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하여 3강을 읽고 나서,
영혼의 기능이 뜻하는 바를 더 알게 되었다.
예전에 그룹톡에 호남형님께서 ‘영혼의 기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적이 있다, 기억한 바로는, 왜 간단한 “물병이 책상 위에 있다” 라는 말을 왜 뒤집어서도 표현하고, 길게 장황하게 설명하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예시의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영혼의 기능을 깨워주기 위해서 라고 할때 그말이 이제 무슨 의미인지를 조금 알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받아, 그 피의 새로운 생명의 법의 다스림을 받아 살아간다. 나는 또한 이것을, “은혜의 왕노릇”이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김홍전 목사님의 말로는 새로운 생명의 다스림이라고 한다.
편리를 위해서 이 글에서는 나는 은혜와 진리의 왕노릇이라고 부르겠다.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에게 찾아오시되, 우리에게 “너희에게는 영생이 있다” 라고 말씀하신데에는, 우리는 그의 말씀과 피없이는 우리는 “진정” 살 수 없는, 구속의 역사뿐만아닌,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의 계시와 은혜없이는,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이치들과 철학의 혼돈과 죄의 다스림 으로밖에 살아갈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속에서, 더 넓은 의미의 세상속에서 사람들을 관찰할때 너무나 뚜렷이 보이는 것이다.
스레드에서 글들을 읽었는데 많은 글에는 기독교의 대한 강력한 비판이 쏟아졌다
“기독교 병신들은 왜 자꾸 없는 소설 가지고 뭔 하나님이 창조를 했네 마네, 믿을거면 지들끼리 떠들지…”
“자기들끼리 도적적으로 가장 우월하다며 스님을 뛰어넘지 못하네..”
“목사들이 개보다 못하네..”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든 생각은, 내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믿게 됬을까? 내가 무엇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앞에서 눈물까지 쏟아가며, 내 인생을 받히고 싶은 마음까지 가졌을까?” 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지 않고,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나도 어쩌면 이들처럼, 기독교와 성경의 비논리성에 대해서 마구마구 이야기 했을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일을 하며 살아갈때, 감사가 사라지며 불행하게 살아갔을 것같다..
결국 인간이 참 인간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 뿐만아닌, 그것을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의 왕노릇되게 하는, 즉 새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모든것을 완성해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소화하며 성화하며 살아갈수 있는 존재들이다.
직업소명론을 읽어보았는가..
나는 그책을 다 읽었을때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들이 너무 뚜렷하게 정돈 되었다.
우리는 모든 직업들을 가진 배후에, 늘 바뀌지 않는것은, 인간이 하나님앞에 인간다워져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학교를 가든, 어떤 직종을 가지든, 물론 그직업 본질이 성경의 도덕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마약 딜러, 갱스터 협회…) 하지만 우리는 바뀌지 않는것은, 우리가 어떻게 인간이 될것인가 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 참된 새생명이 있다, 할때에는,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의 법으로 매일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에 다다르게 하는 참된 선행과 순종의 능력이 주어졌다는 선포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상황들이 자주 많이 벌어진다:
내가 만약 학생을 가르치는 도중에, 단지 이 학생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마음과 함께 나의 지식자랑이 동반되는 경우에,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그냥 “저 프로님은 지식이 많구나..”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의 마음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되게 필요한 말을 비유까지 하시며 눈높이를 맞춰주셨는데… 라는 마음과 함께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을 생각하며, 내가 진정 이 학생이 필요한것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말이다. 또한, 하루를 시작할때에 나의 마음은 이 하루를 그냥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의 통치를 누리는 하루로 살아갈 것인가에대한 결정 또한 있다. 간단한 예시이지만, 묵상의 시간, 매일 모든 사건사건들 안에, 늘 이러한 두가지 마음을 품으며 살아가는것을 많이 경험한다.
더 이어서 더 많은 현상들을 이야기하자면, 나의 협업 프로님을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다.
그 프로님과 나는, 아주 비슷한 계열의 티칭 프로이다, 나보다는 훨씬 선배이며, 안목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기에, 프로님께서 나를 많이 도와주시며 이끌어 주신다,
그 프로님의 인간됨이 어떠한 지는,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과연 못보는가? 아니다, 보이지만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만약 인간이 덜 된 상태에서 건강하게 관계를 못맺는 사람이면, 그분과 손잡고 협업을 하려고 한다면, 그 프로님은 나를 도와주실 생각조차 할것인가?
“얘는 뭐가 일렇게 건방져?”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한, 사고하는 것, 교류하는 것, 등등은, 인간이 스스로 다 배워서 할 수도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생명을 받은자로써 누려야 할 것들이 그 이상의 것들이 많다.. 상황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묵상하며 음미하는 순간들,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봤을때는 선행에 속하지만, 죄의 자그만한 유혹들과 수없이 많은 죄의 철학들을 발견하며 그리스도께 의탁하는 우리들…
그러면, 이어서, 교회가 은혜의 방편인 말씀의 기능을 제대로 해야한다는것이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접했을때의 그 사고흐름과 교리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지만 성도들이 주중에 영혼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한 말씀들, 우리 주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말씀들의 풀이들은, 그 이상의 것들이다. 궁극적인 핵심은 우리 “영혼 구원” 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우리가 그 새생명을 누리며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가 또한 수없이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그 핵심을 바라보며, 11월에 한국에서 왔을때 다시한번 강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그 예배속 말씀을 통해 얼마나 그리스도를 향한 각성을 주중에 하게 되는지를 좀 더 관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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