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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장관동 일대 '마당 깊은 집' 무대에는 소설 속 마당 깊은 집의 벽화도 그려져 있다. 조봉권 기자 |
- 진영에서 태어나 아버지 월북으로 대구로 오게 된 김원일 작가의 삶
- '노을' '어둠의 혼','마당깊은 집' 낳아
- "내게도 절실했던 이야기가 남에게도 절실하게 다가가"
- 자전적인 소설의 '진실의 힘' 강조
- 중학교 교편 시절 가르쳤던 제자 6명
- 이젠 중년이 되고도 한걸음에 달려와 '스승의 은혜' 열창
"나는 지금 순천대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죠. 소설을 억지로 '만들려고' 해선 안 된다. 무리하게 '지어내려' 해선 깊게 울리는 작품을 쓰기 어렵다. 내게도 절실했던 이야기가 남에게도 절실하게 다가간다. 진실의 힘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에선 자전적인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나의 경우에는 70~80% 정도가 자전적인 이야기들이라 볼 수 있어요."
대구의 원도심인 중구 남성로 약령시 골목들은 온통 '김원일'이었다. 김원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 수많은 독자를 울리면서 '마당'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냈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가 바로 이 일대이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청은 최근 몇년 사이 이곳을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골목투어'의 명소로 꾸몄고 인기의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원일 작가는 '마당 깊은 집 골목투어'의 명소 중 한 곳인 대구제일교회(1937년 건립·대구시유형문화재 제30호)의 멋드러진 담쟁이덩굴을 배경으로 소설에서 자전적인 이야기가 발휘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몸소 안내하는 골목투어를 하고 보니, "절실해야 깊이 울린다"는 작가의 말은 더 실감이 났다.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울림은 세월을 견뎌 작품무대인 대구 중구 장관동 일대를 문학명소로까지 바꿔놓았다.
■대구 중구 장관동 일대는 김원일 문학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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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을 통해 40여 년만에 스승 김원일 작가와 경북 청도 이서중 출신 제자들이 만났다. '마당 깊은 집'의 신문배달 하는 길남이 조형물 앞에서 이들은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왼쪽부터 구본율 이제동 박순식 반철홍 박병도 우용택 씨. 앉은 이가 김원일 소설가. |
'마당 깊은 집'은 6·25 한국전쟁 당시 대구를 배경으로 한다. 지난 19일 '소설가 김원일과 함께하는 대구·진영 문학기행'을 도와준 대구의 문화해설사 조영수 씨는 "이 소설에는 전쟁 시기 대구의 삶이 정말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대구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그 때문에 대구 사람들은 '마당 깊은 집'을 비롯해 김원일 선생의 작품을 많이들 읽고 또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작가와 함께했던 문학기행이었던 만큼 여정은 실감 났고 상세했다. "바로 이 집입니다. 집은 다 변했지만 자리는 바로 이 자리지요. 평양댁, 김천댁, 경기댁, 장교 출신 상이군인 식구들이 복닥거리며 전쟁기의 삶을 살아낸 '마당 깊은 집'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죠. 물론 우리 가족의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고향인 경남 진영에서 홀로 떨어져 살고 있는 길남이를 친척 누나가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작가는 "소설과 실제 이야기가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소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실제로는 이 집에 김천댁과 평양댁과 우리 식구만 살았어요. 다른 가족은 제가 그 시절 장관동 일대를 여섯 번이나 옮겨다니며 살면서 만난 사람들이죠. 제가 우겨넣은 겁니다." 그는 그 시절 그 때를 회상하며 연하게 웃었다.
장관동 일대는 바닥에 분홍빛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그 색깔을 따라가면 '마당 깊은 집 골목투어'의 장소들을 모두 방문할 수 있다. 거리에는 소년 길남이(또는 소설가 김원일 자신)이 신문배달을 하다 잠시 신문을 내려놓고 쉬면서 미래의 꿈을 꾸는 조형물도 있다. 대구에선 "이 조형물 곁에 앉으면 김원일 선생 같은 훌륭한 작가가 된다"고 자랑한다. 문화 명소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것이다. 작가 김원일도 그랬고 소설 속 길남이도 그랬는데, 신문배달을 하면서 개가 그렇게 무서웠단다. 벽에는 사나운 개가 무서워 달려가는 길남이(역시 소설가 김원일 자신이기도 하다)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여정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태어난 곳이다. 진영의 금병공원에는 김원일문학비가 서 있다. 지난 2003년 국제신문과 부산문화연구회, 동보서적이 함께 연 '소설가 김원일과 함께한 진영문학기행' 당시 본지는 "김원일과 같은 한국 문학의 거장이 태어난 고향에 이를 알리는 기념물이 전혀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강하게 지적했다. 그 보도가 계기가 되어 제경록 김해시의원과 문학평론가 박홍배 부산 브니엘예고 교장 등이 팔을 걷어 부치고 주도해 건립된 문학비다.
"모든 사람에겐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이 중요합니다. 나는 진영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진영에서 보냈어요. 나의 삶 전체와 나의 문학에서 진영은 참으로 특별한 곳이지요." 작가의 아버지는 진영에서 유명한 좌익운동가였다. 당시 진영은 김해평야의 중심이었다. "김해평야 7000정보 중에 진영 대산들판이 5000정보였습니다. 그걸 지주 7명이 소유했죠. 그러니 소작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게 살았어요. 진영에는 산이 없어 나무가 귀했고, 사람들은 겨울엔 냉골에서 살고 밥상없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온 제자들과 43년 만에 만나다
엘리트였던 김원일 작가의 부친은 이런 상황에서 좌익운동가로 성장했고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다 한국전쟁 때 가족을 남겨두고 월북했다. 작가 김원일이 분단문학을 깊이 일군 배경은 그렇게 형성됐다. 진영장터에는 지금도 작가의 생가터가 남아있다. 그가 '노을' '어둠의 혼' 등의 유명한 작품에서 그린 진영장터와 참기름집도 있다. 그는 "내 문학에서 진영장터는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해시가 김원일문학관이나 김원일도서관 등 그의 문학을 기리는 작업에 나설 필요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날 문학기행에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국제신문을 읽고 있는데 김원일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기행을 간다는 소식이 있는 겁니다. 급히 동문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만사 제쳐놓은 채 달려왔지요." 박병도 마산세관장의 설명이다. 이날 행사에는 중년의 남성 6명이 부산과 대구에서 참석했다. 박 마산세관장과 이제동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 관리과장, 구본율 (주)본구조엔지니어링 대표이사(부산), 법률사무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우용택 씨(대구), 박순식 대구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김해세관에서 근무하는 반철홍 씨.
이들은 1967년 작가 김원일이 대학을 마치기 직전 첫 직장으로 선택한 경북 청도 이서중학교 동기들이다. 김원일 작가는 '현대문학'에 '어둠의 축제'가 당선돼 서울로 떠나기까지 이 학교에서 1년간 근무했다. 그때 2학년 국어를 가르쳤는데 그 시절 제자들은 그를 여전히 존경하고 있었다. 박병도 마산세관장은 "박순식 교수만 선생님을 가끔씩 뵈었을 뿐 나머지는 43년 만에 뵙는 것"이라며 "하지만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김원일 선생님이 좋았냐'는 질문에 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주셨다. 시골에 살면서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 하나가 끝나면 우리가 졸라서 이야기를 또 듣고는 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중년이 된 제자들은 스승 앞에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고 큰절을 올렸다. 김원일 '선생님'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김원일 작가와 함께 한 대구·진영문학기행은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 "나의 고향인 진영에 소장 장서 기증원해"
한국문학의 거장 김원일의 고향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이다. 대구에서도 오래 살았다. 그의 작품도 진영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대구를 무대로 하는 작품이 많다. 그에게 "선생님 가슴 깊은 곳에는 본인이 '진영사람'이라고 각인돼 있습니까, '대구의 작가'로 각인돼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나는 진영사람이지"라고 했다.
지난 2005년 국제신문 보도 등에 힘입어 진영에 김원일문학비가 건립됐다. 하지만 대구에선 김원일 작가를 기리고 품는 일이 한창인 가운데, 진영에서도 후속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경록 김해시의원은 "김원일문학관이나 김원일도서관을 건립하자는 목소리가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관련 작업이 원활하지는 못한 편"이라고 말했다.
김원일 작가는 "내가 소장한 장서가 1만 권쯤 되는데 여러 곳에서 기증요청도 있다. 사실 고향이자 내 문학의 모태인 김해 진영에 기증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문학관이나 도서관 등 관련 시설이 선다면 훨씬 일이 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