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앞니 빠진 중강새(도장구)>/구연식
인간의 오복(五福) 의미는 종교, 사회, 문화, 사상 등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오복을 지키는 것 중에, 건강이 제일 우선임은 공통이다. 건강 지킴이의 1순위는 치아 건강이다. 그래서 ‘오복 중에 치아가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 흔히 쓰는 말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사회에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음식물 섭취에 있었을 것이고 그 음식물 섭취와 소화의 책임은 치아 건강이 제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오복의 흔한 말 중에서 치아 건강을 말하는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 때 아들네 가족들은 제주도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심신 단련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손자의 아래 송곳니 2개가 이틀 사이에 연거푸 빠졌다고 한다. 나는 ‘아이고! 돈 벌었네, 장하다.’ 하면서 손자를 위로해 주었다. 손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치과병원에 발치(拔齒) 치료를 할 때, 다른 아이가 입안에 피범벅이 된 채 소스라치게 울며 몸부림을 치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을 보았다. 손자도 지레짐작으로 치료를 거부하여 애를 먹인 적이 있다. 그 뒤로 손자는 치과병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어 일반치료는 물론 젖니 발치 시기를 놓쳐 애를 먹이기도 했다.
나의 유년기 시절에는 치과병원은 본 적도 없고, 금마 읍내에는 조그마한 가내 병원 격인 ‘고려병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유치(幼齒) 가는 시기도 정확히는 모르고 언제인가는 간다는 것뿐이었다. 치아가 흔들거리면 빼야지 그냥 놔두면 뿌리가 옆으로 뚫고 올라와 덧니가 생긴다는 정도였다. 치아 빼는 것도 이골이 나서 모두 집에서 뺐다.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가늘고 질긴 재봉실을 잇몸 밑으로 치아 뿌리가 드러난 곳에 단단히 묶는다. 그리고는 머리를 툭 치거나 문에 실 걸어 놓고 문을 확 열면서 뺐다.
그 시절에는 간혹 단단한 생고구마를 먹다가 허연 고구마 속살에 핏자국을 내면서 우두둑하며 빼야 할 이가 부러지며 빠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면 덜렁덜렁 붙어있는 이를 어머니가 당겨서 처리했다. 어느 경우는 이가 잇몸에 누울 정도로 너무 흔들거려 입속에 다른 이물질이 있는 것처럼 께름칙할 때도 있다. 혼자서 집 모퉁이에 가서 손으로 위아래로 계속 흔들거리면 새로 나는 이빨과 옛날 이빨이 끊어지는 소리가 입속의 공명으로 바로 귀에 전달되어, 우지끈하는 작은 소리를 내며, 시원한 쾌감을 주면서, 잇몸에 붙어있는 실낱같은 살 첨을 잡아떼면 앓던 이처럼 빠진다.
이렇게 뺀 이는 그냥 버리지 않고 신성시했다. 초가지붕에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너는 헌 이 가지고 나는 새 이 다오~’를 외쳤다. 까치는 우리나라 텃새로 예로부터 우리의 민요·민속 등에 등장하는 친숙한 새이다. 아침에 우는 까치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겼다. 그래서 나약한 인간이 영특한 까치한테 부탁하여,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까치는 우리나라 국조(國鳥)로 보호받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빠진 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신기해서 요리조리 굴려 가며 보았다. 앞니를 보았을 때는 밥상 위에서 많이 보았던 납작하고 하얀 것이 영락없는 굴비 이빨(사실은 물고기 귓속 돌耳石)처럼 보였다. 어금니는 강냉이 낱알처럼 위쪽은 양치를 잘 안 해서 썩은 것처럼 거무튀튀한 강냉이 윗부분이고, 뿌리는 뾰쪽하며 조금 살 첨이 붙어서 강냉이 알 아랫부분과 너무 흡사했다.
그 시절은 칫솔을 몰랐다. 어머니가 접시에 으깬 소금을 주면 손가락으로 찍어서 이를 대충 문지를 정도였다. 그 당시 마을 뒤에는 군인부대가 있었는데 군인 아저씨들이 지금의 라면 봉지 정도 크기의 치분(齒粉) 봉지에서 칫솔에 치분을 묻혀 양치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군의 군수품은 미국에 의존했으므로 미국에서 공수해 온 칫솔과 치분은 영어로 표기되었다. 칫솔을 처음 사용해본 기억은 1960년대 중반이다. 그것도 치약 없이 칫솔에다 소금을 찍어서 사용했다. 칫솔은 브러시가 너무 닳아서 칫솔대만 남을 때까지 사용했다.
요즘 엄마들은 발치된 유치를 깨끗이 손질하여 작은 유리병에 보관하는 경우를 봤다. 어떤 엄마는 시망스럽게 발치된 어린이 치아를 모두 모아 구멍을 뚫어서 목걸이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거나, 어린이 목에 걸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벽에 걸어두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목에 거는 것은 아프리카 원주민들 같은 혐오스러운 거부감을 느꼈다.
어린이 앞니 빠진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포토샵에 보관하여 공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른의 모습은 코믹스럽고 덜떨어진 인상을 주어서 치과에서 임시로 만든 의치를 끼우고 치료 기간을 버틴다. 그 옛날에도 어린이들의 앞니 빠진 모습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 있는 일이지만, 애교 있는 너스레로 놀려주기도 했다.
‘앞니 빠진 중강새(전라도에서는 ’도장구‘로 표현하기도 함) 우물곁에 가지마라 붕어새끼 놀랄라 잉어새끼 놀랄라~ 생략
건강은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나는 7남매의 장남이다. 그런데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다 충치 하나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 간혹 학생들이 ‘선생님 임플란트 했어요?’라고 질문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흔들어 보이면서 생 치아임을 과시했다.
그리고 생뚱맞게 눈까지 자랑하면서 이 나이 먹기까지 안경을 모르고 살았다며, 이 모든 것은 우리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가 사탕을 안 사줘서 이가 썩지 않았고, TV 살 돈이 없어서 TV를 바짝 안 봐서 눈이 좋다고 하면 ‘헤이~ 선생님 그 당시는 TV가 없었잖아요?’ 하면서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귀신은 인간을 시기하고 해코지를 잘한다고 한다. 건강 과시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귀신한테는 말 안 한 것으로 하겠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서 현재 손자 시대의 치아 관리는 과학적이고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현대인들도 오복을 누리려면 건강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건강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본인의 평소 건강관리가 으뜸이다. 그리고 의·약술의 보탬으로 다소의 건강 유지와 연장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손자한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손에 쥐여 줄 수는 없어도 치아 건강의 유전인자를 꼭 물려주고 싶다. (2022.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