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정동식
오랜만에 찾은 3월의 서울 하늘은 자욱한 운무에 둘러싸인 채, 한강과 동작대교를 가랑비로 적시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나라를 찾으려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눈물이던가,
6.25 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지킨 호국영령과 무명용사의 통한이던가?
어쩌면 아침 일찍 대구에서 올라온 노년의 참배객들을 기특히 여겨 흘리는 기쁨의 눈물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현충탑에 참배를 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현충탑 아래에 적힌 문구가 저절로 몸가짐을 경건하게 만들고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우리 으뜸 MG 특별회원들은 대한민국의 번영과 자유, 평화를 잘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호국영령들께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되찾아 주신 선물이 아니던가?
국립서울현충원은 우리나라 제1의 국립묘지이자, 호국추모공원이다. 전쟁과 휴전 후 우리는 국립묘지의 조성이 필요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하신 유공자분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에 1953년 9월,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이곳을 국군묘지 부지로 확정하여 1957년 준공되었다.
1965년부터 국립묘지령에 의해 운영해 오다가 2005년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호사가들이 누구의 터가 길지니, 흉지니 하는 말을 하지만 국립서울현충원은 전체가 명당이다.
서달산(공작봉)의 좌우 능선이 현충원을 감싸며, 봉황이 한강을 향해 날개를 펼치는 공작장익형이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진 훌륭한 음택으로 알려져 있다.
해설사에 의하면 현재 19만 여기의 호국영령이 영면하고 있으며, 2006년에 만장이 되었으나, 최근에 제2 충혼당이 건립되면서 아직도 발굴되는 유해의 안장식이 진행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현충탑 참배를 끝내고 현충탑 내부에 설치된 위패봉안당을 참배했다. 위패봉안당은 6.25와 월남 참전용사 중에서 사망은 확인되었으나 유골이나 시신을 찾지 못한 영령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이다.
또한 명현승천상 지하에는 국군 전사자는 확실하나 신원확인을 할 수 없는 5,778위의 무명용사들을 봉안해 놓았다고 한다. 포탄과 함께 산화한 영령들도 계실 것이다. 아~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부디 승천하여 꿈에도 그리던 조국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묘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충성분수대를 돌아 제2 장병묘역에 이르자 채명신 장군이 여기에 잠들어 계신다고 한다. 채장군은 평소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그가 운명하자 유언에 따라 대한민국 최초로 장성이 장병묘역에 묻히게 되었다. 장군의 묘에는 ‘그대들이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라는 글이 있다. 장군이 함께 싸운 전우에게 꼭 해 주고 싶었던 말이었으리라.
버스가 국가사회유공자묘역에 도착하니 포항제철의 창립자 박태준의 묘가 있음을 알려준다. 매년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이곳에 와서 참배를 드린다니 의미 있는 행사로 생각된다. 당시 박태준은 제철소 기술자 몇 명을 데리고 신 일본제 철소를 방문했다.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할 수 없어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으며 자신들이 보는 모든 것들을 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만일 이 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철강산업이 있었겠는가? 아마 지금보다 몇 십 년은 더디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 현충원에는 대통령 네 분(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의 묘소가 있으나 버스에 탄 채로 설명만 듣고 참배는 하지 않았다. 아직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대통령들에 대한 참배 여부는 개인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취지였다. 조그만 시, 군이나, 단체를 책임지는 리더도 수많은 고민과 결단을 하며 살아가는데 대통령은 오죽할까. 힘들고 외로운 자리임은 분명해 보인다.
고뇌의 시간은 엄청나게 길고, 영광의 시간은 짧다는 누구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어느 분이든 공과는 있겠지만 참배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국립현충원에 조선 후궁의 묘가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조선 제11대 중종(1488∼1544)의 후궁인 창빈 안 씨(昌嬪安氏, 1499∼1549)의 신도비와 묘소가 있다.
선조(1552∼1608)의 할머니가 되는 이 분의 묘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 묘 사이에 있는데 국립묘지로 확정이 되기 전부터 동작릉으로 존재했었다니 기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해설사는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묘역이 있는, 전망 좋은 언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한강과 남산,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흐리지 않으면 롯데월드타워도 가까이 보인다고 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그렇게 꿈꿔왔던 조국의 발전한 모습을 이렇게 보여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DNA를 가진 후손으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맥아더는 이 나라가 재건되는데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보란 듯이 대한민국을 짧은 기간에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은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무기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젠 K 방산 사업으로 무기를 수출하고 남을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다. K-pop과 K-문화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호국영령들의 후손으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다만 물려받은 자산과 역사를 지키고 길이길이 이어나갈 책임을 잊지 않고 살면 된다.
호국영령들의 묘비 앞에는 헌화된 조화가 있다. 현충원에서는 현충일과 국군의 날, 연 2회 하는 정기헌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생화는 내구성이 떨어져 조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값싼 중국산이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에 따라 현행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연 1회 조화로 하되, 1회는 소형 태극기로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우리도 영천호국원에 선친을 모셔 놓고 있어서 설문조사에 응했다. 기간은 3.1~3.31까지 진행된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1회의 조화와 1회의 태극기 게시가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립서울 현충원은 호국영령과 후손들이 만나서 대화를 하는 공간이다.
님들은 영면해 계시지만 언제든 우리가 찾아뵈면 깨어나셔서 나라 사랑을 조용히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충원은 학교요, 호국영령은 영원한 우리의 스승이다.
현충원에서 하는 일은 많다. 특히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어 든든하다. 유치원생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묘비 닦기 등 봉사활동, 현장체험 및 수학여행 견학, 나라 사랑 체험 학습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가장 풍족하고 평화를 맘껏 누릴 때, 민심이 흐트러지고 애국심은 약해지기 쉽다.
행복을 누리고 살되, 항상 나라 사랑은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는 외세에 자유를 잃지 말고 금수강산을 잘 지켜서, 조국이 계속 번영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2023.3.18.)
첫댓글 국립서울 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우국 충정의 표상 입니다. 그곳을 방문 할 때 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