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W. D. Ross)의 윤리설
로스(W. D. Ross)의 윤리설은 한마디로 직관주의 윤리설(Intuitive Theories)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로스에게서 윤리학은 규범과학 (normative science)이며 올바른 행위의 규범의 근거를 확인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주의 윤리설에서도 의무론적 직관주의 윤리설 (Deontological intuitive ethical theory)을 주장하는데, 고전 윤리학자들 중에서도 칸트와 밀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 그러면 로스의 윤리설에서 중요한 요소를 살펴보면서 직관주의 윤리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가치는 실재하는 것이다.
밀의 경우에 가치는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얼마만큼 양적(quantitative)이 아닌 질적(qualitative)으로 유용한 것이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로스는 이러한 공리주의에 반대한다. "법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겼을 때, 공리주의자들에 의하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것보다는, 그 법을 지켰을 때 얼마만큼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것인가? 라는 전제에 달려있을 것이다. 반면에 로스와 같은 직관론자에게 있어서는, "법을 지키는 것이 유용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행위의 결과를 떠나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척 보아서 지켜야 할 자명한 가치가 실재하고, 그러한 가치를 직관적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바로 그런 행동이 있고 난 이후에 유용성(좋은 결과)을 낳게 된다고 한다. 즉 로스에게서의 가치는 상황이나 결과에 좌우됨이 없이 항상 실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치의 실재를 주장하는 로스는 도덕적인 규칙도 자명한 것 (self-evident)이며 상황에 별로 좌우되지 않는다. 즉 규칙 의무론자 (rule-deontologist)로서 로스는 도덕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하며 추론함에 있어서 우리는 적어도 암암리에 비목적적인 규칙이나 원칙에 의거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로스에게서 가치는 칸트의 경우에서와 같이 절대적인 하나의 가치, 규칙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로스는 모든 의무가 하나의 원리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어떤 의무론자도 우리가 실제로 행해야 할 바에 대해서 상충도 예외도 없는 구체적인 규칙의 체계를 제시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점에서는 칸트의 정언명법 (categorical imperative)에 입각한 의무론적 윤리설과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2. 직견적(prima facie) 의무론
로스는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하나의 규칙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규칙들이 있으며 또한 각 규칙에는 각각 실재하는 가치의 영역(옳음의 영역)이 있다. 그런데 여러 규칙들이 있다면 그러한 규칙이 서로 갈등하는 사태가 있을 수 있다. 만약에 어떤 개인이 지켜야 할 규칙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에도 우리 인간에게는 갈등하는 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 보다 자명한 가치의 영역이 있으며, 이러한 더욱 더 자명한 가치의 영역에 따른 규칙이 그렇지 못한 가치의 영역의 규칙보다 앞서는 것이다.
따라서 로스는 실제적(actual) 의무와 조건부(prima facie) 의무, 즉 실제로 옳은 것과 조건부로 옳은 것을 구분한다. 실제로 옳거나 의무인 것은 우리가 특정한 상황에서 실제로 행해야 할 바이다. 즉 이러한 의무는 우리가 언제나 행해야 하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의무이다. 그런데 우리가 삶의 상황들에서 실제로 행해야 될 바는, 모든 의무가 하나의 원리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예외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의무가 아니라 그보다 도덕적으로 비중이 더 큰 다른 의무와 상충하지 않는 한, 즉 조건부로 우리의 실제적 의무가 되는 의무가 필요하게 된다.
로스는 직견적, 조건부 의무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 1) 최대한의 선을 산출하는 것, 2) 신중하게 분명하게 선택된 것, 3) 다수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조건부 의무, 직견적 의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우리 자신의 과거 행위로 인해 생기는 신의(fidelity)와 보상(reparation)의 의무가 있으며 타인의 과거 행위로 생기는 보은(gratitude)의 의무가 있고 가능한 최대의 선을 행해야 한다는 선행(beneficence)의 의무와 이보다 우선하는 것으로서 타인에게 상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악행 금지(nonmaleficence)의 의무, 그리고 선의 극대화와 더불어 공적에 따라 선을 균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정의(justice)의 의무, 자신의 지성과 덕행을 도야해야 하는 자기 계발(self-improvement)의 의무가 있다.
만약에 내가 나의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는 조건부 의무로서 지켜야 한다. 다른 도덕적 고려 사항이 개입되지 않는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실제적 의무가 되는 의무이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에 교통 사고가 나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사람을 병원에 옮기려면 약속에 늦는다고 하자. 이와 같은 경우는 약속을 지키는 경우보다 더 긴박하고 중요한 상황이 개입된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우선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무가 된다. 왜냐하면 약속은 단지 조건부 의무로서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약속보다 더 긴박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로스의 윤리설은 가치는 실재한다는 명제에 충실하고, 그 가치는 인간에게 직견적(Prima facie)으로 파악 될 수 있으며, 규칙의 갈등 상황에서도 어떤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직관론적 윤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하나의 사실로서 실재로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가치의 실재성이 직관주의 윤리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가치는 정의할 수 있는가?
로스는 가치의 실재를 주장하는 동시에 가치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자연주의 윤리학자나 공리주의 유리학자들은 가치를 어떤 속성을 통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하지만, 로스는 가치는 이 세상의 어떤 것(특히 비윤리적인 개념- non-ethical terms)으로도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정의를 내리려고 시도한다면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정의를 내리게 되거나, 아니면 도덕적으로 옳음이나 그와 비슷한 말로 다시 반복하는 정의에 불과하다고 한다.
(moral rightness is an indefinable characteristic, and even if it be a species of a wider relation, such as suitability, it's differentia cannot be stated except by repeating the phrase 'morally night' or a synonym)
그러면 가치에 따르는 행위는 정의를 내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로스에 의하면 실재하는 가치에 대응하는 올바른 행위에 대하여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우리는 도덕률 자체는 직관적 인식의 대상이며, 직관(intuition)을 통하여 어느 정도 그 특성을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로스에게 있어서는 별로 배우지 못한 보통사람이라도 무엇을 먼저 해야만 하는 가에 대해서는 직견적으로(prima facie)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보다 나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직관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로스에 의하면 실재하는 가치에 따른 도덕적인 올바른 행위의 특성은 최고 선을 가져다 주는 유용한 행위이며, 또한 내면적인 동기보다는 외면적인 상황에 가장 적합한(suitable)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덕적인 적절성(moral suitability)을 내포하는 올바른 행위란 개인에게 도덕적인 요구를 가능한 최대로 충족시키는 결과로 끝나는 유용한 행위를 말한다.
바로 이점(유용성: utility)에서 로스는 밀의 공리주의 입장과 관련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적절한 행동은 곧 실행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로스에게서는 도덕적 의무란 최대선을 산출하기에 전적으로 가장 적합한 행위를 실행하려는 노력이며 분발(exertion)이다.
이와 같이 로스에게 있어서는 옳음이란 완벽하게 정의가 될 수 없는 개념이다. 대부분의 직관론적 윤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옳음의 정의 불가능성(The Indefinability of 'Right')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것이 직관주의 윤리설의 중요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