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뷰티풀 선데이
이 홍사
라비니!
버마어로 보름날이란 말이다.
영어로는 풀문데이(에프가 어디 있더라? 어 여기 있군.)
fool moon day 이렇게 자판을 더듬어서야.......
달이 꽉 찼다는 말인데
버마어로는 ‘라’가 달이라는 말이고 ‘비’가 꽉 찼다는 뜻이고 ‘니’는 날짜를 말한다. 그렇게 조립해서 라비니! 보름날을 지칭하는 것인데 지독한 불교국가라 보름날은 달력에 빨간 날이다. 모두 절에 가라고 쉬는 날인데 오늘이 보름날이고 토요일이라 사흘을 내리 쉬는 연휴다. 월요일은 버마의 독립영웅 아웅산장군의 서거일이라 쉬는 날이다. 보름만 되면 모두 들떠있는 나라인데 오늘은 연휴시작이라 유독 심하다. 아침을 먹고 운동 삼아 바람 쐬러 잠깐 나갔었는데 재래시장조차도 조용했다. 어제 그렇게 북적거리던 시장조차도 모두 절에 가고 한산했다. 재래시장에는 보름 전이면 꽃장사가 판을 친다.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기 위해 모두들 꽃을 한 아름씩 사가고 파고다 입구마다 꽃 가게가 줄을 지어 있다. 소승불교라 집집마다 불단이 있고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거기에도 늘 꽃이 있다.
매니저인 때쑤, 역시 절에 간다고 오늘 나오지 않았고 취사담당인 퓨퓨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어제 고향으로 갔는데 장례를 치르고 돌아올 것이다. 청소 담당인 캉카이는 바람이 난 게 확실하다. 어제 아침에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고 나가서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라면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서 먹었다.
혼자 쓰는 이층에는 적막이 감돈다.
아! 이 버마라는 이역만리에 와서 집이나 지키는 개꼴이 되는구나.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시계를 본다.
오늘따라 시간이 더디다.
점심도 또 라면을 끓여먹어야 하나? 식욕도 없는데 거를까?
버마가 1989년 국명이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미얀마보다 버마란 국명이 더욱 친숙하다. 어릴 적에 축구에 열광하는 버마와 한국전을 여러 번 보았지만 정작 버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3년도이다. 그해 시월 나는 만기전역을 거의 보름쯤 앞두고 있던 일요일이었다. 왕고참을 넘어서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할 열외병력이라 후임들도 방위병들도 열외병력인 나를 예비군 대하듯 했다. 아침도 먹으러 취사장에 가지 않고 방위병이 가져다주는 밥을 내무반에서 먹고 종일 누워서 시간만 죽이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그날은 일요일이라 후임들이 정성들여 관물 정리해놓은 모포를 빼서 다리를 걸치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내무반 텔레비전 앞에 누워 곧 나갈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내무반 한쪽에서는 막내인 후임이 내가 입고 나갈 예비군 군복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어느 방위병이 세탁소에 가서 내 몸에 맞게 줄여왔고 한 번 빨고 다림질 하고 또 한 번 빨고 다림질해서 어색하지 않게 물을 빼는 과정인데 국방부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그 옷에 후임들이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복무기간 31개월이 넘어서고 그 옷을 다림질하는 것만 봐도 참 보기 좋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침상에 느긋하게 누워 텔레비전의 정규방송을 보고 있는데 브라운관 하단에 속보의 자막이 떴다. 버마 아웅산 테러 폭발 이라는 글귀였다. 그 글귀아래 실제상황입니다, 라는 글이 다시 올라왔고 나는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시에 대통령이 동남아 5개국 중에 가장 먼저 버마를 순방 중이라는 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이게 뭐야?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곧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나왔다. 수행원과 현지 관료를 비롯해서 70명 정도의 사상자가 났는데 대통령은 무사하고 북한의 소행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전역 특명이 연기될 것으로 생각했다. 일요일이라 소대장은 외출하고 없었다. 나는 어수선한 내무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동작 그만! 모두들 완전군장 꾸리고 대기해.
내 경직된 목소리에 어수선한 내무반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때 상황으로는 나도 열외병력이 될 수가 없어 완전군장을 손수 꾸렸다. 군장을 꾸리며 텔레비전을 보니 대통령은 전용기를 타고 귀국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버마가 어디에 붙은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기다리는 전역특명이 연기될 것을 생각하니 앞이 막막했다.
그날 꾸린 완전군장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풀지 못했다.
연락을 받은 소대장이 급하게 복귀하고 우리는 명령이 하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 특전사 요원 오십여 명이 테러사건이 터지기 일주일 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준전시 상황이었다. 합참의장을 비롯한 한국 수행원과 현지관료 등 21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의 부상자가 났다는 정확한 보도는 다음날 접했다.
우리 출동대기 중대에 하달된 명령은 형제도를 수색하라는 것이었다. 형제도는 대마도에서 가까운 작은 무인도다. 형제도까지가 우리의 영역이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작은 두 개의 섬인데 너무 닮아있어 형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완전군장을 갖춘 우리는 태종대에 도착한 장갑차나 탱크를 싣는 바지선을 타고 새벽에 형제도로 출발했다. 헌데 이놈의 배가 얼마나 느려 터졌는지 겨우 이십 마일 좀 넘는 형제도에 도착하니 점심나절이 훌쩍 넘었다. 뱃멀미에 녹초가 된 중대원도 있었지만 점심도 먹지 않고 두 개조로 나누어 작은 섬을 수색했다. 개미새끼라도 보이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우리의 기세를 등등하게 했다. 억새가 우거진 섬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특별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안에서 늦은 점심으로 전투식량을 먹고 지루한 배안에서 버마에 대해 얘기를 했다. 후임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놈의 버마 때문에 전역이 늦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그 놈의 버마 때문에 말년을 기구하고 비참하게 보낸다고 생각했다.
밤 열 시가 넘어서 중대에 도착하니 중대원들은 거의 뱃멀미에 시달려 눈이 퀭해졌다. 국방부에서 나온 밥과 식어서 뻑뻑한 기름기가 둥둥 뜬 소고기국이 취사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녁을 먹은 중대원은 몇이 되지 않았다. 취침점호도 없이 인원만 파악하고 출동대기 중대라 군화도 벗지 못하고 침상에 거꾸로 누워 완전군장을 베고 잤다. 내가 입고 나갈 예비군 군복은 어디에 처박혔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떨어지는 가랑잎도 조심하라는 시기에 군화를 일주일동안 벗지 못하고 침상에 거꾸로 누워 자면서 말년이 참으로 비참하다기보다는 버마를 원망했었다. 그 정도의 치안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그 놈의 버마, 그 놈의 버마
자다가 생각해도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보안교육에 참석하라는 통보가 왔다. 전역특명이 나왔다는 얘기다. 전역일자를 사흘 앞두고 있었다. 사단본부로 가서 보안교육을 받고 와서 군화를 벗을 수가 있었다. 후임들은 군화를 신고 거꾸로 누워서 자는데 나는 무장을 해제하고 군화를 벗고 바로 잘 수가 있는 열외병력이 되었다. 하룻밤에 한두 번씩 훈련 비상이 걸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내처 잤다.
그로부터 정확히 35년 후,
그렇게 원망하던 이 버마에 와서 집이나 지키는 개꼴이 될 줄을 그때는 꿈엔들 알 리가 있었으랴.
여긴 엄연히 버마다. 어쩌다 보니 이곳까지 흘러왔다.
바쁜 사람일수록 짬이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뒤집어 풀이하면 한가한 사람은 짬이 없다는 말이다. 짬이 없다. 너무 한가해서 다른 일을 생각할 짬이 없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한국에서는 금쪽같은 일요일이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평일이나 일요일이나 내 일상이 똑 같다. 어떻게 하면 내일을 즐겁게 보낼 수가 있을까?
아름다운 일요일!
어떻게 하면 뷰티풀 선데이를 만들 수 있을까?
뷰티풀 선데이라는 말을 생각하니 웃음이 쿡쿡 터져 나온다.
어릴 적 옆집 진수가 중학을 다니며 가장 많이 써먹은 말이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호국공원에 모셔졌지만 진수아버지는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오 학년이다. 하여 영어를 모르신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시는 게 아니라 빨래집게를 놓고 A자를 모르시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초등학교 오학년을 마치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나이를 불문하고 일본으로 끌려가서 육 년간 노역생활을 하시다가 구사일생 살아서 돌아오신 것이다. 돌아오시자 말자 군에 입대해서 한국전에 참전하시고 역시 구사일생을 목숨을 부지하셨다고 했다. 그분은 진수가 중학에 들어가서 영어를 한마디씩 하자 그렇게 대견해 하셨다. 자신이 못하는 것을 자식이 하자 대견스러워하셨던 것이다. 헌데 자식인 진수는 그 점을 악용했다.
당시에 농촌에는 돈이 귀했다. 중학을 들어가서도 한 달 쓸 용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학용품이 있으면 그때그때 받는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다 그런 식으로 용돈을 받았다. 한 달 치 용돈을 받는 아이는 면서기 아들인 명철이 밖에 없었다. 진수는 아침에 책가방을 들고서 자기 아버지에게 낭창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아버지 공책도 사고 노트북도 사야 돼요.
그래? 공책은 다음에 사고 노트북은 없으면 안 되지. 노트북이 얼마냐?
그런 식이었다.
다음날은 또 다른 이름을 대는 것이다.
아버지 도화지도 사야 되고 스케치북도 사야 돼요.
스케치북? 스케치북은 없으면 안 되지.
진수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주머니를 풀었다.
진수가 아는 학용품을 다 영어로 들먹이며 용돈을 타내고는 궁리를 하다가 어느 날은 급한 김에 뷰티풀 선데이를 사야한다고 돈을 받았다.
뷰티풀 선데이는 좀 비쌀 긴데?
예. 좀 비싸요.
진수아버지는 군말 없이 주머니를 풀었다. 거기에 재미를 들인 진수는 다음날은 뷰티풀 먼데이를 사야한다고 했다.
뷰티풀 먼데이? 어제 사지 않았냐?
아버지! 어제 산 건 뷰티풀 선데이고 오늘은 뷰티풀 먼데이를 사야 한다니까요. 아버지는 영어도 모르면서.......
아, 내가 착각했다. 그거 중요한 거지.
진수아버지는 또 주머니를 풀었다.
그 후로도 진수는 산 게 많았다. 그런 방법으로 해피 뉴이어도 샀었고, 해피 버스데이도 샀었고 잉글리시는 물론이고 하이스쿨도 여러 개 샀었고 심지어 유니버스디도 샀었다. 진수는 어눌한 발음으로 영어를 들먹이며 아버지의 뒤통수를 치면 쉽게 주머니를 열었다. 진수의 그런 수법은 중학교 이학년 말까지 통했고 지속되었다.
중학교 이학년 말이었을 게다.
어느 날 진수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진수 방에서 진수도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진수는 방문 앞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영어책을 읽는 소리 같기도 했고 영어로 웅변을 하는 소리 같기도 했는데 발음이 진수가 듣기에도 원어민 발음이었다. 방문을 벌컥 열어보니 진수아버지가 책상 앞에 앉아서 미리 받아놓은 삼학년 영어책을 줄줄 읽고 계셨다는 것이었다. 문을 벌컥 연 진수가 아버지임을 확인하는 순간 눈알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 진수는 바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굻었다. 진수의 꼬리뼈가 오그라드는 순간이었다.
웰컴 마이 썬. 엣뜨 스쿨 스터디 피니쉬? 야 진수야! 삼학년 잉글리시 북은 스토리가 베리 인터레스팅하구나.
꼬리뼈가 오그라들거나 말거나 진수아버지는 진수도 알아듣지 못할 영어로 능청스럽게 말씀하셨다. 뒤통수를 맞은 건 아버지가 아니라 진수였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진수는 울먹이며 사죄를 한 모양인데 진수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는 법이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용서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수아버지는 군복무 당시에 미군 보급창에 하사관으로 육 년을 근무하며 전쟁이 끝나고도 이 년이나 더 근무하시고 중사로 전역하셨던 것이다. 진수아버지는 빨래집게 놓고 A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국어를 비롯하여 일본어, 영어 삼개국어에 유창한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학교 앞 가게에서 두둑한 주머니를 흔들며 우쭐거리던 진수는 뷰티풀 선데이라는 혀가 꼬이는 별명이 붙었고 주머니가 얄팍해졌다.
생각하니 참 오래전의 얘기다.
그 후 뷰티풀 선데이는 그 일이 동기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여 지금은 부산의 어느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지금쯤 교감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뷰티풀 선데이와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다음에 들어가면 한번 찾아봐야겠다.
다 지나간 얘기고,
어떻게 하면 내일 뷰티풀 선데이를 만들 수가 있을까 고민이다.
바람이 나서 나간 캉카이를 기다리는 건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제 친구 결혼하는데 가서 신혼여행까지 따라간 것일까? 애기 못 낳는 년이 밤마다 태몽 꾼다고 시집도 못가는 년이 친구들 결혼식에 가서 뒤로 던지는 부케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도 제 친구 결혼식에 열 번도 넘게 갔었고 시든 부케를 열 번도 넘게 들고 들어왔었다. 한국 드라마 탓이겠지만 지금은 버마도 결혼식의 이벤트가 바뀌고 있다. 부케를 뒤로 던지는 법은 분명히 한류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라면은 시들하다. 그렇지. 주방에 찾아보면 누룽지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서 삶아서 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되겠다. 퓨퓨에게 누룽지를 가르쳐주길 잘했다.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곱게 씹히지도 않는 것이,
그곳이 제 자리인양 밥솥에 끈질기게 눌어붙어 변색된 것이
음식 반열에 들지 못하고 족보도 없는 것.
누룽지에 대해 얼른 정의를 내리자면 대충 이 정도다. 퓨퓨에게 누룽지를 설명할 적에 그렇게 말을 했었다. 누룽지를 들먹이니 생각난 건데 이런 누룽지가 이 나라에는 많다. 물론 긁어서 먹는, 밥솥의 누룽지가 아니라 누룽지에 비유되는 군상들이다. 박박 긁어서 개밥그릇에 던져주거나 개수통에 처넣어야 할 누룽지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손녀 같은 년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런 꼬락서니를 생각하면 누룽지 맛이 떨어질라. 말을 아끼자. 여기 붙어사는 놈도 마찬가지고 그런 놈에게 빈대 붙으러 온 족속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가는 한국 식당 여주인은 말했다. 현지처녀 임신시켜 데리고 오는 나이 먹은 작자가 제일 꼴 보기 싫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인간들이 꼴 보기 싫어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죽친다.
각설하고,
그럼 꼬리곰탕이란 무엇인가?
고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사골도 아닌 것이
쉽게 삶기지도 않는 것이
이름조차도 고상하지 못해 수라상에 오르지 못하는 상것.
꼬리곰탕 역시 정의를 내리자면 이 정도다.
엊그제 저녁에는 사흘간 가르쳐준 누룽지 삶은 것을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꼬리곰탕에 대해서, 아니 관해서 얘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식탁 앞에 서있는 취사담당인 퓨퓨가 꼬리곰탕을 이해를 하는지 궁금했었다.
누룽지를 가르쳐주는데 사흘이 걸렸다.
사흘에 걸려 가르쳐주니 잘 삶긴 누룽지탕이 저녁식탁에 올라왔다. 이 버마에서 누룽지탕이 식탁에 올라오는 것은 정말이지 밥상의 혁명이다. 노릇한 색깔의 누룽지탕은 구수한 게 고향의 맛이었다. 맛이 있어서 누룽지에 반주를 곁들였다. 소주 한 병을 가뿐하게 비울 수가 있었다. 누룽지와 소주가 궁합이 맞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입맛이 없을 적에는 누룽지를 삶아서 누룽지 한 숟갈을 먹고 젓가락으로 고추장을 찍어먹으며 입을 헹구는 방법도 괜찮다. 누룽지는 그래도 비교적 쉽게 가르쳐준 편이다.
김치를 가르칠 적에는 어땠는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한국마트에서 진공포장이 되어 날아온 김치를 맛보이고 인터넷으로 김치를 담는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찾아보고 재래시장에 같이 가서 김치를 만드는 재료를 사는 것까지는 무난했다. 헌데 인터넷에서 일러주는 방법과 순서대로 담았는데 맛은 영 아니었다. 뭔가가 부족하고 미진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배추를 한 아름이나 사서 담았는데 다 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실패가 두려워 두 포기씩 담아서 맛을 검증 했다.
한국에서는 김장을 할 적에 겨우내 먹을 양, 육십 포기, 백이십 포기 단위로 큰 독에 한가득 담았었다. 김장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재배로 농업이 발달하여 배추가 사철 나오기 시작하고 김치냉장고가 나오자 그렇게 김치를 담는 집이 없어졌다. 이제 한국에서 쉰 김치는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쉬어버린 김치는 김치전을 붙여 먹으면 맛있는데........
여기는 비닐하우스가 아니라도 배추가 일 년 내내 나오니 김장을 할 필요가 없는데 처음에는 못 모르고 배추를 한 아름이나 사서 어설프게 김치를 만들어서 버리고 두포기 단위로 사서 거의 한 달에 걸쳐 일곱 번의 반복실습으로 김치담기에 성공했다. 비결은 일곱 번째는 배추가 제대로 절여진 것이다. 김치를 담아서 이틀을 기다리다가 먹으면 아삭한 게 유산균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느낌이 든다.
퓨퓨가 이제는 김치를 담는데 도사가 되었다. 가끔 오는 지인들은 우리 집 김치 맛을 보고 환장을 한다. 퓨퓨가 돌아오면 꼬리곰탕을 시도해야할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소꼬리를 먹지 않는 모양이다. 예로부터 먹을거리가 흔한 나라라서 그런 음식이 개발되지 않은 모양이다. 재래시장 정육점을 지나다니다보니 꼬리곰탕 재료가 엄청 싸다. 손질해놓은 소꼬리 하나가 닭 한 마리 값이 되지 않는다. 몇 번은 실패를 하겠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시도해서 또 하나를 가르쳐 보자. 심심한데 인터넷으로 꼬리곰탕 만드는 방법을 찾아볼까?
꼬리곰탕을 만들었다가 또 꼬리곰탕만 질리도록 먹는 게 아닌가? 지난번에는 비빔국수가 맛있다고 했다가 질리도록 먹었다. 아침부터 비빔국수가 주식으로 식탁에 올라오는데 거의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밑반찬이라도 사흘을 연속으로 젓가락을 대지 않으면 다시는 식탁에 올라오지 않는다. 그게 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퓨퓨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다. 무엇을 잘 먹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물린 식탁을 보고 매일 파악하는 모양이다. 하여, 나는 먹는 방법을 나름대로 강구했다. 아무리 맛이 없는 반찬이라도 이틀에 한번은 먹은 표시가 나도록 손을 댄다. 편식을 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게 푸짐하게 방법 중의 하나다. 퓨퓨는 가끔 묻는다. 무얼 좋아하는지? 나는 대답한다. 내가 못 먹는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안 줘서 못 먹고, 없어서 못 먹는 것 말고는 다 먹는다고.
밥상을 놓고 퓨퓨와 신경전을 많이 벌이는 편이다. 그건 퓨퓨가 있을 때 일이고 오늘 점심은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고 누룽지를 삶아서 때워야겠다.
점심은 그렇게 해결하면 되는 일이고 어떻게 하면 내일을 뷰티풀 선데이를 만들 수가 있을까?
뷰티풀 선데이라........
버마는 무슨 연유인지 야시장이 없다. 야시장이라곤 차이나타운 거리에 있는 과일가게가 전부다. 동남아에 다 있는 야시장이 없는 이유는 군사정부에서 막았기 때문일 거다. 경제야 어떻게 되건 군사정권을 지속하기 위해서 외국인 오는 걸 꺼려했었다.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입국수속카드에 직업을 기자나 저널리스터라고 쓰면 입국 심사가 매우 까다롭다. 버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세계에 알려지는 걸 엄청 싫어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는 관광산업은 뒷전이다.
타이베이의 용산사 야시장. 태국의 파타야 야시장이 눈에 선하다. 밤새 자지 않고 돌아다녀도 볼거리가 있다. 거리에서 기묘한 마술이나 거대한 코브라를 볼 수가 있으며, 레즈비언들과 열대지방의 뱀으로 담은 술을 마실 수가 있는데 버마의 밤거리는 암흑이다. 저녁 여덟 시가 넘으면 완전히 암흑세계다. 시내 번화가에 나가도 마찬가지다. 두어군데 외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나이트클럽이 있지만 구경삼아 한번 가보고 혀를 내둘렀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발에 밟히는 게 술을 못 마시는 버마족들이 토해놓은 토사물이었다.
야시장! 말이 난 김에 파타야나 다녀올까?
태국은 노비자 국가다.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쉽게 다녀올 수가 있다. 비행기도 자주 있고 비행기 삯은 왕복으로 쳐도 한국의 담배 두 보루 값밖에 되질 않는다. 방콕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데 이곳에서 봉제공장을 하는 사람들은 버마의 은행을 믿지 못해 방콕의 은행을 이용하며 수시로 들락거린다. 아침비행기로 나갔다가 볼일을 보고 저녁비행기로 돌아오곤 한다. 비자조약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기에 있는 교민들은 버마에 최장 스테이가 10주, 그러니까 70일이다. 70일 이상 머물 수가 없어서 70일이 되면 한국으로 가지 않고 방콕으로 나갔다가 온다. 그렇게 나갔다가 오면 다시 70일을 머물 수가 있다. 여기 있는 교민들은 그렇게 나갔다가 오는 여행을 비자 클리어라고 명명한다. 버마 현지인들도 중요한 물건을 사거나 장을 보러 방콕으로 나간다. 물론 좀 살만한 사람에 국한된 얘기이지만 결혼 예물이나 예복을 구입하러 방콕으로 나가곤 한다. 그러니 나라꼴이 뭐가 되겠는가? 그건 이 나라사람들이 걱정할 일이고 나는 파타야에 가서 야시장 구경을 하고 집시처럼 돌아다니며 뷰티풀 선데이를 만들면 된다.
점심을 먹고 나갔다가 월요일 오후에 들어오면 집이나 지키는 개꼴에서 면할 것이다.
잠깐!
누가 문을 두드린다.
캉카이가 돌아온 모양이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이놈을 좀 호되게 나무라야겠다.
*******
캉카이가 아니라 새로 이사 온 옆집 노처녀다.
서른이 넘었지 싶은데 시집은 안 가고 엄마에게 빌붙어 산다. 그 위로 시집을 안간 언니가 하나 더 있다. 조혼하는 나라라 서른이면 노처녀가 아니라 할머니에 해당한다. 그런 노처녀 딸이 둘이나 있으니 옆집 할머니는 머리가 지끈지끈할 것이다. 버마는 모계사회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성이 없다. 그냥 이름뿐이다. 예컨대, 진뚜의 아들이 쏜모이고, 쏜모의 아들이 윈쟈모다. 그렇게 한집에 사는 경우가 드물다. 엄마의 이름이 태때이고 그 딸이 때쑤다. 또 때쑤의 딸은 빤비이다. 그렇게 모계로 구성원이 되어 한집에 사는 사람은 여럿 보았다. 옆집할머니에게도 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여자들만 셋이서 사는 집이다. 이 버마는 아들보다 사위를 더 가깝고 만만하게 생각하는 이상한 나라다. 내 아들이 아니라 결혼을 하면 사돈집의 사위가 되는 셈이다. 고종사촌은 얼굴도 모르고 이종사촌을 형제로 간주하는 나라다.
그런 촌수는 우리의 잣대로 가늠할 일이 아니고 옆집 처녀는 내일 집들이를 한다고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전갈을 수줍게 전했다. 아마도 퓨퓨나 캉카이가 나갈 줄 알았는데 이방인인 내가 나가니 좀 당황하는 눈치였다. 버마어와 영어를 혼합해서 집들이를 설명했고 나는 쉽게 의미를 알아들었고 그러겠노라고 전했다. 라비니가 끼인 연휴에 날을 잘 잡은 것 같다.
버마의 집들이는 우리와 다르다.
한국은 집들이를 술판으로 벌이며 대게 저녁에 하는데 여기는 아니다. 술은 아예 없다. 아침부터 하는데 스님들을 모신다. 스님들이 와서 법회를 먼저 한다. 그 동안 집들이에 온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지루한 법회에 동참한다. 법회를 마치고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 깨끗한 물을 묻혀 무슨 주문을 외며 집 구석구석 뿌린다. 그리고 스님들이 점심을 먼저 먹는다. 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집들이에 온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점심을 먹는다. 그게 한나절이다.
버마는 불교국가라 스님들이 특별대접을 받는다. 스님들이 타는 차량의 번호판 색깔마저도 다른 나라다. 일반인의 차량은 검정색바탕에 흰색 글씨인데 스님들의 차량은 노랑바탕에 검정색 글씨다. 교통경찰들도 길거리에서 근무를 하다가 번호판을 보고 거수경례 대신에 합장을 하는 나라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운전석 반대편의 맨 앞좌석은 스님 전용이다. 버스가 아무리 복잡해도 스님이 아니면 그 자리에 앉지 않고 비워둔 채 운행한다. 나는 언젠가 시내버스를 타고 멋모르고 그 자리에 앉았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정말이지 지독한 불교국가다. 지독함으로 따지자면 더 지독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기독교다. 이 불교국가에 와서 선교활동을 한다고 돌아다니는 한국의 목사나 선교사들은 더 지독하다. 아예, 체면은 몰수다. 한국의 지하철을 타면 그런 광신도를 가끔 볼 수가 있는데 여기선 더 심하다. 그걸 더 열거하면 괜히 열 받으니 그만하자.
내일 옆집 집들이에 가더라도 별로 먹을 게 없다. 밥에 고작해야 닭튀김이 전부일 거다. 그래도 초대를 받았으니 부조는 해야 할 것이다. 적당하게 넣어서 봉투를 하나 만들어야할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내일을 뷰티풀 선데이를 만들 수 있을까?
진수아버지께 뷰티풀 선데이를 산다고, 아니 만든다고 하고 여비나 좀 얻을까? 생각하니 뷰티풀 선데이를 두고 그분은 돌아가셨다.
점심을 대충 먹고 슬슬 공항으로 나가볼까?
예약 없이 나가도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는 언제나 좌석이 있다. 비행기도 자주 있고 방콕의 스완나품 공항이냐, 돈무항 공항이냐 그게 문제일 뿐이다. 돈무항 공항에 내리면 시내까지 거리는 짧은데 차가 엄청 밀린다. 파타야에 가려면 스완나품 공항에 내리는 게 편하다. 스완나품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중간에 고속터미널이 있다. 고속을 타면 파타야까지 한 시간 남짓, 저녁때면 파타야에 도착할 것이다. 작은 배낭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물 찬 제비처럼 날아가서 뷰티풀 선데이를 만들고 오면 되겠다. 야시장 거리는 내가 알기로는 저녁 일곱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 차량통행이 금지 되어 있다. 새벽 두 시쯤이 피크다. 야시장을 구경하면서 유럽이나 미주에서 온 배낭족 하나를 꼬아서 같이 느긋하게 맥주 한잔하고 그림 같은 파타야 해변의 벤치에서 잔잔한 바다를 품고 한숨자고, 호텔에 묵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방콕공항 면세점에서 양주 두어 병 잘 사면 공짜로 갔다가 오는 셈이 된다.
이야! 상상은 언제나 아름답다. 상상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자.
그렇게 하면 분명 뷰티풀 선데이가 될 것이다.
그렇다. 뷰티풀 선데이는 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어릴 적 진수는 허구한 날 뷰티풀 선데이를 샀지만 그게 아니다. 분명히 만드는 것이다. 언제 뷰티풀 선데이에게 연락이 닿으면 일러주어야겠다. 뷰티풀 선데이는 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누룽지를 끓이자.
잠깐! 점심보다 메일부터 검색해야겠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니 메일을 읽기도 전에 메인화면에 뉴스로 뜨는 타이틀이 있다.
이게 뭐야?
태국 뎅기열 확산 비상, 관광객 주의.
지금 방콕으로 날아가려고 했는데 고약한 타이틀이 발목을 잡는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송아지 물 건너갔다.
마음을 접자.
점심으로 누룽지를 끓여먹고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당구장이나 나가봐야겠다. 거기서 아는 인물을 만나면 당구나 한 게임하고 마땅한 상대가 없으면 커피를 마시며 만화나 뒤적이며 시간을 죽여야겠다.
내일 옆집 집들이에 가야 하나?
아! 물 건너 간 뷰티풀 선데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