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의 교과 교육을 위하여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한 도서. ‘교과’란 교육과정 안에 제시된 교육내용을 학문 영역 또는 교육활동 영역별로 세분화한 것으로, 교과서는 이들 각 교과를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편집하여 학습의 기본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교과서는 교육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으로, 그 나라의 교육관이나 시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즉 교과서를 통하여 국가관과 애국심을 배양하며,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사회의 도덕적 가치 및 윤리관을 배우게 된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교과서 종류에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1종교과서와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2종교과서의 두 종류가 있다.
우리 나라 교과서의 변천과정을 교육제도의 변천사에 따라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이 몇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갑오경장(1894) 이전의 전통사회로, 유교사상 내지 유교적 도덕관을 설립하기 위하여 실시되어 왔던 유교적 교육사조로 대표된다.
둘째는 1894년에서 1910년 국권 상실 전까지의 시기로, 갑오경장에 의하여 이루어진 개화기의 근대적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셋째는 1910년에서 1945년 광복 이전까지의 시기로, 우리 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식민지 교육제도가 적용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시기의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넷째는 1945년에서 1948년 정부수립 이전까지의 시기이다.
다섯째는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에 이르는 시기로, 현대 교육사조에 따른 교육제도의 확립 시기로 볼 수 있다.
(1) 1894년 이전의 교과서전통시대의 전반적인 교육 실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교재의 종류를 확인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 분야에 대한 조사는 민족항일기에 서당을 대상으로 한 단편적인 것이 있을 뿐, 본격적인 조사작업은 부진한 편이다.
첫째 단계의 교재는 문자학습용 교재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천자문≫의 공과(功過)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 관심의 결과가 ≪유합 類合≫·≪훈몽자회≫·≪신증유합 新增類合≫·≪아학편 兒學編≫·≪정몽유어 正蒙類語≫·≪통학경편 通學徑編≫ 등 한자 교재의 찬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학습서는 각기 독특한 편찬체제 및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이의 분석을 통해서 편찬자의 사유체계 및 전통시대 아동교육관의 변천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단계는 훈석(訓釋) 단계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수준의 교재는 모두 중국인에 의해 저술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서이다.
훈석 단계의 교재를 목록화하고 그 모본(母本)이 되는 인용제서(引用諸書)를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조선시대의 정신세계는 주자학적 가치체계에 의하여 구성되었고 이에 따라 모든 제도가 운영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교재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도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전통 교재에서 명륜이 강조된 것은 그것이 지닌 도덕적 보편타당성과 함께 향촌사회에 소학적 예교주의(禮敎主義)를 정착시키고자 한사림(士林)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셋째 단계는과문(科文) 위주의 교육으로 유학자와 사서(史書)가 중심을 이루는 교재들이다.
≪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시전 詩傳≫·≪예기≫·≪서전 書傳≫·≪역 易≫·≪근사록 近思錄≫·≪가례≫·≪심경 心經≫·≪이정전서 二程全書≫·≪주자대전≫·≪성리대전≫·≪강목 綱目≫·≪자치통감≫·≪역대정사 歷代正史≫·≪동국제사 東國諸史≫ 등으로, 이들은 서당·향교·성균관 등 여러 교육기관에서 모두 중시하는 교재들이었다.
(2) 1894∼1910년 이전의 교과서정규 학교 교육에 사용할 교과서가 편찬, 간행되어 사용된 것은 1894년 이후의 일이다.
고종은 청나라에 의존해 오던 그때까지 정치노선을 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실하게 세울 것을 다짐하는 가운데 나라 안에 있는 총명한 자제를 널리 외국에 파견하여 학술과 기예를 익힐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고종의 의도는 뒤이어 반포된 〈교육입국조서 敎育立國詔書〉(1895)에서 재천명되었다.
〈교육입국조서〉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시행 법령으로 〈학부관제〉·〈한성사범학교관제〉·〈외국어학교관제〉·〈소학교령〉·〈한성사범학교규칙〉 등이 잇따라 반포되었다.
이러한 교과서 업무는 1896년도 예산 가운데 5천 원(0.08%)을 배정받음으로써 그 실현을 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교과서 편찬은 정부 주도의 편찬과 민간 주도의 편찬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1895년 시험적으로 학부 편집국에서 ≪국민소학독본 國民小學讀本≫과 ≪소학독본≫을 출판하였으며, 이들 교과서는 신학제 수립 이후 우리 나라에서 간행된 최초의 교과서이다.
학부에서 편찬한 교과서의 발행 부수는 1908년(융희 2)에 2만8071권, 1909년에 20만2936권이었다.
점차 노골화되어 가는 일본의 제국주의정책에 의하여 정부 주도의 교과서 편찬업무가 식민지 교육의 주요 업무로 추진됨에 따라, 항일독립투쟁의 기운을 고취시켜 나가던 민간학회와 교육회 등을 중심으로 뜻있는 민간인들에 의한 교과서 편찬이 시도되었다.
1908년 10월까지 국내에 설립된 각종 민간단체는 57개에 달했으며, 이들 단체는 기관지를 발간하여 자주독립사상과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논설을 게재하였으며, 민족의식과 항일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교과서 편찬 및 일반 도서의 번역, 저술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민간 주도의 교과서가 담고 있는 내용이 친일내각의 기휘(忌諱:꺼리고 싫어함)를 받게 되면서, 친일내각은 이들 교과서의 편찬·발행·사용을 억제 내지 금지할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학부는 1908년 8월에 최초로 〈교과용 도서 검정규정〉을 공포하여, 민간 주도 교과서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가하였다.
이에 따라 1909년 5월까지 제출된 민간 주도 교과서의 총검정 출원 종수 117종 가운데 인가된 것은 55종에 지나지 않었다.
1909년 5월부터 12월까지금서(禁書)로 발매금지처분을 받은 민간 주도 교과서는 모두 39종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교과서 편찬은 황무지에 가까운 상태로 일본의 교과서체재를 모방하는 가운데 진행되었지만, 학교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가 처음으로 편찬되어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 1910년∼광복 이전의 교과서1910년부터 일본이 우리 나라 침략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1945년까지 35년간의 교육은 일본의 식민지정책을 바탕으로 실시되었으며, 이 기간의 교과서는 식민지 교육정책을 우리 나라 국민에게 강제로 이식시키기 위하여 사용된 교육재료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911년에 공포된 〈조선교육령〉에서부터다.
이러한 일본화 교육을 통해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표면화되어 갔다.
모든 교과서를 조선총독부가 주관하여 국정교과서화했으며, 1922년에 〈사립학교규칙〉을 공포하여 사립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했거나 검정을 거친 것, 또는 인가를 받은 것으로 한정하였다.
이 시기의 교과서는 인쇄·체재면에서는 앞 시기의 것과 비교하여 월등히 향상되었다.
(4) 1945∼1948년 정부수립 이전의 교과서광복과 함께 남한에 설치된 미군정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나라에 적합한 교육을 실시하고자 제반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국내인 중에서 교과별 교과서 편찬 경험을 가진 학자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1945년 9월에 미군정청이 위촉한 60명의 인사로 한국교육심의회가 발족됨으로써, 새 교육방침이 마련되었다.
이 교육방침은 교수요목(敎授要目)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어 공포됨으로써 초등학교는 6개 교과, 중등학교는 8개 교과로 된 교육과정의 일부가 마련되었다.
1945년 11월 15일부터 1946년 2월 15일까지 인쇄된 각종 교과서는 위의 ≪한글첫걸음≫ 이외에 초등학교용으로 ≪국어독본≫(상·중·하)·≪공민≫·≪음악≫·≪습자≫·≪지리≫·≪국사≫, 중등학교용으로 ≪국어교본≫·≪국사≫, 교사용으로 간행된 ≪교사용 국어교본≫ 등이다.
이들 교과서는 각급 학교에서 필요한 교과서를 망라하지는 못하였다.
광복 후 2년 동안의 교과서 편찬 및 공급사업은 현저한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미군정청의 교과서 편찬 및 공급사업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민간 유지들에 의한 교과서 편찬사업의 추진 상황이다.
1945년 9월 조선어학회는 한글학자와 교육관계자 등 20명으로 구성된 교재편찬위원회를 결성하는 데 주동적 구실을 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업내용을 확정 추진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조선초등교육건설회가 결성되었고, 뒤이어 조선아동문화협회가 조직됨으로써 교과서 편찬사업이 구체화되어 갔다.
(5) 1948∼2000년의 교과서이 시기의 교과서의 편찬과정은 ① 대한민국정부 수립 직후의 교과서, ② 1950년부터 제1차 교육과정 시행기(1955∼1963)까지의 교과서, ③ 제2차 교육과정 시행기(1963∼1972), ④ 제3차 교육과정 시행기(1973∼1982), ⑤ 제4차 교육과정 시행기(1982년 이후), ⑥ 제5차 교육과정 시행기(1988∼1993), ⑦ 제6차 교육과정 시행기(1994∼1999) 등 7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① 대한민국정부 수립 직후의 교과서:정부수립 이전에 미군정부와 민간에서 적지 않은 수효의 교과서가 편찬, 발간되었다.
전문 인력의 절대 부족으로 인해 초등학교의 국어교과서 전체가 한 사람의 편수관 손에 의해 편찬되어야 하는 업무상의 무리가 나타났고, 교과서를 편찬하는 편수관 개인의 취향과 지식에 따라 교과서가 편찬됨으로써 현장교육의 체계를 바로 세울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용 국어교과서의 경우를 예로 들면, 단원별 체제에 따라, 첫째 자모를 통한 문자학습에서 음절 단위의 문자학습으로 전환시키고, 둘째 단어 중심의 문자학습에서 문장 중심의 문자학습으로 전환시키며, 셋째 소단원제를 모아 대단원제로 묶는 체제에 따라 종전의 고립된 과(科) 중심의 교육내용을 지양하고, 넷째 생활경험을 중심으로 한 교재 구성으로 전환시키는 교과서 편수상의 개혁을 이룩하였다.
② 1950년부터 제1차 교육과정 시행기까지의 교과서:6·25전쟁은 광복 후 교과서 편찬의 발전 역량을 위축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당시에 편찬된 임시교재는 초등학교용의 ≪전시생활≫과 중등학교용의 ≪전시독본≫ 등이 있는데, 이들 교재의 성격은 반공과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었다.
한편, 1955년에 마련되어 1964년까지 시행된 제1차 교육과정은 우리 나라 최초의 민주적 교육과정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정신에 따라 1955년에 국정교과서·검정교과서·인정교과서가 편찬, 발간되었으며, 1955년에는 교과서 검인정 규정에 관한 세부지침이 작성, 배포되었다.
또한 1955년부터 연차적으로 개편 또는 신규 편찬에 착수하여, 1958년까지 사회생활부도 및 고등국어 3학년용을 제외한 모든 국정교과서의 편찬을 완료하였다.
③ 제2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제1차 교육과정 시행 이후의 시대적 변천 및 학문의 발달 상황 등을 감안,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을 제정, 공포하게 되었다.
자주성·생산성·유용성을 강조함으로써 국가발전에 부응하는 국민을 육성하는 데 기여하도록 짜여진 교육과정의 내용에 따라, 제1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와 동일한 종류를 3개년 계획으로 편찬, 발행하게 되었다.
국정교과서는 초등학교의 경우 1964∼1966년부터 사용할 교과서가 연차적으로 편찬되었고, 중학교의 경우는 1965년부터 사용할 교과서가, 고등학교의 경우는 1966년부터 사용할 교과서가 편찬되었다.
④ 제3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1973년에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1974년에는 중등학교 교육과정이 개정 공포되었다.
첫째 단계는 1973∼1977년까지의 시기로, 이 시기는 모든 교과서의 편찬·발행을 문교부가 주관한 시기이다.
이전의 교육과정 시행기와는 달리 교과서를 편찬, 발행하기 전에 1년간에 걸친 집필과정과 다시 1년간의 현장 실험 및 수정 보완과정을 거쳤으며, 이러한 절차를 밟은 뒤 현장교육용 교과서로 공급되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통합교과이론이 대두되어 초등학교 1, 2학년에서 세분화되어 있던 교과목은 성격이 유사한 교과를 통합하여 새로운 교과목을 개발하였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에는 새 교육과정에 규정되어 있는 검정제도에도 불구하고 단일화된 운영방법을 채택함으로써 176종 350책의 교과서가 14종 27책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냈다.
둘째 단계는 1978∼1982년까지의 시기로, 이 시기는 우리 나라 교과서 행정에 큰 변혁을 가져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교부직제〉도 개편하여 그때까지 편수국을 장학실에 통합 운영하는 조처를 취하였다.
이와 같은 1종 도서의 편찬담당 범위가 확대됨으로써 2종 도서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7년에 공고된 2종 도서의 검정대상 교과서를 살펴보면,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는 문법·작문·한문(Ⅰ·Ⅱ)·수학(Ⅰ·Ⅱ)·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체육·미술·음악·가정·영어(Ⅰ·Ⅱ)·독일어·프랑스어·중국어·에스파냐어·일본어·서예 등 교과서와 이에 딸린 지도서, 그리고 사회부도 등 23개 교과목에 해당하는 교과서가 제시되었고, 1978년도에 검정 신청한 305책 가운데 106책이 허가되었다.
⑤ 제4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국민정신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제4차 교육과정은 1982년부터 시행하기로 해서 제정된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1982년에 1∼3학년 교과서를 편찬하였고, 1983년에 나머지 4∼6학년 교과서를 편찬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제3차 교육과정 시행기와는 달리 1종 교과서의 범위는 축소되고, 2종 교과서의 대상은 확대되었다.
문교부는 이러한 문교정책 전환을 법제화하기 위하여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1종 도서의 대상을 개정하였다.
1종 도서의 범위를 줄이고 2종 도서의 범위를 확대하는 문교시책의 전환은 교과내용의 획일성을 피하고 다양한 형태의 교과서를 현장에 제공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었다.
⑥ 제5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제5차 교육과정은 제4차 교육과정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부분적으로 개정하였다.
특히 ‘지역화’는 지금까지의 중앙집중식에서 지방분산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어, 지역 특성·학교 특성을 살려 부분적으로 지역 단원을 신설하여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1·2학년 교과목의 통합이론은 교과 영역의 특성상 재조정되었다.
⑦ 제6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제6차 교육과정은 1992년도에 고시되어, 1995년도부터 적용되었다.
셋째, 학생의 적성·능력·진로를 고려한 ‘학교 교육과정’을 각급 학교에서 편성토록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국민 총동원 및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한 전체주의사상에 기반을 둔 ‘국민학교’란 호칭이 드디어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1996.3.) 우리의 교육에서 일제의 잔재를 벗고 독립성을 찾는 또 하나의 혁신을 이룩하였다.
초등학교 교과목 가운데 ‘산수’가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산수의 수준이 아닌 수학의 개념이 초등학교 수준에서부터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수학’ 과목으로 개칭되었다.
중학교에서는 한문·컴퓨터·환경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신설되어,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하였다.
고등학교 교과서 가운데 ‘공통사회’와 ‘공통과학’ 과목을 개설하여 기초 영역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이 다시 개발, 공표되었다(1997.12.). 2000년부터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되는 새로운 교과서가 학교급별로 연차적으로 개발, 보급되도록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우리 나라 교과서에 관한 연구는 아직 부진한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교과서에 대한 연구는 1958년 이후, 문교부와 교육연구기관에서 집중적으로 실시한 것이 현재로서는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1958년 이후의 주요 연구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자료수집 작업(1958∼1962)문교부는 교과서 편찬사업을 효과 있게 추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자료를 수집한 바 있다.
(2) 교과서 여론조사(1959)문교부는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참고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일반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과서에 관한 여론을 조사, 분석하였다.
(3) 국정교과서 여론조사(1961)문교부는 교육관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국정교과서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4) 초등학교 교과서의 분석·평가 연구(1962)문교부가 중앙교육연구소에 위촉하여 초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평가한 연구로, 이 연구는 우리 나라 교육연구기관이 실시한 최초의 교과서 연구가 된다.
(5) 교과서 모형 개발에 관한 연구(1976)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새 교과서 모형에 관한 연구로, 이 연구의 결과는 1977년부터 한국교육개발원이 개발한 중등학교 교과서 체제·개성에 관한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6) 교과서 상세화 및 구조 쇄신에 관한 연구(1976)이 연구는 문교부가 실시한 연구로, 당시 사용하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구조와 내용을 상세하게 검토하였다.
(7) 교과서 구조개선에 관한 연구(1978)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연구로,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새 모형을 개발하고자 한 연구를 확대하여 초등학교 전교과 교과서의 구조를 검토, 그 개선책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는 제4차 교육과정 시행에 따른 초등학교 새 교과서 개발을 문교부로부터 1980년에 위촉받음으로써, 이에 필요한 체계적 연구 시행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착수한 것이다.
(8) 교과용 도서 개발을 위한 기타 연구(1980)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하여 실시한 연구로, 외국과 우리 나라의 교과서제도에 관한 비교 연구, 국어과 교과서의 내용 개선에 관한 연구, 자연과 교과서의 체제 개발을 위한 연구, 실업계 고등학교 교과서의 내용분석 연구 등으로 되어 있다.
(9) 교과서의 개선 연구(1981)한국 2종교과서협회가 실시한 세미나 보고서로, 교과서의 내용·문장·체제와 품질·제도 등에 관한 문제가 검토되었다.
(10) 중학교 교과서 개선을 위한 연구(1981)한국교육개발원이 제4차 교육과정 시행에 따른 새 중학교 교과서 개발을 위해 실시한 연구로, 우리 나라 교과서 변천사 연구가 함께 이루어졌다.
문교부와 교육연구기관이 주도적 구실을 한, 교과서에 관한 연구는 일련의 실험연구와 병행됨으로써 교과서 편찬사업의 합리적 절차가 모색되었다.
≪참고문헌≫ 교육과정심의회보고서(문교부, 1961)
≪참고문헌≫ 國定敎科書株式會社10年史(國定敎科書株式會社, 1962)
≪참고문헌≫ 국민학교교과서 분석평가연구(중앙교육연구소, 1962)
≪참고문헌≫ 교과서 내용분석과 행정개선에 관한 연구(중앙교육연구소, 1969)
≪참고문헌≫ 開化期의 敎科用圖書(康允浩, 敎育出版社, 1973)
≪참고문헌≫ 교과서 상세화 및 구조쇄신연구(문교부, 1976)
≪참고문헌≫ 韓國開化期硏究(孫仁銖, 一志社, 1981)
≪참고문헌≫ 한국의 교과서변천사(한국교육개발원, 1982)
≪참고문헌≫ 18세기 書堂硏究(丁淳佑, 韓國精神文化硏究院附屬大學院 博士學位論文, 1985)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활동하면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센츄럴대학연합이 주관하는 아메리칸 리버티 대학교의 ALU-TESOL 석사학위 과정에 입학하세요.
테솔자격증은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임용되는데 안전한 발판이 되질 못합니다.
한국에서 전 과정을 IBS 방식으로 모두 공부한 후, 정식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는대학은 센츄럴대학연합 밖에 없습니다.
시간과 학비를 들이고 취득한 국내 유명대학교 총장 사인이 들어간 테솔자격증도 영어회화 전문강사임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 임용기준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판명된 한국 대학 총장명의의 테솔수료증서보다는 미국 American-TESOL 학위증서가 훨씬 더 값어치가 있습니다.
www.cuckorea.com 010-6834-6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