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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28) 금석(金石)같은 충의
조조와 원소의 싸움은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황하의 봄이 무르익고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이 가까울 무렵, 원소의 하북군(河北軍)은 무양(武陽)에 진을 친 채 방어에만 전력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조도 일단 군사를 돌려 허도로 돌아와,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조조는 허도로 돌아와 논공 행상을 크게 베풀고 승전 연회를 거창하게 벌였다.
주연이 한창 벌어졌는데, 문득 탐마가 들어와 보고한다.
"승상! 여남(汝南)의 황건적 잔당인 유벽과 공도가 이끄는 무리의 힘이 무척 강하여, 조홍(曺洪)이 여러번 싸웠으나 그때마다 패했으니, 급히 지원군을 보내 주셔야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관우가 말한다.
"승상! 내가 가서 여남의 적도(賊徒)들을 소탕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감격어린 소리로 대꾸하였다.
"오오, 고마운 말이오! 운장은 이미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는데, 쉬지도 못하고 또 나가겠단 말인가?"
"아닙니다. 나는 한가하게 있으면 오히려 병이 나니, 한번 더 다녀오도록 해주십시오."
조조는 그 말을 장하게 여겨, 다음날 오만의 군사를 내주며, 우금(于禁), 악진(樂進)등 두 장수를 부장(副將)으로 삼아 토벌길에 오르게 하였다.
관우가 여남으로 황건적 잔당의 토벌길에 오르자, 순욱이 조조에게 가만히 말한다.
"승상! 운장이 아직도 유현덕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니, 승상께서는 그 점을 특히 경계하셔야 합니다. 많은 군사를 주어 운장을 함부로 멀리 보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응? 그런가?... 이번에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다시는 멀리 보내지 말아야하겠군."
...
한편, 여남에 도착한 관우는 군사들에게 산중에 진을 치게 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게 하였는데, 그날 밤에 손건과 함께 적도의 토벌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미방이 찾아왔다.
미방은 관우를 보자 반가워 하면서 유비가 보내는 편지부터 내놓았다.
관우는 황급히 편지를 펼쳐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큰형님 유비의 필체였다.
<운장 보게. 우리 형제 도원결의로 맹세했건만, 아우는 어찌 의를 끊고 역적 조조를 돕는가? 부귀공명을 바란다 하면, 이 형님의 목도 바쳐주겠네. 못 다한 말은 다음 생에 하세.>
관우가 편지를 읽어보고 나서, 고개를 흔들며 감격에겨운 어조로 말한다.
"형님이 살아계셨군! 우리 형님이 살아계셔!..."
그러자 편지를 가지고 온 미방이,
"주공께서 기주의 원소에게 의탁하고 계신데, 장군이 원소의 대장군 안량, 문추를 죽여, 지금 주공은 매우?위태롭게 되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 여지껏 충의를 근본으로 살아왔건만, 형님이 거기 계신 줄 어찌 알았겠나."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미방이,
"장군! 돌아가 주공께 뭐라 아뢸까요?"
하고, 묻는다.
그러자 관우는 그간의 사정을 낱낱이 말해 주고 나서,
"형님이 원소에게 계신 것을 안 바에야 이 밤으로 찾아가 뵈올 생각이지만, 내가 원소의 두 장군을 죽인 처지인데다가 지금은 대군을?이끌고 적도를 소탕하러 나왔으니, 우선 이 일부터 처리한 뒤에 허도로 돌아가 조조에게 하직을 고하고, 두 형수님을 모시고 기주로 돌아갈 터 인즉,?자네는 이런 점을 형님께 소상히 말씀드리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미방이 염려스런 어조로 묻는다.
"조조가 장군을 순순히 보내줄까요?"
그러자 관우가 당연한 어조로 대꾸한다.
"조조에게 귀순할 때 조건을 걸었지.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이, 형님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곧장 찾아간다고 했었네."
하고, 말하고 나서, 다시 좋은 생각이 났던지,
"잠깐 기다리게, 내가 형님에게 얼른 답장를?쓸 테니..."
"좋습니다! 장군께서 답장을 써 주시면 속히 기주로 가서, 주공께 장군의 말씀과 함께 편지를 전하지요."
미축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관우는 곧 붓을 들어 답장을 쓰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 의리는 마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충성은 죽음조차 돌보지 않는다 하는데, 내가 어찌 형님과의 결의를 꿈엔들 저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전날 하비성이 함락될 때, 안으로는 양식이 떨어지고, 밖으로는 원병이 없어 일시는 죽움을 각오하였으나, 두 분 형수님이 계심으로 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잠시, 조 승상에게 몸을 의탁했던 것입니다. 이제 형님이 하북에 생존해 계심을 알았으니, 불일간 조 승상에게 하직하고 두 분 형수님과 함께 형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제가 만에 하나라도 딴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니 형님께서는 깊이 통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날 밤, 운장은 손건을 시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미방을 뒷문으로 돌려보내 주고, 이튼날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갔다.
공도가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온다.
관우도 청룡도를 거뭐쥐고 맞서 나가며 말했다.
"너희놈들은 어찌하여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느냐?"
"너는 주인을 배반한 주제에 어찌하여 우리를 욕하느냐?"
"내가 무슨 주인을 배반했단 말이냐?"
"유현덕이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너는 조조를 위해 싸우고 있으니, 그게 배반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어쭈구리? ...형님이 원소에게 가 있는 것을 저 놈도 알고 있었단 말인가? 허참! .. 그런데 왜, 나는 그것을 여태까지 몰랐을까? .. 이런 멍충이! ...)
관우는 공도가 조롱하는 소리를 하자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이번 전쟁을 하루속히 끝내고 어서 허도로 돌아가서 조조에게 작별을 고하고 형수들을 모시고 형님에게 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관우는 급한 마음에, 공도의 말에 대꾸는 커녕, 그대로 적토마를 달려가 한칼에 공도와 유벽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대장을 잃은 잔당은 뿔뿔히 흩어지고 투항하니, 전투는 불과 한시각내에 끝나버렸다.
그리하여 관우는 여남을 평정한 뒤에, 민심 수습을 우금과 악진에게 맡기고 단신으로 허도로 돌아와 버렸다.
이로써 관우는 조조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공을 세운 셈이었다.
관우가 허도로 돌아오자 조조는 그 공로를 크게 치하하며 전승 축하연을 크게 베풀었다.
관우는 술에 대취했으나, 집에 돌아오는 길로 곧 두 형수를 찾아 뵈었다.
"지금 여남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두 형수님은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두 부인은 운장을 보자, 눈물을 지으며 물었다.
"시숙께서는 이번 싸움에 나가셔서도 황숙의 소식을 못 들으셨습니까?"
관우는 혹시나 비밀이 누설될까 염려되어, 유비의 소식을 일부러 못 들었다고 대답하니, 감 부인, 미 부인의 두 형수는 손을 마주잡고 목을 놓아 통곡한다.
"형수님들은 어찌하여 통곡을 하십니까?"
"시숙께서 황숙의 소식을 모른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황숙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슬퍼할까 봐 일부러 숨기시는 것은 아닙니까?"
하고, 말하며 또 다시 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관우는 두 형수를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었다.
"두 형수님께서 이처럼 비통해 하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형님은 지금 원소에게 의탁하고 계십니다. 제가 형수님들께 진작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이 소식이 혹시라도 조조의 귀에 들어갈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제 두 형수님을 모시고 조조를 떠나 형님에게 돌아갈 계획을 꾸미고 있으니,
두 형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시고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두 형수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관우의 손을 와락 붙잡으며,
"그저 시숙님만 믿겠소. 죽어도 황숙의 곁에서 죽게 해 주세요."
하고, 애걸하듯이 호소하는 것이었다.
관우는 그날부터 유현덕을 찾아갈 계책만 궁리하고 있는 중에, 하루는 장료가 찾아왔다.
관우의 부장으로 여남에 함께 싸우러 갔던 우금(于禁)이, 여남의 공도가<유비가 살아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 사실을 조조에게 고했기 때문에, 조조는 관우가 떠날 것이 두려워 장료을 보내 관우의 동정을 살피게 한 것이었다.
장료가 관우에게 말한다.
"운장 형이 이번에 현덕의 소식을 듣고 오셨다니 크게 기쁘시겠소."
그러자 관우는 추연히 대답한다.
"형님이 생존해 계시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지, 아직 뵙지 못했으니 무엇이 기쁘겠소."
"그래 ,운장 형은 조 승상의 은총을 버리고 기어이 기주로 현덕을 찾아가시려오?"
"내 어찌 형님을 버릴 수 있겠소. 장군은 부디 이런 내 뜻을 승상께 여쭈어 주시오."
장료는 관우를 붙들어 둘 수 없음을 느끼고, 곧 조조에게 사실대로 고하였다.
조조는 그 말을 듣고 혼잣말로 크게 탄식한다.
"운장을 붙잡아 둘 무슨 묘책이 없을까?"
그러나 금석같은 충의의 관운장을 붙잡아 둘 계책은 이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관우의 면회를 사절하며 지내는 중에 관우는 조조에게 하직을 고하려고 승상부로 찾아갔지만 번번히 만나지를 못했다.
이날도 관우는 승상부로 조조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승상부를 지키는 위병관에게 말하였다.
"관우가 뵙길 청한다고 승상께 고해주게."
그러자 위병관은 피객패(避客牌 : 면회사절을 알리는 패쪽)을 가르키며 말한다.
"승상께서는 급한 일이 있다 하시면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벌써 세 번째 왔네, 계속 막을 것인가?"
관우는 점잖게 말했지만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나도 급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게."
그러자 위병관은,
"승상의 명은 엄하시어 어기면 중벌에 처하십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돌아가시지요."
위병관은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예까지 표해 보이며 말한다.
그러자 관우는 더이상 조조의 면회를 요청할 수가 없었다.
"으음!..."
관우는? 탄식을 입 밖으로 내면서 말을 돌려 집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장요의 집으로 가서 그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장요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장요의 집에도 역시, 위병관이 피객패를 걸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관우가 위병관에게 말한다.
"관우가 문원 장군을 뵙잔다고 고해주게."
그러자 위병관은 승상부와 마찬가지로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하며 말한다.
"장 장군은 와병중이라 방문을 사절하오니 양해하세요."
"으음!..."
관우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탄식을 내뱉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관우는 손건을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다들 만나주질 않네, 보내기 싫은 게야."
그러자 손건이 묻는다.
"그럼 어찌하시렵니까?"
"어쩔 수 없지, 조 승상께 서신을 써두고 하직 인사로 갈음해야지, 내일은 길을 떠날 테니, 그간에 승상께서 내려 주신 물건은 하나도 건드리지 말고, 우리가 가지고 온 짐만 깨끗이 꾸리도록 하게. 그리고 명심하게, 조승상이 내린 금은 보화는 물론 열 명의 시녀까지 전부 남겨두게."
"알겠습니다."
손건은 관우의 명을 실행하기 위해 바삐 안으로 들어갔다.
관우는 그 길로 두 형수를 찾아가, 내일 아침 하북으로 유비를 찾아 간다는 소식을 알리자 두 형수는 크게 기뻐하며 ,
"시숙께서 그토록 애써 주시니 무어라 고맙단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관우는 조조에게 보내는 하직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羽)가 일찍이 황숙을 섬기어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하였는데, 이는 황천후토(皇天后土)가 모두 들으신 바 있습니다. 예전에 승상을 찾아 뵈올 때에 말씀드린 세 가지 일은 이미 승상께서 쾌히 응낙하신 일이거니와, 이제 옛 주인이 원소의 군중에 계심을 알고 지난날의 맹세를 돌이켜 생각케 되니 어찌 저버릴 길이 있겠습니까? 승상께 받은 새로운 은혜가 비록 두터우나 옛날의 의리를 저버릴 길이 없어 이제 붓을 들어 하직을 고하니 승상께서는 부디 살펴주소서. 아직 갚지 못한 은혜는 후일에 기약하려 합니다.>
그리고 관우는 대들보에 조조의 추천으로 천자로부터 하사받은 한수정후(漢水精侯)인장(印章)함을 매달아 놓고, 천자를 배알 하듯이,
"용서하십시오. 관우는 물러갑니다."
하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조로 부터 하사받은 비단과 보석등 값진 보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다음날 아침, 관우는 두 형수를 마차에 태우고, 손건과 마부를 대동하고 하북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허창성 남문에 이르니, 문지기 군사가 길을 막는다.
그러자 관우는 눈알을 부라리며 청룡도를 가로세워 들었다.
"어느 누구도 나의 길을 막지 못할지니, 너희들은 빨리 길을 비켜라."
수문장은 관우의 호령에 겁이 질려 길을 터준다.
관우는 두 형수가 타고 있는 마차를 호위하며 길을 재촉하였다.
한편, 조조는 정욱과 함께 관우를 놓아 보내지 않으려고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장군 채양의 보고를 받는다.
"승상! 관우가 마차를 끌고 남문을 뚫고 나갔답니다."
그러자 조조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잠시 그 자리에서 서성대더니 털썩 걸터 앉으며 뇌까리듯 입을 열었다.
"관우가 떠나는군, 관우가 떠났어..."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병사가 달려오며 소리친다.
"승상! 관우가 조정에서 내린 제후 인장함을 대들보에 매어두고, 승상께서 내린 보물과 하인까지 모두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 서신도 남겼습니다."
하고, 말하며 죽간서(竹簡書)를 들어보였다.
정욱이 이를 받아, 망연히 앉아 있는 조조의 앞에 펼쳐보였다.
조조가 이미 관우의 뜻을 알았다는 듯이, 정욱에게 죽간서를 치우라는 손짓을 해보인다.
그러면서 자조섞인 한탄조의 말을 내뱉었다.
"재물로도 끄덕 않고, 작위로도 변치 않고, 죽음도 불사하고 가는 사람. 이걸 어떻게 말린단 말인가?"
그러자 정욱이 말한다.
"관우는 분명 원소에게 갑니다. 그리되면 원소는 날개를 다는 격인데, 속히 군사를 보내 관우를 죽여서 후환을 없애세요."
그러자 입시해 있던 장군 채양이 두 손을 모으고 아뢴다.
"승상! 소장이 출병해 관우의 머리를 바치겠나이다."
그러자 조조는 채양을 쳐다 보지도 아니하고 말한다.
"채양! 자넨 용맹하긴 하나, 관우의 적수는 못 되지 싶네."
그러자 채양은 순간 머슥해 지며 고개를 털었다.
이어서 조조가 말한다.
"이리된 이상 여기서 후회하고 탄식하느니, 차리리 관우에게 은혜를 베풀어야지. 정욱!"
"네."
"나와 성밖까지 나가서 관우를 배웅하세."
"네."
조조는 관우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소수의 호위병을 데리고 성밖으로 달려나갔다.
한편, 남문을 통과한 관우는 청룡도를 비껴들고, 두 형수가 탄 마차의 선두에서 호위하며 하북 방향으로 길을 가고 있었다.
마차 안의 유비의 감 부인과 미 부인은 조조의 세력이 미치는 곳을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가 없어 서로 손을 꼭 잡고 불안감을 달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마차의 뒤에서 조조의 장군 하나가 말을 달려 오며 소리친다.
"운장! 운장! 기다리게!"
관우는 마차를 세우게 하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청룡도를 비껴든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 여차하면 싸울 태세로 말을 달려갔다.
소리를 치고 달려온 사람은 다름아닌 옛 벗 장료였다.
장료는 관우를 보자,
"운장!"
하고, 다시 한번 관우를 불렀다.
그러자 관우는 경계를 하면서,
"문원 형! 날 잡으러 오셨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장료는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런들 자네가 날 따라오겠나?"
"절대 못 가오."
관우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그러자 장료는 웃으며,
"하하하하! 자네를 잡으로 온게 아니네. 보다시피 내가 비무장이 아닌가?"
장료는 관우에게 적의가 없음을 말하고 나서,
"운장! 자네가 떠난다는 소식에 승상께서 친히 배웅을 나오셨네. 보게!"
장료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관우가 고개를 들어,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자, 한떼의 인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관우는 즉각 경계태세에 들어가 청룡도를 움켜 잡았고, 마차안의 두 부인은 점차 가까워지는 많은 말발굽소리에 긴장하며 서로의 손을 꽉 움켜 잡았다.
이윽고 관우의 앞에 도달한 조조가 말에서 내려 관우의 앞으로 뛰어왔다.
그러자 관우는 청룡도를 내리며 경계를 풀었다.
조조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정욱을 비롯한 군사들 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관우는 두 형수의 안전을 위하여 적토마 위에서 내리지 않았다.
조조가 다가와서 마상의 관우에게 말한다.
"운장! 왜 이리 바삐 가나 , 엉? 송별주 한 잔 마실 겨를도 없어?"
그러자 관우는 마상에서 조조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아룁니다. 일전에 승상께 요구했듯이, 형님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찾아 간다고 했지요. 이제 형님의 행방을 알게 되어, 급히 가오니 용서하소서."
"내가 한 약조인데 어찌 어기겠나. 그러나 이보게! 기주까지는 팔백 리 먼 길인데다가 비바람도 칠 텐데, 그래서 자네 외투 한 벌을 준비했으니 그걸 입고 추위를 면했으면 좋겠네. 자! 내가 걸쳐줌세."
조조는 옆의 병사가 내미는 외투를 받아 들고, 펼쳐 보였다.
그러자 관우는 마상 위에서 청룡도 끝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송구하오나 이렇게 인사를 드립지요."
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그 모양을 보고 허저가 화를 낸다.
"이런 무례가 있나?... 승상께서 내리는 것을 창 끝으로 받으려 하다니!"
그러나 조조는 허저를 돌아다보며 나무란다.
"저는 한 사람이요, 우리는 수십 명이니 저가 우리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하고, 말하며, 조조는 관우를 향하여 계면적은 웃음을 웃으며, 외투를 관우의 청룡도 끝에 올려주었다.
관우는 청룡도를 들어 마상에서 외투를 결쳐 입으며,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또 만날 수 있길 바라네 운장!"
하고, 대답하였다.
"이랴!"
유비의 두 부인이 탄 마차는 이미 저 만치 앞서, 언덕을 넘어 가고 있었고, 관우은 그 뒤를 바삐 따라가고 있었다.
조조는 황급히 관우가 사라진 언덕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관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정욱이 따라와서 걱정이 가득 담긴 소리를 하였다.
"주공! 어찌 이러십니까? 15년을 뫼셨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뵙네요."
그러자 조조가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질 듯이, 긴 한숨을 쉬고 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15년 동안 내가 오늘과 같은 좌절을 맛보긴 처음이니까. 생각해 보게, 사람 마음 하나 못 잡으면서, 천하의 인심을 어찌 얻을 수가 있겠나, 엉?"
"주공, 말씀이 과하십니다."
"오늘 운장의 행동은 전부 유비 때문이라네, 내가 유비와 처음 만났을 때 논했지, 이 난세에 무엇으로 천하를 평정할 지를.. 나는 병마와 권모라 했고, 유비는 충의라고 했네, 나는 그때 유비를 진부하고 유치하다고 비웃었네, 허나 오늘 운장이 하는 것을?보니, 유비는 아주 두려운 자야! 원소보다 더 두려워!
유비야 말로 진정한 나의 적수야, 적수!"
조조는 평소와는 딴판으로, 탄식하듯 뇌까리듯, 사라져가는 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외치듯이
말하였다.
...
첫댓글 조조가 진정 지도자 상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