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수필 인생
문희봉
고향 우물가에 서리를 먹으며 안으로 성숙하던 늙은 감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의 바알간 감은 해마다 농일한 단물을 우리에게 선사하기 위하여 몸을 익혔다. 어찌나 단지 맛을 본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수필을 써온 지 40여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설익은 땡감이다.
수필가란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수필가는 자신의 지각을 갱신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 길은 멀고 험난한 가시밭길이며, 혼자 걸어야 하는 외롭고 고독한 길이라는 걸 잘 안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문을 열어줄 수 없고, 후원자가 되어줄 수도 없다. 혼자 찾고 터득해서 헤쳐 나와야 하는 외로운 길이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향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흘러가면서 익어 가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 되지도 않는 것이다.
공자는 나이 사십이 되어서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사십이면 남자 평균수명의 1/2이다. 나도 이제 농익은 작품을 내놓을 때가 됐다. 쓰고 있는 연장은 항상 빛난다. 자꾸만 매만지기 때문이다. 쓰지 않고 방치해 둔 연장은 오래지 않아 녹이 슨다.
사람 중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할 말만 한다. 그가 가끔 던지는 말은 경전이다. 이제는 나도 말을 할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그게 아니니 걱정이다.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축복이다.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진실로 축복이다. 나는 글로 사랑을 주고, 독자는 읽어줌으로써 사랑을 주고 말이다.
일상사의 이면을 신선한 시각을 갖고 수필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독특한 시각으로 삶을 액자 속에 담아내는 기교가 능숙하고 언어의 행진이 현란한 사람을 보면 부럽다.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주제를 이끌고 나가는 힘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수필을 쓰고 싶다. 언어 조탁 능력의 탁월, 끈적거리는 점액질 같은, 수필의 찰기와 흡인력을 거느리고 있다는 평을 듣는 수필을 쓰고 싶다.
이름 있는 수필가들은 수필다운 수필, 진 수필 한 편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진통과 출혈을 거듭했는가? 인생의 골수를 깨고 뼛속 깊이 흐르는 진액이 솟아난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급한 경사를 올라 정상에 도달했는가?
창작은 산고와 같은 것이다. 수태는 확실히 신비하고도 환희로운 일이다. 수필은 느낌의 세계를 뛰어넘어 훨씬 높은 곳에 존재하는 깨달음의 세계이다. 거기에 도달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며, 평생 정진하여도 닿을 수 없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고, 잔잔한 기쁨이나 사소한 갈등 같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표현해 독자들의 호응을 받으면 일급수필이다. 엊그제 받은 수필집 속의 수필들은 갓 구워낸 막대 빵을 안았을 때처럼 온기가 녹아 있었다. 나는 그 수필집을 하루 저녁에 모두 읽었다. 재미와 감동과 깨우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일급수필을 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련다.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연습으로 탄생 된다 하지 않던가.
이왕이면 글도 생활 속에서 가져온 소재이면서도 밝고 따뜻한 내용만을 골라서 쓰고 싶다. 고달픈 현실을 다룰지라도 어둡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그지없이 아름다운 수필을 쓰고 싶다. 과장되지 않은 이야기 속에 번득이는 기지가 있고, 그윽한 방향(芳香)이 흐르는 수필을 쓰고 싶다. 수필 속의 재미는 수필의 향이요 맛이다. 그 재미는 지성을 촉구하는 재미요, 사랑을 느끼는 맛이다.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수필은 수필이 아니다.
앞으로 한 줄의 글을 쓰는 것이 피를 말리는 아픔이라면, 한 줄의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뼈를 깎는 아픔이란 말을 곱씹으며 수필을 쓰고 싶다.
고도의 수필 세계에 들어가는 길은 진열장에 진열된 빵을 먹는 작업이 아니라 산야에 흩어져 있는 도토리를 찾아서 그것을 물에 불려 빻아서 묵을 만드는 고통의 작업이라 생각하고 쓰고 싶다. 그러면 먹구름, 번개, 천둥 같은 것이 지나가고 청명한 하늘이 나타나겠지. 맑고 깨끗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은 혼과 각고의 노력이 융합된 정신의 승화가 빚어낸 수필이 탄생 되겠지.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필을 쓰고 싶다. 사람들은 말한다. ‘미인과 좋은 작품은 여러 번 보고, 읽으면 읽을수록 좋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