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리 보살의 게송
부처님은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아시사
통달하여 장애가 없고
마음은 청정하여 온갖 집착 떠나사
모든 중생을 이해하고 인도하시네
최고의 하드웨어, 녹슨 소프트웨어
계속되는 문수보살의 게송인데,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게송 역시 초반의 것들과 달리 계속하여 저의 공부의 짧음을 시험하는 듯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게송들도 정곡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역시 대지문수사리보살이란 명호에 걸맞는 게송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젠 조금 더 집중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술'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남의 눈을 속여 괴상한 것을 나타나 보이게 하는 기술'이라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법法이 환술과 같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구법求法이 엉뚱한 것을 얻으려고 하는 망상이라는 말일까요?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가 법, 즉 부처님 가르침에 '사기'당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아니겠지요. 아니 그런데 왜 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이 게송의 법과 불법의 법이 무슨 차별이 있을까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법은 또 다른 법이란 말일까요?
욕심 부리지 않고 한 가지씩 이해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제가 출가하기 전에 반야심경을 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불교에서도 색色이란 말을 쓰는구나, 색이 공空하다 했는데 과연 맞구나, 여색女色은 분명 허공과 같이 허망한 것일 거야. 불교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은 아니네'라고 나름대로 법을 익히고 신이나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불교가 쉽다고 생각한 마지막 '법' 이었음은 물론입니다.
어려서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할 때에도 분명한 법이 있었습니다. 만약 동네에서 그 법을 어기면 요즘 말로 왕따를 당해 놀이에 붙여 주질 않았습니다. 분명 그것은 법이었습니다. 성인이 돼서는 사회와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내 비위에 안 맞는다고 거부했다가는 또 다시 왕따를 당하거나 감옥에 가서 억울하지만 묵언기도나 참선에 딱 맞는 조건에 내던져지게 됩니다.
세간의 법은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출세간의 법은 어떠할까요? 부처님 당시에는 아주 많은 출세간의 법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출세간出世間이란 말은 세世(시간) 간間(공간)의 가치와 분별을 벗어난 세계란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부처님은 후에 외도外道라 하셨는데, 상당히 많은 무리들이 자신들의 법을 최고라 확신하며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완성하시기 이전에 그 당시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수행법을 다 해보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와 같은 수행법으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밖에 이룰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 경지는 앞서 설명드린 삼계 중 무색계의 가장 높은 단계로, 욕심과 물질까지도 벗어난 상당한 경지입니다. 여기에 이르러 부처님은 '이것으로는 생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구하는 최고의 법은 아니다'라고 하시는데, 실제 비상비비상처는 중생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번뇌를 떨쳐 버린 경지이긴 해도 역시 윤회는 벗어나지 못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말씀을 드립니다. 수행자의 가장 큰 마魔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체득했다, 법을 보았다, 견성했다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을 바로 그 때의 그 마음이 그 경계입니다. 그러니 까불지 말아라 하고 강조 또 강조하다 보니 '제법무아(모든 법은 실체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연기론적으로 바라볼 때에도 실체가 없다는 의미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제법무아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양보하여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보는 것이지 육신의 나를 보는 것은 부처를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충실히 한다고 칩시다. 그렇더라도 '그럼 역사적 실존 인물이고 이런 골치 아픈 글을 써야 할 원인 제공자인 석가모니는 법이 아니냐?' 하는 것이 저의 문제 제기이고, 게송을 이해시켜 드리기 위한 '골치 아픔'인 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제가 제 말을 수습하는 데 이 책 한 권을 다 바칠 것 같아 이 정도만 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해 둘 것은, '으레 그런 식'의 상투적 해석 때문에 불교가 발전은 커녕 비불교적으로 되어 간다는 점입니다. 종교 중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불교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소홀히 해 하드웨어까지 녹슬어 가는 정말 심각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게송을 마무리해야지요. '부처님은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아시사, 통달하여 장애가 없고'라는 말은, 법도 보는 안목과 수준에 따라 그 깊고 얕음이 달라, 잘못 보면 마치 마술에 속듯 환술과 같은데, 이 이치를 부처님은 바로 아신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청정하여 온갖 집착 떠나사, 모든 중생을 이해하고 인도하시네'는 설명 없이 그냥 말 그대로 이해하셔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성법 스님 저서 '이판사판 화엄경'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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