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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듯 오늘도 나는 혼자서 궁상을 떨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있던 개가 나를 보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무 해도 되지 않았는데, 내 말을 개 따위가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 그저 낯설다는 이유로 나를 향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대는 개에게 나는 괜시리 짜증이 났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열린 입이라고, 달려있는 이빨이라고 함부로 놀려대는 개를 향해 힘껏 발을 뻗었다. 어린시절 친구네 집의 개가 그 녀석의 어머니에게 발길질을 당할 때처럼 공중으로 크게 포물선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그 한방이 매우 컸던 터라 개는 이내 꼬리에 귀까지 바짝 내리깔고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아내는 밥상을 다 차렸는지 멀리서 고함을 지르며 나를 불러댔고, 주위의 공기 또한 저녁이 되었음을 알리기에 바빴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해는 어느새 목의 뻣뻣함 없이 자연스레 눈높이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나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참아 왔는지 잰걸음으로 나와 비스무래 한 곳을 향해 가는 듯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내가 가는 곳에 대문은 없었다. 아쉽게도 낡은 여닫이문 하나만이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호하고 있었다.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고함을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내 허기짐에 지쳐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아내는 설거지를 할 때 세제를 쓰지 않는 모양 이었다. 수저에 어제 저녁에 먹었던 밥알들이 모양새는 잃었지만 끈덕지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평소 때 같았으면 내가 다시 부엌으로 가서 닦고 왔겠지만 아까 개를 찼던 그 신발이 보기도 싫었고, 다시 신기도 찝찝해 여닫이문을 탁 닫아 버리고 젓가락을 집어 들게 된 것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동안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귀 가의 울림이 또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삐ㅡ
귀가 아파 먹는 음식이 식도를 지나가기는 하는 것인지, 뱃속에 잘 들어가기는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허기짐에서 왔던 나의 젓가락질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허기짐이 미미해졌을 무렵, 나는 다시 여닫이문을 열고서 찝찝한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서 질질 끌며 번지수가 없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번지수가 없는 곳은 지금 이 찝찝한 신발을 신고, 언제 또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허기짐을 감안하고는 절대 갈 수 없을 만큼 먼 듯했다. 결국 중도 포기하고 나는 그나마 번지수가 적은 어느 골목길에 멈춰 섰다. 내가 걸음걸이를 멈추자 내가 걸으면서 냈던 발걸음 소리가 얼마나 큰 소음 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벽에 기대어 지지 않으려고 끝만 간신히 걸쳐있는 해를 바라보았다. 나도 아쉬웠던 터라 눈부심을 무릅쓰고 응시했더니 가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번지수 없던 곳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간신히 걸쳐있던 해가 사라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을 가장한 수많은 빛들이 녀석이 사라졌음을 알렸다. 외투도 걸치지 않아서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 다시 여닫이문을 열러 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번지수에 상관없이 나의 발걸음 소리가 큰 소음이 됨을 새삼 깨달으며 내딛었던 오른쪽 발을 다시 왼쪽 발 옆으로 인도했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낯설지 않은 소년 하나가 내가 올라왔던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던 소년은 음악에만 집중 했는지 걸음걸이는 위태롭기만 했다. 내가 호기심에 귀를 기울인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나 볼륨을 크게 틀어놓았던지 소년의 나이를 가늠하기도 전에 그 음악이 내가 전에 즐겨 들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년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 시켰다. 그래서 얻어낸 것은 소년이 음악에 집중하느라 걷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과 눈은 내가 아닌 곳을 행해 있다는 것.
어젯밤 그 번지수 적은 골목길에서 또다시 오랜 시간 궁상을 떨었던 탓에 오늘은 해와 끝없는 눈싸움을 벌이지 못하게 되었다. 해를 가장한 수많은 빛들이 싫어서 피해오느라 보지 못했지만 옷에 퍼런 얼룩이 들어 있었다. 아마 어제 벽에 기대일 때 생긴 것인 듯 하다. 나는 번지수가 적었던 그 골목길이 마음에 들었고, 그 얼룩이 그곳에서 묻은 것인지 확인도 할 겸 아내의 고함소리가 있기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골목에 들어서자 구겨 신고 왔던 신발이 끌리는 소리가 죄를 짓는 것 마냥 짐스럽게 느껴졌다. 쭈그리고 앉아 신발을 고쳐 신고서야 나는 다시 골목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얼룩에 대한 확인은 한낱 핑계에 불과했지만 머지않아 나는 그 핑계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기대였던 벽에는 벽화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누구의 솜씨인지는 몰라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빼어난 작품 이었다. 내 옷에 묻은 얼룩과 벽의 돌과 돌 사이에 간간히 끼어 있는 퍼런 분말을 보고 그것이 분필을 도구로 해서 그려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어제 가보지 못했던 고지를 가보려는데 무심코 돌렸던 시선은 나를 한동안 멍하니 그곳만 바라보게 하였다. 바로 앞에서 봤을 때는 그냥 추상화인 줄만 알았더니 웬만큼 거리를 두고 보니 그것은 눈이었다. 사람의 눈인지 짐승의 눈인지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눈이었다. 그저 분필로 그려진 벽화에 불과했지만 이유모를 무게감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그러나 위화감이 없었던 이유는 끼고 싶지 않았던 숫자놀음 속에서 잊혀졌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기억에는 그 벽에 그려진 눈이 존재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귓가의 울림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삐ㅡ
잠시 얼굴을 찌푸리며 흔들리는 몸을 전봇대에 기대려는데 또다시 눈높이를 맞춰오는 해가 간신히 걸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리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어제 가보지 못했던 고지에는 의외로 어떠한 특별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어제 보았던 해를 더 가까이서, 더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 올라오던 골목길과 다를 바 없던 고지에는 다행히 내가 앉아 쉴 곳은 있었고, 어제처럼 옷에 얼룩이 묻는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낯설지 않은 바위에 몸을 앉히고 또다시 오랜 시간동안 시간에 무뎌지고 있었다. 시간의 경과를 느낀 것은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떨려오는 몸을 가누는 때였다. 슬슬 집으로 향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목길 쪽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에 나는 청각의 모든 기운을 집중시켰다.
“대호야, 오늘은 이만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니?”
“아니야, 오늘 만큼은 들어가지 않겠어. 내일 낮을 보지 못한다 해도 밤을 꼭 한번 보고 싶어.”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냥…… 낮은 매일 볼 수 있자나.”
“미안, 난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 내일 시험이잖아.”
“응, 괜찮아. 잘 가.”
소년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러더니 내게서 멀지 않은 또 다른 바위에 몸을 앉혔다. 몸을 떨리고 있었지만 여유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몸을 움츠리지 않고 편하게 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양 팔로 몸을 지탱하더니 하늘을 보며 오랜 시간동안 중얼거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나는 소년에게 위화감은 없었지만 왠지 마주치기 싫어서 밤이 지나고 다시 해와 눈높이를 맞추는 때까지 그곳에서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소년은 몸을 일으키고 앞으로 몸을 옮기더니 해와 눈높이뿐만 아니라 몸높이도 맞췄다. 여전히 소년은 떨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자연스레 위를 향하고 눈은 떨리지 않고 편하게 감겨 있었다. 이윽고 소년이 다시 골목길로 향하고서야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나는 피곤했지만 소년은 얼마 되지 않아 주위의 다른 아이들과 동화되는 옷을 차려입고는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내 뒤를 따르는 소년을 심각하게 의식해 나갈 즈음 소년은 낯설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야.”
“어, 미경이구나. 공부 많이 했어?”
“나 망했어. 어제 졸려서 공부 하나도 못했어.”
“얼굴 보니 또 밤 샜구만 뭐.”
“그러는 너는 어제 민재랑 뭐했는데? 공부 안했어?”
“아, 밤에 헤어졌어.”
집에 도착해서 피로에 바로 잠이 들었지만 두어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잠에서 깨었고, 이유모를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건 어제 그 골목길 고지에서 본 일몰 이었다. 기억은 미미했지만 훨씬 전에 그것을 본 기억이 있는 듯했다. 강하게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의아스럽게도 아쉬움이었다. 훨씬 전 그곳에서 일몰을 보았을 때 분명 다시 보러 오리라고 다짐 했지만 어제 본 일몰은 그 다짐에 이끌려서가 아닌 방황 속에서의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알게 된 뒤로 답답하고 가슴을 억누르는 것 같은 느낌은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가장먼저 나에게 찾아왔고, 그로써 그곳은 눈을 뜨자마자 생각나서 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는 매개체가 되어 있었다. 한동안 그런 답답하고 억누르는 것 같은 느낌의 까닭을 찾아 헤맸던 탓에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에 대한 답답함은 잊은 지 오래였다.
“김대호 씨, 오늘은 좀 어떠세요?”
아내가 찾아왔다. 아내는 항상 나를 부를 때 성까지 포함하고, 뒤에 “씨” 자를 빼먹는 일도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항상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지금과 같이 내 상태를 묻는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소.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오.”
언제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지만 그것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뎌져 있던 게 사실이었다.
낮에는 그 소년을 보지 못 할 거라 직감했던 나는 밤이 되서야 오랜만에 그 곳을 찾았다. 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고, 그것을 가장한 수많은 빛들이 요란하게 번쩍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빛들보다 나의 눈을 끌었던 것은 땅에서 춤추는 그림자였다.
“잘 가.”
“그래, 다시 만나자.”
소년은 아침에 보았던 소녀와 함께였다. 소년에게서는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또다시 귓가의 울림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삐ㅡ ‘다녀와.’
“넌?”
“난 날지 않는 게 아니야. 날지 못하는 거지. 난 날개가 없어.”
“어찌 보면 넌 닭과 같을지도……, 닭은 날지 못하는 게 아니야. 날지 않는 거지. 하지만 닭을 저 아래로 던져 버리면 닭은 분명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갈걸.”
닭이 날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날지 않는 것이라니, 우스운 발상 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웃을 수 없었다. 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번도 닭이 떨어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래, 어쩌면 날지 않는 것일지도……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는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그들은 밤이 늦어서야 서로 갈 길을 달리하였다. 근처의 해를 가장한 수많은 빛들은 모두 다 늘어짐을 이어나가 현실적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 있었다. 고지에 오른 소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날개가 있다면 솟아 주었으면…… 날개가 있다면 이제는 나와 줘야 하는데…….”
피곤했던지 나무 의자에서 잠이 들었던 나를 누군가가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이봐, 젊은이. 어서 일어나게. 여기 오늘 철거공사 한다잖나.”
“아, 그렇습니까?”
“그래, 동네가 너무 오래되지 않았는가. 재개발인게지.”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나는 먼지를 털며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참 고마운 분들이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없고 낯익은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시오? 뭐하시오?”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예요.”
“난 아무렇지도 않소.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오.”
“왜 날지 않으시죠?”
“날지 못하는 것이 아니오. 날지 않는 것이오. 나는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요.”
“그럼 좀 쉬었다 가세요. 다녀왔어요.”
“어서 오시오. 왜 그때 일몰을 나와 함께 해주지 않았소.”
“전 일출을 함께하고 싶었어요.”
첫댓글 문학적 자질과 소질이 풍부하군요 ^=^, 정진하여 멋진 작가가 되시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