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좀도둑
골동품 수집광으로 유명한 오성그룹의 구매력 회장이 비밀리에 진짜
신라 금관을 입수했다. 이 금관으로 말한다면 국보 중의 국보로서,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500억 원! 이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골동품 업계에
퍼지자 당연히 골동품 전문 도둑들이 군침을 흘렸다.
그래서 구 회장은 지하실에 특수 금고를 설치하고, 또 이 금고에는 강력한
고압 전류를 연결시켜 비밀 열쇠가 없으면 만지는 순간 감전사하게 하는
장치를 해두었다. 전문 도둑들은 생명까지 걸 수는 없었으므로 단념했는데,
어느 날 이 사실을 모르는 좀도둑이 지하실에 침입해 금고에 손대는 순간
감전사하고 말았다.
도난을 예상하여 금고에 고압 전류가 흐르도록 한 조치도 정당바위가 되는가?
정답
장래에 예상되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정당방위는 성립되나, 그 조치가
상당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그 정도를 넘어 과잉 방위가 된다.
설명
서부 영화에서는 천편일률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주인공인 보안관은 언제나
승리하고 악당은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다. 비겁하게 뒤에서 총을 빼는 악당을
향해 재빠르게 반격하는 보안관이 그 악당을 사살하고도 법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은 보안관의 행위가 정당방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방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거의
자연 발생적으로 인정되어왔다. 때문에 "정당방위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말도
이런 데서 연유된 것이리라. 정당방위는 인류 사회에서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위법성 조각 사유였던 것이다.
물론 우리 형법도 예외는 아니다. 정당방위를 형법적으로 정의하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성이 있어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할 수 없는 행위'가 된다.
정당방위는 그 허용과 인정의 폭을 넓히면 남용이 되고, 엄격하게 혼용하면
정당방위 제도 그 자체를 부인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마치 손안에 든 새처럼
꽉 쥐면 죽게 되고 너무 느슨하게 쥐면 새가 날아가는 경우와 같다.
정당방위의 성립 요건을 살펴보자.
첫째 요건은 '타인으로부터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이다. '침해'란 타인의 위법
또는 부당한 공격을 말한다. 위법, 부당한 공격은 사람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겠지만
동물을 이용하여 공격해오는 경우도 포함된다. 그리고 침해는 '현재의 침해'이어야만 한다.
즉 목전에 임박하거나 지금 절박한 상태를 말한다. 과거의 침해에 대해서는 방위가 아니라
보복일 뿐이다.
둘째 요건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다.
여기서 '법익'이란 법률상 보호되어야 할 모든 이익을 말하며 생명, 신체, 권리, 명예, 재산 등
그 내용을 묻지 않는다. 자기의 법익을 지키기 위해 방위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타인의
법익을 위해서도 정당방위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가족. 친지. 친구는 물론, 법인이나 기타 단체의 법익을 위한 방위도 허용되며
심지어는 공익(국가의 법익 및 사회적 법익)을 위해서도 가능하다. 큰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일격을 가하는 것도 타인(법익)을 위한 정당방위다.
'방위하기 위한 방위'는 대체로 '위법 부당한 공격이나 침해를 배제.저지. 격퇴시기기 위한
방위자의 반격 행위'를 말한다. 반격은 공격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고 공격자 아닌 제3자에
대해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또 방위 행위를 하는 방위자에게는 방위의 의사나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방위 의사가 없었던
반격은 그 자체가 범죄가 된다. 예를 들면 A가 B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덤볐는데 B는 A의
행동을 알지 못한 채 A가 자기 원수이므로 권총으로 사살했다면 B의 행위는 정당방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A에 대한 살인죄가 된다.
셋째 요건은, 방위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침해나 공격에 대한
반격으로서의 방위 행위가 행위 당시의 모든 사정으로 보아 사회 통념상 필요하다거나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방위자에게 도주나 피신 등과 같은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도 정당방위는 인정될 수 있다.
또 반격 행위가 침해 행위의 내용과 정도에 반드시 비례하거나 균형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침해와 반격이 현저하게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경우, 예를 들면 좀도둑을 보고 사살하는 것처럼
균형을 잃은 경우에는 과잉 방위가 된다.
이상과 같은 요건을 구비한 정당방위는 설사 범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되더라도 위법성이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당방위에서 방위 행위가 필요한 방위의 정도를 초과하여 상당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
즉 과잉 방위에 대해서는 일단 범죄가 되나 그러한 방위에 이르게 된 사정을 참작하여 형을
감경 또는 변제할 수 있다.(형법 제21조 제2항). 나아가 과잉 방위가 야간이라든지, 그 밖에
불안한 상태에서 방위자가 공포, 흥분 또는 당황하여 하게 된 때에는 적법 행위의 기대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벌하지 않는다.(형법 제21조 제3항)
결론
정당방위가 성립되기 위한 첫째 요건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공격) 행위가 있어야 한다.
물론 장래의 공격이 확실시될 경우에는 방위자도 미리 방위 행위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침해 행위와 방위(반격) 행위는 어느 정도까지는 균형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 비추어볼 때
도둑의 침해에 대비해서 금고에 사람이 감전사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전류 장치를 한 경우에는
과잉 방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