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랭면 트렌드
“형님, 동네에 평양냉면집 생겼는데 같이 가실래요?”
서목사는 평양랭면 마니아다. 서울의 3대 평양냉면집이라 불리는 곳의 단골일 뿐 아니라 어떻게 아는지 평양랭면집이 생기면 언제든 꼭 가보고 맛을 평가한다. 얼마전 그와 밥을 먹다가 내가 평양에서 오신분의 정착을 돕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났다. 서목사가 내게 평양랭면집을 같이 가자고 한 것은 나를 초대한 것이 아니라 평양에서 온 사람을 데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서목사는 평양에서 온 남자가 궁금했던 것이다. 아니 자신이 평소 생각하는 평양랭면의 맛의 기준을 잡고 싶었을 수도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며 평양랭면은 어느새 한반도의 소울푸드로 다가왔다. 예전같으면 실향민이나 갔을법할텐데. 고향생각에, 때로는 동향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덧 우리의 문화로 들어 왔다. 유명 연예인들이 어릴적 할아버지를 쫒아 와 봤다는 에피소드를 곁들인 유튜브 방송을 보면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부모세대의 실향민의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식당으로 발을 옮기게 된다.
평양랭면을 대하는 한국사회가 바뀐 것일까? 적어도 평양랭면집들이 다른 식당들에 비해 더 긴 줄을 선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평양랭면을 대하는 한국사회가 남북관계에 따라 나타나는 트랜드가 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반가운 모양이 아닐수 없다. 이렇게 식문화도 바뀌는데, 사람간의 마음과 관계도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안녕하세요. 혁구형님 통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생활을 괜찮으신가요?”, “일 업디요. 동상목사님이 달 탱겨두니. 긴데, 피앙랭멘은 피앙에서 먹어야디, 여기서 먹으멘 맛이 난?”, “오늘 형님이 맛보고 평가해 주세요. 서울에도 옥류관과 같은 유명한 평양랭면집들이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 기래? 길타면 한번 맛보자우.”
“긴데, 여기는 왜 길케 비싸나? 밥값보다도 비싸다. 핑앙은 말이디, 랭멘 별거 없서, 겨울에 뜨근한 아랫목에서 메밀국수, 동치미국물 붓고 고드름 하나 따다 놓으면 그게 랭멘이디.”, “형님, 평양에 옥류관에서 만드는 랭면도 그렇게 만드나요?”, “아니디, 내가 말한 것은 우리같은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고 옥류관은 아니디, 내 틴구가 옥류관 부지배인이야. 그 맛을 알디. 레시피라고 하나, 내 그것을 알고 있서. 소뼈, 돼지뼈, 닭뼈, 이것을 일정한 비율에 놓고 끓이디, 그 맛 기가 막히디, 아. 먹고싶다.”
*국이형이 먹고싶은 평양랭면, 그것은 고향을 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남북정상들이 만나면 언제나 나오는 단골 메뉴가 평양랭면이다. 2018년에는 전세계가 보는 가운데 평양랭면이 소개 되지 않았는가? 당시 판문점에서 김정은위원장이 평양랭면을 공수하여 대접하며 “멀리서 왔다면하면 안되갔구나”라고 했던 말은 두고두고 랭면과 함께 회자되고 있다. 평양랭면은 북한의 상징적인 음식일 뿐 아니라 남북의 교류와 평화에 한 걸음 내딛고자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평양랭면은 전세계 대중적 음식으로 발전했다. 북한도 이를 놓치지 않고 2022년에 평양랭면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 북한은 평양랭면이 관습적인 사회문화적 음식이라 소개한다. 평양랭면이 ‘평양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린 전통 민속 요리로 장수, 행복, 환대, 유쾌함, 친근함과 관련이 있으며 존경, 친밀감, 단합을 키운다고 믿고 있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국수를 즐기며 삶이 국수만큼 길기를 기원한다.’
“형님, 여기는 평양랭면과 함흥냉면이 유명하잖아요? 북한도 그래요?”왠만한 사람들은 이 두 냉면의 차이를 알 것이다. 흔히 고깃집 가면 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물냉과 비냉중 하나를 고르지 않던가? 평양랭면이 물냉면이라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함흥에서 온 친구와 함흥냉면집을 갔었다. 나도 서목사와 같은 궁금증이 있었고, 당연히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나는 고향에 있을때 함흥랭면이라는 말은 한번도 들어 못봤슴다. 거기는 농마국수라는 있슴다. 가재미회를 너서 비비면 그 맛이 일품임다.”함흥에는 없는데 남한에만 있는 함흥랭면이라니. 남한에서 평양랭면이 인기를 끌자 함흥냉면이 만들어 진것이다. 함흥에서 먹는 농마국수는 감자로 만들어진다. 그 지역에 감자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평양랭면 또한 그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재료를 사용한다. 바로 메밀이다. 지금이야 한반도의 전역에서 쌀을 주식으로 먹을 수 있지만, 100년전에는 어땠을까? 산간지대가 많은 한반도 중부지역에서는 쌀보다 많이 볼수 있는 작물이 메밀이다. 지금도 양평과 홍천을 비롯 강원도의 식당에서 메밀 막국수가 유명하지 않은가? 평양랭면 또한 메밀로 만들었다.
“평양랭면은 슴슴한 맛으로 먹는다고 하잖아요? 여기는 다른 곳보다 맛이 좀 강하네요. 혁구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나는 평양랭면은 많이 안 먹어봤어. 처음에는 진짜 아무맛도 안나는 것 같기도 하고, 찝찝한 맛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이 걸레빤 물 같다고도 하잖아? 처음에는 그랬는데, 몇 번 먹으니, 이게 슴슴한 맛인가 싶기도 해, 오늘 먹은 냉면은 그 맛은 아닌데. 평양랭면이 맛이 변하나?”, “이건 피앙의 맛이 아니야. 피앙의 맛은 더 강해! 길코 핑앙에서는 양념장을 친다 말이디.”
오랜 기간에 걸쳐 평양의 옥류관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말은 들은적이 있다. 옥류관의 냉면맛이 변한다고. 그렇다. 평양의 랭면의 맛은 계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끔. 그리고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끔. 그래야 또 찾아오고, 장사가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 옛날 평양랭면의 맛은 평양보다 서울에서 더 찾을 수 있겠다.
문화, 변화고 있는 문화, 서울 곳곳에 평양랭면집이 생기고, 북한 식문화를 좋아하고 찾는이들이 많아진다. 이렇듯 서울의 식문화도 바뀌는데, 우리 마음이 바뀌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평양랭면이 우리마음에 들어오듯. 북한사람들도, 그리고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우리 마음안에서 자연스레 하나되기를. 오늘도 변화를 갈망한다.
첫댓글 좋아하는 음식을 꼽자면 쫄깃함이고, 시원함인데 냉면이 생각났습니다. 선영님께서 표현하는 음식을 만드는 글과 혁구님의 글은 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우선 선영님의 글은 집에서만 만들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밥상이 떠오릅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고 할까요?
참기름이 발린 사투리와 채썰기가 된 문단채소들이 경험치 밥알에 꾹꾹 눌려져 김밥의 형태를 완성한 혁구님의 글밥이 참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문화 다양성을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정말 통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