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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와 자물쇠 부부
오종락
아주 먼 옛날 조물주는 동서양의 가장 유명한 대장장이 한 사람씩을 불렀다.
대장장이에게 조물주는 열쇠와 자물쇠라는 물건을 만들어 둘을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고 짝꿍으로 살도록 하라고 명했다. 그런 다음 이들 부부를 귀중한 물건이 있는 집으로 보내면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내 나름대로 추정하고 있는 열쇠와 자물쇠의 탄생 설화다.
열쇠와 자물쇠의 시초가 된 정확한 기원은 알 수가 없다. 하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봐서는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서양에서는 기원전 2천 년 경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고 전해 온다.
인류 생활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열쇠와 자물쇠는 인류가 ‘소유’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잠금장치’의 관념도 서서히 태동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가운데 일상생활 속에서 작고 큰 귀중품들이 계속 생겨나게 되었고. 이를 보다 더 안전하게 보관할 필요성 때문에 점점 견고한 잠금장치로 발전하였으리라 짐작된다.
탈무드에서는 “자물쇠는 정직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직한 사람에게 못된 유혹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문을 꼭 잘 잠그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
열쇠와 자물쇠는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다. 든든한 삶의 동반자로 늘 나의 삶과 함께해 왔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이들과 함께하며 느낀 점도 많았다. ‘열쇠와 자물쇠’는 서로가 지조를 지킬 줄 아는 선비정신을 가지고 있는 매우 절도(節度)가 있는 모범적인 부부였다. 또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지켜주며 인내를 생명처럼 생각하는 존재였다.
‘열쇠 남편’은 ‘자물쇠 아내’의 근무시간에는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고 일 년이고 이년이고 기다려 줄줄 아는 무던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자물쇠 아내’가 부르면 재빨리 달려가 노고를 위로하고 꾹 닫힌 아내의 입을 즉시 열어준다. 또 아내의 답답한 가슴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따듯한 남편이다. 반면, ‘자물쇠 아내’는 근무시간에는 오로지 근무에만 충실할 뿐 ‘열쇠 남편’에게 치근거리며 안달하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자신을 기다려주는 ‘열쇠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아내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열쇠와 자물쇠 부부’는 전통적인 합궁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며 지내왔다. 그러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이들의 사랑의 모습도 변모해 갔다. 인간의 편리성과 견고성 추구에 따라 디지털 사랑으로 변했다. 열쇠와 자물쇠는 서로 헤어지지 않는 한 몸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 달팽이처럼 자웅동체(雌雄同體, 암수가 한 몸에 있음)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인간이 필요시 찾아와 비밀번호를 눌러주기만을 기다렸다. 정확한 비밀번호를 눌러 줄 때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둘은 합세하여 사랑의 힘으로 문을 열곤 했다.
인간 세상에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아기를 생산하듯이, 열쇠와 자물쇠 부부도 만나서 사랑을 나눌 때 굳게 잠긴 철문도 열 수 있다. 즉 ‘열쇠 남편’이 ‘자물쇠 아내’를 찾아와 정확한 합궁이 이루어져야 문이 개폐(開閉)되어 만사가 해결된다. 비록 흡사하게 생긴 열쇠라 할지라도 눈금 하나, 점하나 만 틀려도 자물쇠는 자신의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자물쇠는 외간 남자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지조가 있는 여인이다. 그만큼 둘의 궁합이 정확해야 하므로 천생연분 찰떡궁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 어디든지 귀중품이 존재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이들을 필요로 한다.
열쇠와 자물쇠 부부도 인간들이 백년해로(百年偕老)하는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들 부부도 몸이 닳아 노쇠해질 때까지 백년마로(百年磨老) 하자고 서로 사랑을 약속했다. 이들이 약속하는 소리를 대장간의 대장장이도 들었다. 둘은 그 약속이 꼭 지켜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세상사가 ‘열쇠와 자물쇠 부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들을 구입해간 주인이 ‘사랑놀음’에 사용해 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이들 부부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이들의 슬픈 이별의 사연이 동서양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로 팔려간 ‘열쇠와 자물쇠’가 그 슬픈 사연의 주인공이다.
이런 곳에선 애석하게도 ‘열쇠 남편’는 젊은 나이에 희생양이 된다. 사랑하는 ‘자물쇠 아내’를 홀로 두고 먼 길을 떠나며 둘의 짧은 인연은 끝이 난다. 이런 사랑의 언약식에 팔려간 열쇠와 자물쇠의 운명은 동서양이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 천자산 원가계는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천만년 변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때문에 난간에 매달려 있는 자물쇠는 열쇠를 깊은 협곡 천 길 낭떠러지로 떠나보낸 아픔을 간직한 ‘자물쇠 아내’이다. 또 프랑스 파리의 퐁데자르 다리에 걸린 수많은 자물쇠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연인들로 인해 ‘열쇠 남편’가 일찍 헤어진 ‘자물쇠 아내’이다. 이곳을 찾아온 젊은 연인들이 유유히 흐르는 센강처럼 자신들의 사랑이 낭만적으로 지속되기를 소망하며 열쇠를 떼어내어 흐르는 강물에 풍덩 던져 버린 결과다. 이럴 땐 열쇠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의 언약을 지켜주는 순교자가 되고, 자물쇠는 임을 떠나보낸 외로운 처지의 여인이 된다.
열쇠와 자물쇠의 운명도 주인을 잘 만나야만 천수를 누리게 되는가 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인간세상이나 열쇠 세상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의 짧은 사랑에 왠지 내 마음이 짠해진다.
오늘도 동네 철물점 가판대에는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열쇠와 자물쇠 부부’가 입을 벌리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과 함께 오래도록 살아갈 좋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부부는 이 세상에 와서 오래도록 서로 사랑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
평소에 열쇠와 자물쇠를 늘 사용하면서도 이들 부부의 노고를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살아온 것 같다. 지금 이 시간도 열쇠와 자물쇠는 나의 소중한 재산을 든든히 지켜주는 지킴이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나의 손에 익은 다정한 친구이자 든든한 보초병이다. 항상 알게 모르게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또 이들 부부의 금슬과 서로를 배려하는 정신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열쇠와 자물쇠 부부’의 숭고한 백년마로(百年磨老) 사랑을 꼭 지켜 주리라 다짐해 본다. (17.4.9.)
첫댓글 열쇠와 자물쇠에 대한 다양한 비유들이 재미있습니다.
그러한 비유들이 우리 생활에서는 모두 긍정적 방법으로 작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열쇠와 자물쇠는 찰떡 궁합이 아니면 쓸모가 없읍니다. 반드시 궁합이 맞아야 비로소 제 본분을 다하지요. 다양하고 솔직한 비유들이 재미있고 열쇠와 자물쇠는 우리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불가분의 존재입니다. 금실 좋은 부부같은 한쌍의 열쇠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처럼 조화와 균형이 필요할것 같읍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읍니다.
열쇠와 자물쇠의 유래부터 열쇠와 자물쇠 부부의 백년마로(百年磨老) 이야기... 유머와 해학이 녹아든 글 잘 읽었습니다.
자물쇠 남편과 열쇠 아내의 사랑얘기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치 동화의 한 토막과 같습니다. 동내 철물점을 지날 때면 오교수님의 글을 생각할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열쇠와 자물쇠를 부부로 의인화한 색다른 시도를 하셨습니다. 수필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가고 있습니다.인간으로 비유한 열쇠부부 제미있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열쇠와 자물쇠 관계를 부부애로 재미있게 비유를 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열쇠 자물쇠 50 년 가까이 살았다면 고장난 열쇠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열쇠는 자물쇠를 탓합니다. 꾹 누르는 현관문 전자키를 잃어버려 아내가 정해준 비밀번호를 기억못해 집에 못들어가는 열쇠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아들 생년월일 끝자라고 가르쳐줘도 녹슨 열쇠는 기억이 안된답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