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두 번째 유월절 행사
본장은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며 민수기 성경에서 가장 앞선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출발하기 바로 직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유월절을 지키라 명령하셨으며 그 유월절을 강조하심으로 당신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1. 유월절 시행 명령과 순종 (9:1-5절)
출애굽의 분기점이 된 첫 유월절 직후에 하나님은 그날을 영원히 기념하여 지킬 것을 거듭 강조하셨다. 이러한 유월절 명령을 시내 산에서 다시 내리시면서 그 명령에 대한 백성들의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절기 행사는 출애굽 이후 첫 유월절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첫 기념식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 사고자에 대한 처리, 규정을 제정함으로써 유월절 절기에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
유월절 예식은 영원한 규례였으나 출애굽 당시에 선포되었던 규례는 한시적 규정이 첨가되어 있었다.
*출12: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라고 했으므로 광야 여행 중에는 이 규례를 무시해도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내 산을 떠나기 전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다시 명령하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주시는 땅은 가나안 땅이지만 넓게는 하나님이 계시는 시내 산 역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땅인 것이다.
백성들은 첫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생각하며 구원과 해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구 조사 약 보름 전에 유월절 양을 잡았는데 정월 14일이 막 시작되는 해질 무렵에 양을 잡은 것이다.
두 번째 유월절은 애굽에서의 유월절에 비하여 양을 잡고 피를 뿌리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굽에서는 한 가정에 양 한 마리를 잡았으나 여기서는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라 예식용으로 잡았기 때문에 그 수효가 격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양을 잡는 사람도 레위인들이었을 것이며 그 양의 피는 번제단 주위에 뿌려졌을 것이다. 지금은 과도기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정착했을 때처럼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행위를 할 수 없어서 번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으로 대신 했을 것이다.
유월절 규례에 필요한 각종 제물과 음식물을 광야에서 마련하고 수많은 희생양을 도살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여 지킴으로 선민의 책무를 다하였다.
이처럼 신앙인의 행동은 주변의 환경이나 처지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이었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언약적 관계를 명확히 하는 절기였다.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의 전형이었다. 이는 모든 신앙인의 영적 생일이며 인류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한 날이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날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축제인 것이다.
2. 사고자를 위한 2차 유월절 (9:6-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유월절 기간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절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은 한 달 뒤에 제 2차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유월절을 기피한 자는 단연코 심판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례를 받고 개종한 외국인들에게도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은혜를 베푸셨다. 이는 이스라엘이 단순한 혈연이 아니라 여호와 신앙과 언약으로 맺어진 신앙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
정결 예법 상 시체를 만진 자는 부정하게 되어 7일 동안 부정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는 공동체와 격리되어 근신해야 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공동체를 더럽히는 부정을 아울러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공식 예배, 유월절 행사와 같은 의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갑자기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당황했으며 그 처분을 물은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저들을 위한 특례법을 제정해 주셨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정기 유월절보다 한 달 뒤에 다시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은 법이나 날짜에 얽매이지 않고 그 절기의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한 것이다.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유월절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이 고백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하는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더 이상 언약 관계가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지며 백성의 진에서 쫓겨나야 한다.
출애굽 당시만 해도 유월절 어린 양은 음식으로서 효용이 강조된 것이었으나 계속 첨가되는 규정에 따라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이 되었다.
*신16:2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일한 제사를 드리되..
그러므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게으르게 하면 자신의 죄 문제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만일 타국인이’
이스라엘 내에 장기간 거주하여 그 사회에 동화된 이방인을 말하는데 그들이 유월절을 지키려 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율법의 의무를 지며 은혜의 특권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로 귀화한 이방인들도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구름 기둥과 불기둥 (9:15-23)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선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서 있게 행군할 수 있도록 이끄셨으며 이는 당신이 이스라엘의 참 된 인도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거나 행진함으로써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죽음의 땅에서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성막을 세운 날에’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준공한 날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증거로 회막 위에 구름이 덮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중심에 계심을 보이셨다. 구름은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다.
물론 하나님은 성막 위에 구름이 덮이기 이전에도 그들과 함께 계셨지만 성막 건립 후에는 구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가시적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선민의식을 북돋우고 가나안 여정에 박진감을 더하였으며 경건한 신앙 행보가 되도록 하였다.
밤에는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났는데 역시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광야 40년 동안 줄곧 계속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성막이 세워질 때만 있었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불평과 불만의 광야 여정 동안 항상 계속되었던 것이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 구름은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목격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위치까지 떠올라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백성들 각 개인이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름은 성막이 세워진 곳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성막이 세워져야 할 곳에 미리 머무르며 자리를 잡았다. 다시 말하면 구름이 앞서 가다가 어떤 곳에 정지하면 백성들은 그곳에 진을 치고 성막을 세웠던 것이다.
구름이 떠오름과 머무는 것은 곧 진행과 정주를 명하시는 여호와의 명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명령에 순종했으며 죽음의 땅에서 행진했던 것이다. 구름의 이동이나 머무르는 것은 사전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항상 구름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은 우둔한 행동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처신이다. 또한 구름이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열심을 요구하는 때이다. 유약자와 가축과 수많은 사람들이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구름이 짧게 머물렀다고 하여도, 그리고 기후가 아주 나쁘더라도 자신들의 진을 걷어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
또 진을 치고 지낸 시간이 오래도록 흘렀더라도 조급함이 없이 인내하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물과 음식을 찾아서 떠나고 싶지만 구름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시 구름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다가 떠오를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걷고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여호와의 직임이란 규례, 명령을 통해 하달된 책임 등을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여호와의 이동 명령이라도 모두 잘 지켰다는 말이다. 결코 성급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광야 여행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불과 구름 기둥은 오늘 날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성령께서는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의 갈 바를 알려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