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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여 류희강선생의 제자
송천 정하건선생 작품
《送沈秀才下第東歸》
賈島
曲言惡者誰,
悅耳如彈絲。
直言好者誰,
刺耳如長錐。
沈生才俊秀,
心腸無邪欺。
君子忌苟合,
擇交如求師。
毀出疾夫口,
騰入禮部闈。
下第子不恥,
遺才人恥之。
東歸家室遠,
掉轡時參差。
浙雲近吳見,
汴柳接楚垂。
明年春光別
回首不復疑。
도를 지켜 자기 잇속을 챙기지 않고
벗 선택은 스승 구하는 것과 같이 하여라.
홍콩의 페친 智行선생이 올린 글씨에서
封己가 해석되지 않아 네이버를 검색하니
두보의 장시
"상추를 파종하고"가 검색된다.
아래의 두보 시 해석은
생전에 나와 인터넷으로 교유했던
독서평론가 들돌 이현수 선생의
블로그에 남아 있는 글이다.
내 수필집
눈 내리던 밤을
읽고 따뜻한 평을 해주셨다.
고인의 치열한 공부를 보여주는 포스팅이다.
한 달 전에 고인의 책이
생전에 독서를 함께한 분의 감수를 거쳐
출판됐다. 책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지만 선생도 기뻐하실 것이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다.
선생의 명복을 기원한다.
觀風齋의 漢詩舍廊
들돌
2016. 10. 30. 8:46
種萵苣종와거
상추를 심고 나서
杜甫
두보
序
서문
旣雨已秋, 堂下理小畦, 隔種一兩席許莴苣, 向二旬矣, 而苣不甲坼, 伊人莧靑靑.
기우이추, 당하리소휴, 격종일량석허와거, 향이순의, 이거불갑탁, 이인현청청.
가을비가 내린 뒤에 집 앞에 있는 조그마한 밭에 상추 씨를 뿌렸는데
스무 날이 지나도록 싹이 트지 않고 비름만 무성하였다.
傷時君子或晩得微祿, 轗軻不進, 因作此詩.
상시군자혹만득미록, 감가부진, 인작차시.
(그것을 보고) 군자가 다 늦게 변변찮은 자리를 얻은 것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상심하여 이 시를 짓는다.
陰陽一錯亂 음양일착란
驕蹇不復理 교건불복리
枯旱於其中 고한어기중
炎方慘如燬 염방참여훼
植物半蹉跎 식물반차타
嘉生將已矣 가생장이의
雲雷欻奔命 운뢰훌분명
師伯集所使 사백집소사
指麾赤白日 지휘적백일
澒洞靑光起 홍동청광기
雨聲先已風 우성선이풍
散足盡西靡 산족진서미
山泉落滄江 산천락창강
霹靂猶在耳 벽력유재이
終朝紆颯沓 종조우삽답
信宿罷瀟灑 신숙파소쇄
堂下可以畦 당하기이휴
呼童對經始 호동대경시
苣兮蔬之常 거혜소지상
隨事蓺其子 수사예기자
破块數席間 파괴수석간
荷鋤功易止 하서공역지
兩旬不甲坼 양순불갑탁
空惜埋泥滓 공석매니재
野莧迷汝來 야현미여래
宗生實於此 종생실어차
此輩豈無秋 차배기무추
亦蒙寒露委 역몽한로위
翻然出地速 번연출지속
滋蔓戶庭毁 자만호정훼
因知邪干正 인지사간정
掩抑至沒齒 엄억지몰치
賢良雖得祿 현량수득록
守道不封己 수도불봉기
擁塞敗芝蘭 옹색패지란
衆多盛荆杞 중다성형기
中園含蕭艾 중원함소애
老圃永爲耻 노포영위치
登於白玉盤 등어백옥반
藉以如霞綺 자이여하기
莧也無所施 현야무소시
胡顔入筐篚 호안입광비
음양의 질서에 차질이 생겨
해와 비가 제 갈 길을 따르지 않고
그 안에 혹독한 가뭄 들더니
더운 지방 참상이 불에 타는 듯하여
식물의 태반이 말라버리고
곡식들도 바야흐로 죽을 지경이네
구름과 벼락이 갑자기 바빠진 것은
비의 신과 바람의 신 부름 받은 것일 테니
햇빛이 하얘졌다 붉어졌다 바뀌고
구름 속에서는 푸른빛이 번쩍이며 일어나고
바람에 이어 빗소리가 들려오더니
흩어지듯 빗줄기가 서쪽으로 사라졌네
산에서는 샘물이 강물처럼 쏟아지고
벼락소리 한참이나 귀에 쟁쟁하더니
다음날 아침 바람이 유순해지고
이틀째 밤에는 비가 그쳐 산뜻해졌네
집 앞 밭을 가꾸기 좋을 때다 싶어서
어린 종을 불러서 밭을 만들기 시작했네
상추는 나무새 중에 대단찮은 것이라
편한 대로 씨를 뿌려도 되는 것이고
크지 않은 땅 흙덩이를 부수기 위해
호미질을 하는 것도 어렵지가 않았는데
스무 날이 지나도록 싹이 트지 않아서
진흙 속에 묻혔을까 괜한 걱정 했네
비름이 어떻게 여기로 와서
상추보다 잘 자라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들이라고 가을이 없겠는가 싶어서
가을 되면 찬 이슬에 시들 것이라 믿었는데
도리어 퍼지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마당까지 무성해져 길이 없어져버렸으니
삿된 것이 바른 것을 침범하게 되면
바른 것의 일생이 눌리는 것을 알게 되었네
어진 인재는 비록 벼슬길에 나아가도
도를 지켜 잇속을 차리려 하지 않으나
지초와 난초의 향기를 손상시키는 것은
주변에 많고 많은 가시나무들이니
농장이 잡풀에게 점령당한다면
농부에게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리라
백옥반 귀한 상에 올려놓거나
아름다운 비단보 위에 놓는다고 하더라도
비름은 쓰일 데가 없는 것인데
무슨 낯짝으로 광주리에 담을 것인가
▶ 莴苣(와거): 상추
▶ 甲坼(갑탁): 초목이 싹이 틀 때 씨의 외피가 벌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주역周易∙해괘解卦》에서 ‘天地解而雷雨作, 雷雨作而百果草木皆甲坼(천지가 풀려 벼락과 비를 만들고, 벼락과 비는 온갖 과일과 초목의 싹을 틔운다).’이라고 했다.
▶ 伊人(이인): 이 사람. 의중에 둔 사람. 《시경詩經∙진풍秦風∙겸가蒹葭》에서 ‘所謂伊人, 在水一方(내 맘에 둔 그 사람이 / 저쪽 물가에 있네)’이라고 했다.
▶ 莧(현): 비름
▶ 微祿(미록): 변변찮은 녹봉, 즉 미관微官을 가리킨다. 고숙사高叔嗣는 「答谷司僕見問」이란 시에서 ‘幸自返中園, 非關逃微祿(원래 있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 변변찮은 녹봉과는 상관없는 일이네)’이라고 읊었다.
▶ 轗軻(감가): 인생이 순탄하지 못하다. 곤궁하다. 길이 험하여 다니기 힘들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다. ‘輡軻’ 또는 ‘坎坷’로도 쓴다.
▶ 錯亂(착란): 뒤섞여 어수선해지다. 질서가 없다.
▶ 驕蹇(교건): 오만하다. 순순히 따르지 않다. ‘驕’는 햇빛이 사나운 것을, ‘蹇’은 빗물이 순탄치 않은 것을 가리킨다. 왕약허王若虛는 「攄憤」이란 시에서 ‘非存驕蹇心, 非徼正直譽(오만한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고 / 바르고 곧은 이름을 바라서도 아니다)’라고 읊었다.
▶ 枯旱(고한) 혹한酷旱, 즉 견디기 어려운 가뭄을 가리킨다.
▶ 炎方(염방): 남쪽의 더운 지방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은 「古風」이란 시에서 ‘怯卒非戰士, 炎方難遠行(병사들이 겁을 먹어 싸울 수 없고 / 덥기까지 한 곳이라 먼 길 가기 어렵네)’이라고 읊었다.
▶ 蹉跎(차타): 쇠퇴하다. 설봉薛逢은 「追昔行」이란 시에서 ‘嘆息人生能幾何, 喜君顔貌未嗟跎(인생살이 남은 날 며칠일까 탄식하다 / 늙지 않은 그대 보니 내 마음이 기쁘네)’라고 읊었다.
▶ 嘉生(가생): 곡물이 잘 자라는 것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상서로움으로 여겼다. ‘嘉’는 ‘穀’과 같다.
▶ 已矣(이의): 마치다. 죽다. 감탄사. 어기사.
▶ 奔命(분명): 명령을 수행하느라 분주히 뛰어다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다. 급히 출전한 군부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 師伯(사백):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신神 우사雨師와 풍백風伯의 병칭이다. 사부師父의 사형師兄을 가리키기도 한다.
▶ 指麾(지휘): 손이나 손에 든 물건을 흔들어 뜻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킨다. ‘指撝’로도 쓴다.
▶ 赤白(적백): 붉은색과 흰색. 엷은 붉은색.
▶ 澒洞(홍동): 자욱하다. 가득하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물이 용솟음치다. 충격이나 진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 滄江(창강): 강물을 가리킨다.
▶ 霹靂(벽력): 천둥소리. 현장玄奘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겁비라벌솔도국劫比羅伐窣堵國》에서 ‘有大石柱, 上作馬像, 無憂王之所建也. 後爲惡龍霹靂, 其柱中折仆地(위에 말 모양을 만들어 올려놓은 큰 돌기둥이 있는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훗날 악룡이 벼락을 쳐 그 중간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땅에 넘어져 있다).’라고 했다.
▶ 終朝(종조): 이른 아침을 가리킨다. 《시경詩經∙소아小雅∙채록采綠》에서 ‘終朝采綠, 不盈一匊(아침부터 밖에서 조개풀을 뜯어도 / 두 주먹 가득 채울 수 없네)’이라고 했고, 두보는 「冬日有懷李白」이란 시에서도 ‘寂寞書齋裏, 終朝獨爾思(조용한 서재에 틀어박힌 채 / 아침 내내 그대만 생각하였네)’라고 읊었다.
▶ 颯沓(삽답): 복잡하고 번잡한 모양. 빠르게 달리는 모양. 회오리치는 모양. 의성어.
▶ 信宿(신숙): 이틀 밤을 연속으로 묵는 것을 가리킨다. 이틀이나 사흘을 가리킨다.
▶ 瀟灑(소쇄): 대범하다. 거리낌이 없다. (풍모나 정취가) 시원스럽고 멋스럽다. 이백李白은 「王右軍」이란 시에서 ‘右軍本淸眞, 瀟灑在風塵(왕우군은 원래가 욕심 없고 진솔하여 / 온갖 고초 속에서도 대범하였네)’이라고 읊었다.
▶ 經始(경시): 운영하기 시작하다.
▶ 隋事(수사): 맡은 일의 근거. 곁에서 모시다. 편할 대로.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시간에 따른 추이를 가리킨다.
▶ 破块(파괴): 흙덩이를 부수다. 김매기를 가리킨다. 폭우로 농지가 물에 잠기거나 손상된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 泥滓(이재): 찌꺼기를 가리킨다. 더러운 것을 가리킨다. 천시하다. 지위가 낮은 것을 가리킨다. 세속을 가리키기도 한다. 두보는 「奉先劉少府新畵山水障歌」란 시에서도 ‘吾獨胡爲在泥滓, 靑鞋布袜從此始(나만 혼자 흙탕물 속에 있으니 / 이제부터 은자로 지내야겠네)’라고 읊었다.
▶ 野莧(야현): 비름. 식용 및 사료용으로 사용 가능한 식물이다.
▶ 宗生(종생): 같은 종류의 식물이 밀집해서 자라는 것을 가리킨다. ‘叢生’과 같다.
▶ 寒露(한로): 절기 중 하나. 추위와 차가운 이슬을 가리킨다.
▶ 翻然(번연): 신속하게 변화하는 모양을 가리킨다. 반대로. 도리어. 높이 나는 모양을 가리킨다.
▶ 出地(출지): 침탈 당한 토지를 가리킨다. 갑자기. 난데없이. 별안간.
▶ 滋蔓(자만): 널리 퍼져 자라는 것을 가리킨다. 우환이 확대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
▶ 戶庭(호정): 집 밖에 있는 정원
▶ 干正(간정): (어떤 일의 근본을 바로잡기 위해) 간여하다. 간섭하다. 개입하다. 참견하다.
▶ 掩抑(엄억): 차단하다. 가리다. 덮다. 억누르다. 억압하다. 억울한 심정을 가리킨다.
▶ 沒齒(몰치): 평생. 생애. 노년.
▶ 賢良(현량): 덕행과 재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 守道(수도): 도덕적 규범을 잘 지키다.
▶ 封己(봉기): 자신을 이롭게 하다. ‘封’은 ‘厚’와 같다.
▶ 擁塞(옹색): 방해가 되도록 가로막다.
▶ 芝蘭(지란): 지초와 난초, 즉 향초香草를 가리킨다. 뛰어난 자제子弟를 가리키기도 한다.
▶ 荆杞(형기): 가시나무와 구지가나무, 즉 가시가 달려 있는 쓸모가 없는 나무를 가리킨다. 황량한 풍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 蕭艾(소애): 산쑥 같은 악취가 나는 풀을 가리킨다.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 老圃(노포): 남새나 꽃을 가꾸는 데 경험이 많은 농부를 가리킨다.
▶ 白玉盤(백옥반): 옥으로 만든 상을 가리킨다. 둥근 달을 가리킨다.
▶ 藉以(자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사물이나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 霞綺(하기): 비단처럼 화려한 꽃구름을 가리킨다. 곱게 물든 구름처럼 아름다운 비단을 가리킨다.
▶ 胡顔(호안): 면목이 없을 만큼 매우 부끄러운 것을 가리킨다.
▶ 筐篚(광비): 대나무로 만든 물건을 담는 그릇을 가리킨다. 네모난 것을 ‘筐’이라 하고 둥근 것을 ‘篚’라고 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녹명서鹿鳴序》에서 ‘鹿鳴, 燕群臣嘉賓也, 旣飮食之, 又實幣帛筐篚, 以將其厚意. 然後忠臣嘉賓, 得盡其心矣(녹명이란 귀한 손님과 신하들을 불러 하는 연회를 말하는데,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신 다음에는 도타운 뜻을 담듯 광주리에 비단을 넣어 줌으로써 신하들과 손님들의 마음을 얻었다).’라고 했다.
대력大曆 원년(766) 가을에 지은 작품이다.
한 해 전 성도成都에 있는 완화초당浣花草堂을 떠나 남하하기 시작한 두보는
이 해 가을, 운안雲安에서 기주夔州로 또 거처를 옮겼는데
병까지 깊어져 더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두보가
가뭄과 잡초 때문에 싹조차 틔우지 못하는 상추를 보면서
상추 같은 자신이 비름 같은 무리 때문에 포부를 펼쳐보지 못한 것으로 노래하고 있다.
(완화초당에 있을 때 지은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상추는 중국의 자생종이 아니라 당조唐朝 이전에 서방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수입종으로
‘莴苣’란 기록이 중국 문헌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당조唐朝 개원開元 29년(741)에 진장기陳藏器가 편찬한 《본초습유本草拾遺》와
천보天寶 11년(752)에 왕도王燾가 엮은 《외대비요방外臺秘要方》이 있고,
한악韓鄂의 《사시찬요四時纂要》와 조주종심趙州從諗의 「십이시가十二時歌」 등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의서醫書와 약재서藥材書 또는 선승의 게송 등인 것을 보면
두보의 시를 빼면 ‘莴苣’란 명칭이 일반 시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시를 읽는 동안 비름을 잡초로만 생각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고향을 떠날 때까지 꽤 오랫동안 비름은
내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낱 잡초일 따름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나물로 무친 비름을 달게 먹고 있는데
처음에는 비위에 거슬렸던 냄새까지 지금은 향기로 느껴질 정도가 되었으니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으로 놀라운 구석이 있다.
시문 중에 ‘賢良雖得祿, 守道不封己’ 두 구절을 읽는 데 애를 먹었다.
‘封己’라는 두 글자를 새기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封’이 ‘厚’와 같다는 자료까지 찾아놓고도
‘도탑다’라는 ‘厚’의 뜻에 갇혀 한참이나 앞뒤 구절을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하다가
《국어國語∙진어晉語》에 나오는 ‘引黨以封己’라는 구절 하나를 더 찾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厚’가 ‘도탑다’라는 긍정적인 뜻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란 걸 알았고
그런 뒤에야 저 두 구절을 앞뒤 구절과 자연스럽게 이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籍偃曰: 君子有比乎?
적언왈군자유비호?
적언이 물었다.
“군자에게도 (가까이하는) ‘比’란 게 있습니까?”
叔向曰: 君子比而不別. 比德以贊事, 比也; 引黨以封己, 利己而忘君, 別也.
숙향왈군자비이불별. 비덕이찬사, 비야; 인당이봉기, 이기이망군, 별야.
숙향이 말했다.
“군자는 함께하되 자기 잇속을 위해 붕당을 이용하지 않는다.
일을 만나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일하는 것을 ‘比’라 하고,
자기 잇속을 위해 일당을 끌어들여 군왕조차 잊는 것을 ‘別’이라고 한다.”
- 《국어國語∙진어晉語》중 적언籍偃과 숙향叔向의 대화에서
두보의 시선으로만 보더라도 잡초에게 있고 나물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악착스러움이다.
우리 취향에 맞게 바꿔 쓰자면 ‘은근’과 ‘끈기’ 정도가 될 것이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사람의 보호를 받는 것들은 그 성질이 점차 허약해지고
반대의 경우는 거꾸로 투쟁력이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게 보더라도 자식을 양육하는 데 있어 부모의 과잉보호는 이로울 게 없겠고
간신들에게 쫓겨나는 현인충신들 역시 탄식할 것도 자랑스러워할 것도 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