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발매된 김현식 유작.
사진작가 김중만이 2022년 12월31일 별세했다. 부고에 ‘한국 대표 사진작가’라는 제목이 달릴 만큼 위상이 높았다. 예술·기록 사진 분야에 업적을 남겼는데 대중에겐 유명 연예인 사진을 많이 찍기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가요계와 인연이 깊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고 1979년 돌아와 오랜 기간 음반 표지사진을 찍었다. 조용필부터 윤시내·강산에·엄정화·성시경·브라운아이즈 등 그의 손을 거쳐 간 가수가 많다. 그 가운데 우리 가요사 전설의 명반으로 불리는 김현식 유작이 기억에 남는다.
김중만은 평소 김현식과 가까운 관계였다. 어느 날 김현식이 찾아와 상당한 금액을 내놓으며 6집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다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찍어달라고 덧붙였고 김중만은 “내 스타일이 있어서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단다. 결국 사진을 찍는 일주일 동안 술을 먹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 촬영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렇게 1990년 가을, 두 사람은 부산 해운대로 떠났다. 드넓은 백사장에서 김현식은 고독하고 쓸쓸한 자세를 취했다. 아마도 마지막 사진임을 알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얼마 후 김현식은 6집 음반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11월1일 간경화로 사망하고 말았다. 6집은 1991년 1월에 나왔고 타이틀곡 ‘내 사랑 내 곁에’가 인기를 끌어 100만장 넘게 팔렸다.
그의 유작은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우선 ‘내 사랑 내 곁에’는 작곡가 오태호가 만든 노래다. 오태호가 밴드 신촌블루스 연습실에서 기타 연습을 하는데 김현식이 마음에 든다며 가져간 곡이다. 오태호는 앨범이 나오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김현식은 가사 첫 구절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하는데”를 듣는 순간 자신의 마지막 노래임을 직감했을까?
한편 김현식과 가까이 지냈던 가수 유재하가 1987년 11월1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람들은 “유재하가 김현식을 데리고 갔다”며 말하곤 했다. 이후 공교롭게도 11월에 많은 가수가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가요계에는 ‘11월의 괴담’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동경부동식(同耕不同食)이라는 옛말이 있다. ‘함께 논밭을 열심히 경작해 추수 때 술과 음식으로 잔치하려고 하니 한쪽이 먼저 가버려 홀로 먹는다’는 뜻이다. 요절한 김현식과 유재하, 68세에 폐렴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김중만의 인생을 보면서 젊은 시절 함께 의기투합했으나 누구는 먼저 가고 없으니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운명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