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들이
최명애
설레는 마음은 예나 제나 변함없다.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난다. 대구 친구들이 대전역을 향해 출발했다. 서울, 부산, 울산, 포항 등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여고 동기가 모여 변산반도로 발길을 옮긴다.
갈래머리의 소녀들이 어느새 희끗희끗한 흰머리 할머니가 되어 등장했다. 함박웃음과 함께 추억여행의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친구 문희의 맛깔난 사회 솜씨는 우리를 울렸다 웃겼다 한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녀들의 우아하고 세련된 인사말과 지난 삶의 에피소드로 분위기는 한껏 치솟았다. 개성이 넘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도 배울 수 있었다.
부안의 바닷냄새가 코로 솔솔 들어오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동쳤다. 부안에서의 점심은 꽃게장 정식, 푸짐한 한 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우리들은 주인아주머니의 음식 솜씨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소사 입구 주차장에서 만난 젊고 깔끔한 문화해설사는 말솜씨도 일품이었다. “역시, 젊어야 좋은 거야.” 여기저기서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하지만 원숙하게 익어가는 우리 동기들도 그런대로 볼만하지 않은가.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에 들어섰다. 수령이 150여 년 이상 되는 나무들이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30~40미터 정도 위로 곧게 뻗은 전나무 숲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나무 내음은 신선한 공기와 함께 우리를 유혹했다. 숲길 양쪽에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넘어진 전나무들은 다른 생명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고 있었다. 인간이나 식물이나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새삼 자연의 대단함을 느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있었다. 지금도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 했다. 작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고목에 매달고 간절한 소원을 비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무 둘레에 각자의 바람을 적은 소원지 풍경은 멋진 사진의 배경이 되었고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갔다. 민간신앙과 불교가 더불어 사는 모습 또한 보기 귀한 모습이었다.
대웅전의 꽃무늬 문살은 조각이 화려하고 섬세하여 감탄을 자아냈고, 기둥을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서 만든 솜씨 또한 훌륭했다. “후불벽화 백의 관음보살님과 눈을 맞추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해설사의 말에 보살님과 눈을 맞추며 가족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아름다운 내소사와 어우러진 친구들은 분명 십 대의 풋풋한 여고생 모습이었다.
변산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행복감과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1억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온갖 풍파를 견디어 온 채석강에 도착했다. 인간이 산전수전을 겪듯이 자연도 마찬가지다. 밀물로 아름다운 주상절리의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수평선 너머의 낙조는 장관이었다. 철썩이는 파도가 하얗게 밀려왔다. 붉게 물든 환상적인 해넘이에 환호성을 지르는 여인의 모습이 어우러져 밤바다는 화려했다. “우리의 인생도 저만큼 왔을까. 남은 인생, 아름다운 모습으로 늙어 가자.”는 친구의 한마디는 이날의 명언이 되었다. 아름다운 낙조를 배경으로 두 번째 33살, 멋진 인생 사진을 남긴 우리들은 세 번째 33살을 맞이할 수 있으려나…. 그 일은 신에게 맡겨야겠지.
저녁상에 올려진 전라도식 묵은김치는 우리의 행복감을 최고로 올려주었다. 역시 김치든 친구든 묵을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듯하다. 여고 동기생, 한명 한명이 모두 귀한 인연이다. “음식을 대접하면서 마음마저 함께 드리려고 노력했다.”는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감동적인 말까지 가슴에 와닿았다.
별빛 가득한 밤바다의 파도 소리에 마음이 설레어 모래사장에서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 유행했던 ‘고고 춤’을 추는 친구들의 능청스러운 익살과 애교스러움이 어색하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세미나실에서 가진 화합 한마당도 행복을 듬뿍 안겨 주었다. 밤새껏 소곤소곤 정담 나누는 소리는 옆 방까지 들렸다.
다음 날 아침, 선유도를 거쳐 군산에 도착하였다. 자유여행 시간이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며 깔깔거리며 웃는 행복한 소리가 군산 거리에 가득 찼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살다가 간 적산가옥은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으로 아름답고 독특한 분위기가 좋았다. 가슴 아픈 그 시절을 떠올려 보며 또 한 장의 군산 여행의 추억을 남겼다.
1박 2일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며 행복, 우정, 성숙함과 편안함, 지혜로움 등 여러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빠삐따,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자.”라고 외치던 친구의 목소리도 귓전에 윙윙거린다.
민간신앙과 불교, 쓰러진 전나무와 새로운 생명들, 모두 더불어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은가. “지금 나와 가까이 지내고 있는 다섯 명의 지식, 교양, 상식의 평균이 현재 나의 모습이다. 서로 평균값을 올려주는 좋은 친구로 더불어 살아가자.”는 친구의 인사말이 마음에 머무른다. 행복했던 여행의 한 페이지를 접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여고 동기생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첫댓글 여고 동기생~최고지요^^
저도 고등학교 동기생 모임인 빅브라더스가 있답니다^^
빠삐따~멋있네요^^
친구들, 그것도 고등학교 친구들 몇은 평생가지요. 그 친구들과 여행은 우리 인생의 큰 즐거움인듯 합니다. 그 즐거움이 행간에서 살아 움직이는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었군요. 고교 동기생들은 귀한 존재입니다. 모두 건강하며 아름다운 나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