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은 다양한 맛과 향으로 유명했다. 특히 각각의 술마다 사연을 지니고 있어 술을 마실 때 그 맛을 더욱 깊게 한다. 허시명씨가 지은 책 〈풍경이 있는 우리 술기행〉은 전국의 술 중 이름난 술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해본다.
전북 전주 수왕사에서 만드는 송화백일주는 좋은 물로 유명하다. 절 이름 그대로 '물의 왕'인 물을 가지고 만드는 까닭에 맛이 깊은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 송화백일주를 만든 이는 16세기 말의 진묵대사이다. 그는 배고파 구걸하러 온 모녀에게 금부처의 팔뚝을 떼어주는 등 기이한 행적을 많이 남긴 도승으로 통하고 있다. 그때부터 전해진 기구를 가지고 지금은 벽암 스님이 송화백일주를 만들고 있다. 송화백일주는 38도의 증류식 소주로 이름 그대로 송화향을 자랑한다.
고종의 수라상에 올랐던 '연엽주'
경주교동법주는 350여 년 전 궁궐에서 음식을 관장했던 최국선 참봉 때부터 최씨 집안에서 가양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9대손 며느리인 배영신씨가 아들 내외와 함께 빚고 있다. 1992년부터 시판에 들어간 경주교동법주는 원래 경주법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상품화된 '경주법주' 때문에 경주교동법주로 이름을 바꿔야만 했다.
경주교동법주는 찹쌀과 누룩, 물만으로 만드는 16도의 약주다. 누룩 만드는 것부터 용수를 박아 약주를 걸러 베보자기에 여과하는 과정까지 전부 손으로 하며, 날짜와 방위까지 따져 꼼꼼하게 만든다. 고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부산 금정산성 토산주는 전국 960여 개의 막걸리 술도가 중 전통누룩으로 빚는 유일한 막걸리다. 이 술은 모두 288계좌를 100여 명의 주민이 나눠 가지고 있는 마을 공동 소유의 재산이다. 이를 민속주로 만든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가 5-16 쿠데타 이전에 부산에서 군수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이곳에서 '밀주'를 마셨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1979년 금정산성 토산주를 양성화했다고 한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누룩과 함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누룩 단속에 나선 공무원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모두 경찰서와 가깝다고 한다. 거의 모두 전과자인 셈이다.
충남 아산시 설화산 서쪽 기슭의 외암리에서 만들어지는 연엽주는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연엽주의 시조는 조선 고종 때 비서감승이라는 벼슬을 지낸 이원집이다. 3년 연속 가뭄이 들자 그는 고종에게 백성의 어려움을 간했다. 고종은 대궐이나 사대부집 할것없이 잡곡을 섞어먹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라고 했다. 이 명령으로 수라상에는 술이나 유과-식혜 등이 올라올 수 없게 됐다.
미안함을 느낀 이원집은 주먹밥 크기로 누룩과 고두밥을 연잎으로 감싼 다음 뜨뜻한 방에 두었다. 엿새 뒤에 연잎 안에 술이 괴었다. 술잔이 필요없어 연잎을 그대로 펼쳐 마셨다. 고종에게 올렸던 대궐연엽주가 바로 이 술이었다. 연엽주는 연잎 대신 항아리에 술을 빚는다.
인삼주를 떠올려보면 투명한 병 속에 인삼이 들어 있는 침출주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의 인삼주에는 인삼을 찾아볼 수 없다. 인삼을 갈아 만든 발효주를 증류해서 만든 증류주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데에는 100일 정도 걸린다. 그래서 백일주라고 소개하면 상대방으로부터 수년된 인삼주를 가지고 있다는 화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침출주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산 인삼주는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 만찬장에서 건배주로 사용됐다.
충남 면천 두견주는 분명한 유래를 가지면서 가장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술이다. 시작은 고려 개국공신인 복지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지겸이 큰 병을 얻어누웠을 때 딸 영랑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 아버지의 쾌유를 빌었다. 100일 기도를 올리자 산신이 나타나 진달래꽃을 따서 안샘물로 빚어 아버지께 드리라고 했다. 이때부터 면천에서 두견주를 빚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견주는 진달래와 찹쌀, 누룩만으로 만드는 약주이다.
충남 한산의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18도 약주이다.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의 유래가 있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목을 축이려고 주막에서 소곡주를 홀짝이다가 저도 모르게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앉은뱅이가 되어 과거시험을 놓쳤다. 술독을 열고 술맛을 보던 며느리는 술에 취해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었다. 또 도둑이 물건을 훔치다가 술독을 발견, 술을 마시다가 일어나지 못했다. 마신 사람은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이미 취해버린 것이다.
안동소주 제조법 몽골족에 배워
경남 안동에서 소주를 빚게 된 것은 고려 시대 원나라 침입 때로 추정된다. 소주는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아랍에서 배운 알코올 증류법이 고려에 전해지면서 만들어졌다. 고려 시대 안동에는 일본 침략을 위한 원군의 병참기지가 있었다. 이때 원군이 마시던 소주를 고려인이 배워 소주가 발달한 것이다. 안동소주는 손으로 빚은 밀누룩과 쌀, 물로 만든다. 전통 방식 대신 대형 증류기를 통해 소주를 만들어내는데 깊은 맛과 진한 향을 자랑한다.
경북 김천의 과하주는 이름대로 여름을 보내는 술이다. 과거에는 전통술을 여름에 만들기 힘들었다. 높은 온도 때문에 발효가 제대로 안 됐고 보관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여름에는 약주를 증류해 소주를 만들어 먹었으나 소주는 몇 잔만 마셔도 땀이 나온다. 김천 과하주는 약주의 향과 맛을 유지하면서 소주의 안전성을 간직한 여름술이다. 김천 과하주는 21도의 약주를 증류해 소주를 만들어 이를 다시 남은 술 지게미에 넣고 숙성시킨 혼성주다.
문배주에는 배가 없다. 문배주는 1920년쯤 평양 주암산 근처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누룩과 조, 수수를 발효시키고 나서 이를 증류한 술이 40도짜리 문배주다. 이 술에서 문배나무 과실향이 풍겨 이름을 문배주로 정했다고 한다. 문배주는 북쪽 지방의 술이라 독하다. 이 술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때 평양 모란관에서 남쪽 주최로 열린 만찬에서 건배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남 진도를 대표하는 술은 홍주다. 남쪽 지방에서는 찾기 힘든 40도를 웃도는 독주다. 다른 지방처럼 약주를 떠먹고 탁주를 걸러 먹다가 술이 시어질 때 만들어 먹는 소주가 아니라 처음부터 소주를 만들기 위해 만든다. 진도에 소주의 전통이 생긴 것은 역시 고려 시대 몽골족 영향 때문이다. 진도는 1270년 여름에 삼별초가 들어와 원군과 맞섰던 땅이다. 이들이 패하자 많은 사람들이 원나라로 잡혀갔고, 20년이 지난 뒤 진도로 돌아왔다. 보리로 밑술을 만들고 쌀로 덧술을 만들어 이를 증류한다. 특유의 빨간 색깔은 증류된 소주가 '지초'라는 식물 뿌리를 거쳐서 술통에 담기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