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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하지만 맹인재활원에 들어간 강영우는 기를 쓰고 공부해 1968년 서울맹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뒤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입시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맹인이 무슨 대학?” 하는 당시 우리 사회의 편견이었다. 마침내 72년 각고의 노력 끝에 단과대 차석으로 연세대를 졸업한 후 그는 한미재단과 국제로타리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멀쩡한 사람도 유학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용케도 76년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강영우 박사는 77년부터 99년까지 22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주 정부의 특수교육국장과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수교육학 교수 등으로 재직한 뒤 마침내 2001년 차관보급인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됐다. 말 그대로 ‘Impossible(불가능한)’이란 단어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ible”(나는 할 수 있다)로 바뀌듯이 그는 삶의 숱한 고비고비마다 그냥 점이 아니라 땀방울과 핏방울을 찍어 가며 삶의 길을 열어 갔던 것이다.
# 물론 강영우 박사의 뒤에는 항상 아내 석은옥씨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강 박사가 다니던 맹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강 박사는 학생이었고 석씨는 그곳에 봉사 나온 여대생이었다. 강 박사는 누이 같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했고 결국 결혼해서 두 아들을 뒀다. 큰아들 폴(진석)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 안과 교수로 일하면서 역대 미 대통령을 진료해 온 ‘워싱턴 안과의사연합’ 8인 멤버 중의 한 사람이자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의사 ‘수퍼 닥터’에 선정됐다. 둘째 크리스토퍼(진영)는 변호사로 미 민주당 원내총무실의 최연소 수석법률비서관을 거쳐 현재는 백악관의 선임법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말이지 남부러울 것 없던 강영우 박사에게 지난 연말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췌장암이었다. 길어야 두 달 정도밖에는 생명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는 지인들에게 담담하게 e-메일을 보냈다. 감사편지였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 임종을 앞두고 두 아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해 보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긴 채로 자라 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 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언제나 ‘나의 어둠을 밝혀 주는 촛불’이라 부르던 아내에게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는 말로 맺은 마지막 연서를 전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자신이 있게끔 지원했던 국제로타리재단에 25만 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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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
추운 겨울을 묵묵히 이겨네고 꽃을 피우는 자연의 위대함을 봅니다
자연은 생명이라고 하는군요~^^
네 그렇슴까? ㅋㅋㅋ
Never Give Up~!!
황새입에 들어간 개구리가 두손으로 황새 목을 조르는 그림이 생각나네요
머리는 안보이지만 끝까지 포기를 안하다는 .. ㅎㅎ
글쳐..전 포기란 단어가 젤 싫어요..사람이 죽을 맘으로 하면 뭘 못하겠슴까?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결과를 기다릴 뿐이져..'모사재인, 성사재천(謨事在人, 成事在天)'이란 말도 있져.
일을 도모하는건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것은 하늘이다...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여..세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