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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 극동방송에서 ‘양육의 시간, 푸른초장’을 진행하고 있고요.
저는 말씀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 예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무용의 은사를 주셨는데요.
저는 모태신앙이었고, 저의 어머니께서 제가 12살 때 직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친가에 시집 오셔서 친가의 영혼을 다 구원하시고 시댁을 다 구원하시고 12살 때 돌아가셧어요.
저는 어머니의 죽음이요. 저에게는 큰 어려움이고 고난이었어요.
제 인생을 간증하라고 하면 파란만장한 역전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고난을 주시고요, 그 고난을 통해 피할 길도 허락하시는데요.
저에게도 ‘내가 감당할 만한 고난’을 주심으로 그 고난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주님을 경험하게 해주시고, 주님을 붙들지 아니할 수 없게 만드셨어요.
저는 역전의 그런 것은 없지만,이슬비처럼,
이슬비가 내가 맞는줄 안맞는 줄 모르고 오지만 결국 지속적인 이슬비를 맞으면 속옷까지 젖는다 하잖아요.
이슬비처럼 은혜를 내려주심으로서 지금은 정말 주님과... 주님이 아니면 저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은혜의 강으로 인도를 해주셧는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직장암으로 12살 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다시금 만나는 20살 때까지
저는 밤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스폰지에 베개가 꾹 누르면 국물이 나올 정도로 매일 밤을 울다시피 하면서 굉장히 어둡고 그늘진 아이로 성장을 했습니다.
20살 때 제가 이화여자 대학교 무용과를 입학하게 되는데요.
정말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하면...정말.. 사실 서울대,연,고대가 없어서, 이화여대 무용과하면 무용과로서는 자존심을 가지고 잇는 학교인데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자세히 말씀드리면 12월 21일날 첫 발레 학원에 가서 무용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저는 1년정도 무용을 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를 갔는데요.
저는 그게 제 힘이 아니었어요. 정말 하나님 빽이었어요.
그때 91년도 91학번인데 하나님께서, 제가 1년동안 무용을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질서의 하나님, 정말 하나님께서는요.그 전부터
우리 각자에게는 다 계획하심이 있듯이, 저는 하나님이 무용가로서 계획하심이 있으셨는데,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5-6학년때 저와 가장 친한친구의 아버지가 발레학원 원장님이셧어요.
그래서 나의 놀이가, 학교갔다가 바로 학교앞에 그 발레학원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항상 2년동안을 항상 어깨너머로 보고,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햇지만 따라하면서 그 놀이를 하면서 내 몸이 무용가로서의 몸을 만들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입학하자 무용선생님께서...
무용시간이 있잖아요. 저를 보시고 무용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셨는데,
저의 아버지께서는 반대를 하셨어요.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이었고 저의 할아버지도 국회의원을 지내시면서...
예술계통에 대해서는...
아시잖아요, “딴따라다”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절대..
제가 그래서 고등학교 때 1학년 때 다시금 무용을 하고 싶어했던 초등학교 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제 마음속에 내가 무용을 하지 않고서는 인생에 너무나도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1년동안 단식투쟁도 해보고요. 금식도하면서 1년을 설득을 시켰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12월 21일 첫 발레학원 정식으로 슈즈를 신고 타이즈를 입고 무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국립발레단에 있었던 선생님이셨는데...
저는 ‘이리여고’를 나왔거든요.
그때는 이리, 군산, 전주 통틀어서 무용학원이 한군데 있었는데..
그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는...저는 처음으로 무용을 하는 건데..
“너는 거짓말을 하는 거다, 한 3년정도 어디서 무용훈련을 하고 왔는데 어떻게 처음 했다고 하냐”고 하시면서 저를 보시고...
그 많은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 언니들이 있었는데.. 발레 동작을 저에게 시범을 보이라고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저를 예비를 해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정말 이화여대 무용과를 고등학교 3학년때 1년정도 무용을 하고...
사실 너무나도 열심히 했죠.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이기 때문에..
정말 ‘월경’이 끊길 정도로..
한의사분이 저의 모든 신체리듬이 깨졌대요.
제가 10의 힘을 쓸 수 잇는 힘이 있다면, 20,30의 힘을 써서 모든 불가능이 깨졌대요.
근데 주님께서는 그런 힘을 주셧어요.
사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모태신앙도 하나님을 다시금 경험하는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저는요, 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정예배도 드렸었고 너무나도 습관적으로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랐고, 하나님이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았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도.
그런데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그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독서실을 다니면서, 새벽기도 제단을 쌓으면서.. 들리지 않고 느낄 수 없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를 했던 거예요.
“주님, 제가 이화여대 무용가를 가게 해 주세요”라고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내가 느낄 수 없는 그 하나님께서는요, 저에게 소망을 주시고 또 어떤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아, 승희자매는... ”
제가 시골에서 이리여고를 다녔는데요. 그것도 1년하고 이화여자 대학교 무용과를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91학번이 부정사건으로 엄청나게 이화여자대학교에 있는 무용과의 선생님들은 다 대학교의 무용과의 교수님들의 데모세요.
그 분들이 본보기로..부정입학.. 그 때에는 그런게 심했던 때 있잖아요.
그런시절에 저는요, 하나님빽으로 제가 91학번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화여대가 미션스쿨이었는지도 몰랐고요.
어느날 채플시간에 들어갔는데 조명이 있고, 무대세트가 있어요.
저는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게 바로 무용으로 예배를 드리는 무용예배를 처음 경험하고 제가 너무나도 은혜를 많이 받고, 제 발로 ‘에벤에셀’이라는 무용예배를 하는 서클에 들어가서..
4년동안 ‘돌아온 탕자’ ‘욥’ ‘메시아’...
몸으로 성경의 말씀을 선포하는 거예요.
보시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온몸을 드려 찬양하고, 자기의 주신 은사대로 하나님께서는 찬양받기 원하세요.
저는 4년동안 무용예배를 통해서 무용선교에 대한 비젼을 갖게 됩니다.
‘무용선교’에 대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갖게 되고요.
그런데 이 현대무용이라는 나의 전공조차 나는 너무나도 놓지 못하고 있었어요.
‘무용선교’와 ‘현대무용’ 이라는 이 길 또한,
내가 너무나도 훌륭한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대학교 4년 되니까 무릎을 딱 치시는데요.
무용동작 조차가 아니라 무릎을 구부리는 것 조차가 안되었어요.
너무나 통증이 심했어요.
걸어다니는 것조차가 너무 아팠어요.
거의 대학교 4학년 때는 5-6개월 동안을 거의 공강마다 침맞고 거의 1년내내 견학만 했어요.
현대무용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교 들어가서 싫증나고 질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았거든요.
무용예배만 아니라 제 전공인 현대무용을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하나님이 그걸 막으시더라고요.
무용수는 몸이 도구인데, 몸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자연스럽게 그걸 포기하고 본대학을 가지 않고 교육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꾸고 “주님,제게 주신 달란트는 무용을 찬양하는 선교무용으로서만 하겠습니다.”
결심을 하고 제가 대학원을 본대학을 가는 모든 계획을 포기를 했을 때, 무릎을 하나님께서 낳게 해주시는데요. 제가 일년동안 집에서 꾀병을 부린 것처럼 하나도 아프지가 않고요.
한시간을 조깅을 해도 끄덕없는 너무나도 강건한 무릎이 된거예요.
그래서 저는 방송국에 어떻게 오게 됐냐면,
무용을 할 수 없었고 또 저는 선교무용으로서 제가 비젼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인대회’라는 기회가 왔을 때..제가 하나님한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이 방송이라는 것을 통해서 전도하길 원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알잖아요.
때로 정치하시는 분들도 방송을 이용하잖아요.
저는요 전도할 때 이 방송을 이용할게요. 수단으로 나에게 주셔요.
미인대회를 나가게 되면 전도할 수 있는 루트가 있거든요.
미인대회를 나가서 한국대표가 되고, 아시아 대표가 되면서 방송의 문이 열렸어요.
엠비씨, 주병진 나이트쇼의 ‘오프닝 엠씨’의 자질구레한 것부터...경험을 하게 됐는데..
제가 한 육칠개월정도 방송을 경험하고 너무 회의를 느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방송이 저하고 너무 안맞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때 당시에 결혼이라는 제의가 들어오고,
또 배우자 기도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하라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해왔었는데,,
교수님을 통해서 만나게 해주신 배우자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거라고 저혼자 착각을 했던거죠.
하나님께 기도했던 이 방송의 끈을 놓고 저는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 주님께서 저에게 어려움을 주시지 않았겠어요? 정말 순탄한 길을 주시지 않았겠지요.
정말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결혼이 성사되지 않고 너무나도 아픔과 고난가운데 있었을 때,
기도원에 가서 울부짖었어요.
밥은 물론이고 물도 안먹고 주님께 부르짖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요.
제가 그렇게 울부짖고 기도원을 내려와서 집에서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이대 후문에 있는 교회에 가서 초저녁인 8시부터 기도를 시작했는데요.
하나님께서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우리가 응답을 받을 때 말씀으로 응답받을 수 있고 사람 통해서 응답받을 수 있고 환영을 통해서 응답받을 수 있지만..
주님의 음성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르짖을 때 주님은 만나주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주님이 세미한 음성 가운데..“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1년 반 정도를 방송을 차단을 했었어요.
유니버시티통해서 들어온 섭외를 다 막고...
“저는 결혼할 겁니다.미국갈겁니다”핑계를 대면서 모든 방송섭외를 1년반동안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때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고, 제가 집에 갔을 때 전화 엔터링 머신에
‘기차타고 세계여행’ 이라는 케비에스 프로그램이라고 하면서 저를 일곱 번이나 찾는 전화였어요.
사실 1년반동안 방송안한다고 한 저를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요.
저는 그때 ‘기차타고 세계여행’ 이태리를 가게 됐고, 거기서 제가 객관적으로 제 모습을 보게 됐고 정리시켜 줬어요.
그래서 슈퍼탈렌트 광고가 막 티브이에 나오는데.. 연기도 준비되지 않고..아무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인 제가 슈퍼탈렌트 공채로 들어가게 됐어요.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는 6-7편을 하고 했을 때 또 부딪치는 거에요.
저는 크리스챤으로서, 내가 왜 이런것들을 내 신앙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아시잖아요, 힘든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교양프로로 인도해 주셨고,
‘세상의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해외리포트를 통해서 제가 단기선교를 포함해서
제가 갔던 해외나라가 30여국이 되는데요.
정말 그곳에서 제가 해외리포터를 가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정말 너무나도 히얀하게 통역하시는 분이 선교사님이 나오시거나, 신학생이 통역을 하게 되고..그 자메이카, 케냐, 아랍권, 터키..등의 너무나도 신기할 정도로 그곳의 선교지를 보게하시고 선교지를 품게 하시더라고요.
제가 터키라는 나라는 두 번을 가게 됐는데요.
첫 번째 터키를 갔을 때
40일 코스에 일곱 개국을 도는 나라의 그 첫 번 나라가 터키였는데,
그 때 그리스에서 하얀색의 헐렁이는 옷을 준비해달라는 오더가 있었기 때문에,
옷을 하얀색의 워십복같은 옷도 있었었고, 제가 들을려고 위십 챤양 CD도 있었는데..
어느날 터키에서 일주일간 일정이 월요일이라면 월요일날 통역을 하시는 코디네이터 분이 터키의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이었는데 저와 차운행을 하면서 말씀을 나누는데,
“신학생이고 나슨타샤교회를 섬기고 있고...”
“저는 예배무용가 워십을 하는 사람이고..” 이런이야기를 했는데,,
그러고 한 삼사일이 지났어요.
금요일날 아침에 제가 새벽부터 화장을 하고 준비를 하는데..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워십을 하라 하는 마음을 주시는데요. 이상한거에요.
그리고 저는 누가 먼저 다가와서 부탁하기 전에는 나서서 제가 뭐할게요 이러는 성격이 아닌데, 제가 “워십할게요”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그날 아침에 통역하시는 코디네이트 신학교 지역장님이 오셨을 때..
제가 너무도 조심스럽게..
“저기요~ 제가 워십을 하는 사람인데요. 그 교회에서 혹시 워십하는 것을...”
그런데 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분이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월요일부터 만나서, 내가 예배무용하고 워십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교회에서 합심을 하여 기도했대요.
성령이 한 성령이시기 때문에요. 그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셨고..
그래서 거기서 워십사역을 하면서 거기에는 3개국어로 통역이 되요.
중국분들도 있고, 싱가폴분도 있고, 터키 현지인들도 있고,
그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는 아니었지만, 아랍권에 이슬람권의..
그곳에서 워십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은혜의 눈물을 주시고 그런 경험들을 하고...
저는 지금 현재 남편이 성형외과 의사인데요.
제가 병원에서의 현재 사역들을 이야기할게요.
남편을 만나고 두달만에 저는 결혼을 했는데요..저도 사실 이해를 못해요.
몇 달만에 결혼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봄,여름,가을,겨울은 겪어봐야지 어떻게 몇 달만에 사람을 알아?’ 이렇게 말했던 사람인데...
기도하고..
저는 12년동안 배우자기도를 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소개로 만나게 됐어요.
또 남편도 그 때 당시에 예수님을 몰랐지만, 교회를 6개월정도 다니고 있었던 상태였고..
근데 저는 고민이 되었어요.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분도 아니고, 하나님을 6개월정도 부터 병원에서 어떤 분이 새벽기도를 3년이나 재단을 쌓고 전도하기 위해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남편의 마음이 뭔가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귀를 열게 되고, 그래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뭔가 표현을 해야 되겠다하는 감사의 신앙에서 교회를 다녔을 뿐이지..전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믿어진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그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만났었어요.
소개팅을 해서 만나자마자 세네시간을 신앙얘기만 했어요.
서로..기도를 한거예요.
저는 이렇게 기도한거예요.
“주님, 저 사람의 구습을 감당하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저는 불안했어요.
그런데 남편 또한 그 때 예수님을 잘 모르지만 기도했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난주간에 새벽기도를 같이 다니자고 했는데요.
그 새벽기간을 통해서 그 부활주일날 성령을 체험하게 해주셨고,
성령을 통해서, 그 눈물 한방울 없는 남편이 눈물 콧물 다쏟으며
내 죄 때문에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그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말씀으로 “이전 것은 지나갔다 새것이 되었고 하나님이 하실 것들을 바라보라”는 그 음성하나에 너무나도 용감하게 두달만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하고 시련이 왜 안 찾아왔겠어요?
남편이 굉장히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하지만 아직 초신자이고 영이 아직 어려요.
그런데 멘토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영향력을 미쳤던 어느 분이..
지금은 그분이 하나님께서 더 다듬어가시는 과정에 있겠지만..그분이 굉장히 실수의 말을 했어요.
“성형수술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미용수술을 굉장히 싫어하신다.”
“그러면 오는 환자도 받지 않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남편은 2달만에 결혼한 제말은 신뢰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무슨말을 하면 듣지도 않았어요. 그냥 다른사람의 말에 더 크게 귀를 기울였어요.
제 말은 무시를 했어요.
근데 제가 부르짖으면서..
20편 1절-5절 말씀,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로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는 환난날에 너를 응답해주시고 도와주시겠다.
저는 이말씀 붙들고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어떻게 역사해주셨느냐하면요.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감사하게 만남의 축복을 주시는데요.
혹시 김동환 목사님이라고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어머니 박삼순 전도사님의 믿음의 딸이 교통사고의 흉터를 제거하시기 위해 모시고 왔는데, 안간다고 안간다고 하는 걸 ‘어머니 소원이다’ 하면서 모시고 왔는데..그분과의 만남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요.
그 김동환전도사님이 우리 병원에서 예배를 드려 주시면서,
이제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너 미용성형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으니까 떠나야 된다”
이런말들을 기드온에게 응답하셧던 설교말씀을 통해서 말씀으로 정립을 해주시는 거예요.
어 정말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이신데,
정말 하나님이 그 일을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예언을 통해 확증하게 해주시고..
그리고 그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 또한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을 듣는 법을 알게 해 주셨어요.
그래서 남편이 말씀으로, 누구의 말이 아닌,누구의 예언이 아닌 말씀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데요.
정말 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 된다고요.
말씀을 읽어가는데요. 실을 꿰는 것처럼....
그래서 지금은 병원을 삼성동에서 압구정동으로 2004년도에 이전을 하면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리고 기도수첩에 기도제목을 적었어요.
“주님, 많은 성형을 하려고 오시는 분들 중에는 마음이 공허하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분들이 많으신데.. 하나님, 외모를 아름답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영혼까지도 구원해주시고 그 영혼의 아름다움을 고쳐주는 의사선생님 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제목을 그 때 오시는 분들마다 다 주시는 거예요.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남편의 입술을 통해서...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잖아요.)마음을 잘 열더라고요.
남편이 복음을 전하게 되고 영접하게 되고 병원에서 이러한 사역들을 시작을 하시더니..
지금 한 한달전 쯤 되었을 거예요.
극동방송에서 갑자기 ‘해피 패밀리’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간증을 부탁한다고..
그래서 제가 스케줄을 정하고 가서 남편에게 꾸지람을 받았어요.
“아니 전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건데, 자칫잘못하다가는 병원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조심스러운 것을 왜 할려고 하느냐?”하고 꾸지람을 받았는데요..
기도했어요.
“하나님, 전도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고 이게 특별할 게 없다면 하나님 무엇을 원하십니까?”기도했는데...
너무나도 히안한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 스케줄을 잡고 2주에 걸쳐서요. 환자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냐면요.
예전에는 전도하고 영접하고 가까운 교회 아니면 우리 교회로 전도했을 뿐인데요.
2주 동안 일어난 일들은요, 시간이 없어서 두 케이스만 이야기 할게요.
어떤 분이 부산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오셨어요.
저희가 터키 선교사님이 그때 계셨거든요.
직접 초청해서 직원 예배때 간증을 부탁해서 저는 직접들었던 얘기인데요.
그분은 예수님의 ‘예’자도 잘 모를 정도로 교회를 누구 권유해서 딱 5번을 가셨던 분이세요.
그런데 수술을 받으면서, 우리가 수술하면 마취를 하게 되는데...
육신은 마취로 인해서 칼로 째도 모르고 망치로 두둘겨도 몰라요.
그러니까 영혼의 상태가 이렇게 나타나요.
어떤 분은 마취중에 막 지옥을 경험하고 괴로워하시는 분들은.. 그 영혼의 상태가 너무 눌려있거나 상처가 있는 분들은 그 때 나타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어떤분은 ‘할렐루야’ 찬양을 하고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분도 계신데,,
교회 딱 5번 나가고 교회에서 통성기도하고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이 너무 거부감이 있어서
‘나는 교회체질이 아닌가봐’ 했던 그분이 수술대 위에서 하나님께서 천국을 경험하게 해 주셨어요.
천국을 경험하면서..
그분한테 여러 가지 십자가가 있었었나봐요.
자녀가 자폐증세가 좀 있대요. 병원에 가면 자폐증은 아닌데 어머니만 아는거예요.
어머니가 그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지 못하고 그게 항상 불만이었나봐요.
보통 수술을 깨면 4-5시간 수술을 받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비실비실 거리시거든요.
그분은 수술을 깨자마자 눈에서 빛이 나시고 광채가 나면서,
안믿는 간호사들한테, “예수님 믿어야 한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이렇게 말씀을 하는 거예요.
본인이 간증을 하시는데 자기가 수술대에 육신이 있었고 영혼이 입신을 한거죠.
영혼이 자기가 다른 내가 있는데 수술대위에 자기 몸이 있었다는 걸 보았대요.
그래서 자기는 의료사고가 나서 죽은 줄 알았대요.
근데 그 천국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아름답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세포하나하나에 깨달음을 주시는데...
초신자로서는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데...
“네 아이에게 십자가를 허락한 것은 내가 너로 하여금 축복을 주기 위함이다. 너로 하여금 기도하고 기도하면 내가 그 아이를 낫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대요.
그러면서 그분이 수술을 받고 난후 180도로 확 틀려지신 거예요.
잠도 안오고 먹고 싶지도 않고 한시간 두시간, 일주일 내내, 성경말씀만 보시는 거예요.
또, 어떤 분은 그 경험이 너무나도 잊을 수가 없고 귀한 경험이기 때문에 글로 써주셨더라고요. 나중에 잊지 않기 위해서
제가 그분들의 글 부분부분들만을 말씀드릴게요.
‘정현숙’님이라는 분이신데요.
이분은 2005년 8월달에 이물질제거를 하려고 수술하려고 왔었고,
2006,2월달에 수술날자를 잡고 가신 분이세요.
2005년도에 저의 원장님이 성경책을 주시면서 교회를 나가라고 전도를 했었고,
2006년도 2월에 수술을 받기 위해 오셨는데.. 교회를 나가셨냐고 하니까 교회를 나가지 못햇다고..
근데 그날 컨디션이 안좋으셨나봐요.
수술전에 사진을 찍는데 어지럼증을 보이셔서,
오늘 수술은 불가능하니까 집에서 요한복음을 읽어오시면 좋겟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요한 복음을 집에가서 읽었을 때
계속 재잘 재잘 이상한 소리가 들렸대요.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부분이 많잖아요.
계속 강의하는 소리들이 들려서..
이웃집의 언니가 그럴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으라고 가르쳐줬대요.
그날 저녁에 이 하반신에 시커먼 것들이 짓누르고 자기 안에 있는 어둠의 흑암의 세력들을 보게 하셨는데..
너무나도 남편을 깨울 수도 없고 이런 것들을 경험을 했는데..
이웃집 언니 믿는분의 말대로
“예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3번을 외쳤대요.
그랬더니 하반신에 시커먼 것들이 확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그다음엔 요한 복음을 읽는데 소리가 안들렸대요..
그러면서 그분이 수술할 때...
이분도 천국을 경험했어요.
이분이 쓴 글입니다.
“나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
나는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마취가 되는 것을 느끼자마자 하나님 나라를 다녀왔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나는 생각과 느낌을 신기하게도 따로 알 수 있었고
지금 내가 수술대 위에 누워있다는 것도 순간 순간 생각하고 있었으며
하늘나라와 수술대위를 몇 번씩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때 마다 빛의 통로를 놀랍고 황홀함의 감탄의 소리를 내며 통과하는 것이었다.
십자가 밑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 올라타는 첫모습, 뒷모습이 첫장면이었다.
내 나이 37살인데 영화롭고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몰랐었다.
이제야 영화롭고 찬란하고 거룩하다라는 단어의 느낌들이 이런거구나 하고 처음으로 느꼈고
이런말을 내입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내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수술대 위에서 내가 모두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비 그 자체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천국에 대해서 자기가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 했는데..
그 이후에 몇 달이 지난 며칠전에 병원에 오셨어요.
정말 믿지 않는 이 가정이 남동생이 믿고, 올케가 믿고 가족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것도 하나님이 하셨대요.
올케한테는 성경책을 줬는데 올케가 성경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올케에게 교통사고가 났는데 꼼짝없이 두달동안 병원에서 할일이 없으니까 그 성경책을 보게 되면서 교회를 나가게 되고 이렇게
그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그 분은 정말 그 전과 이후가 얼굴에서 나타나는 빛이 틀렸어요.
너무나도 평화롭고 주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구원받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주님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까?
첫댓글 '천국에 갔다왔다'고 말하네요????/ 목사님께서는 우리 삶가운데,형제의 모습속에 보이는 하나님과 천국의 비침을 보라고 하셨는데,필립얀시의 책 '내눈이 주의 영광을 보네'로 천국을 느껴보라하셨는데요.
특히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키우려면 아마 우리의 능력(?!)만큼 밖에 못키웁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에게 맡기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녀로 키워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