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살해된 오륙기
위소보는 호기심이 일어 가죽 주머니에 채워진 줄을 풀고 살펴보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이쿠! 아이쿠! 사람의 머리다!....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는 군.]
하척수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했다.
[그가 어떤 중요한 인물을 죽였는지 모르겠구나. 일부러 수급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을 보면 참 희한하다. 꺼내 보도록 해라.]
위소보는 말했다.
[죽은 사람아, 죽은 사람아! 내 너를 꺼내 주겠으니 너는 나를 물지 않 도록 해라.]
그는 손을 주머니 안으로 천천히 집어넣어 그 수급의 땋은 머리를 잡고 들어올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촛불 아래에서 보니 그 수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레나룻을 밤송이처럼 뻗치고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한 소리 부르짖고는 뒤로 세 걸음 물러서서 외쳤다.
[바로....바로 오형이시다....]
하척수는 약간 놀라 물었다.
[그대는 그를 아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그는 우리 천지회의 형제 오륙기 형입니다!]
그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대성통곡했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그가 미친 듯이 울부짖는 것을 듣고 대청으로 달려왔다. 오륙기의 수급을 발견하 고는 모두 다 놀람과 의아함을 금치 못하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각기 손을 칼자루로 가져가며 하척수를 응시했다. 그녀가 오륙 기를 죽인 줄로 안 모양이었다. 곧이어 쌍아가 달려나왔다. 위소보는 그녀의 손을 잡고 수급을 가리키며 말했다.
[쌍....쌍아, 너의 의남매인 오형이다. 그는....그는 이 악적에게 해침 을 당해 죽었구나!]
그는 귀종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의 몸을 매섭게 몇 번 걷어차고 서천천 등에게 말했다.
[오형의 수급을 이 악적이 몸에 달고 있었소.]
사람들은 다시 그 수급을 바라보았다. 핏자국은 이미 말라 있었고 목이 있는 곳은 석회를 뿌려 놓았다. 약물과 석회를 뿌려 썩지 않도록 한 모 양이었다. 쌍아는 수급을 어루만지며 소리내어 통곡했다. 이력세는 말 했다.
[냉수를 퍼부어 이 악적을 깨워 자세한 사실을 물어 본 후 그를 죽여 오형의 원한을 갚도록 합시다.]
군웅들은 모두 그러자고 했다. 하척수는 말했다.
[이 사람은 나의 사제인데 그대들은 그의 머리털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 는 안되오]
그녀는 손을 뻗쳐 무쇠로 만들어진 오른손의 갈고리를 드러내더니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초를 향해 몇 번 휘두르고 표연히 안으로 들어갔다. 현 정 도인은 노하여 부르짖었다.
[설사 그대의 사부라 하더라도 그를 짓이겨 젓을 담겠다!]
갑자기 풍제중이 어, 하더니 왼손의 두 손가락으로 초를 토막내 한 조 각 집어들었다. 촛대의 초는 본래 꽤 남았는데 이때는 이미 일곱 토막 으로 나 있었다. 몇 토막은 한 치도 되지 않는데 정교하게 잘려 쓰러지 지 않고 있었다. 이 한 수의 무공은 정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모두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현정 도인은 휙, 하니 차고 있던 칼을 뽑으며 말했다.
[내가 이 녀석을 죽여 오형의 원수를 갚겠소. 그리고 그 여인으로 하여 금 나를 죽이도록 하시오.]
이력세는 말했다.
[잠깐, 먼저 물어 본 후 이 세 사람을 함께 죽이도록 합시다.]
위소보는 말했다.
[맞았소! 이분 할머니 누님은 그녀의 사백부를 두려워하는 것 같으니 죽이려면 그녀의 사백부와 사백부의 안사람까지 모두 죽여야만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오. 쌍아, 그대는 가서 한 대야의 냉수를 떠오시오. 그 러나 주방의 약을 섞은 그 물은 아니 되오.]
쌍아는 안으로 들어가 한 대야의 물을 들고 나왔다. 서천천은 이를 받 아서 귀종의 머리 위에 천천히 부었다. 그러자 그가 재채기를 하며 천 천히 눈을 떴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손발이 묶여 있는 것 과 허리의 혈도마저 짚혀 있는 것을 알고는 분노했다.
[누구냐? 누가 나에게 장난을 친 거야?]
현정 도인은 칼날을 그의 얼굴에 가볍게 갖다대며 욕을 했다.
[너의 조상께서 너에게 장난치는 것이다.]
그리고 오륙기의 수급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은 네가 죽인 것이냐?]
귀종은 말했다.
[그렇다. 내가 죽인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은 어디에 있소?]
그는 고개를 돌려 부모도 묶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놀라 하마터 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는 한평생 부모님을 따르며 매사 뜻대로 해와 조금도 좌절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언제 또 이와 같은 일을 겪었 겠는가? 그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그대들은 어쩌자는 것이오? 그대들은 나를 이기지 못하는데, 어째서....어째서 내가 묶였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왜 묶 었소?]
서천천은 손을 들어 철썩, 따귀를 한 대 갈기고 호통을 쳤다.
[이 사람을 네가 어떻게 죽였지? 빨리 말해라.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한 다면 즉시 너의 눈을 찔러 멀게 하겠다.]
그는 칼 끝을 뻗쳐 그의 오른쪽 눈을 겨누었다. 귀종은 혼이 나갈 정도 로 놀라서 끊임없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내....내 말하겠소. 그대는 내 눈을 찌르지 마시오. 눈이 멀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쿨룩!....쿨 룩!....평서왕은, 오랑캐 황제는 크게 나쁜 사람으로서 억지로....억지 로 우리의 대명나라 강산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소. 그래서 나에게 부 탁해서....오랑캐 황제를 죽이라고 했소....]
군호들은 서로의 얼굴들을 쳐다보며 하나같이 생각했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위소보는 크게 못마땅해서 욕을 했다.
[이 빌어먹을! 오삼계가, 제기랄! 제 놈은 좋은 사람이었던가?]
귀종이 말했다.
[평서왕은 너의 백부이니 그....그가....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너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다.]
위소보는 그를 힘껏 걷어차며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오삼계는 매국노야! 어째서 나의 백부가 된단 말이 냐? 오삼계는 너의 백부다!]
귀종은 부르짖었다.
[네가 한 말이다. 아이쿠! 너는 네가 한 말에 대해서 억지를 쓰는구나. 나는 그만두겠다. 나는 그만두겠다!]
이력세가 물었다.
[오삼계는 그대에게 오랑캐 황제를 죽이라고 했다는데 어찌하여 그를 죽였지?]
귀종은 말했다.
[저 사람은 광동성의 대관인데, 평서왕은 그가 대매국노로서 오랑캐 황 제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소. 평서왕이 군사를 일으켜 광동을 치려면 반 드시 그를 죽여야 된다고 했소. 평서왕은 나에게 많은 보약을 주었고, 기침을 멎게 하는 약도 먹여 주었으며, 또 하얀 호랑이 가죽도 주었단 말이오.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대매국노는 반드시 죽어야 된다고 했소. 쿨룩쿨룩, 그 사람은 무공이 매우 고강하여 나는....나와 어머니 두 사람이 함께 공격해서 겨우 죽일 수 있었소. 그대들은 빨리 나를 놓 아 주시오. 우리들은 북경으로 가서 오랑캐 황제를 죽여야 하오. 그것 은 커다란 공로란 말이오.]
위소보는 고함을 질렀다.
[황제를 죽인다 하더라도 너 같은 폐병쟁이한테까지는 차례가 가지 않 는다. 형들, 빨리 이 세 녀석을 죽이도록 하시오. 할머니 누님은 내가 책임지겠소.]
갑자기 장원 밖에서 수십 명이 일제히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병쟁이야, 빨리 기어나오너라! 너를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여 오 형의 원한을 갚겠다!]
장원의 앞뒤에서 일제히 소리가 들려왔으며 사방의 지붕 위에서도 고함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많은 사람이 장원의 사방을 에워싼 모양이었다. 천지회의 군호들은 나타난 사람들이 오육기를 위해 원수를 갚겠다는 말을 하자 자기 편이라 생각하고 속으로 기뻐했다. 전 노본은 큰소리로 외쳤다.
[명복청반, 모지부천. 바깥의 친구는 어느 파의 친구들이오?]
천지회의 구호는 '천부지모, 반청복명'이었다. 그러나 신분을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먼저 여덟 글자를 꺼꾸로 해서 말했다. 만약 회의 형제라면 그대로 말을 해서 인정할 것이고 만약 외부 사람이라면 상대 방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신분을 누설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장원 밖과 지붕 위에서 십칠팔 명이 한 목소리로 부르짖었 다.
[지진고강(地振高岡), 일파계산천고수(一派溪山千古秀)!]
대청 안의 군호들도 부르짖었다.
[문조대해(門朝大海), 삼하합수만년류(三河合水萬年流)!]
지붕 위에서 누가 물었다.
[어느 당의 형제들이 그곳에 있소?]
전노본은 말했다.
[청목당의 형제가 형제들을 영접하는 바이오. 어느 당의 형제들이 오셨 소?]
대청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들어오며 큰소리로 말했다.
[소보, 네가 여기 있느냐?]
그 사람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편으로 훤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천지회의 총타주 진근남이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앞으로 달 려나가 큰절을 하고 연신 부르짖었다.
[사부님, 사부님.]
진근남은 말했다.
[모두들 안녕하셨소!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러다가 탁자 위에 있는 오륙기의 수급을 바라보고 서둘러 달려오더니 탁자를 집고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대청문 안으로 잇따라 사람들이 들어왔다. 광서성 가후당의 향주 마초흥, 귀주의 적화 당 향주 고지중 등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귀종을 발견하자 다투어 칼을 뽑았다. 그리고 스무 명이나 되는 광동 홍순당의 부하들은 더욱더 증오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귀종은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이 흉신 악살같이 덤벼들려는 기세를 보자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그만 기절해 버렸다. 진근남은 몸을 돌리고 물었다.
[소보, 너희들은 어떻게 이 세 명의 악당을 잡았느냐?]
위소보는 이제까지의 경과를 말했다. 그러나 서천천 등이 어떻게 하여 귀종에게 희롱을 당하고 자신이 오지영으로 가장하는 등 추악한 일들은 아예 들먹이지 않고 최후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세 명의 악당들은 모두 무공이 대단합니다. 우리들은 이길 수가 없 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 누님이 계셔서 도와 주셨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 누님은 이 늙은이를 자신의 사백부라고 하며 우리가 그를 묶어 오형의 원한을 갚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 다.]
진근남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엇이 할머니 누님이냐?] [그녀는 나이가 할머니뻘인데 얼굴 모습은 누님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를 할머니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녀는?] [그녀는 뒤에 숨어 있으며 그녀의 사백부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사 부님, 그리고 고형, 마형, 그대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지요?]
진근남은 말했다.
[이 악적이 오형을 해친 것을 알고 우리들은 즉시 전갈을 보내 사면팔 방에서 뒤쫓아오게 되었단다.]
청목당의 사람들은 새로 나타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원래 산동, 하남, 호북, 호남, 안휘성의 각 당의 형제들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들 의 대부분은 장원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고지중과 마초흥은 동시에 말 했다.
[위 형제가 이와 같은 큰 공을 세웠으니 오형의 하늘에 계신 영혼도 그 은덕을 고맙게 여길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오 대협은 저에게 그지없이 잘 대해 주었는데 그의 원수를 갚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요.]
이력세는 말했다.
[총타주님께 알립니다. 이 악적은 조금 전에 북경으로 가서 오랑캐 황 제를 죽이겠다고 했으며 또 청나라를 거꾸러뜨리고 명나라를 되찾겠다 는 말을 했는데 그 사정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위소보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겠소? 그는 우리가 그를 죽일까 봐 두려워 그저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여 본 것에 불과하오. 그의 몸에 있는 이 하얀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포자(袍子)만 하더라도 바로 오삼계가 그에게 준 것 이오. 오삼계의 개 같은 친구들 가운데 좋은 사람이 있겠소? 우리들은 이 세 악적의 배를 갈라 심장을 도려 내고 오형의 원한을 갚아야 될 것 이오.]
진근남은 말했다.
[세 사람을 다 깨워서 잘 물어 보도록 하자.]
쌍아는 다시 가서 한 동이의 냉수를 떠왔으며 귀신수 부부와 귀종에게 물을 쏟아 정신을 차리게끔 했다. 귀이낭(歸二娘)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욕을 퍼부있으며 독을 써서 사람의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은 강호에서 가 장 비열하고 몰염치한 수작이라고 말했다. 귀신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대들의 신수를 보건대 결코 범상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소. 그대들 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 우리 오육기 형과는 어떤 원한이 있기에 독 수를 써서 그를 죽였소?]
귀이낭은 화를 내며 말했다.
[너희들같이 몽한향을 쓰고 몽한약을 쓰는 몰염치한 좀도적들도 이 할 미의 성명을 물어 볼 자격이 있느냐?]
고지중이 칼을 들어 위협을 하자 귀이낭은 더욱더 무섭게 욕을 해댔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 그들의 성은 귀씨입니다. 자라라고 할 때의 귀씨인 것 같습니 다. 그러니까 두 마리의 늙은 자라와 한 마리의 작은 자라이지요. 제가 먼저 작은 자라를 죽인 후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그는 비수를 뽑아 귀종의 목을 겨누었다. 귀이낭은 위소보가 자기의 아 들을 죽이려는 것을 보자 당황해서 즉시 부르짖었다.
[이 꼬마야, 네가 사내라면 이 할미를 죽이도록 해라. 우리 아들의 손 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꼭 이 작은 자라를 죽여 보이겠소.]
그는 칼 끝으로 귀종의 목을 가볍게 눌렀다. 가볍게 갖다대는 정도였으 나 비수는 지극히 예리해서 귀종의 목에서는 즉시 피가 흘러나왔다. 귀 종은 겁에 질려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어머니, 어머니!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내....내 아들은 죽이지 말아라!]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 한마디 물으실 때 그대는 순순히 대답하시오. 그러면 반 시진 안으로는 그대의 폐병쟁이 아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우리 아들에게는 병이 없다. 너야말로 폐병쟁이다.]
귀이낭은 이렇게 말하며 위소봇가 자기 아들을 잠시 동안 죽이지 않는 다고 약속했으므로 약간 마음을 놓았다. 위소보는 일부러 연신 기침을 하면서 귀종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했다.
[엄마야, 나는....나는....콜록, 콜록....곧 죽게 되었다. 엄마야, 빨 리 솔직히 이야기해라....콜록....콜록....나는 폐병에 걸린 것이 아니 고 강도단두병(鋼刀斷頭病)에 걸렸어. 뾰족한 칼날에 목이 잘려지는 병 에 걸렸으며 전신이 토막이 나서 젓을 담그는 병에 걸렸단 말이야! 콜 록, 콜록....]
그는 매우 비슷하게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귀이낭은 그만 모골이 송연해 져서 외쳤다.
[그만둬, 우리 아들의 말을 흉내내지 말아라!]
그러나 위소보는 계속해서 흉내냈다.
[엄마야, 묻는 말에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나는 콜록....콜 록....다시 배가 갈라지는 병이 생길 것이고 창자가 흘러내리는 병도 걸리게 될 거야....]
그는 귀종의 옷을 걷어올리고 비수 끝으로 그의 비쩍 마르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솟아난 가슴팍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귀이낭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좋아! 우리들은 화산파의 사람들이다. 우리 바깥 어른으로 말할 것 같 으면 신권무적(神拳無敵) 귀이협(歸二俠)으로서 과거 중원에서 위세를 떨칠 때 그대들 같은 좀도적은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진근남은 이 사람들이 바로 명성이 쟁쟁했던 신권무적 귀신수 부부라는 것을 알고 그만 존경하는 마음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오륙기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는가 하는 사실도 상기했다. 그 당시 그가 피살되는 광경 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홍순당 형제들의 말로는 한 명의 노파와 한 명의 폐병쟁이가 손을 써서 십여 명이나 되는 홍순당 고수들을 쓰러 뜨리고, 다시 두 사람이 오륙기를 협공해서 그를 격살하여 목을 잘랐다 고 했으니 상대방에서 남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었다. 신권무적 귀신수는 명성을 떨친 지 이미 오래되어 근 수십 년간 은 강호에서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 참화에 얽히게 되었는지 여기에는 반드시 중대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즉시 앞으로 나가 귀신수에게 공손히 포권을 하고 절을 하며 말했다.
[화산파의 신권무적 귀이협 부부셨군요. 진근남이 많은 실례를 범하였 습니다.]
그는 손을 뻗쳐 귀신수의 몸을 묶어 놓은 밧줄을 자르고 곧이어 등과 허리께를 몇 번 만져 혈도를 풀어 준 후 다시 몸을 돌려 귀이낭과 귀종 의 몸에 감겨 있는 밧줄 역시 잘라 버렸다. 위소보는 다급해져서 다시 말했다.
[사부님, 이 세 사람은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놓아 주면 안 됩니다.]
진근남은 빙그레 웃고 말했다.
[귀이낭은 우리들이 몽한약을 썼으니 강호에서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천지회에서는 몽한약을 쓰지 않았 으며 그와 같은 약을 쓴다 하여도 귀이협은 내공이 심후하여 보통의 몽 한약으로는 어르신의 정신을 잃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천지회에서는 몽한약을 쓰지 않습니 다.]
그는 이 약이 할머니 누님의 것이고 또한 그녀 스스로 바꾼 것이니 천 지회가 저지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귀신수는 왼손으로 처와 아들의 등을 슬쩍 쳐서 두 사람의 혈도를 풀어 주었는데 그 수법 이 진근남보다 훨썬 빨랐다. 귀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무서운 약물이었다.]
그는 손을 뻗쳐 아들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귀이낭은 정신을 가다듬고 남편의 안색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어때요?]
귀신수는 말했다.
[지금 당장에는 별일이 없을 것 같군.]
그는 자기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한 사람과 일 장을 맞바꾸었는 데 그 사람의 무공은 무척 얕은 편이었으나 익힌 내공의 여력은 바로 화산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쌍아가 어지러운 바위들 이 널려 있는 언덕 위에서 줄달음쳤을 때 그 신법 역시 화산파의 경신 법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사람들 틈에 서 있는 쌍아를 발 견할 수 있었다. 쌍아는 그가 불타는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보 고는 그만 두려움을 느껴 위소보의 등뒤로 돌아가서 몸을 움츠렸다. 귀 신수는 말했다.
[너,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너는 화산파 사람이지?]
쌍아는 말했다.
[가지 않겠어요! 그대는 저의 의오라버니인 오형을 죽였으니 나는 그의 원수를 갚으려는 거예요. 나는....나는 화산파 사람이 아니에요.]
하척수는 과거 장씨네 셋째 젊은 마나님과 쌍아에게 약간의 무공을 전 수했을 뿐이지 결코 그녀들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그 렇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자신의 문호와 파벌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화산 파라는 석 자는 쌍아로서는 오늘 처음 듣는 셈이었다. 귀신수는 나이 어린 소녀를 상대하지 않으려는 듯 갑자기 진기를 단전에서 끌어올리더 니 낭랑히 소리쳤다.
[풍난적의 제자와 사손들은 썩 나서 보아라.]
이 한 마디는 결코 우렁찬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순간 기류가 소용돌이치 며 지붕의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는 동문 사형제 가운데 원승지 문하들은 모두 해외에 있고, 대사형 황진(黃眞)은 세상을 뜬 지 오래되 었으며, 화산파의 문호는 황진의 큰제자 풍난적이 이어받고 있기 때문 에 장원 안에 화산파의 제자가 있다면 반드시 풍난적이 직계라고 생각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참 동안 기다렸으나 내당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 리지 않았다. 진근남은 말했다.
[일 년 전, 천하영웅대회를 가졌을 때 피로써 맹약을 한 바 있었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대매국노 오삼계를 죽이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 당 시는 영사질인 풍난적 선배님이 바로 살귀대회의 주인격이라 할 수 있 었습니다. 어째서 선배님은 오삼계와 손을 맞잡고 폐회의 의사인 오륙 기 형제를 죽이셨습니까? 이것이야말로 가까운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원수들이 좋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음성은 매우 나직했으나 진근남의 말은 상대방을 사정없이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귀이낭은 그를 한번 노려보더니 말했다.
[사람들에게 듣건대 한평생 진근남을 모른다면 영웅이라 일컬어도 헛된 노릇이라고 하더군. 귀하가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부부 는 이미 천하를 주름잡다시피 했소. 그런데 그대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야 우리들을 영웅이라 칭할 수 있게 되었으니, 흐흐흐, 가소롭 군, 가소로워!]
진근남은 말했다.
[불초가 지니고 있는 재주와 무공은 귀이협 부부께서 한번 웃을 가치조 차 없습니다. 강호의 친구들이 불초를 높이 산 것은 불초가 시비를 명 백히 하고 못된 짓을 하는 도적 같은 사람과는 함부로 사귀지 않는 점 에 있지요.]
귀이낭은 노하여 말했다.
[그대는 우리가 못된 짓을 하고 도적 같은 사람과 사귄다는 말이오?]
진근남은 말했다.
[오삼계는 대매국노입니다.]
귀이낭은 말했다.
[오륙기는 호랑이의 앞잡이가 되어 오랑캐의 대관 노릇을 하고 있으며 우리 한나라 백성들을 업신여기고 핍박하고 있었소. 그대들은 어째서 말끝마다 그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못된 짓을 마구 하는 도적과 사귀는 것이 아니겠소?]
마초홍이 큰소리로 말했다.
[오형으로 말하면 몸은 조정의 군영에 있지만 마음만은 한나라에 있었 소이다. 그는 천지회의 홍순당 홍기 향주였으며 광동성의 병권을 쥐고 있었는데, 일단 기회가 오면 군사를 일으켜 오랑캐를 치게 되어 있었소 이다. 홍순당의 여러 형제들, 그대들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죠?]
홍순당의 속하 이십여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예! 바로 그렇습니다!]
마초흥은 말했다.
[그대들은 가슴을 펼쳐 이들 두 분의 대영웅에게 보여 주시구려.]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두 손으로 옷자락을 찢듯 양옆으로 잡아당겨 가 슴팍을 드러내 보였다. 가슴팍에는 '천부지모, 반청복명'이란 여덟 글 자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들은 살갗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간 상태였다. 귀종은 줄곧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십여 명의 가 슴팍에 여덟 글자가 문신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천지회의 군웅들은 모두 노기 띤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근남은 귀 신수에게 말했다.
[자제분께서는 재미있다고 느끼시는 모양인데 귀이협 부부께서는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귀신수는 후회하는 듯 크게 고개를 가로젓더니 귀이낭에게 말했다.
[사람을 잘못 죽였군. 오삼계란 간악한 적의 속임수에 넘어갔어.]
귀이낭은 이렇게 말하며 왼손을 뻗더니 마초흥의 허리에서 칼을 뽑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 자신의 목을 찌르려 했다. 진근남은 부르짖었다.
[안....]
재빨리 오른손을 뻗쳐 그녀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귀이낭은 오른손으 로 후려쳤다. 진근남은 왼손을 들어 맞받았는데 두 사람의 몸이 흔들렸 다. 진근남은 왼손의 두 손가락을 뻗쳐 칼 등을 휘어잡았다. 귀이낭은 다시 오른손으로 진근남의 가슴팍을 노리고 일 장을 후려쳐왔다. 진근 남이 만약 이를 받는다면 칼을 빼앗을 수 없게 되어 그녀는 곧 자결을 할 판이었다. 조금 전 그녀와 일 장을 맞바꾸었을 때, 그녀는 이미 늙 어 내력에 있어서 자기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손 씀씀이는 번 개같이 빠르고 권각법에 있어서의 재간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자기 가 만약 한 걸음이라도 물러선다면 맨손으로 다시는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를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즉시 가슴팍을 내밀어 펑 하니 그녀 의 일 장을 억지로 맞받았다. 귀이낭은 어리둥절해지게 되었고, 진근남은 왼손의 두 손가락으로 그녀 의 칼을 빼앗아서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섰으나 왁 하니 한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귀이낭이 칼을 비껴들고 자결을 하려고 했을 때 귀신수가 만약 손을 썼 다면 물론 저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 역시 자기가 오육기를 잘못 죽였다 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과 후회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결하여 사과할 뜻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처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는데, 진근남이 자신 의 몸을 돌보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귀이낭의 손에 들린 강철 칼을 빼앗는 것을 보고는 더욱더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착잡하게 얽혔 다. 그러나 그는 별로 언변이 없는 사람인지라 그저 다음같이 말할 뿐 이었다.
[진근남이 당금 세상의 호걸이라는 말은 과연 명불허전이구려.]
진근남은 탁자를 짚고 기식을 조절한 후에야 비로소 입을 열 수가 있었 다.
[모르고 한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오형을 해쳐 죽인 원흉은 바로 오....오삼....]
그 말을 하다가 그는 다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귀이낭은 나이 가 많았지만 옛날의 공력 대부분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진근 남은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를 빼앗기 위해 운기행공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일 장이 결코 가벼울 수가 없었던 것이 다. 귀이낭은 말했다.
[진 총타주, 내가 만약 자결을 한다면 그대의 성의를 저버리게 되는 것 이오. 우리 부부는 반드시 오랑캐 황제를 죽이고 다시 오삼계라는 간악 한 도적을 죽이고 말겠소.]
그리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오륙기의 수급을 향해 큰절을 세 번 올렸다. 진근남은 말했다.
[오륙기 형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은밀을 기해야 했기 때문에 강호의 많은 영웅들이 그의 위인됨을 모르고 그를 마구 욕했지요. 어지신 두 분께서 이번에 손을 쓴 의도는 원래 매국노를 주살하자는 것이었지만 애석하게도....애석하게도....]
그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귀신수 부부는 마음속으로 똑같은 생 각을 하고 있었으며 강희와 오삼계를 찔러 죽인 후에 자결하여 오륙기 에게 사과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바깥으로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 다고 생각하고는 동시에 진근남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진 총타주, 이만 작별을 할까 하오.]
진근남은 물었다.
[두 분께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불초의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귀씨 부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막 문 밖으로 나가려다 그 말을 듣고 발 걸음을 멈추었다. 진근남은 말했다.
[오삼계가 운남에서 군사를 일으켜 지금 천하가 크게 소란해질 판인데, 이것은 바로 우리 한나라 산천을 되찾을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 다. 많은 영웅들이 북경에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뜻 이 같고 길이 같으니 두 분 선배님도 함께 북경으로 가셔서 상의를 하 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귀신수는 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얼 굴을 맞댈 수 없는 심정이라 고개를 흔들고 다시 바깥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위소보는 그들 두 사람이 황제를 죽이려 간다는 말을 듣 고 속으로 이 세 사람의 무공이 지극히 고강한데 소황제가 미처 방비하 지 못한 사이에 그들에게 해침을 당해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부르짖었다.
[이는 천하의 큰일인데 그대들의 공자는 일하는 것이 엉망진창이외다. 이번에도 일을 망치게 만든다면 그대들 세 사람이 설사 한꺼번에 자살 을 한다 하더라도 그야말로....취기만년(臭氣萬年)이될 것이외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취만년(遺臭萬年)이라는 숙어를 들은 적이 있 었으나 제대로 외지 못하고 취기만년이란 말로 대신했던 것이다. 엉터 리로 말했지만 귀씨 부부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귀신수는 자기의 무공 이 고강하나 일을 보는 데는 남들처럼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삼계의 말만 듣고서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 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소보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그만 가슴속이 서 늘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를 찔러 죽인다는 것은 확실히 나라의 큰일이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지금의 황제는 나이가 어리고 일을 제대로 몰라 오삼계로 하여금 반란 을 일으키게 하는 등 어리숭한 점이 있소. 그대들이 만약 그를 죽여 나 이 지긋한 오랑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우리 한나라의 강산은 바로 그대들 손에서 없어지는 셈이외다.]
귀신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진근남은 말했다.
[두 분 선배님, 이 아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말하는 데 위아래가 없 으니 위엄을 거슬린 점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사과의 뜻을 표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바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겨 집니다. 그와 같이 큰일은 우리들이 깊이 생각하여 방법을 정한 이후에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귀신수는 속으로 한 번 잘못했으면 그만이지 두 번 잘못할 수는 없으 며, 일시적인 수치와 분노 때문에 만대에 걸쳐 죄인이 될 필요는 없다 고 생각했다.
[좋소! 진 총타주의 분부를 따르겠소.]
진근남은 말했다.
[분부란 말씀은 당치도 않습니다. 내일 오전에 모두 북경으로 함께 가 셔서 저녁 무렵에 이 애의 거처에서 모여 함께 대사를 논의하고자 합니 다. 두 분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귀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근남은 위소보에게 물었다.
[너는 거처를 옮겼느냐?] [제자는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불초는 내일 밤 두 분 선배님이 북경 동성 동모아 호동의 이애 자작부 에 삼가 왕림하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 화내지 마십시오. 지금은 백작부라고 부른답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허! 또 벼슬이 올랐군.]
귀이낭은 눈을 부릅뜨더니 위소보를 바라보았다.
[그대 역시 오삼계의 조카로서 역시 몸은 조정에 있으나 마음은 한나라 에 있으며, 대의로써 가까운 사람을 없애고자 하는가?]
위소보는 웃었다.
[나는 오삼계의 조카가 아닙니다. 오삼계는 나의 증손자지요.]
진근남은 위소보를 크게 꾸짖었다.
[선배님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면 못 쓴다. 빨리 절을 하고 사죄 하 도록 해라.]
위소보는 말했다.
[예.]
그는 무릎을 꿇는 시늉을 했으나 행동은 느릿느릿하게 해서 시간을 지 체했다. 귀신수는 손을 쳐들었다. 처와 시종들을 거느리고 곧장 문 밖 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잘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차라 리 굶으며 노숙을 하면 했지 천지회의 군호들과 마주보고 있을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귀종은 어릴 적부터 짝끙이 없는 형편이었는데, 위소보 가 영리하고 나이가 어려 무척 놀기 좋다고 생각되자 위소보에게 손짓 하며 말했다.
[꼬마야, 너는 날 따라와라. 나와 같이 놀자.]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나의 친구를 죽였으니 그대와는 놀지 않겠소.]
별안간 획, 하는 소리가 나면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귀종 이 달려들어 냉큼 위소보를 잡고 문 밖으로 들고 간 것이다. 이 한 수 의 솜씨는 지극히 빨라, 조금 전에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고 있었고 거 리도 상당히 멀어서 진근남은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천지회의 군웅들 가운데 한 사람도 때늦지 않게 저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귀 종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 다시 숨바꼭질을 하자. 그리고 재미있게 놀자꾸나.]
귀신수는 안색을 굳히며 호통을 내질렀다.
[얘야, 내려 놓아라.]
귀종은 감히 부친의 말을 거슬릴 수가 없어 위소보를 내려놓았으나 입 술을 삐죽거리며 울먹울먹했다. 귀이낭은 위로했다.
[얘야, 우리는 두 사람의 서동을 사서 너와 함께 놀도록 해주겠다.]
귀종은 말했다.
[서동은 놀기가 좋지 않아요. 저 꼬마가 놀기 좋아요. 우리 저 꼬마를 사도록 해요.]
귀신수는 그의 아들이 못난 꼴을 보이자 아들의 손을 잡고 재빨른 걸음 으로 문을 나섰다. 군웅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두들 오육기 가 일세의 영웅인데 저토록 얼간이 같은 자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이 너 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 제가 가서 할머님 누님을 나오시게 해서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쌍아와 함께 후당으로 갔다. 그러나 하척수는 이미 떠나고 없었 다. 셋째 젊은 마님은 여자의 몸으로 군웅들과 만나 보기가 거북하다고 하며 그저 하녀들에게 술과 밥을 마련해서 손님들을 환대하라고 분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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