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열왕기상 7장 9-12절)
9-12.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야카르) 다듬은(가지트) 돌(에벤)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귀하고(야카르) 다듬은(가지트) 돌(에벤)로 지었으니”
야카르는 가치있고, 값비싸며, 뛰어난, 귀한 이라는 뜻이 모두 담겨 있다. 가치가 있다는 표현은 생명나무와 같은 그런 개념이다. 부활생명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창세기 2장 9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나무의 표현은『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생명의 나무』라고 표현되었다. [에츠(나무가) 네흐마드(아름답고) 르마르에(보기에) 웨토브(좋은) 레마아콜(먹기에) 웨에츠(나무와) 하하이욤(생명)]
(ֵ֛ץ נֶחְמָ֥ד לְמַרְאֶ֖ה וְטֹ֣וב לְמַאֲכָ֑ל וְעֵ֤ץ הַֽחַיִּים֙ ) 다시 번역해보면, 『기쁘고 양식을 위해 보기에 가치있고, 생명이 있는 나무』이다.
가지트는 다듬고 쪼갠 돌, 뜨인 돌 등의 의미를 갖는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바, 성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옛사람을 부셔버리는 것이다.
“크기대로 톱으로 켠(가라르 메게라) 것이라” 돌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잘라내어 고르고 반듯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톱으로 켜서 잘 짜맞추는 것이다. 성도의 내면에도 이렇게 톱으로 잘리고, 고르게 반듯하게 잘리는 것이다. 이게 환난으로 표현된다.
기초석(마사드)은 건물의 다른 부분들이 이에 의지하여 세워지고 연결되는 크고 귀한 돌이다.
마태복음 21장 42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모퉁이의 머릿돌은 서로 맞닿는 두 벽을 견고하게 연결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버려진 돌이였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생명을 살리는 모퉁이 돌이 되는 것이다.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기초석이 다만 "귀하고 큰 돌"로만 묘사된데 비해, 그 위의 돌들은 "척수대로 다듬은 귀한 돌"로 묘사되고 있다. 성전 기초석의 경우를 염두에 둘 때, 기초석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땅 속에 박히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거칠게 다듬어졌음을 것이다. 반면 기초석 위에 세워지거나 꾸며지는 돌들은 보다 매끄러울 뿐 아니라 작았을 것이다.
왕실에서 사용되는 규빗이 적용된다면, 왕궁의 기초석은 각각 길이 5.2-5.4m 폭 3.68-4.32m의 크기이다.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솔로몬의 궁에도 성전과 마찬가지로 두개 이상의 큰 뜰과 작은 뜰이 있었다. 큰 뜰은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뜰을 가리킬 것이다.
다듬은 돌 세켜(샬로쉬 투르)에서 샬로쉬(삼) 투르(정열된)는 세줄로 정열되어 있는 다듬은 돌을 의미한다. 삼은 십자가에서 죽은 후의 삼을 의미하며, 정열된 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솔로몬의 궁도 솔로몬이 지은 여호와의 성전과 마찬가지의 개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백향목(에레즈)의 두꺼운 판자(카루타)” 백향목은 부활생명을 상징하며, 칼루타는 들보를 의미한다.
솔로몬의 궁은 오늘날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이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모양 그대로이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천국이라고 부르며, 셋째 하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 부활을 육체적인 부활로 여기는 신도들이 대부분이다. 부활을 영원한 영적 생명으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육의 부활을 통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육체를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육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 그것은 참 성전이 아니라, 무너지게 되는 돌 성전이 된다는 말씀이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을 칠 년 동안 지었지만 자신의 왕궁을 위해서는 두 배 정도 해당하는 십삼 년 동안 건축에 힘을 쏟았다. 여호와의 성전보다 네배나 더 크게, 그리고 건축 기간도 두 배 이상이 걸렸다면 이미 솔로몬의 마음이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분명 솔로몬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려 하실 때 자신을 위해 부와 장수를 위해 구하지 않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여서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했던 대답을 했을 정도로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가 자신의 왕궁을 지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니라 그의 화려한 궁전과 재력만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