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부사를 지낸 오섬의 선정비가 있다 하여 1박2일로 남도로 갔다 , 전라수영성인 진남관에 들리니 공사중이라 2020년에 다시와야 될것같고 돌산에 있는 방답진에 들렀다.
그곳에는 울산 동헌에 있는 선정비 중 이도재의 선정비가 있기에 들린 것이다.
방답진을 이리저리 보고 나서 보성에 있는 오섬의 선정비를 보러 갔다. 우선 보성향교에 들러서 선정비를 보고나서 읍사무소에 있는 오섬 선정비를 보았다.
오섬(吳暹) : 1585~? 본관은 군위(軍威), 자는 퇴이(退而)이다.
1624년(인조2)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다. 이괄(李适)의 난에 척후장(斥候將)으로서 전공을 세웠으며 벼슬이 강원도 감사(江原道監司)에 이르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전북 부안현(扶安縣)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전북 변산반도(邊山半島) 선포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3좌의 선정비 중 정면 제일 왼 편이 오섬의 선정비이다.
각자는 군수오섬 청근비라 되어 있고 뒷면에도 글이 있다.
을유5월일 건 이라 되어 있다.
울산 부사를 지낸 기록은 울산부 선생안에 간단하게 나오는데 숭정9년 병자년 -1636 5월도임하여 그 해 가을에 체직 되었다고 한다.
무장읍성내에는 오섬의 비가 1좌 더 있다.
무장읍성내의 비석은 촬영을 하였지만 별 관심이 없어서
놔두다가 오섬 선정비를 조사 하던 중에사진 첩에서 발견되었다.
이 바석의 촬영은 2014년에 여름휴가 때
촬영하였던 것이다.
울산에서의 오섬의 기록은 많이 없지만 조선 왕조 실록에는 많은 기록이 있다.
오섬의 본관은 군위 오씨이고 고향은 제주이다. 조선에서 제주는 급제자가 드문 일인데
제주에서 급제자가 나와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것으로 나오고 본관이 군위오씨도 드문편이지만 오씨는 한 본이라 하여 해주 오씨 동복오씨와 같이 한 본이라 한다.