인 선문의 무리를 찾았다 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승선(承宣) 김양경(金良鏡)이 안렴사(按廉使) 진식(陳湜)에게 화답한 시에 차운하다. 3수
일년이나 중서성에서 왕언을 출납했고 / 五年西掖演龍綸
군막의 참모 또 몇 해였던가 / 戎幕參謀又幾春
공이 일찍 병마요좌(兵馬寮佐)를 지냈다.
단한에 홀연히 오르니 돌아갈 길 평탄하고 / 丹漢忽騰歸路坦
백사에 제방 축조하니 발걸음 새롭도다 / 白沙行築步堤新
공은 북쪽 변방에 높아 벼슬 귀함이 마땅하고 / 功高塞北官宜貴
몸은 왕 앞에 있으니 도를 진언하리로다 / 身在王前道可陳
임금님 뵙고 맑은 잔치에 말 묻거든 / 若對天顔淸讌問
동갑 중에 한 궁한 사람 잊지를 마오 / 莫忘同甲一窮人
만조의 경상들이 왕명(王命)을 맡고 있으나 / 滿朝卿相掌絲綸
궁벽한 골에 뉘 국은(國恩)에 젖었나 / 窮谷誰霑雨露春
초 나라 사람 귀양와서 국화 먹으며 고생하고 / 楚客謫來飡菊苦
유랑 떠난 후 심은 복숭아 새롭기만 하네 / 劉郞去後種桃新
궁궐을 연연하여 영수(潁水)에 가지 못하고 / 情深戀闕難歸潁
벼슬은 지방 장관이나 실제론 재진지액이라오 / 官號專城實在陳
청운의 벗이 있지 않았던들 / 不有靑雲知己在
이제는 이미 은사(隱士)가 되었으리라 / 如今已作碧山人
공청에서 물러나온 쓸쓸한 한 늙은이 / 公退蕭然一白綸
궁향의 차가운 날 봄보다 길구나 / 窮鄕寒日永於春
세상과 관리의 인심 가을 구름같이 얄팍하고 / 世情官况秋雲薄
병들고 시름에 찬 수염은 섣달 눈같이 희었구나 / 病鬢愁髥臘雪新
포(脯)같이 여윈 몸 숨결조차 미약하거니 / 瘦脯若將餘喘去
불꺼진 재 같은 마음으로 무슨 할 말 있으랴 / 死灰那有寸心陳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형상이 쓸쓸하여 / 仰天痛哭形寥落
황당에서 인 찬 사람 같지 않구려 / 不似黃堂佩印人
[주D-001]초(楚) 나라……고생하고 : 초 나라 사람이란 곧 조정에서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노닐
었던 전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그가 지은 이소경
(離騷經)에 “아침엔 목란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떨어진 가을 국화를 먹는다.
[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하였다.
[주D-002]유랑(劉郞)……하네 : 유랑은 당 나라 유우석(劉禹錫)을 말함. 그가 일찍이 낭주(郞州)
에 좌천되었다가 풀려서 서울에 돌아와 지은 현도관(玄都觀) 시에 “자맥에 홍진을
떨치고 오니, 사람마다 꽃 보고 돌아온다 하네. 현도관의 천 그루 복숭아는 다 유랑이
떠난 후에 심었네.[紫陌紅塵拂而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영수(潁水) : 강 이름. 요(堯) 임금 때 고사(高士) 허유(許由)가 이 영수 가에 은거
하면서, 요 임금이 자기에게 천하를 양여(讓與)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귀가 더러워졌다
하여 영수에서 귀를 씻었다 한다.
[주D-004]재진지액(在陳之厄) : 아주 빈핍하여 양식이 떨어진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공자(孔子)가
진채(陳蔡)에 있을 때 양식이 떨어져 액운을 겪었기 때문에 이름이다. 《論語 衛靈公》
[주D-005]황당(黃堂) : 태수(太守)가 거처하는 청사(廳舍)를 가리킴. 옛날에 태수 청사의 벽을
자황(雌黃)으로 바른 데서 연유된 것이다.
○현 상인(玄上人)과 수량사(壽量寺)에 놀면서 구경한 것을 기록하다
잔향에 경치 좋은 곳 없으나 / 殘鄕無勝境
옛 사원(寺院)에 이름난 누각 있네 / 古院有名樓
여가에 맑은 흥치 못이겨 / 暇日乘淸興
가벼운 행장으로 즐겁게 놀도다 / 輕裝占美遊
우러러 겨우살이 덩굴을 휘어잡고 / 仰攀高蔦蔓
구부려 콸콸 흐르는 시내를 보네 / 俯亂淺溪流
태수의 행차에 길 인도하는 사람 없어 / 太守行無喝
초동도 추마 보고 피하지 않누나 / 樵童不避騶
스스로 야로라 자처하니 / 自然同野老
뉘 다시 고관이라 보리 / 何更視邦侯
들말은 갠 날에 풀 뜯어 먹고 / 坰馬晴方牧
새는 저물녘에 옛집 찾아드네 / 巢禽暮自投
오래 살아 본 것이 있으니 / 多生應記覽
이르는 곳마다 눈에 익어라 / 到處似經由
골에 드니 수목 우거져 수심이고 / 入谷愁榛暗
마을 만나 먼 길 찾았네 / 逢村得路脩
놀란 박쥐는 깊은 숲에 달아나 숨고 / 驚鼯竄深樾
여윈 오리는 맑은 도랑에 섰네 / 瘦鴨立澄溝
찾아온 손의 정이 정성스러우니 / 訪到客情款
맞이하는 중의 말이 부드럽구나 / 出迎僧語柔
부처 이야기 처음엔 굴곡이 있다가 / 談空初詰曲
옛이야기 나누니 다시 심오해지는구나 / 話舊更綢繆
가까스로 높은 집에 올라 / 躑躅登危構
넓다란 곳에서 묵은 근심 풀도다 / 寬閑瀉滯憂
한 헌함에서 멀리 바라보니 / 一軒窮遠眺
만상이 어둠 속에 들어가네 / 萬像赴冥搜
해가 떨어지니 연광이 고요하고 / 日落烟光靜
무지개 밝으니 갠 경치 떠오르네 / 虹明霽景浮
숲에는 의지할 곳 없는 새 소리 시끄럽고 / 林喧無賴鳥
들엔 태평스런 소가 누웠네 / 郊臥太平牛
저녁 이슬은 비보다 더 많고 / 夕露濃於雨
찬 대는 싸늘한 가을이구나 / 寒篁颯欲秋
안개 깔렸으니 백수를 펴 놓은 듯 / 霧平鋪白水
풀밭이 아득하니 청유를 편 듯하네 / 草遠展靑油
무너진 탑에 이끼 흔적 깔끄럽고 / 壞塔苔痕澁
빈 창에 나무 그늘 빽빽하도다 / 虛窓樹影稠
집 닭은 수 놓은 목을 들고요 / 屋雞翹繡頭
산꿩의 가슴은 바람에 쓸린 푸른 잔디 같도다 / 山雉靡莎鞦
우물이 가까우니 밤에도 물 긷고 / 井近宵猶汲
두고 난 바둑 늦도록 거두지 않네 / 棋殘晩未收
달 비친 난간엔 느슨한 피리 소리 생각나고 / 月欞思慢笛
바람 부는 헌함엔 겹갖옷 연연하네 / 風檻戀重裘
처음엔 차 마시러 갔다가 / 初爲嘗茶至
도리어 술 좌석에 머물게 되었네 / 還因有酒留
떠드는 것 싫어서 말조차 물리치고 / 嫌喧屛騎從
혼자 있기 꺼려 벗과 같이 휘파람 부네 / 諱獨嘯朋儔
작은 언덕엔 꾀꼬리가 나비와 놀고 / 小塢鸎捎蝶
깊은 동산엔 새가 표범 등을 쪼누나 / 深園雀啅彪
바위 사이 우물엔 사슴과 함께 물 마시고 / 巖泉同鹿飮
숲 속의 과일은 원숭이에게 맡기네 / 林菓任猿偸
큰 박은 대롱대롱 독같이 매달리고 / 大瓠垂欹甕
둥근 배는 떨어져 공같이 흩어지네 / 圓梨落迸毬
토란 밭에는 깊숙이 알이 박혀 있고 / 芋畦深伏卵
버섯나무엔 혹이 달려 있네 / 菌木忽懸疣
만물의 변화는 한이 없는데 / 物化觀無限
시편에 담는 일 주도치 못하구나 / 詩篇拾未周
황홀하기 딴세상 온 것 같아 / 怳如來別界
탁 트인 마음 갇혔다 풀림 같네 / 曠若釋幽囚
지난날 폐하(陛下)에 추종하면서 / 憶昨趨陛軒
아침마다 임금님 모신 생각 떠오르네 / 連晨侍冕旒
배척 당해 귀양오니 마음이 멍멍해 / 斥來心惘惘
시름속에 앉았으니 수염만 바람에 휘날리네 / 愁坐鬢颼颼
넉넉한 지방에 살고 있어 / 賴有優哉地
바야흐로 울적한 수심을 몰아내네 / 方驅鬱矣愁
운명이 기구하여 비록 귀양왔으나 / 命奇雖此謫
하늘의 도움 또한 넉넉하도다 / 天貺亦云優
야채 삶아 안주함이 무엇이 나쁘랴 / 野菜何妨煮
산 막걸리 걸러 마심도 해로울 것 없네 / 山醪未害篘
강산이 다 뜻에 맞으니 / 江山皆可意
신수도 충족하게 구하겠네 / 薪水足充求
반평생 이 낙을 어겼으니 / 半世違玆樂
뜬 명예 이것이 나의 원수로세 / 浮名是我讎
괴롭게도 눈에는 티끌만 들고 / 苦遭塵眯目
앉아서 머리에 흰 털만 더하누나 / 坐受雪侵頭
녹이 적으나 어찌 더 바라리요 / 祿薄何須慕
벼슬은 미미해도 오히려 좋다 / 官微尙可休
종신할 장소를 알았더라면 / 終身知有所
집 지어 일찍 경영을 꾀했으리라 / 築室早營謀
다만 돌아옴이 늦을까 염려하거니 / 但恐歸來晩
어찌 자녀들의 혼사를 애쓰리요 / 寧勞更相攸
[주D-001]돌아옴이……애쓰리요 : 즉 가사(家事)에 얽매이지 않고 빨리 은거(隱居)하겠다는
뜻이다. 옛날 상장(向長)이라는 사람이 자녀들의 혼사(婚事)를 다 마친 뒤에야 자식에게
가사를 일체 떠맡기고 은거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사영운(謝靈運)의 산거부(山居賦)
에 “상자의 만연에 부끄럽다.[慙向子之晩硏]” 한 주에 “상장이 누(累)를 일찍이 벗어
나지 못했기 때문에 만연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관기(官記) 이군(李君)이 공사로 인하여 면관(免官)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나도 마음이
슬퍼서 시를 지어 보내다
내 옛날 처음 자네를 알 때 / 我昔初識子
전주의 천만 리를 오고 갔네 / 完山千萬里
뜻밖에 계양 고을에 와서 / 不意桂陽州
자네와 근심을 같이하였네 / 與子共憂寄
자네는 이미 얼음보다 결백하거늘 / 子旣潔於氷
내 또한 청렴함을 생각하였네 / 我亦思酌水
노위는 형제국이라 정치에 시기 없어 / 魯衛政無猜
진심으로 시종을 같이하고자 하네 / 意欲同終始
무슨 뜻으로 홀연히 지탄을 받았는가 / 何意忽被彈
돌아갈 뜻은 조금도 그치지 않으리라 / 歸意不小弭
내 처음 듣고는 슬퍼하여 / 我初聞之悲
자세히 생각하니 자네를 축하함직하였네 / 細思堪賀爾
이 고을이 비록 이름난 곳이나 / 此邑雖名都
쇠잔하고 파괴되어 옛날에 비하기 어렵네 / 殘壞古難比
백성이 주려 다 채색이니 / 生民皆菜色
하루인들 어찌 차마 보리요 / 一日那忍視
내 이미 묶인 죄수와 같아 / 我已絆如囚
틀림없이 장독에 걸려 강가에 죽으리라 / 決被瘴江死
그댄 많은 복을 받아 / 賴爾福所鍾
당당하게 훌훌 떠나는구나 / 軒然忽去矣
다만 평화로운 천하에서 / 但恨艶陽天
도리가 미태를 다투는 일 한이로세 / 桃李競嫵媚
이때에 날 버리고 돌아가니 / 此時捨我歸
나는 하늘이 버리는가보다 / 我殆爲天棄
[주D-001]노위(魯衛)는……없어 : 노위는 노 나라와 위 나라를 가리킴. 노 나라는 주공(周公)의
후예이고, 위 나라는 강숙(康叔)의 후예인데, 주공과 강숙이 친형제간이었기 때문에 그
후예들의 국정(國政)도 형제처럼 해나갔다는 뜻이다.
《논어(論語)》자로(子路)에 “노위는 정치를 형제처럼 한다.” 하였다.
[주D-002]채색(菜色) : 굶주린 사람의 얼굴에 누르스름한 빛깔을 띤 것을 말한다.
[주D-003]도리(桃李)가……다투는 일 : 소인들이 권세를 다투는 것을 말한다. 도리는 일시의
봄을 자랑하기 때문에 소인(小人)에 비유한 것이다.
○염안사(廉按使) 김 낭중(金郞中)에게 차운하여 문학(文學)에게 희증(戲贈)하다
일찍 이 사롱으로 호상한 사람인데 / 早是紗籠護像人
조리하느라 무어 다시 경신을 빌랴 / 攝調何更借經申
공이 병이 들었다가 곧 나았다.(公被病方痊。)
기구한 강산을 두루 다녀도 / 江山遍歷崎嶇地
부귀한 사람에겐 남장이 침입 못해 / 嵐瘴難侵富貴身
영은 엄숙하여 파발이 번개같이 가는데 / 令肅郵筒踰電邁
음식은 청렴하여 식탁도 감해 차렸네 / 食廉廚俎減星陳
고독하고 빈한한 일개 잔성의 수령이 / 殘城一箇孤寒守
평생의 속마음을 사신에게 바쳤네 / 都抱平生託使臣
묻건대 병이 전날에 몇 사람이나 감염시켰나 / 問瘼前頭感幾人
옛날에 품은 원한 창자에 치밀어오르네 / 舊銜幽怨倒腸申
서리 같은 위엄은 이미 탐부의 손을 묶었고 / 威霜已束貪夫手
국왕의 포창은 특별히 결백한 관리에 주었네 / 褒袞偏加潔吏身
부드러운 말씀 어느 때 귀 기울여 들을까 / 軟話何時重聳聽
외로운 회포 깊이 펼 곳이 없네 / 孤懷無處得深陳
조정에 돌아가 만약 자황론 빌린다면 / 歸朝若借雌黃論
백수 늙은 이 두 제신에 참여하리라 / 白首堪叨兩制臣
서액 당년엔 칠인 속에 들었더니 / 西掖當年備七人
강호에 유락하연 분 풀기 어렵네 / 江湖流落憤難申
때론 헛되이 미친 혀 놀려 읊지만 / 有時虛掉狂吟舌
귀양살이나 벼슬살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 / 無計能抽謫宦身
정치 잘하기 까마득하니 소두에 부끄럽고 / 理最寂寥慙召杜
시골에 살아 쓸쓸하니 주진이 생각나네 / 村居蕭索想朱陳
포장하는 한마디 천금같이 중하기에 / 一言褒獎千金重
너무 기뻐 쫓겨난 신세를 모두 잊었도다 / 感泣都忘作逐臣
[주D-001]사롱(紗籠)으로……사람 : 재상(宰相)의 위치에 오를 사람을 말한다. 재상이 될 사람은
명사(冥司)에서 반드시 그의 상(像)을 세우고 사롱으로 이를 보호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경신(經申) : 도가(道家)에서 장생불사(長生不死)하기 위해 수련하는 도인법(導引法)의
한 가지인 즉 웅경(熊經)ㆍ조신(鳥申)의 준말로, 웅경이란 마치 곰이 앞발로 나무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것같이 하여 기(氣)를 단련하는 것이요, 조신이란 마치 새가 목을
쭉 빼고 있는 것같이 하여 호흡을 단련하는 것이다. 《莊子 刻意》
[주D-003]자황론(雌黃論) : 옛날 누른 종이에 글을 쓰고 잘못된 글이 있으면 자황을 칠하여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썼으므로 전하여 자구(字句)의 첨삭(添削)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4]소두(召杜) : 지방민이 태수의 선정을 칭찬한 말. 전한(前漢) 때의 소신신(召信臣)과
후한(後漢)의 두시(杜詩)가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지방민들에 의해 소부 두모(召父
杜母)라고까지 일컬어졌다. 《漢書 召信臣傳》《後漢書 杜詩傳》
[주D-005]주진(朱陳) : 중국 서주 고풍현에 있는 주진촌을 말한다. 이 마을은 전체가 오직 주씨
진씨 양성 뿐인데, 대대로 서로 혼인하면서 살았다.
○황보 서기(皇甫書記)의 운에 차하여 우중(雨中)에 홀로 읊다
해가 흉년드니 환성이 적고 / 歲儉懽聲小
봄이 한창이라 잠맛이 좋아 / 春酣睡味長
돈 던지고는 샘물만 마시고 / 投錢空飮井
누웠으니 향내조차 못 맡네 / 凝寢阻聞香
궁벽한 언덕이라 꽃은 더디 피고 / 僻塢花期晩
궁한 마을이라 햇빛도 처량하네 / 窮閻日色涼
나아감은 구루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 出非求岣嶁
슬프기 황강의 귀양살이와 같네 / 悲似謫黃岡
세상이 싫어 낯 들기 싫고 / 厭世顔慵擧
사람을 꺼리니 입 벌이지 않네 / 嫌人口莫張
그대 새 관기 된 덕으로 / 賴君新管記
고을에 가득 홀연히 빛이 나네 / 滿邑忽生光
지난 일 얘기하니 천 갈래 정이라 / 話舊情千緖
회포를 잊고 한바탕 웃네 / 忘懷笑一場
다만 관의 검속으로 인하여 / 但緣官檢束
술 취해 광태 부리지 못하네 / 未放酒顚狂
깊은 거리에 보슬비 내리는데 / 深巷猶纖雨
성근 숲에 해가 저무네 / 疏林欲夕陽
내 깊이 애련(愛戀)이 있기에 / 以予深眷戀
자네의 괴로운 심정 알 수 있네 / 知子苦思量
[주D-001]돈 던지고는……마시고 : 공(功)을 들여 놓고도 그에 대해 기대를 갖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신선전(神仙傳)》에 “갈효선(葛孝先)이 사람을 시켜 돈 수십 전(錢)을 우물
가운데 던져 넣은 다음 다시 돈을 부르자, 돈들이 하나하나 우물 속에서 다시 날아
나왔다.” 하였다.
[주D-002]구루(岣嶁) : 중국 형산(衡山) 남쪽에 있는 구루봉(岣嶁峯)을 가리키는데,
《상수기(湘水記)》에 “전설에 의하면 우(禹) 임금이 금간 옥서(金簡玉書)를 여기에서
얻었다고 하는데, 여기가 바로 도서(道書)에서 말하는 구루동천(岣嶁洞天)이다.”
하였다.
○부채와 먹을 선사한 황보 관기(皇甫管記)에게 차운하여 사례하다
값진 부채 진기한 먹 값이 비등하여 / 寶箑珍煤價竝翔
봉함을 여니 선향을 띠었네 / 緘封開了帶仙香
훈풍을 일으키니 맑음이 빼어나고 / 薰風共簸淸誰勝
대지가 같이 갈리니 조화를 헤아릴 수 없네 / 大地同磨限莫量
이미 강산에 보내어 윤색케 하고 / 已遣江山歸潤色
다시 티끌을 몰아 표표히 날려버렸네 / 更驅塵壒祓飄揚
응당 옻칠하면 경구가 되리라 / 應將烏漆成瓊玖
금도를 잡고 설상 끊는 것이 생각나네 / 想把金刀剪雪霜
들고 희롱하니 두 손이 묵직하고 / 擎弄正知雙手重
잡고 부치니 한결 옷깃이 서늘해 / 携搖偏得一襟涼
다만 쇠병으로 사례가 지체되니 / 但緣衰病稽趨謝
내 마치 하찮은 장사꾼처럼 인색한 무리 되었네 / 不敏端宜略買羊
○다시 화답하다
고려의 종이 부채 학같이 나는 듯 / 高麗紙扇鶴翎翔
상당의 솔 그을음에 사향 향기라 / 上黨松煙麝澤香
나에게 주는 은근한 정성 가장 중하고 / 贈我慇懃誠最重
그대 사정 알아주는 생각 헤아리기 어렵네 / 思君比況意難量
때 되어 조서(詔書)를 나와 같이 쓰고 / 行期誥筆同予泚
다시 인풍을 바라보고 같이 날리세 / 還望仁風共爾揚
고요히 종이에 글 쓰니 옻칠을 바르는 것 같고 / 靜染藤牋如點漆
일부러 비단 소매 흔드니 서리같이 차갑네 / 試搖練袖以懷霜
문방에선 이미 천금도 싸다는 것 깨달았고 / 文房已覺千金賤
서각에선 특별히 유월의 서늘함을 알겠도다 / 暑閣懸知六月涼
후은에 감사할 뿐 갚을 도리 없으니 / 感佩厚意無計報
내일 아침 사죄하러 양 끌고 가려 하네 / 明朝謝罪欲牽羊
[주D-001]상당(上黨)의……향기라 : 상당은 지명. 《득수루잡초(得樹樓雜鈔)》에 “옛사람이 먹
[墨]을 만드는 데 있어 모두 송연(松煙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사용하는데, 당(唐)
나라 때는 상당의 송연을 사용했다.” 하였다. 사향 향기란 곧 고인들이 먹의 향기를
사향의 향기에 비유하여 먹을 사매(麝煤)라고 부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황보 서기가 수량사(壽量寺)의 유제(留題)에 화운하였으므로 다시 전운(前韻)으로 짓다
백수에 잔성을 지키는 사람 / 白首殘城守
붉은 용마루 고사의 누대에 왔네 / 朱甍古寺樓
지난해 병으로 쉬면서 / 往年乘病暇
며칠 동안 한가로이 놀았었지 / 數日作閑遊
약은 쥐는 구멍으로 도망가고 / 黠鼠遁藏穴
산새는 시내에 내려 목욕하네 / 幽禽下浴流
문에 도착하여 짖는 개를 부르고 / 到門麾吠犬
나무를 가려 우는 말을 매었네 / 操樹繫鳴騶
난원에 시인을 생각하고 / 蘭畹思騷客
과원에서 옛 동릉후(東陵侯)를 추억하네 / 瓜園憶古侯
게을러 갈건을 바로 쓰지 못하고 / 葛巾慵不整
곤하여 나무 평상에 누웠도다 / 木榻困方投
조 쪼는 닭은 짝을 부르고 / 啄粟雞呼偶
모퉁이 덩굴엔 사슴이 지나간 듯 / 隈䕺鹿應由
담뿍 서리맞은 홍시는 무르익었고 / 飽霜紅柹爛
하늘에 치솟은 벽오동은 길게도 뻗었네 / 遡日碧梧脩
주렴에 바람 부니 은산이 흔들리고 / 簾吹搖銀蒜
처마엔 장마로 나무 썩어 물 새네 / 簷霖腐木溝
토란이 살찌니 달걀같이 크고 / 芋肥藏卵大
배 익으니 껍질이 부드럽네 / 梨熟得肌柔
들 밥은 삶은 고미(菰米)요 / 野飯烹菰賓
촌 막걸리를 삼 잡히고 마시네 / 村醪典枲繆
《설문(說文)》에 삼 10뭉치를 무(繆)라 한다.(說文云。枲十潔曰繆。)
안일하여 중산같이 게으르고 / 居然中散懶
중선의 근심을 물리치누나 / 消却仲宣憂
풍월은 하늘 끝까지 감상하였고 / 風月窮天賞
계산은 땅을 두루 다녀 찾았소 / 溪山罄地搜
남기 깊어라 이슬이 뚝뚝 / 嵐深濃滴滴
구름 맑아라 저멀리 둥둥 / 雲淡遠浮浮
뽕잎이 없어지니 하많은 누에고치 생기고 / 桑剝生千繭
벼 풍년 드니 수많은 소가 고생했으리 / 禾登費萬牛
나의 시에 좋은 말 없으니 / 我詩無好語
청추만 기록할 뿐이로세 / 所記止淸秋
온 산의 경치를 그리고자 / 欲寫全山景
먼저 낮 잇는 등잔 기름 구하네 / 先徵繼晷油
밥상의 채소는 천 가지나 되고 / 盤蔬千品異
철 과일은 백 가지나 되네 / 時菓百般稠
야복에 무슨 띠를 두르랴 / 野服何施紐
남여에 말 치장 않는다오 / 藍輿不用鞦
온 말을 단장 시키고 / 來驂危欲理
이별을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 거두기 어렵네 / 離思浩難收
다시 술집을 바라보고 / 更望靑旗店
자줏빛 비단 갖옷을 던졌네 / 尋抛紫綺裘
하물며 자주 요우가 찾아오는데 / 況煩寮友訪
도리어 주인의 만류에 어쩌랴 / 還被主人留
홀로 갈 땐 짝이 없더니 / 獨往初無侶
함께 즐기니 이미 벗을 얻었네 / 同歡已得儔
뜰의 소나무 용 껍데기처럼 여위고 / 庭松龍甲瘦
섬돌의 죽순은 표범처럼 문채 나네 / 階笋豹文彪
좋은 경치는 땅의 비보(祕寶)인데 / 勝槪黃祗祕
우리들은 대낮에 훔쳐 보누나 / 我儕白晝偸
연줄기는 옥자루가 비스듬한 듯 / 蓮莖欹玉柄
밤 껍질은 털 달린 공이 떨어지는 듯 / 栗殼墮毛毬
묘구는 가려운 곳을 긁는 것처럼 시원하고 / 妙句侔爬癢
미언은 혹을 뗀 것처럼 상쾌하구나 / 微言劇決疣
괴이하다 공이여 보지도 않았는데 / 怪公猶未覿
사물을 표현함이 어찌 그렇게 주도한가 / 狀物一何周
군이 화시(和詩)한 뒤에 처음으로 나와 절에서 놀았다.(君和詩。然後始與我遊寺。)
나와 약속하여 승지를 찾으니 / 約我同尋勝
즐거워라 죄수가 풀려난 것 같네 / 軒然似脫囚
잔디 평평하니 푸른 담요 위를 걷는 것 같고 / 莎平行綠毯
덩굴이 엉키니 푸른 깃대를 당기는 것 같네 / 虆倒挽靑旒
작은 우물에 맑은 물 괴고 / 小井淸瀾滀
빈 당에 서늘한 바람 불어오네 / 虛堂爽籟颼
옷깃을 헤치니 더위를 씻음직하고 / 披襟堪濯熱
납극은 충분히 수심을 덜어주네 / 蠟屐足蠲愁
시격은 군을 당하지 못하나 / 詩格君無敵
바둑 평은 내가 훨씬 나으리 / 棋評我頗優
거문고 피리는 기생 불러 잡히고 / 管絃呼妓弄
빚은 술은 아이 보내 거르게 하네 / 家醞遣兒篘
즐거움이 또한 이 가운데 있으니 / 樂亦這中在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 心何此外求
병든 몸이라 지팡이 힘을 빌리고 / 病榰笻借力
늙은 용모라 거울이 원수처럼 보이네 / 老把鏡成讎
벽지에 사니 달팽이 뿔처럼 자질구레해지고 / 處僻蝸生角
사람을 만나면 자라 목처럼 움츠리네 / 逢人鼈縮頭
담을 뚫고 도망치지는 못해도 / 鑿坏雖未遁
사직하고 응당 쉬리라 / 解印會應休
명아주국 마시기를 원하노니 / 要遂藜羹計
어찌 좋은 음식 먹기를 생각하리오 / 寧思肉食謀
이때를 구제함은 자네뿐이니 / 濟時唯子耳
국정을 꾀하는 데 순유 같길 기대하네 / 廟算待荀攸
[주D-001]난원(蘭畹)에……생각하고 : 난원은 난초밭이란 뜻인데, 원(畹)은 밭 20묘(畝)를 뜻하며
일설에는 30묘라고도 한다. 시인이란 곧 초 회왕(楚懷王) 때의 충신 굴원(屈原)을 가리
키는데,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이미 구원엔 난초를 심었고, 또 1백묘엔 혜초를
심네.[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 하였다.
[주D-002]과원(瓜園)에서……추억하네 : 동릉후(東陵侯)는 곧 진(秦) 나라의 소평(召平)의 봉호.
소평은 진 나라가 망하자 포의(布衣)로 장안성(長安城) 동쪽에 살면서 오이를 심어 생활
을 영위했다. 세상에서는 이 오이를 동릉과(東陵瓜)라 하였다. 《史記 蕭相國世家》
[주D-003]은산(銀蒜) : 주렴에 다는 갈고리. 은(銀)을 가지고 마늘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은산이라고 한다.
[주D-004]중산(中散) : 동진(東晉) 때 죽림 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던 혜강(嵇康)을 가리킨다.
[주D-005]중선(中宣) :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 왕찬(王粲)의 자(字)이다. 근심은 무얼 말
하는 것인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6]남여(藍輿) : 대를 엮어서 만든 가마이다.
[주D-007]납극(蠟屐)은……덜어주네 : 납극은 나막신에 밀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것.
동진(東晉) 때 조약(祖約)은 재물을 좋아하고, 완부(阮孚)는 신[屐]을 좋아하여 둘다
누(累)가 되는 일이긴 하나 누가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조약의
집엘 가 보니 조약은 마침 돈을 세고 있다가 손이 이르자 세던 돈을 농 뒤로 치우고
몸을 기울여 가리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완부의 집엘 가 보니 그는 마침
나막신에 밀을 칠하다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일생에 이 신을 얼마나 더 신을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색이 자약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승부가 판가름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阮孚傳》
[주D-008]국정을……기대하네 : 순유(荀攸)는 삼국 시대 사람으로 일찍이 황문시랑(黃門侍郞)을
지내고 뒤에 조조(曹操)에게 부름을 받아 많은 공을 세우고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고,
능정후(陵亭侯)에 봉해졌다. 그는 특히 지모와 정략이 뛰어나, 조조가 일찍이 “순유는
비상한 사람이니, 내가 그와 국사를 꾀한다면 천하에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하였다.
《三國志 卷10 荀攸傳》
○남산(南山) 모정(茅亭)에 제(題)하다
바위를 뚫어 갇힌 물을 통하게 하고 / 鑿巖通湧溜
괸 늪에 날 듯한 정자가 걸터앉았다 / 瀦沼跨飛欞
바라보니 고깃배가 뜬 듯하고 / 望恐淨漁艇
와서 보니 그림 병풍에 든 듯하네 / 來疑入畫屛
수선은 아마 기이함을 쌓을 것이요 / 水仙應蓄異
지온은 정히 신령을 담았을 것이라 / 地媼正儲靈
들 빛을 처마 앞에서 안아 보고 / 野色簷前擁
샘물 소리는 자리 밑에서 듣누나 / 泉聲座底聽
청풍은 여름이 되어 만족하고 / 淸風當夏足
백로는 가을이 아닌데도 떨어지네 / 白露未秋零
비단 이끼는 옥 섬돌에 엉기고 / 錦蘚纏珉砌
빙장은 옥병에서 어누나 / 氷漿凍玉甁
산이 뚫리어 더욱 멀리 바라보이고 / 岫穿增遠眺
골이 넓어 먼데 소리 들리네 / 洞豁助遐聆
나무 높으니 높은 기가 푸른 듯 / 樹卓高幢碧
소나무 드리우니 푸른 우산 펴 놓은 듯 / 松張偃蓋靑
허공은 일찍 지형을 보았고 / 許公曾相地
이름은 홍재(洪材)이다.(洪材。)
이 군수는 처음 정자를 지었네 / 李守始開亭
이름은 실충(實忠)이다.(實忠。)
감당의 읊음을 짝하고자 / 欲配甘棠詠
다시 경영하여 이 명을 새기네 / 重營刻此銘
[주D-001]수선(水仙) : 수중(水中)의 선인(仙人)이란 뜻으로 춘추 시대 오(吳)의 오자서(伍子胥),
또는 전국 시대 초(楚)의 굴원(屈原)을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2]지온(地媼) : 대지(大地)의 여신. 즉 땅의 신을 가리키는데, 원각(袁桷)의 합문령
(閤門嶺) 시에 “지온이 신기한 공이 있어, 여기 제존을 모셨네.[地媼神功奇 玆焉奉帝尊]”
하였다.
[주D-003]감당(甘棠)의 읊음 : 백성이 시정자(施政者)의 덕을 앙모(仰慕)하는 것을 말한다.
주(周) 나라 소공(召公)의 선정에 감격한 백성들이, 소공이 일찍이 쉬어 갔던 감당(甘棠
팥배나무)을 소중히 여긴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
○최 상국(崔相國)에게 올리다. 병서(幷序) 진강공(晉康公)의 사자(嗣子)이다.(幷序○晉康公嗣也)
저는 본래 관리로서의 능력이 모자라는 자질로 군수가 되었는데, 임기가 만료되기도 전에 급급하게
부임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너무 이른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성(省)에 있은 지 5년 만에 홀연히 비죄(非罪)로 인하여 유사(有司)의 탄핵(彈劾)을
받은 바 있었으나 합하(閤下)께서 힘을 다하여 구출하심에 힘입어 산지(散地)에 떨어지지 않고 이
고을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합하는 나랏일을 맡아서 무릇 내외 관료(官寮)들 간에 이름
이 청렴하지 못한 자를 이미 모조리 징계하였습니다.
대저 청(淸)한 것은 탁함의 반대이니 그 탁함을 배격하면 반드시 그 청함을 추어 올릴 의논이 있
을 것이니, 나같이 절개를 지켜 봉공(奉公)하는 자는 비록 큰 상을 받지는 못할망정 또한 어찌
3년 후에 교대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某本乏吏能。出爲郡守。政猶未滿。汲汲然求見代者。似爲大早。然僕居省五年。忽因非罪。被有司所
彈。賴閣下盡力營救。然後不落散地。受此方州之任矣。幸今閣下當國。凡內外官寮之名不廉者。旣盡
懲之矣。夫淸者濁之對。激其濁則必有揚淸之議。如吾礪節奉公者。雖未蒙大賞。亦何必三年而後見代耶。
伏惟諒之。)
일찍 깊은 은혜 입어 봉지에 들었다가 / 早沐深恩入鳳池
홀연 횡의로 강가에 떨어졌네 / 忽因橫議落江陲
죄 아닌 귀양을 공은 일찍 알아서 / 謫因非罪曾相識
힘써 구제함은 세상이 아는 바라 / 力欲扶顚世亦知
쑥이 더부룩하니 사슴과 같이 살고 / 蓬艾蒙籠同鹿處
원장이 소루하니 이리떼 함부로 엿보네 / 園墻疏漏任狼窺
송사하는 법정에선 주린 백성 근심스럽고 / 訟庭愁見飢民色
공석에선 교활한 아전 모습 역겹기도 / 公席慵看黠吏姿
고을의 봉급은 근래 깎이어 적고 / 邑俸近從刪省少
전답의 조세는 지고 싣고 운반하네 / 田租未免負駄移
두루 보조하여 해 넘길 양식도 어려운데 / 尙難周補經年難
하물며 겨울 추위 막을 의복을 마련함이랴 / 況可能營禦臘絲
옛날에 밟던 약계는 하늘같이 멀어졌고 / 舊踏藥階天忽遠
같이 놀던 친구들 기미(驥尾)를 따르기 어려워라 / 與遊蘭友驥難追
고달픈 문서 처리에 몸이 매이니 / 苦遭薄領長纏縛
시상이 크게 감퇴됨을 어찌하랴 / 無奈詩情大減衰
벼슬에 참여한 지 오년에 아직도 육품이라 / 參秩五年仍六品
쇠잔한 시골살이 하루가 삼년 같네 / 殘鄕一日適三期
합하께서 깨끗한 절개를 채택하신다면 / 鈞軒若採氷淸節
교대를 어찌 임기까지 기다리겠소 / 瓜代何須要及期
이듬해 기거주(起居注)로 부름을 받았다.(明年以起居注見召。)
[주D-001]약계(藥階) : 약성(藥省), 즉 중서문하성의 별칭이다.
[주D-002]기미(驥尾) : 준마의 꼬리. 전하여 뛰어난 사람의 뒤라는 뜻으로 쓰인다.
《후한서(後漢書)》외효전 주(隗囂傳 注)에 “파리는 10보 이상을 날지 못하지만 준마의
꼬리에 붙으면 천 리를 갈 수 있다.” 하였다. 이는 곧 훌륭한 사람의 덕으로 공명
(功名)을 이루게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동성(童城) 객사(客舍)에서 벽상(壁上) 제현(諸賢)의 운에 차하다
우뚝 솟은 빈관 귀신의 솜씨로 이루었으니 / 賓館嵯峨役鬼成
그대는 이를 잔성이라 말하지 마오 / 憑君莫道是殘城
한 잔 술에 기쁨이 오히려 만족하니 / 一杯村酒歡猶足
넉넉히 인간 분외의 영광 얻었네 / 贏得人間分外榮
달 구름 자료 삼아 시 짓기에 습성이 되어 / 剪日裁雲習已成
말 머리에 읊조리며 강성으로 드는구나 / 馬頭吟苦入江城
다시 봉성에 돌아갈 길은 없으나 / 重歸鳳省雖無路
조개 받치고 봄놀이 또한 영광일세 / 皁蓋行春亦是榮
○금주창(衿州倉) 벽상(壁上)에 쓰다
늙어서 고을 맡아 책임 다하기 어려워 / 殘年典郡力難任
부끄러움이 심중에 쌓여 이마에 땀이 나네 / 愧積心中顙沘淋
창고의 곡식으로 빈민 구제하자 연해 비오니 / 發廩賑貧仍得雨
하늘이 백성 사랑함을 비로소 알겠도다 / 始知天意愛民深
○우중(雨中)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보고 서기에게 증정하다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건 민력에 달렸고 / 一國瘠肥民力內
만인의 생사는 벼 싹에 매였네 / 萬人生死稻芽中
다른 날 옥 같은 곡식이 일천 창고에 쌓이리니 / 他時玉粒堆千廩
청컨대 땀 흘린 오늘의 공을 기록하소 / 請記今朝汗滴功
○금주(衿州) 객사(客舍)에 써 놓은 손 사인(孫舍人)의 시에 차운하다
금주의 좋은 봄경치 어이 그리 기이한가 / 衿州好春景一何奇
작약은 애교 많아 아양 잘 떨고 / 芍藥嬌多工媚嫵
해당은 졸음 많아 비스듬히 드리웠는데 / 海棠眠重正欹垂
술 잔 잡고 꽃다운 시절 감상하네 / 把酒惜芳時
토지가 비옥함은 못 물이 적셔 줌이라 / 臯壤沃膏潤賴潭池
습속은 비록 제 나라 사람같이 완만하나 / 俗習雖同齊土緩
백성이 다 태평 세대 늙은이 같아서 / 居民多似老臺熙
주리고 부른 것으로 안위를 삼네 / 飢飽卜安危
○공암(孔巖) 강가에서 읊다
목욕한 새는 날기를 게을리하고 / 欲殘飛倦鳥
밭 갈고 난 소는 한가로이 누웠구나 / 耕罷臥閑牛
겹친 봉우리는 산중의 성곽이요 / 複嶺山中郭
닫는 배는 물 위의 역마로세 / 奔舟水上郵
강상의 경치를 어여삐 여겨 / 爲憐江上景
남몰래 갈대밭 강가에 왔네 / 潛到荻洲濱
태수는 너에게 힐책 않으리니 / 太守不汝詰
어옹은 마음 놓고 낚시질이나 잘 하라 / 漁翁好下緡
○병중에 문학(文學) 송군(宋君)에게 보이다
쓸쓸해라 두 귀밑털 하 많이 희었는데 / 雙鬢蕭條雪萬莖
방금 방백이 되어 한 지방을 맡았도다 / 强名邦伯得專城
술잔이 마른 날엔 살았어도 죽은 셈이요 / 酒杯乾日生中死
손 찾아 올 땐 욕 가운데 영화로세 / 賓從來時辱裏榮
병중에 고인 생각하니 부질없이 눈물 나고 / 病憶故人空有淚
어진 임금 생각하니 정답기 그지없네 / 老思明主若爲情
가령 이 몸이 거친 이 땅에서 죽는다면 / 假敎身斃南荒地
백골을 그 누가 거두랴 / 白骨何人拾取行
○우연히 읊어 관료(官寮)에게 보이다
공황도 이인은 아니야 / 龔黃非異人
힘써 배우면 이를 수 있으리라 / 力學行可到
다만 천성이 워낙 성글기에 / 但緣天性疏
두각이 오래도록 나타나지 못했소 / 稜角久未露
달게 먹고 잠 잘 자고요 / 甘食與安眠
백성의 송사는 까마귀 울음 소리에 맡겼네 / 民訟任鴉噪
일찍 그 완악함을 벌하지 않았고 / 不曾罰其頑
그 도둑도 꾸짖지 않았소 / 亦不詰其盜
누각에 누워 한가히 노닐면서 / 臥閣自逍遙
술 있으면 곤드레 취하였네 / 有酒卽醉倒
인정이 각각 같지 않으니 / 人情各不同
늙어서 망녕했다 말하지 마오 / 莫道老而耄
잔민을 급하게 다스리기 어려우니 / 殘民難急理
무애할 뿐 폭력을 써서는 안 되리 / 可撫不可暴
[주D-001]공황(龔黃) : 한(漢) 나라 때의 순리(循吏)인 공수(龔遂)와 황패(黃霸)를 말하는데,
모두 선정으로 이름이 높았다.
○내가 일이 있어 수안현(守安縣) 서화사(西華寺)에 도착하여 상방(上方) 남영(南榮)에서 간단히
술을 한잔 마시고 강산을 멀리 바라보니 이곳보다 나은 곳이 없었으나 지대가 깊숙하고 길이
외져서 유람하러 오는 자가 드물었기 때문에 시를 남긴 사람이 없었으므로 주지 노장이 시를 청
하기에 한 편을 남긴다.
(予以事到守安縣西華寺。小酌上方南榮。江山遠眺。莫有過兹者。然以境幽路僻。來遊者盖寡。
故無有留題。住老請詩。爲留一篇。)
겹겹 산봉우리 마을을 둘러 / 遶村多複嶺
흐르는 물 바라볼 곳이 없는데 / 無處望長流
삼연사에 올라 있으니 / 賴有三椽寺
백 길 누각에 오른 듯하네 / 如登百丈樓
섬이 자잘하여 주먹만큼 작고 / 島微侔握小
배는 멀어 뜬 술잔 같구나 / 船遠似杯浮
눈을 다하니 천리가 통하고 / 目極通千里
마음 초연해라 십주에 걸터앉았네 / 心超跨十洲
신은 이 땅을 남몰래 아껴왔는데 / 神慳玆地祕
하늘은 우리를 놀도록 허락하였네 / 天許我曹遊
안개 끼어 장기는 농후하고 / 瘴重因蒸霧
소를 끼어 숲은 그윽하도다 / 林幽賴挾湫
저문 구름은 비가 들어 어둡고 / 暮雲將雨暗
가을 과실은 서리 맞아 부드럽네 / 秋菓得霜柔
별천지의 경치를 얻어 보니 / 領得壺中景
얽매인 세상사를 몽땅 잊었도다 / 都忘世上拘
다만 손이 오지 않았기에 / 但緣無客到
남겨 놓은 시를 볼 수가 없네 / 不見有詩留
어느 때나 벼슬을 그만두고 / 何日抛腰印
한가로이 저 갈매기와 친해 볼까 / 閑來正狎驅
○충원(忠原)의 서기(書記) 최인공(崔仁恭)과 자연도(紫鷰島) 제물원정(濟物院亭)에서 놀며 판상
(板上) 제공의 운을 따서 시를 짓다
한 강의 경치 값으로 논할 수 없는데 / 一江無價景
몇 채 정자 강을 굽어보고 있네 / 數棟壓流亭
저문 해는 누르고도 붉고 / 落日能黃赤
밀어닥치는 파도는 희고도 푸르구나 / 奔濤互白靑
해신이 강한 세를 가졌으니 / 海神剛挾勢
물귀신이 어찌 대항하리요 / 何伯詎分庭
점점 멀어져 - 원문 3자 빠짐 - / 漸遠□□□
- 원문 1자 빠짐 - 그 모습 수형과 어울리네 / □容與水形
○최 서기(崔書記)가 화답하므로 다시 네 수를 짓다
어느 곳이 내 뜻에 마땅한고 / 何處宜吾意
평생에 다만 이 정자로세 / 平生只此亭
나그네 머리는 조수와 같이 희고 / 客頭潮共白
- 원문 3자 빠짐 - 함께 푸르러 / □□□同靑
경치가 좋아 방장산을 옮겨 놓은 듯 / 境勝移方丈
사람은 순박하여 대정씨 시절 같네 / 人淳復大庭
수많은 경치 담아 놓은 자네의 시 / 子詩收萬景
- 원문 1자 빠짐 - 어쩌면 그리도 표현이 알맞은지 / □似鏡傳形
입택에서 놀 때보다 널따랗고 / 豁於遊笠澤
얼근하게 도리어 난정에서 취하네 / 酣却醉蘭亭
선도는 오두에 푸르고 / 仙島鼇頭碧
오랑캐 하늘은 나는 새 밖에 푸르렀네 / 蠻天鳥外靑
고기잡이 등불은 먼 갯가에 밝고 / 漁燈明極浦
중 발자국 소린 빈 뜰에 들려오네 / 僧屧響空庭
지나던 손 시 속에서 알겠으니 / 過客詩中識
무엇하러 꼭 만나리요 / 何須面對形
방랑하는 몸이 목도에 머물다가 / 蕩身停木道
눈이 확 트인 강정에 오르네 / 豁眼上江亭
해오리는 흰머리를 들고 / 鷺頂翹垂白
오리는 물에 목을 씻네 / 鳧翁引濯靑
시감(時鑑)에 “오리가 그 옹(翁)을 끌어 씻는다.” 했는데, 옹(翁)은 목[頸]이다.(時鑑曰。
鳧引濯其翁。翁。頸也。)
조수 소리는 빈 집에 은은하고 / 潮聲殷虛廡
산록(山綠)은 깊숙한 뜰에 방울지네 / 山翠滴幽庭
이 아니 진인이 머무를 곳이랴 / 莫是眞人住
16성상(聖像)이 있다.(有十六聖像。)
무엇하러 번거롭게 지형을 점치는고 / 何煩卜地形
지대 높으니 바다를 굽어본 것 같고 / 地高猶壓海
생각이 교묘하니 다시 정자를 세웠네 / 心巧更營亭
먼 섬 인가의 연기는 희고 / 遠島人煙白
깊은 숲에 귀화는 푸르구나 / 深林鬼火靑
고기는 병혈에서 구함직하나 / 魚堪求丙穴
거위야 어찌 황정에 허비하리요 / 鵝豈費黃庭
이 풍경 화가에게 보여서 / 莫使畫家見
내 여윈 형상까지 그리게 하지 말라 / 幷描我瘦形
[주D-001]방장산(方丈山) : 해중에 있는 산 이름. 곧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 봉래(蓬萊)ㆍ
방장(方丈)ㆍ영주(瀛洲))의 하나이다.
[주D-002]대정씨(大庭氏) 시절 : 대정씨는 상고(上古) 시대 제왕(帝王)의 호. 혹은 염제신농씨
(炎帝神農氏)의 별호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아주 태평세대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주D-003]입택(笠澤) : 중국 태호(太湖)의 이명(異名). 태호는 매우 넓은 호수로 입택 또는
동정호(洞庭湖)라고도 한다.
[주D-004]난정(蘭亭)에서 취하네 : 진(晉) 나라 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 3월 3일에 당시의
명사들이 난정에 모여서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계연(禊宴)을 베풀고 시를 읊으며
노닐었던 것을 뜻한다.
[주D-005]오두(鰲頭) : 큰 자라의 머리에 얹혀 있다는 바다 속의 산 즉 오산(鰲山)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신선이 산다고 한다.
[주D-006]귀화(鬼火) : 어두운 밤 음습한 땅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괴이한 불. 인화(燐火) 따위이다.
[주D-007]병혈(丙穴) : 가어(嘉魚)가 나는 동혈(洞穴)의 이름. 중국 대병산(大丙山)의 동혈(洞穴)
이다. 좌사(左思)의 촉도부(蜀都賦)에 “좋은 고기가 병혈에서 난다.”
한 주에 “병(丙)은 지명인데, 여기에 고기가 나는 두 개의 동혈이 있다.” 하였다.
[주D-008]거위야……허비하리요 : 황정(黃庭)은 곧 《황정경(黃庭經)》의 약칭.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산음(山陰)의 도사(道士)에게 《도덕경(道德經)》을 써 주고 거위와
바꿨던 사실을 말하는데, 여기서 《황정경》이라 한 것은 당(唐) 나라 이백(李白)이
하지장(賀知章)을 송별한 시에 “산음 도사와 서로 만난다면, 응당 황정경 써 주고
거위와 바꾸리.[山陰道士相見 應寫黃庭換白鵝]”라고 하여 왕희지의 고사를 잘못 인용한
것을 또다시 인습한 것이다. 《晉書 卷80 王羲之傳》
○요우(療友) 제군과 명월사(明月寺)에서 놀다
거친 개암나무 헤치기 어려우나 / 荒榛撥難開
돌길은 조금 평평하고 넓도다 / 石徑少平曠
말에 내려 걷다가 엎어져 / 下馬行且顚
내 석자 지팡이가 부러졌네 / 折我三尺杖
박쥐는 사람에 익숙지 않아 / 幽鼯不慣人
우뚝 서서 멍하니 있네 / 拱立形惘惘
주린 호랑이 너는 으르렁대지 말라 / 飢虎爾莫嗥
나의 소신은 충과 신뿐이란다 / 忠信吾是仗
나무 끝에 아련히 절이 서 있고 / 木末得招提
가옥은 암벽에 의지하였네 / 架屋依巖嶂
어떤 사람이 그 이름을 지어 / 何人命其名
명월이라 표방하였나 / 明月以標榜
장차 달같이 마음을 맑히고자 함이지 / 欲將月澄心
어찌 달을 바라보려고만 해서겠는가 / 豈爲月可望
장실은 누보다 높아 / 丈室高於樓
멀리 넓은 창해를 굽어보네 / 逈壓蒼海廣
예부터 하늘에 오르기 어렵다 들었는데 / 舊聞天難昇
홀연히 하늘 위에 올랐구려 / 忽已在天上
물빛은 저 멀리 희고 / 水色遠逾白
서리는 베를 펴 놓은 듯 일색으로 깔렸네 / 霜練鋪一樣
검은 구름과 갠 놀은 / 陰雲與霽霞
경각에 천태 만상 짓누나 / 頃刻千萬狀
큰 배가 창파 가운데 떠가니 / 大舶點波心
가볍기가 마치 갈매기 모양일세 / 麽若輕鷗漾
어부에게 한 말 부탁하노니 / 寄語漁舟子
유의하여 상앗대를 저으소 / 着意好搖槳
너의 한유하는 형상을 / 將爾閑遊形
나의 시에 넣어 견주리라 / 入我詩比況
슬프다 내 사무에 몰두하여 / 嗟予醉簿書
맑은 감상 저버린 지 오랠세 / 久矣負淸賞
이 고을 온 지 이 년이 되었으나 / 到郡侵二年
아직 이곳을 한가로이 찾지 못했네 / 尙未此閑訪
오늘 아침에 말 타고 오니 / 今朝駕言來
크게 숙원을 이룩했도다 / 大副夙心想
청컨대 그대는 다시 머물게 / 請君更留連
여기야말로 하늘이 준 곳일세 / 此是天所餉
[주D-001]장실(丈室) : 사방이 한 발쯤 되는 방. 옛날 유마거사(維摩居士)의 거실이 사방 한 발
이었던 데서 비롯한 것인데, 전하여 화상(和尙)이나 국사(國師) 등 고승의 처소로 일컬
어진다.
○송 문학(宋文學)에게 차운하다
놀라운 묘어는 신작(神作) 같은데 / 驚人妙語似神施
어인 일로 과거(科擧)에 원한을 품었는고 / 何事含寃桂樹枝
임금 곁에서 학사에 참여함이 합당하거늘 / 正合帝居參學士
부질없이 오랑캐 고을 계몽에 수고하네 / 謾勞蠻郡誨癡兒
매양 보건대 붓 물결 천 길 파도가 출렁인 듯했건만 / 每看筆浪千尋洶
깊이 한하노라 공들여 모은 산에 흙 한 삼태기 모자랐군 / 深恨功山一簣虧
교장이 방관하니 그 누가 대신 깎을까 / 巧匠傍觀誰代斲
유분이 낙방하니 그때 사람들 슬퍼했다네 / 劉簧不第爲時悲
[주D-001]유분(劉蕡)이 낙방 : 당(唐) 나라 유분이 현량대책(賢良對策)에 응시했을 때 그의 문리
(文理)는 매우 준발(俊拔)하였으나 환자(宦者)들의 비방으로 인해 시험관이 환자를
두려워하여 그를 낙방시킨 고사이다. 《唐書 劉蕡傳》
○조강(祖江)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처자를 송별하다
아내 떠나고 남편은 머무르니 이 무슨 연유인가 / 婦去夫留是底由
너 나를 속박치 않건만 난 죄수 같구나 / 嬭無拘迫我如囚
배는 가고 사람은 멀어지니 마음도 따라가고 / 舟將人遠心隨去
바다는 조수를 보내오니 눈물이 함께 흐르네 / 海送潮來淚共流
한 강만이 막혔건만 물결은 넓고 넓어 / 只隔一江波浩浩
도리어 천리 길인양 유유도 해라 / 却同千里路悠悠
지척의 곡산을 가지 못하니 / 鵠山咫尺身難到
말 위에서 짐짓 졸며 머리 돌리기 겁내네 / 馬上佯眠怯轉頭
○만일사(萬日寺)에서 요우(寮友) 제군이 부로(父老)를 위하여 성전(聖殿)에 재(齋)를 올리고
이어 술자리를 벌여 위로하기에 사례하다
제공이 노생을 기억하고는 / 多謝諸公記老生
진심으로 향 올리고 곡식 시주함을 감사하노라 / 心香信粒叩禪扃
잇달아 항아리에 가득한 익은 술 불러 놓고 / 仍呼蟻泛盈壺酒
함께 화려한 망해정에 올랐네 / 共上翬飛望海亭
먼 포구에 떠가는 돛배는 누워서 보내고 / 極浦歸帆欹枕送
석양의 어적 소리는 잔 잡고 듣는구나 / 夕陽漁笛把杯聽
동료의 후한 정에 술 어이 사양하랴 / 同寮情重那辭飮
취하고 나니 느꺼운 눈물 금하기 어렵네 / 醉後難禁感涕零
○분행역(分行驛) 판상운(板上韻) 억구(憶舊)에 차하다 갑자년에 기생을 데리고 이 누에서 연회
를 열었다.
황니벽 뒤에 옛날 지은 시가 / 黃泥壁後昔留詩
마멸하여 자취 없어서 기억할 수 없구려 / 漫滅無蹤莫記思
양류는 아직도 그때 걷던 길에 드리우고 / 楊柳尙垂曾去路
강산은 오히려 옛적 놀던 때 같네 / 江山猶似舊遊時
젊은 아가씨 어디 있느뇨 공연한 추억일 뿐 / 靑蛾安在空追憶
백수에 거듭 오니 은연히 슬프기만 해 / 白首重來但暗悲
부절 갖고 뒷날 오게 된달지라도 / 持節他年雖得到
누에 오를 근력이 먼저 쇠할까 염려로세 / 上樓筋力恐先衰
○양재역(楊梓驛)에서 판상운(板上韻)에 차하다
황당에 앉아 휘파람 불며 세월 보내는데 / 黃堂坐嘯費星霜
땅이 좁아 춤추는 옷자락 돌리기 어렵네 / 地窄難廻舞袖長
직성만을 고수하고 허식을 버리니 / 但把直誠除外飾
어찌 얼굴에 요사스런 화장을 할까보냐 / 那將素面假妖粧
의상은 남루하여 몸에 채색이 없고 / 衣裳藍縷身無彩
나그네의 기 펄펄 날려 길에 빛나네 / 征旆悠揚路有光
좌천된 잔성의 초췌한 객이 / 左宦殘城憔悴客
오년 전에 조서 맡은 궁궐의 낭관이라오 / 五年司詔紫微郞
[주D-001]황당(黃堂) : 태수(太守)가 거처하는 청사(廳舍)를 가리킴. 옛날에 태수 청사의 벽을
자황(雌黃)으로 바른 데서 연유된 것이다.
○다시 모정(茅亭)에 놀며 황보 서기(皇甫書記)의 운에 차하다
이공의 의장(意匠)으로 모정을 지어 / 李公心匠構茅亭
태수(太守) 이실충(李實忠)이 지었다.(李大守實忠所構。)
성하에 올라서 서늘함과 맞서네 / 盛夏登臨敵馭冷
연기 묽으니 멀리 푸른 내를 가리지 않고 / 煙淡未遮川遠碧
햇볕 뜨겁건만 푸른 수목 깊은 곳엔 범하지 못해 / 日炎難犯樹深靑
헌함 앞산은 병풍 속에서 본 것 같고 / 檻前山似屛中見
자리 밑에 샘물 소리는 배 밑에서 들은 것 같네 / 座下泉如舸底聽
선문에게 읍하니 소매를 당기는 것 같아 / 長揖羨門堪挹袖
신선되어 하늘에 오르지 않고도 영이 통했네 / 不因羽化亦通靈
[주D-001]선문(羨門) : 옛날 선인(仙人)인 선문자고(羨門子高)를 말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일찍이 동해(東海)에 노닐면서 선인 선문의 무리를 찾았다 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동파(東坡)의 임준성(任遵聖)에게 조곡하는 시운을 따서 대간(大諫) 이미수(李眉叟)에게 조곡한
황보 서기의 운에 차하다
선비는 마땅히 사람을 골라 사귈 것이요 / 士當擇人交
반드시 어른 아이 논할 건 없어 / 不必論少長
제자 안회가 죽자 / 門弟顔回死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쳤다고 일컬었네 / 孔子稱天喪
하물며 공은 참된 나의 스승으로 / 況公眞我師
예법으로 나의 방종을 바로 잡았음에랴 / 禮法繩吾放
언감인들 무례하게 대하랴 / 不敢狎而媟
장인으로 섬겨 왔다오 / 事以丈人行
공이 나보다 10여 세가 많다.(公長我十餘年。)
내 옛날 더벅머리 시절에 / 我昔始垂髫
공은 그때 한창 장년이었네 / 公時年方壯
내가 장년이 되니 공은 벌써 쇠로하여 / 我壯公已衰
귀밑털 희끗희끗했었지 / 片雪黏鬢上
처음 죽림회에 가 뵈니 / 始謁竹林會
이 모임은 군중의 당이 아니라 / 此會群不黨
공과 조(趙)ㆍ함(咸)ㆍ오(吳) 등 여섯 분이 죽림회를 만들었다.(公與趙,咸,吳等六君。
爲竹林會。)
나를 말석에 참여시켜 / 容我預其末
글 싸움에 편장을 임명하셨네 / 文戰補偏將
내가 여러 번 칠현회(七賢會)에 참여하였다.(予屢參七賢會。)
이때부터 점차 연령의 차이를 잊고선 / 自爾漸忘年
사림의 비방을 흔히 받았지 / 多負士林謗
육군이 다 명부(冥府)에 이름 적히고 / 六君皆鬼錄
서로 잇달아 황천객이 되었지만 / 相繼歸黃壤
공은 홀로 칠십 세가 넘었기에 / 公獨頗耆壽
바야흐로 재상의 희망이 있었는데 / 方有三台望
오늘 또 관을 닫으니 / 今日又盖棺
뜬 영화 참으로 일순간이로세 / 浮榮眞一餉
천리 밖 부음을 들으니 / 千里聞訃音
어느 날 장사하는지 모르겠구나 / 未識何日葬
동으로 바라보고 길게 곡하니 / 東望哭聲長
층층 구름은 청장을 어둡게 하네 / 重雲暗靑嶂
상자 열고 유편을 보니 / 披篋得遺篇
완연히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듯 / 宛如珠在掌
다만 내 삼십 년 동안이나 / 但愧三十年
끝내 선생의 국량 엿보지 못함이 부끄러워 / 竟莫窺宇量
생사가 이미 다른 길이 되었으니 / 生死殊已途
단대를 어느 곳에 찾으리 / 丹臺何處訪
간략한 제수나마 차려드리지 못하니 / 行潦猶未羞
허허 크게 불초한 이몸이로구나 / 咄咄大無狀
[주D-001]단대(丹臺) : 선인이 있는 곳. 자양진인(紫陽眞人) 주계도(周季道)가 선인 선문자
(羨門子)를 만나 장생결(長生訣)을 물으니 선문자가 말하기를 “이름이 단대의 석실
(石室) 안에 있는데 왜 선인이 못 됨을 근심하는가.” 했다는 고사이다.
《列仙傳 卷二》
○상궐(上闕)에 임하여 다시 요우와 모정(茅亭)에 놀며 붓을 달려 쓰다 군을 맡은 지 2년 늦여름
에 기거주(起居注)로 부름을 받았다.
안석이 동산에 있을 때 / 安石在東山
들놀이에 반드시 기생을 데리고 갔었지 / 遊賞必携妓
본래 뜻이 창생에 있었기에 / 雅意在蒼生
끝내 창생을 위해 일어났네 / 終爲蒼生起
난 사공 같은 재주는 없고 / 我無謝公才
다만 산수를 사랑할 뿐이네 / 但愛山與水
경륜을 어찌 감히 기약하리요 / 經綸安敢期
도처에 즐거운 일 다했네 / 到處窮樂事
기생이 있어도 감히 부르지 않고 / 有妓不敢麾
술이 있으니 취함을 사양치 않네 / 有酒不辭醉
계양 어느 곳이 아름다운고 / 桂陽何處佳
다만 이 모정뿐일세 / 獨此茅亭耳
물이 정자 밑으로 지나가니 / 水從亭下過
흔들리는 산색이 난간에 비치네 / 映檻搖蒼翠
나는 듯한 그림 배 하나 / 飄如一畫舫
연파 속에 떠 있구나 / 浮在煙波裏
삼복이라 쇠가 녹을 지경인데 / 三伏正流金
찬물은 사람의 이를 얼게 하네 / 寒漿凍人齒
이곳이 아직도 마음에 연연한데 / 此境尙懸心
부르는 조서 대궐로부터 내려왔네 / 徵詔從天至
떠날 때 백 번이나 머리 돌리지만 / 去時百廻頭
돌아가는 말을 어찌 채찍질하리요 / 歸馬那忍箠
뒷날엔 다시 놀 기회 없거니와 / 他日復遊無
혹 사신이나 되어 오게 될는지 / 儻作輶軒使
[주D-001]안석(安石)이……있을 때 : 안석은 진(晉) 나라 사안(謝安)의 자. 일찍이 회계(會稽)의
동산(東山)에 은거하면서 산수를 즐기며 조정에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晉書 卷79 謝安傳》
○칠월 이십오일 선법사(善法寺) 당두(堂頭)가 전별연을 열어 나를 맞이하고 시를 청하다
첫가을 더위가 아직 불과 같아 / 初秋暑熱尙如火
지붕에 닿는 불기운 기와를 부수네 / 徹屋炎光乾裂瓦
내 낮고 좁은 데 있어 어찌할 수 없기에 / 我居湫隘無可奈
다만 넓고 큰 집에 살았으면 하고 중얼거리네 / 但嚼渠渠居大厦
모시 적삼에 땀이 흘러 앉았기도 싫고 / 紵衫流汗慵閑坐
염교 자리에 몸이 붙어 오래 눕기도 짜증나네 / 薤簟膠身嬚久臥
홀연히 스님이 나를 청한단 말 듣고는 / 忽聞碧眼特邀我
성밖을 나와 서서히 조랑말을 모네 / 出郭徐驅果下馬
험한 숲 속에 떨어진 과실 밟고 가는데 / 傍樹崎嶇踏落菓
산새는 침 뱉는 소리에 놀라 날아가네 / 幽禽飛起驚人唾
누른 벼 이삭은 새우 수염같이 늘어졌고 / 已看黃稻蝦鬚嚲
참외는 삵괭이 머리같이 차례로 달렸네 / 更見斑瓜狸首亞
구름 안개 헤치고 평야를 나가 / 穿雲撥霧度平野
멀리 푸른 산 한 봉우리 바라보네 / 遙望靑靑山一朶
청산의 곡조 정사에서 다정스러운데 / 靑山之曲款精舍
금벽루 높이 솟아 사방으로 빛을 쏘네 / 金碧樓高光激射
우리 스님 계행은 천하에 고상한데 / 吾師戒行高天下
십홀같이 작은 방에 막 해하를 하네 / 十笏房中方解夏
우리들을 맘대로 놀라 허용하나 / 許容吾輩恣遊冶
탄솔한 풍금은 그대 같은 이 없으리 / 坦率風襟如子寡
큰 술잔으로 백 번 벌한들 내 어찌 두려워하리 / 百罰深杯吾豈怕
채전 소채 들나물도 술안주 됨직하네 / 園蔬野菜酒堪佐
취중의 광태를 뉘 꾸짖으리 / 醉中狂態誰復罵
종일 고함 질러도 목 쉬지 않네 / 終日叫呼喉不嗄
처음 와서 그냥 잠시 쉬고자 하였더니 / 初來但欲暫偸暇
미경이 점점 좋아 감자 씹는 것 같구나 / 美景漸佳如啖蔗
만약 내 조서 받고 조정에 들면 / 如予被詔朝天者
이같은 명산은 거의 볼 수 없으리 / 如此名山無幾過
다시 앉아 은근히 몇 잔 기울이니 / 更坐慇懃傾數斝
청풍 낭월이 진정 값으로 논할 수 없네 / 淸風朗月眞無價
스님이여 화나무로 불 놓지 마소 / 憑師愼勿爲燃樺
내 본래 낮은 좋고 밤은 싫다오 / 我本卜晝不卜夜
하물며 스님 모피로 맞지 않으니 / 況師不以毛皮迓
머물기 싫진 않으나 또한 돌아가야 하거니 / 留之不惡歸亦可
떠날 때 한번 웃으면 됐지 무엇하러 사례하리 / 臨行一笑何須謝
[주D-001]십홀(十笏) : 홀을 열 개 넣을 정도의 넓이. 홀은 속대(束帶) 시에 허리에 꽂는 수판
(手板). 등운재(鄧雲齋)의 수옥재부(漱玉齋賦)에 “가만히 보니 네 벽 뿐이요,
헤아리니 십홀이 차지 않네.[窺之止存四壁 量出不滿十笏]” 하였다.
[주D-002]해하(解夏) : 중이 7월 15일 또는 8월 15일에 여름 동안 안거(安居)했던 제도를 풀고
출유기(出遊期)에 들어감을 말한다.
○고을을 떠나면서 시를 지어 전송객에게 보이다
태수가 처음 올 때엔 / 太守初來時
부로들이 도로를 메웠고 / 父老夾道邊
그 사이 부녀자들도 / 其間婦與女
머리 나란히하여 울타리에서 엿보았네 / 騈首窺蘺偏
내 모양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 非欲苟觀貌
은혜를 얻고자 원함이었지 / 庶幾沐恩憐
이 고을 와서 만약 혹독히 하였다면 / 到郡若酷暴
그 눈을 씻고자 하였으리라 / 其眼願洗湔
내 생각건대 아무 일도 한 것 없어 / 我今理無狀
떠나려 하니 와전(瓦全)이 두렵네 / 欲去畏懷甎
어찌하여 길을 가로막는고 / 胡爲尙遮擁
가는 수레 앞에 누우려는 듯 / 似欲臥轍前
잘 가리니 멀리 따라오지 말라 / 好去莫遠來
내 행차 닫는 냇물처럼 빠르네 / 我行疾奔川
너의 고을이 나를 괴롭게 하여 / 爾邑誠困我
두 해가 백 년 같구려 / 二年如百年
○서울에 들어와 짓다
남쪽 고을로 좌천되어 슬프기만 하더니 / 南州左宦稍堪嗟
서액에 다시 오니 오히려 자랑스럽네 / 西掖重來尙可誇
사람마다 좋은 일이라 기뻐하면서 / 好事人人皆說道
중서문하가 그대의 집이라 하네 / 中書門下是君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