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전부터 홀로라도 오지의 민박집에서 옛 여행의 향수를 찾으려
이 곳에 가려고 벼르다 질긴 더위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급히 시행했던 비수구미에 대한 정보를 전해드리려는데..
마침 우리 머무는 중 조선일보에 기사가 실려 함께 올려 드린다.
비수구미의 뜻 --- 설명서 참고
그 곳의 사정도 어떤지 모른채 허겁지겁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경춘 고속도로를 통해 화천으로 달려간다..
집에서 160km의 두시간 남짓한 거리니 별로 먼 곳도 아닌데...
평화의 댐을 수km 앞두고 파로호를 따라 비포장 길을 4km 정도 투덜거리면
이렇게 찻길이 끊어지다니...
미리 알아 놓았던 민박집에 전화하니 저 건너편에서 웬 노처녀가(알고보니 맏 며느리)...
먼지를 휘날리며 4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다..
배가 도착하고, 짐을 싣고,... 모두가 이런 오지가 다 있나?하며 황당해하며
걸어서 곧 그의 민박집 도착...
파로호 이야기
깨뜨릴 파(破)에 오랑캐 로(虜), 호수 호(湖)이니, 파로호는 '오랑캐를 깨부순 호수'라는 뜻이다.
6·25 전쟁 때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을 이곳 파로호에서 궤멸(潰滅)시켰다. 1951년 5월 경기도 양평 용문산 전투에서
화천까지 패퇴한 중공군은 철원으로 퇴각 중이었다.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중공군은 '사상자 10만명, 포로 1만명을
기록한 미증유의 참패'를 당했다.
그 퇴각로가 461번 도로였다. 퇴각로가 막힌 중공군 병사들은 호수를 헤엄쳐 건너다 익사했다. 국군 1개 소대가
중공군 1개 대대를 생포했다는 기록도 있다. 도로는 물론 주변 능선과 계곡에는 중공군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작전 차량들은 중장비로 시체들을 길섶으로 치우며 전진했다.
1955년 11월 18일 대통령 이승만이 이곳 육군 6사단을 방문했다. 대한뉴스는 "대통령 각하께서 파로호라고 명명하신
화천 저수지의 명명 기념비 제막식이 11월 18일 현지에서 거행되었다"고 보도했다. '파로호비'는 지금 안보전시관
위쪽 숲 속에서 파로호를 내려다본다.
파로호는 1944년 일본 총독부가 수도권 군수공장 전력 공급용 발전소를 만들며 생긴 인공호수다. 원래는 파로호가
아니었다. 대붕(大鵬) 호였다. 이후 7년 만인 1951년 호수 이름은 파로호로 바뀌었다. 대붕호라는 이름은 금세 잊혔다.
1987년 4월 호수 북쪽에 평화의 댐 건설이 시작됐다. 호수 물이 빠졌다. 화천댐 옆에서 비석 하나가 발견됐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大明鳥堤 昭和 十九年 十月 竣工(대명제 소화 십구년 시월 준공)'. 대붕이 사는 호수가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초명새가 사는 뚝방이라고? 간악한 일제 꼼수에 화천이 발칵 뒤집혔다. 과연 그럴까. 초명새(明鳥)는
남쪽 세계에 사는 전설 속 새다. 물에 감응하는(至水之感) 신조(神鳥)다. 봉황보다 초명새가 호수 이름에 더 어울리고
'간악' '꼼수' '만행' 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작법이다.
야외에 설치한 차양막 밑으로 200명 이상의 좌석이 준비 되어 있고
마당에 놓인 수많은 항아리엔 간장과 된장, 막장
그리고 산채 나물을 절인 갖가지 반찬들로 가득해
이집의 단 한가지 식사 메뉴인 산채 정식에 제공된다
쌓여 있는 빈 가스통이 이 집의 살림살이 규모를 짐작케 한다.
우선 더우니 집앞 계곡으로 저녁 먹거리 들고 달려나가
물가에서 영이표 불고기를 막걸리에 마시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단 한가지 목표인 "더위탈출"은 성공한 셈..
우리의 소박한 잠자리..
명색이 황토방이라지만, 창문도 없는 북한 노동자 숙소같은 곳
방은 엉성했으나 모처럼 선선함에 이불 덮고 단잠을 즐겼다.
다행히 다음날 새로 옮긴 본채의 방은 넓고 그럴 듯했다
08/24(수)
새벽에 산책나온 어제의 주차한 곳...
이 곳이 다리를 건너 비수구미로 걸어 들어갈수 있는 입구이다.
왼편이 이장네 민박집..
오른편이 우리 숙소,..
먹거리를 들고 계곡을 올라간다.
입구부터 전혀 사람들이 없고 머물곳도 많지만 인간의 다녀간 흔적들이 없다보니
바로 옆의 물가로 내려갈 수가 없어 계속 전진하다가
접근 편한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았다.
한 낮이 되니 한 떼의 관광객들이 저 위에서 몰려 내려온다
해산(화천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수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 터널부터의 정통 트래킹 코스를 밟는 이들이다.
그들이 쉬는 동안 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이런 절경이...
아마 입구에서 2km도 안되는 지점이리라..
첫댓글 3인이 조촐하지만, 진짜 피서를 즐기셨네!👏
보기만해도 시원하네!! 다음번엔 나도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