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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남편
출 4: 24-26, 고전 7: 16-19
고통 중에서 부부 사이가 좋아집니다. 약간은 약해야 가까워지고 사이가 좋아지는 법입니다. 모세가 죽을 뻔하고 나니 십보라의 피 남편이 되었습니다. 어떤 부인이 갑자기 남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쓰러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먹여주었습니다. 남편이 황홀해졌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외출을 하고 남편은 부인이 보는 책이 경대 앞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개 키우는 법"이란 책이었습니다. 남편이 개면 어차피 부인도 개입니다. 유대인들이 탈무드에는 "네가 너의 남편을 왕처럼 존경하면 너는 왕후가 될 것이요. 그러나 하인처럼 대하면 너는 하녀가 될 것이니라"란 말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 위치만큼 높아지고 낮아집니다. 그래서 남편을 하늘같이 높이는 것이 내게 좋은 일입니다. 십보라는 자신의 잘못을 통하여 남편이 죽을 뻔하고, 아들의 할례를 통하여 다시 회복되고, 비로소 남편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 전보다 더 귀한 남편으로 만나게 됩니다. 죽을 뻔하고 나야 진짜 부부가 됩니다. 몸저 누워 있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지요. 이런 한바탕의 고통이 있어야 진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십보라는 남편이 죽을 만큼 고통을 당하고,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남편인 모세에게 피 남편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제야 진짜 남편이 된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 남편, 아내의 존재를 확인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킴으로 새로운 내 남편, 내 아내로 거듭납니다. 피 흘림을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관계를 회복합니다. 이것이 백성들을 인도하러 가기 전에 모세와 십보라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첫째,죽게 된 모세
모세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급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 상태에 빠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만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피가쉬'입니다. 이 단어는 적대관계에서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나다라는 또 다른 단어 '카라'는 우호관계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화가 나시고, 섭섭하시고, 모세에게 감정을 가지고 만나시는 것입니다.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백성을 구하게 하시고, 못가겠다는 것을 여러 번 설득하셔서 보내실 모세를 왜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런 모세가 죽으면 누가 손해입니까? 하나님이 손해보시면서 까지 죽이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7:10에는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입니다. 준엄한 약속입니다. 모든 남자가 다 시행해야 하는 엄한 명령입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준엄한 약속을 이방 여인인 십보라는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십보라가 잘못했으면 십보라를 죽이려 하시지 왜 모세를 죽이려 하십니까?
첫째,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 전에 가정의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둘째, 십보라 편에서 볼 때, 남편이 죽는 것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담이 한 것이 아니고 범죄의 주역은 하와였지만 하와 한 사람의 범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대표자요, 머리요, 책임자입니다. 그만큼 책임도 큰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민족 해방의 중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개인적 아픔, 가정적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민족 해방이라는 중 차대한 사명을 수행하기에 앞서 자신의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다시 거듭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부부관계가 완전하게 회복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기 전에 아들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순수한 가정적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우선이었습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합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가 이루어집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합니다. 먼저 자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려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인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게 하십니다. 모세가 죽을 뻔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백성을 살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합니다. 자신이 죽지 않으면 백성을 살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하고 우리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믿어야 한다.
어쨌든 죽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라고 헨리 나우웬이 말했습니다. 또 그는 "죽음이 우리 현재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면 결코 미래로 들어가는 우리의 출애굽도 일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거트루드가 햄릿에게 말한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전에 쓰시던 번개탄을 아시지요? 번개탄은 자신은 태워 죽고, 다른 탄을 밝고 뜨겁게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내가 죽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번개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아들에게 할례한 십보라 십보라는 아들에게 할례를 태만히 한 죄로 남편이 중병이 걸렸다고 생각하고 할례를 행합니다.
맏아들 게르솜은 이미 장성하였습니다. 갓난 엘리에셀이 난지 며칠만에 미디안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모세가 죽게 되었습니다. 십보라가 엘르에셀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아마 엘리에셀이 난지 8일째 되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난지 8일째 되는 날에도 할례를 행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모세가 급병에 걸리니 정신을 차리고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낱낱의 병이 하나님의 진노는 아닙니다. 그러나 병 전체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러나 병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는 것은 축복입니다. 십보라는 차돌로 양피를 베었습니다. 차돌은 날카로운 돌칼을 의미합니다. 이 돌칼로 양피를 베어내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아무리 날카롭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고통이 따르겠습니까? 베다라는 말은 '카라트'라는 말입니다. '자르다,' '언약을 체결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언약을 체결할 때에 고기를 잘라 그 사이를 지나가게 하므로 언약을 절대 이행하게 하였습니다.
언약을 체결하는 것은 이런 고통이 따르고 절대 어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언약은 일방적으로 파기해서는 안됩니다. 오래 전에 작고하신 한국유리 창업자 최태섭장로님은 "나는 약속을 할 때는 신중하지만 일단 한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지키려고 한다. 왜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가, 그것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어록에 남기셨습니다. 그 말 자체가 참 신실한 분이십니다. 약속은 절대로 일방적으로 어겨서는 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더더구나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7:18에는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나 바울은 모두가 할례를 초월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은 할례를 초월합니다. 마음이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육체의 할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그 당시에 생명과 같던 율법도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할례는 중요했습니다. 율법은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도 할례도 초월합니다. 이 얼마나 자유합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좋습니까?
셋째, 십보라의 피 남편이 된 모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 후에 모세는 다시 살았습니다.
십보라는 모세와 새롭게 결혼한 셈이 되었으므로 피 남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야 진짜 남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피 남편이란 히브리말로 '하탄 다밈'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피의 남편'입니다. 아들의 피 흘림으로 남편이 구출되었습니다. 이 때까지는 신앙적으로 일치하지 못한 부부였지만 할례 후에는 일치하였으므로 진짜 남편이 되었습니다. 피로 값 주고 산 남편입니다. 피로 값 주고 산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으로 우리가 진짜 자녀가 됩니다. 이전까지도 하나님의 지으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피 흘림으로 진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짓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는 따로 있습니다.
모든 부부가 결혼을 통하여 부부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으로 거듭나야 피 남편이 됩니다.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진짜 살아 있는 내 남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수행하고, 피 흘림이 있는 이런 과정이 있어야 진짜 내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언약이 이루어지고, 피 흘림의 구속 가운데서 우리의 남편, 아내가 진짜 내 사람이 됩니다. 몸만 함께 사는 남편, 아내가 아니라 영이 함께 사는 피 남편, 피 아내가 되세요.
결론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나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내 자신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준비위원회는 개막식 행사 때 올림픽 주경기장 서쪽으로부터 미국의 국조인 흰머리 독수리 한 마리를 날려보내 경기장 잔디 아래로 낙하하여 오륜기가 있는 횃대 위에 사뿐히 내려앉게 하려고 했습니다. '밤비'라는 독수리를 선발해 조류학자와 조련사들이 특별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연습비행을 하는 날 밤비는 경기장에서부터 얼마동안은 멋진 곡선을 그리며 비행하는가 했더니 그만 중심을 잃고 운동장 한복판으로 떨어져 즉사했습니다. 나중에 원인을 분석해보니 밤비는 첫째, 너무 뚱뚱했고 둘째, 양 날개의 균형이 잡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나 교인들이 힘차게 날아오르지 못하는 이유도 '밤비'와 똑 같습니다.
첫째, 오늘의 교회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려는 나머지 비만해졌다는 것과 둘째는 두 날개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지도자가 무기력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 지우고 살아갑니다. 안일해졌습니다. 모세처럼 백성보다 양치기에 익숙해졌습니다. 두 날개의 균형을 상실했습니다. 자신과 가정, 교회와 사회의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하는데 균형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미국 상원의원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내가 20대에는 세상을 책임지려고 하였다. 내가 30대에는 미국을 책임지려고 하였다. 내가 40대에는 우리 주를 책임지려고 하였다. 내가 50대에는 우리 시를 책임지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60대가 되니 내 가정, 내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구합시다. 먼저 내 가정을 구합시다. 백성을 이끕시다. 먼저 내 자신을 이끕시다.
이번 한 주간도 내 자신을 잘 이끌고 내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로 본 보혈
(출 4:24-26)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이 시간에 “모세로 본 보혈”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구원 즉 살려고 하나님을 믿는데,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신앙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법도 모르고, 그렇다면 아주 난감한 일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주님을 알기 전의 바울이 그랬습니다.
롬7:9-10에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산 모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갑작스럽게 모세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은 자녀의 할례 때문이었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모세도 할례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것을 본 그의 아내 십보라가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 피를 모세에게 대며 당신은 내게 피남편이라고 하자 죽어가던 모세가 살아났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귀한 메시지를 줍니다. 보혈의 믿음 없이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보혈의 믿음이 가장 필요할 때가 언제입니까?
1. 하나님 앞에 나갈 때입니다.
24절에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여기 “그를 만나사” 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만날 때 피가 필요합니다. 피 없이 나가다는 죽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대속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어린양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아버지의 용납하시는 사랑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고 담대함을 가지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고 했고, 히4:16에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2. 보혈은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필요합니다.
출3:7-9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 이제 가라” 하셨습니다. 모세가 대 사역을 앞에 놓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을 구원하는 그 귀한 사역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기껏 부르셔 놓고 왜 죽이려 하실까 의문이 생기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보혈의 공로가 가장 필요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강단에 설 때입니다. 그리고 손을 얹어서 기도해줘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할 때, 혹은 성도들을 안수할 때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경건에 의지하지 말고 아버지의 용납하시는 사랑과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나 개인자격이 아닌 공인임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공로로, 주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그리고 이 모습 이 대로,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등 몇 중의 보호를 받으며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나를 잊고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라는 생각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3. 보혈은 위기 가운데 있을 때 필요합니다.
24-26절에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생사의 위기에서 아들의 피가 모세를 살려주었습니다.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입니다. 여기서 설명이 필요한데, 모세가 “숙소”에 있을 때란, 이 표현은 직설화법을 피해 돌려서 말하는 히브리인의 완곡한 표현으로, 십보라와 함께 있을 때, 자세히 말하면 함께 잠자리에 들었을 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때 모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자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경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피 남편이라 외쳤는데 여기 “발”은 역시 히브리인들의 완곡어법으로 ‘생식기’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은 아들들에게서 벤 포피가 모세에게 대리적인 할례의 효과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문제가 있을 때는 예수 피로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의 피로"란 '예수 피를 근거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신 그 근거가 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그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와 율법의 정죄 뿐만 아니라 가난과 질병과 불행과 음부의 저주 앞에서도 예수의 피로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4. 회개할 때도 보혈이 필요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언약의 표징이요, 죄를 제하는 거룩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보혈로서 양심의 자유를 얻었지만 회개로서 마음의 할례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회개한 후에만 보혈이 아닙니다. 회개하기 전에도 보혈이요, 회개하면서도 보혈이요, 회개한 후에도 보혈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용납함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의 죽음 앞에서 십보라가 가져온 아들의 피가 살렸듯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 공로가 우리를 살립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보혈의 피를 흘려주신 피 남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일에도 사탄의 참소 받지 말고, 이 믿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어떤 악의 세력도 다 이기는 가장 거룩하고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