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예수 복음의 10대 요소(4-6요소)/ 요한복음 5:36
설교자: 마경훈목사(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wigWQzZcZ8Y
어느 저명한 대학 교수가 TV에서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성을 말했습니다. 그는 “일본문화는 다른 문화를 별 저항 없이 잘 수용하여 내 것으로 만들지만 한국문화는 외국 문화에 대하여 강한 배타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일본 종교인 신도는 불교도 유교도 기독교도 다함께 수용하여 정원에는 불상을 두고 대청마루에는 일본 신도의 신을 두고 안방 문갑 위에는 성경을 두고도 별 어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기독교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유독 한국의 기독교는 순수성과 배타성이 강하여 오직 자기 신앙 이외에 다른 종교를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기독교를 잘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판 받아야 할 내용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 순수성과 배타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확신하는 사람은 복음에 다른 것을 섞을 수 없습니다. 진리에 다른 것을 섞으면 진리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적인 기독교는 순수성과 배타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소식이 복음입니다. 막 1:1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님이 없는 복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에 관한 소식이 참 복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면 고백도 분명해집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면 고백도 분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학생이 교회를 가는데 어느 분이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가니?”, “교회요.”, “너 교회 가서 뭘 믿니?”, “교회가 믿는 것을 믿어요.”, “그럼 너희 교회는 무얼 믿니?”, “제가 믿는 것을 믿지요.”, “그럼 너희 교회와 너는 무엇을 믿니?”, “예 우리가 믿는 것을 믿어요.” 그 학생의 대답은 흐리멍텅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부터 ‘예수 복음의 10대 요소’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복음의 10대 요소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복음의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예수 복음의 10대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의 복음, 2. 초림의 복음, 3. 고난의 복음, 4. 부활의 복음, 5. 승천의 복음, 6. 처소 예비의 복음, 7. 공중 강림의 복음, 8. 지상 재림의 복음, 9. 천년 왕국의 복음, 10. 심판의 복음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창조의 복음과 초림의 복음 그리고 고난의 복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부활의 복음과 승천의 복음 그리고 처소 예비의 복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복음으로 무장하시고 복음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4. 부활의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경은 네 종류의 부활을 말합니다.
①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죽은 자들 가운데 있었던 소수의 부활
성경에 보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 사건이 몇 번 나옵니다. 구약에서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왕상 17장에는 3년 흉년 때 엘리야를 대접했던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살려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신약에서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요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구 나사로의 무덤에서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종말 때 말고 역사가 진행 되는 동안에 초자연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난 사건에 대해서 부활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도 일종의 부활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다시 죽었습니다.
히 11:35입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말씀에 보면 두 종류의 부활이 나옵니다. 하나는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님 다시 오실 때 죽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적으로는 죽으면 몸이 썩고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 주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고전 15:20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큰 건축물들이 대개 무덤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세상에는 큰 무덤들이 많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 쿠푸의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평균 25톤이 되는 돌을 230만개 쌓아서 만들었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중국 시안에 가면 병마용이라고 있습니다. 진시황의 능입니다. 진시황의 능은 너무나 커서 아직도 다 발굴하지 못했습니다. 무덤을 지키는 용도로 사람 크기의 군사를 흙으로 만들었는데 약 7,000개나 발견했습니다. 수백 개의 마차와 가마도 들어있습니다. 인도의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무덤으로 불립니다. 무굴제국의 샤한 왕이 죽은 왕비 마할을 기리기 위해 지은 무덤인데, 일꾼 2만 명을 동원하여 22년간 지었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주님의 무덤은 별 볼일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두 곳입니다. 하나는 성묘교회라는 곳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아돌로로사라는 곳이 있습니다. '슬픔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선고를 받은 이후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지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800m 정도 되는 순례 길입니다. 지금은 그 길이 거의 시장입니다. 그 길 마지막에 성묘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입구에는 예수님이 누우셨다고 하는 침대처럼 생긴 길고 평평한 돌이 있습니다.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돌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돌무덤이 있는데 그 바위는 마치 불에 탄 것처럼 지저분하고 볼품없습니다.
또 하나는 정원무덤입니다. 작은 산 아래 있는 무덤인데 그곳의 정원은 아름답지만 예수님이 묻히실 때의 모습은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히브리어로 ‘골고다’라고 합니다. 라틴어로는 ‘갈보리’입니다. 뜻은 ‘해골의 곳’입니다. 정원무덤이 있는 곳 산의 바위가 해골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입니다. 들어가서 보니 작은 방만한 비어 있는 무덤입니다.
둘 중에 어느 무덤이 예수님의 진짜 무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님의 무덤은 크고 웅장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무덤은 너무나 볼품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에게는 무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무덤은 크고 화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무덤을 그렇게 꾸밀 필요도 없습니다.
③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있을 믿는 자들의 부활
고전 15:23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우리는 순식간에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의 광경을 살전 4:16-17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한 자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④최후의 심판 때 불신자들의 부활
고린도전서 15:23-24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리스도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의인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 후에 악인들이 부활합니다. 주님의 부활 외에 두 번의 부활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의인의 부활만 있는 줄로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의인이 부활하듯이 악인도 부활합니다. 단 12:2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의인과 악인 모두 부활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천년 왕국 전에 의인들이 부활하고 의인들은 천년동안 왕 노릇합니다. 그리고 천년이 찬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는데 그 때에 악인들이 부활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악인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갑니다. 지옥은 끝없는 고통의 세계입니다.
우리들은 지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습니다. 천국만 있고 지옥이 없다면, 믿지 않아도 소멸되어버리니 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옥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생명의 부활의 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6장을 보면 세례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세례를 주지만 원래는 침례입니다.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주는 것은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본래 의미는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기의 죽음이 됩니다. 내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생명의 부활을 합니다. 이 부분을 롬 6:5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신자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5. 승천의 복음
부활하신 주님께서 40일 동안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째 되는 날에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의 상황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으로 종합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던 날에 베다니 앞 감람산 꼭대기에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참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육적인 나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이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입니다. 요 16:7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께서 안 계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10일 동안 전혀 기도에 힘을 쓰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약 120명이었습니다. 성령님은 그들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로 임하셨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양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습니다. 그 이후 성령님의 능력이 사도들과 전도자들에게 나타나서 주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은 120문도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신자들에게도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십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천이 믿는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성령님을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신데 왜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유익일까요? 그것은 성령님의 사역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적용시키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의 몸을 성전삼고 그 안에 거하셔서 감동하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책망하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하시고, 열매를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이유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천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에녹이 승천했고 엘리야가 승천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승천할 것입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2단계에 거쳐서 오시는데 먼저는 공중 강림이고 그 다음은 지상 재림입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일어날 일을 살전 4:16-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영광 중에 오십니다. 먼저 공중에 강림하시는데 그때 예수 믿고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부활한 사람들과 죽지 않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갈 것입니다. 이것을 휴거라고 합니다. 휴거 된 사람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승천은 아니지만 주님처럼 공중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6. 처소 예비의 복음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 중에 하나가 주님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주님은 마음에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천국에 거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승천하신 이후에 무슨 일을 하고 계실가요?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할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요 14:2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하늘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거처를 예비하시면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요 14:3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는 이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이 천국에 우리가 거할 거처를 예비하신 후에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실 그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 외의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협력하여 이룹니다. 이는 농사의 원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적당한 비와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을 주셔서 풍년이 들게 하십니다. 하지만 농부의 수고가 없다면 풍성한 열매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사역도 그런 원리입니다.
바울은 골 1:2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데 두 가지 역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입니다. 둘째는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서 자기가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서 주님이 처소를 예비하시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거처를 예비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올려 보내야 합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린 예화입니다. 양곡교회에 신앙생활을 손님처럼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여자인데 별장을 지어놓고 사는데 주일날만 교회에 옵니다. 그분이 하루는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가서 보니까 좋은 집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 집이 유난히 좋아보였습니다. 온갖 보석으로 지어졌는데, 문은 금으로 되어있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천사님, 저 집은 누구집입니까?” 물었더니 “네가 나가는 교회 담임목사님 집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이 자매가 목사님 집을 보다가 자기 집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천사님, 제 집도 좀 보여주세요”라고 했더니, 천사가 “안 보는 게 좋을 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천사를 졸라서 허락을 받고 자기 집을 보기 위해 가는데, 천사가 시골로 인도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다 무너져 가는 오두막집을 보여주면서 “이게 네 집이다”하더랍니다. 그 집을 본 여자 분이 천사에게 따졌습니다. “아니, 이거 너무 사람 차별하는 것 아닙니까? 목사님은 목사님이라고 그렇게 좋은 집을 주시고, 저에게는 이런 집을 주실 수 있습니까?”, 천사가 대답합니다. “네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 생각해 보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했는데 하나님을 위해서는 한 일이 없더랍니다. 그분이 꿈에서 깨어난 후에 교회에 1억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분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헌신이 재정적인 헌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거처는 돈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주님을 향한 땀과 눈물과 피로 천국의 거처는 준비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공적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신앙생활은 천국의 거처를 짓는 생활입니다. 천국의 집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지 않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공적으로 천국의 집을 주님과 협력하여 짓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 때에는 그 공적이 불 시험을 받게 됩니다. 고전 3:13입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그때 공적이 그대로 있는 사람은 상을 받고 그 공적이 불타는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주님은 천국에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집을 짓는 재료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세운 공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좋은 공적을 많이 세우면 천국에 좋은 건축 재료를 많이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이 많으면 천국에 크고 좋은 거처가 준비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낸 공적이 엉터리 공적이면 주님은 그 재료로 천국에서 우리가 거할 좋은 집을 준비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부끄럽게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할 이유가 이것입니다. 믿음이 분명한 사람은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하지 않는다면 천국의 거처가 부실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셔서 천국에 좋은 재료를 많이 올려 보내시고 천국에 좋은 거처를 마련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 복음의 10대 요소’ 중에서 부활의 복음과 승천의 복음 그리고 처소 예비의 복음을 말씀드렸습니다.
4.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의 조건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5. 승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천할 것입니다. 물론 그 승천은 천국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이미 죽었던 믿음의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며 죽지 않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영원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6. 처소 예비의 복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승천하신 이후에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시며 우리가 거할 거처를 예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와 및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므로 천국에 짓는 거처의 재료를 많이 올려 보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충성스럽고 헌신 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