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2-18 사라의 여종
본문에서 모세는 아브라함이 죽어 장사 지낸바 되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신령한 복을 이삭에게 계승하여 주신 일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갈을 통하여 낳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죽음과 그 후손들이 살았던 지형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본문 12-17절은
“(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이 방백이었더라
(17) 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삼십칠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입니다.
이 해석은 장황한 것이 아닙니다. 본 장이 시작될 무렵, 모세는 그두라의 아들들을 위해서 되어진 일들을 언급했습니다. 여기서는 제17장에서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선 많은 종족의 우두머리가 될 12 아들들을 이스마엘이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흔치 않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약속에 따라서 일어났다고 볼 때 하나님의 성실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7장 20절에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3절-14절에 기록된 족속들의 수효가 모두 열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은 정확하게 역사선상에 그대로 펼쳐집니다. 또한 그가 자기의 종 아브라함에게 친절히 또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그밖의 부수적 은총 속에서 그가 보여 주신 특별한 호의나 영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같은 일들은 영적인 계약에 첨부된 부수적 은혜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흩어져 있는 마음을 열거한 다음, 그 모든 인종을 망각에 묻어 버리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시25:13)의 선언에 따라서 본질적인 영속성이 오직 교회 안에만 남아 있도록 한 것입니다. 나아가서 모세는 가나안 땅이 아닌 다른 지역을 이스마엘의 자손들에 할당시킨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셨고 뿐만 아니라 이삭의 자손들을 위해서도 빈터를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2. 본문 18절은
“(18)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하였더라(원본과 흠정역에서는 모든 형제의 목전에서 ‘죽었다’로 되어 있음)” 입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이스마엘의 ‘죽음’ 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의 일생이 그의 다른 모든 형제들의 생애보다 짧았다는 말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나팔)은 ‘돌연된’ 죽음을 뜻합니다. 모세는 이스마엘이 ‘자연사’ 한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해석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갈대아 의역자(意譯者)는 그 단어를 ‘제비’(운명) 란 뜻으로 볼 것을 주장하면서 ‘제비가’ 그에게 ‘떨어졌다’ 고, 즉 그의 형제들과 멀지 않은 주거지가 그에게 할당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문제에 대해 그렇게 의견을 크게 달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단어를 그런 식으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나팔)이란 단어는 종종 눕다, 쉬다, 또는 거주하다 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단순한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즉 이스마엘에게는 그 형제들의 맞은 편에 주거지를 정해 주었으니, 그는 형제들에게 이웃이 되어야 하며 그의 구별된 경계지를 지켜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16장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보면 무엇보다도 천사가 그의 어머니 하갈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그의 형제의 목전에서(한글개역 성경에는 동방에서) 살리라’ 모세가 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보다 하필 이스마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동방으로 향해 이주했는데 반해서 한 민족의 수령으로서의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과는 구별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의 이웃(인접지역) 에다 주거를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즉 이스마엘이 비록 그의 형제들과 인접해서 살고는 있지만 자기 주거지에 따로 주거함으로써 그들과 섞이지 않고 그들의 목전 또는 맞은편에서 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예언이 이스마엘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주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