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까지 심사위원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작품은 ‘물의 어머니’ ‘이정표로 뜨는 달빛’ ‘모죽’ 그리고 ‘선잠 터는 도시’였다. ‘물의 어머니’는 수사가 근사하고 터치가 시원시원해 모던한 느낌이 들었다. 같은 작가의 ‘명자꽃’도 탄력성 있는 언어가 비눗방울이 되어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런 장점에 비해 울림이 부족했다. ‘이정표로 뜨는 달빛’도 표현능력은 무난해 보였으나 내용면에서 너무 단순했다. 그 작품 셋째 수에는 지루할 만큼 눈에 익은 가난 얘기가 나온다. 당선에 값할 만한 내용의 세목이 부족해 보였다. ‘모죽’의 경우 작품 완성도나 내용의 깊이에선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여러 번 읽고 토론했지만 어휘 사용면에서나 소재면에서 신선하지 않다는 결점이 눈에 띄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선잠 터는 도시’를 쓴 정인숙씨에게 돌아갔다. 시인은 우울한 오늘의 도시를 심도 있게 그렸다. 연필화처럼 희미한 선으로 그린 애잔한 풍경은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우리의 현실을 상상하게 하는 여운을 머금고 있다. 구성 면에서 의도적으로 ‘1’과 ‘2’로 나눈 것도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즉 1부의 경우 인력시장의 가혹한 풍경을 그려놓고 2부는 인력시장 밖의 그늘을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2부 종장의 ‘몸피만 부풀린 도시/신발 끈을 동여맨다’는 이 시조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외화내빈의 카오스 속에서도 그 생활에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소시민의 의지가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부디 삶에 뿌리내린 건강한 시정신으로 한국 시조문학사의 내일을 갱신하는 일꾼이 되길 바라며 대성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