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생무상이다. / 조정래
출생률 저하 세계 1위, 교통사고 발생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
이다지도 세계 1위가 많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복된 일인가.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태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네 가지의 세계 1등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나’만을 앞세운 이기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랑스럽지 못한 일들이 사회문제로 계속 지적되고
거론되는데도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나’만을 내세우며
얼마나 살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런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급격한 출생률 저하다.
2∼3년 사이에 세계 1위를 차지한 이 사태는
이 나라의 미래를 잿빛으로 색칠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10년 후부터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노동력은 부족해져
우리가 소망해 마지않는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세상은
영원한 환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많이 낳지 않으려는 데는 확실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제대로 키울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절대적이다. 그 다음에 곁들여지는 것이
직장여성을 위한 육아시설의 부족이다.
그러니까 출생률 저하 세계 1위와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는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게 할 만큼
위력을 발휘하는 사교육은 왜 그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
정부의 교육정책 잘못 때문인가?
학교 선생들이 실력 없는 무능력자들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전혀 그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내 자식이 잘 되어야 한다는 모든 부모들의
대책없는 이기심이 무한경쟁을 일으키며 빚어낸 비극이다.
저 1960년대를 거쳐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원이란 학교공부가 좀 모자라는 학생들이
보충을 하려고 다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이 차츰 변하기 시작해 이젠
남들보다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필수적으로 다녀야 하는
혈전장이 되어 버렸다.
그 이기심의 무한경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공교육은 무력하게 초토화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이 지닌 몇 가지 미덕 중 하나로 교육열을 든다.
그렇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만주며 연해주에 유랑했던 동포들은
먹는 것보다 자식들 가르치는 것을 앞세울 정도였다.
그래서 연변에 중국의 소수민족들 중에서
최초로 조선족 대학이 섰고, 옛소련 시대에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인 다음으로 높은 계층을 이루었던 것이 고려인이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적이라고 하는 우리의 경제발전이
논밭 팔고 소 팔아 자식들 가르친 그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도 정도가 넘치고 또 넘쳐
‘광적’인 상태로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교육열은 이미 오래전에 이성의 선을 넘어서
광란의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에 조기유학 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가 1등이고, ‘기러기 아빠’라는
새 풍속도가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니까
부모들이 앞서 뛰기 시작해 1학년부터 학원으로 내몰았고,
몇년이 지나니까 유치원생들까지 영어를 배우느라고 허덕거리고 있다.
몇 해 전 어느 텔레비전에서 유럽 여러나라 고등학생들이
과외도 안 받고 학원도 안 다니며 학교공부만 충실히 하는 것을
시리즈로 보여주며 우리의 교육열이 얼마나 병적인지를 지적했었다.
인생 어차피 한 번 사는 거고, 무상하다.
작가, 동국대 석좌교수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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