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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 학습 목표
1. 인식론의 주요 문제, 인식론을 공부하는 목적을 파악한다.
2. 지식 유형을 분류한다.
3. 지식이 무엇인지 잠정적으로 정의한다.
4. 인식론적 탐구를 위한 개념 분석 방법을 배운다.
1.1 인식론의 탐구 주제 누구나 무엇을 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있는지 알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안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줄 알며, 감각 경험과 관찰을 통해 타인을 비롯 한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으며, 수학의 방법으로 피라미드의 높이와 넓이나 지구와 달까지 거리를 계산할 줄도 안다. 기억을 통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며, 내성을 통해 현재 느끼는 감정과 욕구, 소망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 인가? 어떤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할 때 그런 앎, 곧 지식의 일반적 기준은 무엇인가? 어 떤 믿음을 지식이 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믿음을 형성하는 신빙할 만한 원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의 지 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막상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할 수 없어 놀란다. 위에서 말한 질문들을 주제로 삼아 탐구하는 분야가 인식론이다.1) 이러한 인식론적 논 의는 지식이 불가능하다거나 우리가 지식에 도달했다고 결코 확신할 수 없다는 철학적 회 의주의philosophical skepticism와 맞물려 있다. 철학적 회의주의는 확실한 지식의 가능 성을 의심하는 입장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회의주의 경향은 중요한 시기마다 다양한 이유 로 여러 차례 등장했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자연에 대한 절대적, 객관적 지식이 가능한 지 의혹을 제기하고, 지식은 사회의 관습과 개인에 따른 상대적 신념이나 의견, 견해에 지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했으며, 고르기아스Gorgias는 다음과 같이 회의주의를 피력했다. 첫째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존재하는 것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셋째로 우리 1) 온Bruce Aune, 서상복 옮김,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용주의(서광사, 1997), 15-21쪽 참고. 지식 이 론theory of knowledge에 해당하는 전문 용어는 인식론epistemology인데, ‘인식認識’을 뜻하는 그 리스어 에피스테메επιστμε, episteme와 ‘무엇에 대한 학문’을 뜻하는 올로기ology의 합성어이다. ‘학 문’이라는 말은 본래 ‘지식 체계’를 뜻했다. 따라서 어원을 따져보면, 인식론이란 앎, 지식에 관해 탐 구하는 학문이다. 1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는 그것을 알더라도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 반면에 소크라테스Socrates는 40대부터 70세에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죽 는 날까지, 인간과 사회에 필요한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아테네 시민들과 토 론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인간이 세계 와 현실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확신했고, 자신들이 파악한 본질적 지식이 객관성을 가진 다고 주장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 학파는 모든 형태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왜냐하면 인간 이 걱정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사물의 참된 본성에 대한 탐구를 그만두고 그냥 현상에 머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르네아데스Karneades에 따르 면, 우리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고, 어떤 견해가 다른 견해보다 참이 될 개연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고 믿을 따름이다. 아이네시데모스Aenesidemos는 「신에 대한 믿음에 반대하는 논증」이라는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회의주의자들은 실천할 경우에 는 세상의 관습을 따르고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신들이 존 재하는 것처럼 말하고 신들을 숭배하며 신들이 섭리대로 행한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말할 때도 확실하게 믿지는 않으면서 독단주의자들의 무모한 확신을 피하려 한다.”2)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은 회의주의에 맞서 신에 대한 절대 지식이 가능하다고 논증 했고, 그런 논증이 중세에 영향을 미쳐 신앙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17세기 경제, 사 회 조건이 급변하면서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이 지배력을 잃게 되었고, 신앙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계몽주의 경향의 철학자들이 다양한 지식 체계를 세웠다. 이 시기부터 현대까지 철학은 다양한 지식 체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종의 인식론적 작업으로 발전했다. 회의주의에 대항하면서 발전을 거듭한 인식론은 지식의 본성과 원천에 관심을 가질 뿐 만 아니라 지식 주장의 정당화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정당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까닭 은 언제든 확실한 지식, 객관적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회의주의자의 도전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가능성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은 회의주의자의 논증에 대처하기 위 해 지식의 객관적 조건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오늘날 인식론은 다음 주제를 탐구한다. 첫째, 지식의 본성이 무엇인지 밝힌다. 둘째로 믿을 만한 지식의 원천은 무엇이고, 지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지 밝힌다. 현 대 인식론의 용어로 표현하면, 믿음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의 믿음들 가운데 어떤 믿음이 정당한 것인지 탐구한다. 끝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지 지식의 한계를 밝힌다. 2) 러셀Bertrand Russell, 서상복 옮김, 러셀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 제1부, 26장, 329쪽. 2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1.2 인식론의 정의와 인식론을 공부하는 목적 1) 인식론의 정의와 위상 인식론epistemology, 또는 지식 이론theory of knowledge은 두 가지 주요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식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많든 적든 무엇을 알 수 있다면, 셋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알고,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식론은 방금 말한 세 가지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를 제기하고 탐구했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지식이 설명이나 이유로 뒷받침할 수 있는 참 믿음이라는 논제를 고찰한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주의자들과 흄 을 비롯한 경험주의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에 관해 상반된 논제를 옹호했으며, 우리 가 무엇을 알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인식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식의 본성, 대상과 범위, 원천과 방법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넓게 정의할 수 있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과 구별되는 철학의 고유한 분과로 서 여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3) 그렇다면 최근 인식론의 종말을 선언한 몇몇 반론은 분 명히 과녁을 벗어났다. 이러한 반론을 제기한 학자들은 대체로 인식론을 좁게 정의함으로 써 인식론의 종말을 선언한다. 예컨대 그들은 인식론을 확실성 추구나, 절대적 토대를 찾 으려는 시도, 과학 같은 다른 학문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나 회의주의를 논박하려는 기획으 로 좁게 정의한다. 좁게 정의한 인식론은 극소수의 지지자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인식론의 주요 문제를 다루는 넓은 의미의 인식론은 여전히 철 학의 핵심 분과로서 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의 학문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2) 인식론을 공부하는 목적 우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수많은 견해와 주장들을 만나는데, 어떤 견해와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인지, 확실한 것인지, 개연적인 것인지를 평가하고 결정할 수단과 방법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지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평가 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지식이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가 바로 인식론의 목표이며, 그래서 인식론은 철학의 한 분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 다 인식론은 지식과 관련된 개념을 분석하고 정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과 타인, 사 회와 세계를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우선 개인 차원에서 인식론을 연구하는 목적은 개인이 자신과 타인을 기만하지 않으면 3) 구 형이상학은 존재와 제일원인, 변하지 않는 사물에 관해 탐구하고, 신 형이상학은 양상, 시간과 공 간, 지속과 구성, 인과관계, 자유와 결정론 문제, 정신과 물체의 관계에 관해 탐구한다. 윤리학은 행 위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 도덕 규칙이나 규범은 객관성을 갖는지 탐구 한다. 미학은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아름다움이 객관성을 가지는지,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지 탐구 한다. 인식론은 지식 자체가 무엇인지 탐구함으로써 다른 세 분과의 지식이 정말로 지식이 될 수 있 는지 의심하고 점검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3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서 현실을 제대로 알고 주체적으로 살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이 놓인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사실인 양 착각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 고 우기곤 한다. 사실을 일어난 그대로 인식할 때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고, 현실에 근거한 주체성도 확립할 수 있다. 둘째로 사회 차원에서 인식론을 공부하는 목적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권리와 의무, 사회 적 부를 공평하게 분배하고 모든 구성원이 정신적, 물질적 측면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 며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객관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을 마 련하려면 무엇보다 여러 학문과 예술, 기술, 종교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의 기능과 역할을 밝힘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끝으로 인식론을 탐구하는 궁극 목적은 각자 지혜롭게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우 리는 개인으로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어느 순간에 파악한 현실은 거대한 현실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모 두 거대한 현실의 일부로서 잠시 살다가 사라질 존재들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 주체적으 로 타인과 협력하면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아 삶을 누리되, 물러날 때가 되었을 때 기 꺼이 물러나고 죽을 때가 왔을 때 기꺼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 죽음은 삶의 끝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핵심이 아닐까. 인식론 수업은 인식론의 주요 문제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3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1) 지식의 세 유형과 명제지의 중요성 앎, 지식, 안다는 말의 의미는 다양하다. 우선 앎의 사례를 제시하고 지식의 의미에 따 라 지식 유형을 분류해 보자.4) (1) 나는 광화문으로 가는 길을 안다. (2) 나는 원주율의 소수 여섯째 자리까지 값을 안다. (3) 나는 운전을 할 줄 안다. (4) 나는 전주시를 안다. (5) 나는 박찬욱, 영화 「올드 보이」와 「친절한 금자 씨」의 감독을 안다. (6)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해서 안다. (7) 나는 뇌의 전두엽과 사고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8) 나는 네 말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 4) 레러Keith Lehrer, 한상기 옮김, 현대 지식론(서광사, 1996), 22-27쪽 참고. 4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9) 나는 “몇몇 포유류는 바다에 산다.”는 문장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 (1)부터 (3)까지 ‘안다’는 말은 어떤 일을 할 능력을 갖추고 있거나 방법을 소유하거나 실천할 힘이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1)에서 나는 광화문에 갈 수 있거나 누가 물으면 광 화문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 능력을 갖추고 있다. (2)에서 나는 원주율의 소수 다섯째 자리 까지 수를 기억하거나 외울 능력이 있다.5) (3)에서 나는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 고 운전대를 조정해 도로 주행을 하여 목적지로 간 다음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 말할 때 앎은 능력 지, 방법지, 실천지, 절차지라고 부른다. (4)부터 (6)까지 ‘안다’는 말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직접 겪어보아 익숙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4)에서 나는 전주시에 가본 적이 있고 그것에 대한 표상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 어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익숙함을 느낄 수 있다. (5)에서 나는 박찬욱을 대학 시절에 만난 적이 있고, 당시에 얻은 표상을 통해 박찬욱이 과거에 마른 체격이었음을 기억한다. (6)에 서 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함께 산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고, 현재 두 분이 늙어 쇠약한 모습까지 기억하며 만날 때마다 친숙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어떤 것 을 직접 겪어보고 익숙하다는 느낌을 동반한 앎을 익숙지, 사물지, 대상지, 또는 표상지라 고 부른다. (7)부터 (9)까지 ‘안다’는 말은 특정한 생각이나 정보를 담은 명제를 파악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7)에서 나는 뇌의 전두엽과 사고력 사이에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신경생리학과 두 뇌과학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6) (8)에서 나는 타인이 하는 말이 문법 구조에 맞는지, 그가 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지 분별해 파악한다. (9)에서 나는 해당 문장이 동물 분류 방식에 따라 참이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생각이나 정보를 담은 명 제나 진술, 문장과 관련된 앎을 사실지 또는 명제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능력지와 익숙지, 명제지는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 다. 내가 광화문으로 가는 길을 안다면, 나는 광화문의 위치와 그곳으로 가는 방법과 수단 에 관한 정보를 명제 형태로 이미 가져야 한다. 또 내가 전주시를 안다면, 그 도시에 관 한 특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명제지 또는 사실지를 가지려면, 문법 구조 에 맞게 말하는 능력과 맥락을 고려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 유형의 지식 가운 데 어떤 지식이 근본이냐는 문제는 돌고 도는 문제로 해결하기 어렵지만, 발생적 관점에 서는 능력지와 익숙지가 우선하고, 논리적 관점에서는 명제지가 우선한다고 결론지을 수 5) 원주율圓周率은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율을 나타내는 수학 상수이며, 수학과 물리학의 여러 분 야에 두루 쓴다. 그리스 문자 π로 표기하고, 파이라고 읽는다. 그 값은 3.1415926535897932... 로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이기 때문에 근삿값으로 3.14를 사용한다. 유클리드 평면에서 원은 크기와 관 계없이 언제나 닮은 도형이다. 따라서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는 언제나 일정하며, 이를 원주율 이라 한다. 6) 전두엽前頭葉, frontal lobe은 대뇌반구의 앞부분으로 전전두엽 영역을 이루어 기억력과 사고력을 비 롯한 고차원의 행위를 가능하게 하며 다른 영역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조정하고 행동을 조절한다. 추 리하고 계획하며, 감정과 행위와 관련된 문제 해결에 관여한다. 전두엽은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과 함께 대뇌피질을 구성한다. 5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있다. 인간의 고등한 인지 활동에 근본이 되면서 이론적 사변이나 실질적인 탐구 활동에서 모 두 필요한 지식은 명제지 또는 사실지다. 명제지 또는 사실지는 생각이나 정보를 담고 있 는 명제와 진술,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참인지 거짓인지, 옳은지 그른지, 다시 말해 정당 한 근거로 뒷받침되는지 따져 판단한 결과로 얻은 지식이다. 이런 지식은 단순한 정보 소 유와 다르다. 오늘날 수많은 정보가 책과 인터넷에 넘친다. 떠도는 정보들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정보를 담은 명제들이 올바른 것인 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대의 대다수 인식론자들은 다른 어떤 지식 유형보다 명 제지에 집중하여 지식을 탐구한다. 이제 인식론적 탐구에서 명제지가 방법지와 익숙지보다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살펴보 자.7) 우선 방법지는 명제지를 논리적으로 함축하지만, 명제지는 방법지를 논리적으로 함 축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할 줄 모르지만, 그 정리를 명제로 표현할 수 있고, 따라서 명제지를 가진다.8) 반대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명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할 수 없더라도, 그 정리를 명제로 표현할 수 있으면 안다고 말 한다. 둘째로 어떤 일을 하는 방법을 앎knowing how to do something은 어떤 일을 단지 할 수 있음merely being able to do something과 다르다는 점에서 명제지의 중요성이 드러난 다. 어떤 일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동물이 정말로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아 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획득한 방법지는 정상적인 경우 어떤 일과 관련된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음, 곧 명제지나 사실지를 함축한다. 내가 손을 들어 올릴 때 팔 근육을 수축시킬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나의 팔 근육을 어떻게 수축시키는지 안다고 말하지 않는 다. 근육 생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만이 손을 들어 올릴 때 일어나는 수축 과정을 상 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방법지는 단순히 어떤 능력을 소유했다는 뜻 이 아니라 특정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할 수 없는 경우, 실천적 지식을 가졌 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대체로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할 능력이 있다고 볼 충 분한 근거가 없는 한, 그가 무엇을 할 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지가 사실 지 또는 명제지를 논리적으로 함축하더라도 전자를 후자로 환원할 수는 없다. 7) 햄린D. W. Hamlyn, 인식론(서광사, 1986), 제4장 참고. 라일Gilbert Ryle, 이한우 옮김, 마음의 개념. 라일은 제2장에서 방법을 아는 것이 사실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제시한 다. 발생적 관점에서 방법지는 명제지에 선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논리적 관점에서 방법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특정한 원리를 표현하는 명제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예컨대 우리는 형식 논리의 규칙을 전혀 모르면서도 타당한 연역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역 논증을 왜 타당 한지 설명하려면 연역 논리의 규칙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8) 두 직각변에 얹힌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빗변에 얹힌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 또는 임의의 직 각삼각형에서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다른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 의 넓이의 합과 같다. 6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셋째로 명제지는 익숙지 또는 대상지에도 요구되는 지식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 고 할 때는 어떤 물체나 물건을 안다고 할 때보다 훨씬 섬세한 조건이 붙는다. 사람을 아 는 것은 정상적인 경우라면 인격적 관계를 포함한다. 인격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을 경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착각이기 십상이다. 이와 달리 물체나 물건을 아는 경우에는 이러한 조건이 붙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나 사물을 앎은 면식面識 acquaintance with과 유사하다. 익숙지knowledge by acquaintance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관한 특정한 사실을 앎을 논리적으로 함축한다. 어떤 것을 앎은 적어도 어떤 것을 기술함으로써 표현 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사물에 대한 지식은 사물의 정체 확인identification, 다시 말해 사 물이 어떠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따라서 사물을 아는 것은 명제를 아는 것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2) 지식 정의; 지식 분석 앞 절에서 인식론에서 다루는 지식 유형은 명제지라고 말했다. 명제지는 앎의 대상이 명제인 지식이다. 명제命題 proposition는 무엇인가? 명제는 문장이 담고 있는 생각이나 의미, 문장이 표현하는 것이다. 낱말의 구성과 순서, 언어가 다른 두 서술 문장은 같은 의 미를 가질 때, 같은 명제를 표현한다. 예컨대 “대한은 민국을 사랑한다,” “민국은 대한에 게 사랑받는다,” “Minkook loves Deahan.”는 모두 같은 명제, 곧 대한이 민국을 사랑함 이라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런 명제는 참이거나 거짓이다. 만약 대한이 민국을 사랑하면, “대한은 민국을 사랑한다.”는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는 참이고, 만약 대한이 민국을 사랑하 지 않으면, 그 명제는 거짓이다. 우리는 때때로 서술 문장이 사실을 표현한다고 말하고 싶 어 한다. 예컨대 “서울에 비가 내린다.”는 서술 문장은 서울에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표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사실인 경우에만 그렇다. 사실은 틀리는 법이 없다. 만약 어떤 문장이 거짓이라면, 그 문장은 사실을 표현하지 않는다. 지식이라고 가정되는 것, 곧 지식 주장은 거짓일 수 있기 때문에 앎의 대상은 사실이 아니라 명제다. 이제 대한이 민국을 사랑한다는 명제가 거짓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 대한 이 민국을 사랑한다는 명제를 안다는 것은 거짓이 된다. 우리는 어떤 것이 거짓이라고 생 각할 때 그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안다는 말은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함 축한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참 또는 진리가 지식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참 이 아니면 지식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식론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명제 p의 참은 S가 p를 알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렇다면 지식은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명제 p를 안다고 말하려면, p가 참이고 그가 p를 믿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지 식을 정의하면서, 피고가 죄가 있다는 참 믿음을 가진 판사가 지식 주장을 위한 충분한 증거는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식과 참 믿음이 같다는 견해에 반대한 다.9) 지식이 되려면 참 믿음 말고도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플라톤은 지식이 되려면 참 믿음에 더하여 믿음의 이유를 제시하거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암시한다. 여기서 증 7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거라는 말보다 이유를 쓰는 까닭은 이유가 훨씬 일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믿음에 대 해 내놓을 수 있는 이유가 언제나 증거의 문제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수학에서 이유는 증 명의 문제이고, 수행자가 도를 깨우치고 형성한 믿음의 경우에 이유는 깨달음이나 직관의 문제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 참 믿음을 가짐과 동시에 이 유를 가진다면 안다고 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순환에 빠진다. 왜냐하 면 참 믿음에 더하여 제시한 이유나 설명rationale; logos은, 인식 주체가 참 믿음의 지위 를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그것을 충분히 지지해 줄 수 있음을 안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인식론 연구자들은 플라톤이 말한 지식의 순환성을 피하기 위해 참 믿음에 덧붙여 야 하는 조건을 완화시키려 했다. 예컨대 지식이 되려면 참 믿음에 더하여 우리가 그 믿 음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는 것, 다시 말해 그 믿음이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뿐이라는 견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고찰은 불충분하다. 완화된 정당화 조건을 수용하면, 우리는 p 자체의 참과 관련이 없는 이유로, p가 참이라고 믿을 권리를 가지거나 p의 참을 정당 하게 믿을 수도 있다.10) 말하자면 p가 참임을 보증하는 증거를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 치를 다 취한 결과로 p가 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설령 그 증거가 사실상 p가 참인 것과 무관하다고 할지라도 p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그는 지식 의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도 p를 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제시 한 이유가 사실은 그 믿음과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한 참 믿음은 지식 의 적합한 정의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에 대한 논의는 제2장에서 할 것이다. 1.4 인식론적 탐구와 개념 분석 1) 개념 분석에 필요한 구별11) 인식론은 철학의 다른 분과, 곧 형이상학과 윤리학, 미학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질문과 각기 다른 대답들의 집합체이다. 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마다 핵심 주 장과 근거를 찾아 검토하는 것이 우리 수업의 일차 목표이다. 다시 말해 인식 문제와 관 련된 여러 논증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개념 분석을 통해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 철학의 절반은 개념 분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념 분석을 위해 몇 가지 용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개념槪念 concept은 낱말word나 개인의 정신에 의존하는 관념觀念 idea과 다르 다. 낱말은 특정한 언어에 속하는 구체적인 것, 곧 개별자個別者 the particular다. 반면 9) 플라톤Platon, 테아이테토스, 200d 이하. in Human Knowledge, ed., P. K. Moser and A. Nat, New York, 1987, 39∼49. 10) 게티어E. L.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in Human Knowledge, ed., P. K. Moser and A. Nat, New York, 1987, 263∼265. 11) 슈토이프Matthias Steup, 한상기 옮김, 현대인식론 입문(서광사, 2008), 제2장 참고. 8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에 개념은 여러 개별 대상이 공통으로 갖는 속성, 곧 보편자普遍者 the universal다. 따 라서 개념은 실례實例instance를 가지며, 실례는 개념을 예시하는 개별 대상들이다. 예컨 대 서강대학교에 터를 잡은 통통한 길고양이는 고양이 개념의 실례이고, 내가 그 길고양 이는 다리가 넷이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앎은 지식 개념의 실례이다. 개념은 방금 말했듯이 보편자이고, 관념은 개인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개별자이므로, 둘 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식론을 철학적으로 탐구할 때, 우리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지식 이나 정당화 같은 보편적 개념이지 각 사람의 정신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이나 정당 화 관념이 아니다. 사람들이 각자 지닌 지식이나 정당화 관념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것을 알 때나 어떤 것을 믿음이 정당할 때 공통으로 지닌 속성이 무엇이지 탐구한다. 둘째, 문장文章 sentence과 명제命題 proposition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문장을 구성 한 요소는 낱말이고, 낱말은 특정한 언어에 속한 개별자이므로 문장도 특정한 언어에 속 한 개별자이다. 반대로 명제는 여러 문장이 똑같이 나타내는 추상체抽象物 abstract entity 또는 공통의미共通意味 common meaning이다. 예컨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다.” 는 문장과 “Two and two is four.”라는 문장은 각각 한국어와 영어에 속한 개별자이다. 그런데 두 문장은 똑같이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는 명제를 나타낸다. 여기서 문장은 개별 자로서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하며, 물리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 반면에 명제는 시간과 공 간 속에 자리하지 않으며 물리적으로 지각되지 않지만 의미로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문장은 그 문장이 나타내는 명제의 진리치에 따라 참이거나 거짓이 된다고 이 해할 수 있다. 이때 진리 담지자truth-bearer는 일차적으로 명제가 되고 문장은 파생적 으로 진리치를 가진다. 물론 명제는 추상적 대상으로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 없고, 문장은 구체적인 물리적 대상이어서 지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으므로, 문장이 명제보다 진리 담 지자로서 적합하다고 반론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명제를 지지하는 철학자들은 이런 반론 에 두 가지 방식으로 응수한다. 우선 명제를 지각할 수 없다는 말은 맞지만, 우리는 명제 를 이해하고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파악할 수 있다. 둘째로 문장을 진리 담지자로 볼 경우에 심각한 난점이 생긴다. 우리는 문장들에 대해서도 문장 유형sentence type과 문 장 사례sentence token를 구별하는데, 이때 문장 유형은 명제와 마찬가지로 지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피하려고 문장을 지지하는 철학자들이 문장 사례가 진리 담지자 라고 주장한다고 치자. 그러면 특정한 진리는 무한한 수의 문장 사례들로 나타내야 할 텐 데, 그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예컨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지닌 진리성은 무한한 수의 문장 사례로 환원되지 않는다. 셋째, 필연성necessity과 가능성possibility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철학적 논의에서 명 제는 대체로 네 유형으로 구별한다. 우선 필연적으로 참이고 부정하면 자기모순에 빠져서 거짓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명제가 있다. 예컨대 모든 총각은 미혼이라는 명제는 반드시 참이다. 이런 명제를 필연 진리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필연적으로 거짓이어서 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명제가 있다. 예컨대 만세는 무색의 빨간 색 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명제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우연 명제contingent proposition, 곧 필연적으로 참도 아니고 필연적으로 거짓도 아닌 명제이다. 다음 세 가지 명제를 살펴보자. 9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1)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다. (2)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다. (3) 만일 김대중이 김홍걸의 아버지라면, 김홍걸은 김대중의 아들이다. (1)은 우연적으로 그르고, (2)는 우연적으로 참이며, (3)은 필연적으로 참이다. 마지막으로 필연적으로 거짓은 아닌 명제가 있는데, 그런 명제는 가능적으로 참이다. 위에서 제시한 세 명제는 모두 가능적으로 참인 명제의 범주에 속한다. (1)은 실제로actually 거짓이지만 가능적으로 참이다. (2)는 실제로 참이고 가능적으로도 참이다. (3)은 필연적으로 참이며 가능적으로도 참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거짓이 아닌 어떤 거짓 명제는 가능적으로 참이 며, 필연적으로 참이든 우연적으로 참이든 모든 참 명제는 가능적으로 참이다. 필연성과 가능성을 구별할 때는 논리적 필연성과 물리적 필연성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 다. 자연 법칙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알려준다. 예컨대 인간이 팔을 퍼 덕거려서 난다거나 곡기를 끊고 10년 동안 생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논리 법칙에 따라 논의하는 영역에서는 어떤 것이 둥근 사각형이나 결혼한 총각처럼 명백 한 모순에 빠지지 않는 한, 아무리 억지스러워 보여도 가능하다. 따라서 서상복은 팔을 퍼 덕거리며 날았다거나 의지력이 강한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혈액 순환을 통제할 수 있다는 명제는 우연적으로 거짓인 명제이다. 자연법칙에 위배되지만 논리적으로는 필연적으로 거 짓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명제들은 실제로actually 거짓일지라도 가능적으로possibly 참이다. 넷째, 논리적 함의entailment와 필연적으로 외연外延이 같음coextension을 구별해야 한다. 철학적 논의에서 개념이나 명제들은 서로 맞물려 정의와 논증을 만들어내는데, 관계 를 맺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논리적 함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필연적으로 A의 실례인 것은 무엇이든지 B의 실례라면, 개념 A는 개념 B를 논리적으로 함의한다. (2)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p가 참인데 q가 거짓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면, 명제 p는 명제 q를 논리적으로 함의한다. 동치equivalence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필연적으로 A의 실례인 것은 무엇이든 B의 실례이고, 그 역도 마찬 가지라면, 두 개념 A와 B는 동치다. (2)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p와 q가 다른 진리치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면, 두 명제 p와 q는 동치다. 예컨대 어머니라는 개념은 여자라는 개념을 논리적으로 함의하며, 적어도 자녀를 하나 둔 여자라는 개념과 동치다. 삼각형이라는 개념은 변이 세 개인 도형이라는 개념을 논리 적으로 함의하며, 그것과 동치다. 대한과 민국은 만세가 산타페를 한 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명제는, 만세가 산타페를 한 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참이라는 명제를 논리 10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적으로 함의하며, 민국과 대한이 만세가 산타페 한 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명 제와 동치다. 끝으로 대한이 자신의 지갑에 300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이다는 명제는 대한이 자신의 지갑에 300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는 명제를 논리적으로 함의 하며, 이 명제는 다시 대한이 자신의 지갑에 300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거 짓이 아니라는 명제와 동치다. 그런데 만일 두 개념이 서로 동치라면, 두 개념은 필연적으로 외연이 같다. 어떤 개념의 외연은 그 개념이 적용되는 모든 실례의 집합이다. 예컨대 염소라는 개념의 외연은 모든 염소의 집합이고, 인간이라는 개념의 외연은 모든 인간의 집합이다. 두 개념이 필연적으로 외연이 같으려면, 두 개념은 서로 논리적으로 함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 개념의 실례이 면서 다른 개념의 실례가 아닌 대상이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예컨대 어머니라는 개념과 적어도 자녀를 하나 둔 여성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외연이 같다. 필연적으로 외연이 같은 개념들은 모든 가능세계에서 똑같은 실례를 가진다. 예컨대 세 변을 가진 도형이 세 각을 가진 대상이 되지 않는 가능세계는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외연이 같지만 필연적으로 외연이 같지 않은 두 개념의 사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임과 국군의 최고사령관임이라는 개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과 총사령관이 한 사람이라 고 규정하지만, 헌법은 바뀔 수 있고, 그럴 경우 대통령과 총사령관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되는 일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2) 평가, 규범 개념 분석 우리는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주요 개념의 의미를 분석하고 정의한다. 예컨 대 인간이란 무엇인가, 원인이란 무엇인가, 행위란 무엇인가,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혜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은 개념 분석을 요구한다. 그런데 개념은 단순 개념이거나 복합 개념 이다. 복합 개념은 그것을 구성 요소들로 나눔으로써 정의할 수 있지만, 단순 개념은 그렇 게 할 수 없다. 단순 개념은 그것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똑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되 는 다른 개념들과 관련시킴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념 분석은 동의어를 진술함 으로써 단순 개념을 정의하는 일과 구성 요소들로 나눔으로써 복합 개념을 정의하는 일로 구별한다. 필연성이나 우연성 같은 개념이 단순 개념들이다. 이때 필연성 개념은 가능성 개념과, 가능성 개념은 필연성 개념과 관련시켜 정의할 수 있다.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어떤 명제가 거짓이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그 명제는 필연 명제이다. 또 만일 그리고 오 로지 만일 어떤 명제가 필연적으로 거짓이 아니라면, 그 명제는 가능적으로 참이다. 도덕 적 옳음 같은 단순 개념은 의무나 허용가능성 같은 규범 개념normative concept으로 정 의할 수 있다. 복합 개념은 그 개념의 의미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있으므로, 복합 개념의 의미를 밝히 기 위해 복합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분석하여 정의한다. 예컨대 어머니라는 개념은 복합 개념이고, 여성과 적어도 자녀를 하나 둠이라는 두 요소를 의미로 포함한다. 이러한 개념 분석을 위해 쌍조건문을 사용한다.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1) x는 여성이고, x는 11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적어도 자녀를 하나 두고 있다면, 모든 x에 대해 x는 어머니다. 이 분석에서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에 바로 이어진 항은 분석항이고, 뒤쪽 항은 피분석항이라고 부른다. 개념 분 석이 올바르려면, 분석항이 개별적으로 피분석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고, 합쳐서 충분 조건인 조건들을 밝혀야 한다. 그러면 이제 평가 개념, 또는 규범 개념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자. 평가 개념이 대상에 적용될 때, 그 대상은 어떤 점에서 좋거나 나쁜 것, 그렇게 되어야 하거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윤리학에서 행위에 적용되는 평가 개념은 의 무다, 허용될 수 있다, 금지된다, 옳다, 그르다 같은 것들이다. 인식론에서 믿음과 명제에 적용되는 평가하는 개념은 정당하다, 확실하다, 개연적이다, 합리적이다, 명백하다. 비합리 적이다. 비개연적이다, 의심스럽다, 정당하지 않다 같은 것들이다. 철학자들은 윤리학과 인식론에서 평가 개념과 관련된 두 가지 분석에 종사했다. 하나는 의미를 정의함으로써 평가 개념의 의미를 한정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평가 개념의 적 용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다. 전자는 의미 정의 분석이고, 앞에서 논의했다. 후자는 기준 제시 분석criteriological analysis이라고 부른다. 기준 제시 분석에서 분석항은 피분석항 에 있는 개념을 적용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쾌락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위의 도덕적 지위 는 그 행위가 고통에 비해 쾌락의 전체적 우위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만일 어떤 행위 x가 고통에 비해 쾌락의 우위를 최대로 만들면, x는 옳다. 칸트의 의무론에 따르면 행위의 도덕적 지위는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심이 동기로 작용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만일 그리고 오로지 많이 어떤 행위 x가 도덕 법칙 에 대한 존경심이 동기로 작용한 것이라면, x는 옳다. 여기서 쾌락 공리주의자는 도덕적 옳음의 필요충분조건을 비규범적 용어들로 진술하고, 의무론자는 규범적 용어들로 진술하 고 있다. 인식론자들도 정당화 개념을 둘러싸고 윤리학자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기준 제시 분석에 몰두했다. 자연주의를 지지하는 인식론자들은 인식과 관련된 규범 개념의 적용 기준을 비 규범적 용어들로 진술한다. 반면에 비자연주의를 지지하는 규범주의 인식론자들은 여전히 규범성을 띤 용어들을 사용해 인식과 관련된 규범 개념의 적용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앞 으로 이어질 강의에서 인식론자들이 제시한 기준 제시 분석의 다양한 사례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많이 알아야 잘 살고 행복할 수 있는가? 2) 우리는 자신과 타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는가? 3) 인식론의 주요 문제는 무엇이고, 각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가? 4) 지식의 세 유형 가운데 명제지가 인식론적으로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5) 개념 분석은 인식론을 비롯한 철학 담론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12 제1강 지식 분류와 지식 정의, 개념 분석-17-2-인식론-서상복.hw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