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길(言路), 시의 길
한분옥
고비다. 고비사막의 한복판이다. 고비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작은 오아시스를 지나고 난주를 지나니 또 고비는 계속 된다. 사방에 있는 산도 멀어지고 눈앞에는 대평원의 황색 바 다 고비사막이다. 나의 휴가 열사흘 여정은 황량한 고비사막 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하서회랑의 여정인 열차에서의 왕복 열흘과 우루무치에서의 하루 일정을 포함해서 갈 때도 오른 쪽, 올 때도 오른쪽 창가에 앉아서 고비의 모두를 내 안에 퍼 담으면 된다.
어릴 때는 울지 않는 어른을 꿈꾸었다. 어른이 되면 울지 않아도 모든 게 척척 해결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울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고비보다 더 황량한 속 뜰을 고비로 태우고 있다. 내 속에 있는 사막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온통 황토색을 띤 마른 흙과 모래의 들판이다. 달리고 있는 차창 밖으로 여전히 고비는 계속되고 있고 나는 차 속에서 있을 뿐. 나는 그저 흔들리고 있으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경치를 찾아 떠날 때 나는 사막으로 향했다. 아직도 내 굳게 다문 입술에 말이 열리지 않고, 보이는 이국 풍물에 느끼는 시선도 내 속 뜰의 겨울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해에서 우루무치까지 꼬박 5일간 달린다. 상해를 떠나 연화차라 쓰인 침대차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고 있다. 신강 위그루자치구의 성도인 우루무치까지 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간다. 그동안의 세월을 살면서 무심한 세월이 던진 매를 많이도 맞았다. 세월에 멍들었던 상처는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내게 있어 세월은 그게 아니었다. 온통 몸살인지 진통인지 어떤 처방으로도 나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 며칠이라도 호강스럽게 누워서 이러고저러고 할 형편도 못되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달리, 어떤 치료를 받아본 적도 없고, 그 누가 옆에 앉아 어디가 어떠하냐 얼마나 아프냐 물어주고 달래주지도 않는다. 식구들이 보기에는 항상 바삐 쫓아다니니까 멀쩡하게 보일 뿐이다.
고비의 한가운데를 달린다. 누런 황토의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황하의 강물이다. 대지의 누런 황토와 모래의 빛깔 그 강물이다. 어느 날은 아침밥 잘 먹고 나가서 남의 칼에 손베 일 때도 있었고, 허투루 던진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 혀 상처받기도 상처 주기도 한 세월이었다. 자못 어른들이 원수 같은 세월이라 하더니 세월을 향해 쥔 주먹을 풀지 않는다. 칠팔십 도의 여성전용 한증막에 스스로를 감금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2분, 5분마다 탈출을 시도해 보았지만, 나보다 더 비장한 각오를 했는지, 그 열막 속에서 꼼짝 않고 좌불(坐 佛)이 된 듯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마포거적을 둘러쓰고 견디어 보라고 했다. 남에게 내 보일 수도 없는 멍 자국을 안으로 삭혀낼 수도 없어 그럴 때마다 내 속에는 사막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닿아 말길(言路)을 잃어버릴 때마다 생긴 화증(火)이 속으로 깊어갔고, 그럴 때마다 바다 밑 같은 심연(深淵)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한기류 타기는 스스로 택한 출구였다.
오뉴월에도 감기 몸살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고 추위는 떠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바람자락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 그 인정에 애를 태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날 때 혼자 사막을 꿈꾸었다. 내 속에 있는 황량한 모래 바람과 열기는 고비에 와서 더욱 달달 볶이고 있다. 나는 열차를 타고 가고 있지만, 창밖에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이 나란히 가고 있다. 나는 어떤 경치를 찾아 나선 것도, 이국 풍물 을 보고 즐기려 나선 것도 아니다. 늘 존재의 중심 밖에서 서성거리던 자신이, 존재의 중심을 찾아 무의식에서 내친 걸음일 뿐이다.
고비에 밤이 오니 암흑의 세계이다. 민가의 불빛도, 자동차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막은 연이어 뒤로 달아난다. 속 시원히 울고 나면 나을 것 같은 일에도 도무지 울어지지 않는다. 내 설움은 눈물이 되지 못했다. 속속들이 비단으로 치장하고 나설 때도 속 뜰은 황량한 모래벌판일 때가 많았으니까. 몇 날 며칠 퍼붓는 홍수 속에서도 젖지 않는 사막 같은 뜰이었다. 그럴 때마다 메마른 정서로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안과에서는 눈물샘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직도 사막으로 남아 있어 야 하는 땅 고비에 와서 나는 지금 울먹이고 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긴장감을 내려놓고 침묵의 세계에 단단히 졸라맨 나의 허리춤을 늦추려 왔던 것이다. 365일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어쩌다 내리는 밤이슬 한 방 울 받아먹은 선인장의 가시 같은 눈물이· · · . 한증막 불구덕에서 나를 태우면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나의 마른 속 뜰에서. 나는 오늘 고비의 황량함에 놓여져 나도 모르게 울먹이고 있다. 그동안 울지 않았던 울음이 목구멍을 치받고 올라오고 있다. 황량한 고비에서 뜨거운 눈물, 뜨거운 세월이 누우런 황하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