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3: 1 - 1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1 )
제 3 장 : 기쁨의 이유
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3: 1-11 )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옥에 갇힌 바울은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 기뻐했고 또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했다.
바울의 기쁨의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義) 때문이었다.
빌 3: 1 기뻐하라 -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교훈은 본서신의 주요 교훈이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기쁨의 이유와 원천을 보인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의 이유이시며 원천이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건강도, 물질도, 육신의 아름다움도, 쾌락도, 세상 권세도 다 일시적이며 어느 날 없어지는 것들이 아닌가?
또 그것들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을 때에도 그것들은 진정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 참 기쁨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평강 가운데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 기쁨은 기쁨 후에, 아니 기쁨 중에도, 고독과 고통과 슬픔과 허탈이 있다.
우리의 기쁨은 그런 종류의 기쁨이 아니다.
우리의 기쁨은 오직 예수님의 구원 때문에, 즉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얻었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확실한 소망을 얻었기 때문에 갖게 되는 기쁨이다.
모든 슬픔은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죄가 없는 천국은 기쁨으로 충만한 곳이다. 하나님은 기쁨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기쁨 충만한 삶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지상에서도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구원 안에서 기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너희에게 안전하다고 표현하였다. 잘 아는 내용이라도 진리의 교리와 교훈은 귀하고 안전하다.
새것은 잘 분별하지 않으면 잘못된 길에 빠지기 쉽다. 그런 점에서 옛것은 안전하다. 잘 아는 성경적 교훈은 안전하다.
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종말로'(*, 토 로이폰)는 대부분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로 번역되었다(KJV, JB, NIV, RSV).
그러나 이 단어가 서신서에서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 고후 13: 11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오히려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려고 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 살전 4: 1 -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 살후 3: 1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그러므로 본 절의 '종말로'는 바울이 끝을 맺기 위해 사용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이제는', '더 나아가서', '덧붙여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Goodspeed, Knox, Houlden, Moffatt).
바울은 본 서신의 여러 곳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다(1: 18. 4: 4, 10).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한 것은 기뻐함을 통해서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일치를 해소(解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는 성도들의 이러한 기쁨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
2]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같은 말'에 대한 해석에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 '주 안에서 기뻐하라'를 가리킨다(Alford, Weiss, Moffatt).
Ⓑ 3, 4장에서 언급된 교회내의 불일치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Lightfoot).
Ⓒ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이다(Zahn, Meyer, Scott, Vincent).
이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은 문맥상 다음에 이어지는 '너희에게 안전하니라.'와 연결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 2절 이하에 기록된 거짓 교사의 경고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절은 복음에서 벗어난 사실들을 지적해주는 것이 아무리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지루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빌 3: 2 삼가라 -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 )
'개들'은 도덕성이 없고 남을 물어뜯듯이 해치는 자들을 가리킨다.
'손(損)할례당'이라는 원어는 '절단자들'이라는 뜻으로 할례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몸만 상하게 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할례를 주장한 유대교인들을 비꼬아 한 말이다. 저들은 참 경건도 도덕성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성도들은 저들을 조심해야 했다.
본 절은 유대주의를 따르고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유대주의를 강요하는 자들에 대해 조심하라는 권면이다.
1] 개들을 삼가고
'개들'은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짐승을 가리키는 것으로(Lightfoot) 경멸스러운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상징적 표현이다.
* 신 23: 18 -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 삼상 17: 43 -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 잠 26: 11 -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 사 56: 10-11 - 10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예수께서도 이 말을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사용하셨다.
* 마 7: 6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이방인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셨다.
* 마 15: 26-27 -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본문에서의 '개들'은 성도들을 괴롭히는 유대주의 행악자들을 지칭한다(Michael).
손할례당은 손으로 육체에 할례를 행한 무리를 의미한다.
* 엡 2: 11 -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손할례당은 몸에다 행한 할례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으로 자랑스럽게 몸에다 할례의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백성이라는 경멸의 어조로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고 불렸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였다.
마음에 베푸는 할례는 할례의 근본정신을 충실하게 살리는 것을 의미하며 곧 언약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할레가 이 역할에 충실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할례는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할례의 본질을 잊고 그것을 단지 선민의 자랑거리로 삼았을 때, 할레는 무의미한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 갈 6: 13 -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2]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은 문자적으로 '악한 일꾼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3] 손할례당을 삼가라.
'손할례당'의 헬라어 '텐 카타토멘'(*)은 문자적으로 '절단한 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인간적 노력의 산물인 의식적인 행위만 중요시하는 자로서 율법을 고수하였다.
첫댓글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